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6부 제20장

돌테라스의 그늘, 자수틀 앞의 공녀
돌테라스의 그늘, 자수틀 앞의 공녀

“자, 공녀님. 돌리가 왔어요.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셨잖아요.”

안나는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와 함께 큰 돌테라스로 나오며 말했다.

그늘 아래에서는 바르바라 공녀가 자수틀 앞에 앉아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백작이 쓸 의자의 자수를 놓고 있었다.

“돌리는 점심 전에는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하니까 그래도 아침을 좀 내오라고 해주세요. 나는 알렉세이를 찾아서 사람들을 다 데려올게요.”

바르바라 공녀는 돌리를 다정하면서도 조금 보호하는 듯한 태도로 맞았다.

그리고 곧바로 자기가 왜 안나 집에 살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안나를 길러준 언니 카테리나 파블로브나보다도 늘 안나를 더 사랑했다.

이제 모두가 안나를 버린 때, 이 가장 어렵고 과도적인 시기에 안나를 돕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남편이 이혼해주면 나는 다시 내 조용한 생활로 돌아갈 거야. 지금은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아무리 힘들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의무를 다하는 거지.”

“네가 와준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정말 착했어!”

“둘은 정말 가장 훌륭한 부부처럼 살고 있어. 심판은 하느님이 하실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바르바라 공녀는, 이런 관계였어도 결국 모두가 받아주었던 여러 부부의 이름을 줄줄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 생활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C'est un intérieur si joli, si comme il faut. Tout-à-fait à l'anglaise. 아침에는 모두 breakfast 때 모였다가 흩어져. 점심 전까지는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해. 저녁식사는 일곱 시.”

“스티바가 너를 보낸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 그 사람은 이쪽과 관계를 이어야 해. 너도 알잖아. 백작은 어머니와 형을 통해서도 못 할 것이 없고.”

“그리고 좋은 일도 정말 많이 해. 스티바가 병원 이야기는 안 했니? Ce sera admirable. 전부 파리에서 가져와.”

그들의 이야기는 안나가 남자 일행을 당구장에서 찾아 함께 테라스로 돌아오면서 끊겼다.

저녁식사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고 날씨도 좋았다.

그래서 남은 두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여러 가지가 제안되었다.

보즈드비젠스코예에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아주 많았고, 어느 하나도 포크롭스코예에서 하던 것과는 달랐다.

“Une partie de lawn tennis.”

베슬로프스키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우리 다시 한편 하죠.”

“아니, 너무 더워. 정원을 걷고 배를 타자.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강가도 보여드리고.”

브론스키가 말했다.

“나는 뭐든 좋습니다.”

스비야시스키가 말했다.

“돌리는 걷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그리고 나중에 배를 타고.”

안나가 말했다.

그렇게 결정되었다.

베슬로프스키와 투시케비치는 목욕장 쪽으로 가 배를 준비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나머지는 두 쌍으로 길을 걸었다.

안나는 스비야시스키와, 돌리는 브론스키와 함께였다.

돌리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들어와 있어 조금 당황스럽고 마음이 불편했다.

추상적으로, 이론으로 생각할 때는 안나의 행동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옳다고 인정하기까지 했다.

흠잡을 수 없이 도덕적인 생활만 해온 여자들이 그 단조로운 도덕생활에 지쳤을 때 흔히 그러듯, 멀리서 볼 때 돌리는 불법적인 사랑을 용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부러워하기도 했다.

게다가 안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실제로 와서, 자기에게 낯선 사람들 속에서 전혀 새로운 종류의 세련된 생활을 하는 안나를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 그들에게서 얻는 편안함을 대가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있는 바르바라 공녀가 싫었다.

일반적으로, 관념으로는 안나가 한 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바로 그 행동을 위해 선택한 남자를 실제로 보는 것은 불편했다.

게다가 원래 브론스키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자존심이 세다고 생각했고, 돈 말고는 무엇을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자기 집에 있는 브론스키는 돌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보다 훨씬 더 큰 인상을 주었다.

그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하녀 앞에서 기운 실내옷 때문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어딘지 계속 자기가 어색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돌리는 당황해 이야깃거리를 찾았다.

브론스키처럼 자존심 강한 사람에게 집과 정원을 칭찬하는 것이 오히려 싫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 집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예.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오래된 양식도 아주 잘 남아 있고요.”

브론스키가 말했다.

“현관 앞 뜰이 특히 예뻐요. 원래부터 저랬나요?”

“아닙니다.”

브론스키 얼굴이 기쁨으로 환해졌다.

“이번 봄에 보셨다면 놀라셨을 겁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말하던 브론스키는 점점 열이 올라 집과 정원을 고친 여러 세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지를 손보는 데 많은 수고를 들인 만큼 새로 온 사람이 그것을 알아봐주기를 바라고 있었고, 돌리의 칭찬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보였다.

“병원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피곤하지 않으시면 아주 가깝습니다.”

브론스키는 돌리가 정말 지루해하지 않는지 확인하듯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안나, 당신도 갈 거요?”

“우리도 갈게. 그렇지?”

안나는 스비야시스키에게 말했다.

“Mais il ne faut pas laisser le pauvre Veslovsky et Tushkevitch se morfondre là dans le bateau. 불쌍한 두 사람을 배에서 지루하게 기다리게 하면 안 되니까 사람을 보내 알려줘야겠어.”

