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6부 제23장

잠옷 차림으로 들어선 한밤의 고백
잠옷 차림으로 들어선 한밤의 고백

돌리가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는 때 안나가 잠옷 차림으로 들어왔다.

그날 하루 안나는 몇 번이나 깊은 이야기를 시작하려다가 두세 마디 하고는 멈췄다.

“나중에 둘만 있을 때 전부 이야기하자. 너한테 할 말이 너무 많아.”

그렇게 말했었다.

이제 정말 둘만 남았는데 안나는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창가에 앉아 돌리를 바라보면서, 전에는 끝이 없을 것 같던 속 깊은 이야기의 재료들을 기억 속에서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 순간에는 이미 모든 것을 이야기해버린 것 같았다.

“키티는 어때?”

안나는 무겁게 한숨을 쉬고 조금 죄책감 어린 눈으로 돌리를 보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줘. 나한테 화나 있지?”

“화났냐고? 아니.”

돌리는 웃었다.

“그럼 나를 미워하고 경멸하지?”

“아니야. 하지만 알잖아. 그런 일은 쉽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 그래.”

안나는 얼굴을 돌려 열린 창밖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잖아. 대체 잘못이라는 게 뭐지? 누구의 잘못일까? 다른 일이 가능했을까?”

“자, 당신이라면 어때? 당신이 스티바의 아내가 되지 않는 일이 정말 가능했을까?”

“글쎄, 모르겠어. 그런데 나는 네가 내게…….”

“그래, 그래, 하지만 아직 키티 이야기 안 끝났잖아. 행복해? 그 남편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들었어.”

“훌륭하다는 말로는 부족해. 나는 그보다 좋은 사람을 몰라.”

“아, 정말 기쁘다! 정말 기뻐! 훌륭하다는 말로 부족하다고.”

안나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돌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너는 네 이야기를 해줘. 너하고는 길게 이야기해야 해.”

“나는 그 사람하고도…….”

돌리는 브론스키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백작이라고 하기도, 알렉세이 키릴로비치라고 하기도 어색했다.

“알렉세이하고.”

안나가 말했다.

“응, 무슨 이야기했는지 알아. 하지만 나는 네게 직접 묻고 싶어. 나를, 내 생활을 어떻게 생각해?”

“그걸 어떻게 갑자기 말해? 정말 모르겠어.”

“아니, 그래도 말해줘.”

안나가 말했다.

“지금 네가 보는 우리 생활은 여름이고 손님들이 있어서 이런 거야. 우리는 봄 일찍 와서 오랫동안 둘만 살았고 앞으로도 또 둘만 살 거야. 나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하지 않아.”

“그런데 내가 그 사람 없이 혼자 사는 것을 생각해봐. 그런 일은 반드시 생길 거야.”

안나는 일어나 돌리 가까이에 다시 앉으며 말했다.

“여러 가지를 보면 앞으로 그런 일이 자주 생길 것 같아. 그이는 절반쯤 집 밖에 있을 거야.”

돌리가 반박하려 하자 안나는 막았다.

“물론 내가 억지로 붙잡을 생각은 없어. 붙잡지도 않아.”

“오늘도 경마가 있잖아. 자기 말이 출전하니 가겠지. 나는 정말 기뻐.”

“그런데 나를 생각해봐. 내 처지를 상상해봐…… 아,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안나는 웃었다.

“그래서 그이는 당신에게 무슨 말을 했어?”

“내가 원래 이야기하려던 바로 그 문제였어.”

돌리는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 편을 들기도 쉬웠고. 지금 네 처지를 어떻게든 고치거나 바로잡을 가능성이 정말 없는지…….”

말을 망설이다가 계속했다.

“너도 알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가능하다면 정식으로 결혼해야 해…….”

“그러니까 이혼 말이지?”

안나가 말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나를 찾아온 유일한 여자가 벳시 트베르스카야였다는 것 알아? 벳시 알지? Au fond c'est la femme la plus dépravée qui existe.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여자라고 할 수 있어.”

“투시케비치와 관계하면서 남편을 가장 뻔뻔하게 속였던 여자가, 내 처지가 ‘정상’이 되기 전에는 자기는 나를 알고 지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그렇다고 너와 비교하는 것은 아니야. 내 사랑. 나는 너를 알아. 다만 그 말이 생각났어.”

“그래서 알렉세이는 당신한테 뭐라고 했어?”

안나는 다시 물었다.

“자기도 괴롭고 네가 괴로운 것이 괴롭대.”

돌리가 말했다.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당하고 고귀한 이기심이야. 무엇보다 자기 딸을 법적으로 자기 딸로 만들고, 네 남편이 되고, 너에 대한 권리를 갖고 싶어 해.”

“내 처지의 여자보다 더 노예인 아내가 어디 있어?”

안나는 어둡게 말을 끊었다.

“무엇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네가 괴롭지 않는 거야.”

“그건 불가능해. 그리고?”

“가장 당연한 것으로, 너희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갖기를 원해.”

“무슨 아이들?”