그리고 돌리를 향해, 아까 병원 이야기를 할 때와 똑같은, 무언가를 다 아는 듯한 장난스러운 미소로 말했다.

“이 병원은 알렉세이가 이곳에 남길 기념물이야.”

“아, 큰 사업이지요.”

스비야시스키가 말했다.

그러나 브론스키에게 맞장구만 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는지 바로 약간의 비판을 붙였다.

“그런데 백작, 위생 면에서 농민들을 위해 이렇게 많이 하면서 학교에는 왜 그렇게 무관심한지 나는 늘 궁금합니다.”

“C'est devenu tellement commun, les écoles.”

브론스키가 말했다.

“학교가 너무 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나는 이쪽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그러고는 옆길을 가리키며 돌리에게 말했다.

“병원은 이쪽입니다.”

여자들은 양산을 펼치고 옆길로 나갔다.

몇 번 길을 돌아 문을 빠져나가자 높은 지대 위에 크고 붉은, 모양이 복잡한 거의 완성된 건물이 나타났다.

아직 칠하지 않은 철제 지붕은 밝은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했다.

완성된 건물 옆에는 다른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비계가 둘러져 있었고 앞치마를 한 일꾼들이 발판 위에서 벽돌을 쌓고 양동이로 모르타르를 붓고 긴 자로 면을 고르고 있었다.

“작업이 정말 빠르군요!”

스비야시스키가 말했다.

“내가 지난번 왔을 때는 지붕도 없었는데.”

“가을이면 전부 끝날 겁니다. 내부는 거의 다 됐어요.”

안나가 말했다.

“저 새 건물은 무엇입니까?”

“의사 숙소와 약국입니다.”

브론스키는 짧은 외투를 입은 건축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여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에게 갔다.

일꾼들이 석회를 떠가는 통을 돌아 건축가와 멈춰서서 열심히 무언가 이야기했다.

“박공지붕 정면이 계속 낮아 보입니다.”

무슨 일이냐고 안나가 묻자 그가 말했다.

“내가 기초를 높여야 한다고 했잖아요.”

안나가 말했다.

“그게 더 좋기는 했습니다,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하지만 이제는 이미 늦었습니다.”

건축가가 말했다.

“네, 나는 이 일에 아주 관심이 많아.”

스비야시스키가 건축을 꽤 잘 아는 것을 놀라워하자 안나가 말했다.

“새 건물은 병원하고 맞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뒤에 생각나서 계획도 없이 시작한 거예요.”

건축가와 이야기를 끝낸 브론스키는 다시 일행에 합류해 병원 안으로 안내했다.

밖에서는 아직 처마장식을 마무리하고 아래층에서는 칠을 하고 있었지만 위층은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넓은 주철 계단을 올라 층계참에서 첫 번째 큰 방으로 들어갔다.

벽은 대리석처럼 회반죽 마감을 해놓았고 하나로 된 커다란 창들은 이미 들어가 있었다.

쪽마루 바닥만 아직 끝나지 않아 목수들이 들어올린 네모난 마루를 다듬고 있었다.

주인들이 들어오자 머리를 묶은 끈을 풀어 모자를 벗듯 하고 인사하며 일을 멈췄다.

“여기가 접수실입니다.”

브론스키가 말했다.

“여기는 높은 책상 하나, 책상, 장 하나만 놓을 겁니다.”

“이쪽으로 갑시다. 창 가까이 가지 마.”

안나는 칠이 말랐는지 손으로 살짝 만져보며 말했다.

“알렉세이, 이제 칠은 다 말랐어.”

접수실에서 복도로 갔다.

브론스키는 새 방식의 환기설비를 보여주었다.

그 뒤 대리석 욕조와 특별한 스프링이 달린 침대들을 보여주었다.

병실을 하나씩 보고 창고와 세탁물방, 새로운 방식의 난로를 보여주었다.

복도에서 필요한 물건을 옮길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만든 특별한 작은 수레도 있었다.

그 밖에도 수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스비야시스키는 최신 시설에 정통한 사람답게 하나하나 정확히 평가했다.

돌리는 그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들에 놀라면서, 모두 이해하고 싶어 자세히 물었다.

그 질문들은 브론스키를 분명히 즐겁게 했다.

“내 생각에는 러시아에서 제대로 갖춘 병원으로는 여기 하나뿐일 겁니다.”

스비야시스키가 말했다.

“산부인과도 따로 만드실 건가요?”

돌리가 물었다.

“시골에는 정말 필요한데. 내가 자주…….”

브론스키는 예의바른 태도였지만 말을 끊었다.

“산원은 아닙니다. 전염병을 제외한 모든 일반 질환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그리고 새로 주문한 회복기 환자용 의자를 돌리 앞으로 밀어왔다.

“이것을 보십시오.”

직접 앉아 의자를 움직였다.

“아직 걷지는 못하고 다리에 힘도 없지만 바람은 쐬어야 하는 환자가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돌리는 모든 일에 흥미를 느꼈고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이런 일을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브론스키 자신이었다.

‘그래, 정말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이구나.’

돌리는 그의 설명은 놓치고, 얼굴과 표정을 살피며 안나의 자리에서 그를 바라보듯 생각하는 순간도 있었다.

여기 자기 영지에서 살아 움직이는 브론스키는 너무도 마음에 들어, 안나가 왜 그에게 반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