안나는 돌리를 보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아니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한테는 더는 아이가 생기지 않을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없어. 내가 원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그렇게 흥분해 있으면서도 돌리 얼굴에 나타난 순진한 호기심과 놀람과 공포를 알아차리고 안나는 웃었다.

“병이 난 뒤 의사가 나에게 말해줬어…….”

“말도 안 돼!”

돌리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것은 처음 듣는 순간에는 결과가 너무 많고 커서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지만, 앞으로 수없이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것만 느껴지는 종류의 발견이었다.

돌리는 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아이가 하나나 둘밖에 없는 여러 집들이 갑자기 이해되었다.

동시에 너무 많은 생각과 판단과 모순되는 감정이 밀려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차를 타고 오는 동안 바로 그런 삶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공포가 났다.

너무 복잡한 문제에 대한 지나치게 단순한 해결처럼 느껴졌다.

“N'est-ce pas immoral?”

오랫동안 침묵하다 겨우 말했다.

“왜?”

안나가 일부러 가볍고 피상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나에게 선택은 둘뿐이야. 임신해서 아픈 사람이 되거나, 내 남편, 어쨌든 남편이나 다름없는 사람의 친구와 동반자가 되거나.”

“그래, 그래…….”

돌리는 오늘 오는 길 자기가 똑같이 생각했던 논리들을 듣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과 같은 설득력을 느낄 수 없었다.

“너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심할 여지가 있을지 몰라.”

안나는 돌리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각해봐. 나는 아내가 아니야.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동안에만 나를 사랑해. 그러면 그 사랑을 무엇으로 붙잡아야 하지? 이것으로?”

안나는 흰 두 팔을 자기 몸 앞쪽으로 펴 보였다.

흥분한 순간에만 가능한 속도로 돌리의 머릿속에는 기억과 생각이 떼 지어 지나갔다.

‘나는 스티바를 붙잡지 못했어.’

‘그 사람은 다른 여자들에게 갔고, 처음으로 나를 배신하게 만든 여자는 늘 아름답고 유쾌했어도 스티바를 붙잡지 못했어. 그 여자를 버리고 또 다른 여자를 택했지.’

‘안나가 아름다움을 유지한다고 해서 브론스키를 붙잡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그런 것을 찾기 시작한다면 안나보다 더 아름답고 즐겁고 세련된 옷과 태도를 가진 여자도 찾을 수 있어.’

‘아무리 안나의 맨팔이 희고 아름답고, 풍만한 몸과 검은 머리 아래 달아오른 얼굴이 아름답다 해도, 내 역겹고 불쌍하면서도 사랑하는 남편이 계속 다른 여자를 찾고 발견하는 것처럼 브론스키도 더 좋은 여자를 발견할 수 있겠지.’

돌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한숨만 쉬었다.

안나는 그 한숨에서 반대를 읽고 계속했다.

자기에게는 아직 더 강하고 대답하기 어려운 논리가 남아 있었다.

“너는 나쁘다고 말하지? 그런데 생각해봐.”

안나가 말했다.

“내 처지를 잊고 있어. 내가 어떻게 아이를 원할 수 있겠어?”

“고통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야. 그런 것은 무섭지 않아.”

“생각해봐. 내 아이들은 무엇이 돼? 남의 성을 가진 불행한 아이들이야.”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기 출생을 부끄러워해야 할 아이들이잖아.”

“그러니까 이혼을 해야지.”

돌리가 말했다.

그러나 안나는 듣지 않았다.

수없이 자기 자신에게 말해온 논리를 끝까지 말하고 싶었다.

“그런 불행한 존재들을 태어나게 하지 않는 데 쓰지 않는다면 왜 나한테 이성이 주어졌겠어?”

돌리를 한번 보았지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했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나는 평생 죄책감을 느낄 거야.”

“아이들이 없으면 적어도 불행하지 않아. 그런데 존재하게 해서 불행하다면 책임은 오직 나한테 있잖아.”

그 논리는 오늘 오는 길 돌리가 자기에게 스스로 했던 말과 거의 같았다.

그런데 지금 들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지?’

돌리는 생각했다.

갑자기 자기 사랑하는 그리샤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상황이 과연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너무 거칠고 이상해서 돌리는 머리를 흔들어 미친 듯 돌아가는 생각을 떨쳐내려고 했다.

“아니, 모르겠어. 그건 좋지 않아.”

돌리는 혐오가 섞인 표정으로 겨우 말했다.

“그래. 하지만 네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마.”

안나는 자기 논리가 그렇게 풍부하고 돌리 논리는 빈약한데도 여전히 자기가 무언가 잘못임을 인정하는 사람처럼 덧붙였다.

“무엇보다 한 가지를 잊지 마. 나는 지금 너하고 같은 처지가 아니야.”

“너한테 문제는 ‘아이를 더 낳지 않기를 원하느냐’는 것이고, 나한테는 ‘아이를 낳기를 원하느냐’는 문제야. 완전히 다른 것이지.”

“지금 내 처지에서는 내가 아이를 원할 수 없다는 것, 이해하겠지.”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는 이미 안나에게서 너무 멀리 와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느꼈다.

둘 사이에는 결코 같은 답을 가질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고, 그 문제들은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