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5부 제21장

사람들이 자기에게 바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사람들이 자기에게 바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벳시와 스테판 아르카디예비치에게서 설명을 들은 뒤에야, 사람들이 자기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아내가 자기 존재 때문에 괴롭지 않도록 내버려두는 것뿐이며, 아내 자신도 그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너무도 길을 잃은 사람이 되어 아무것도 혼자 결정할 수 없었다.

자기가 이제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자기 일에 기꺼이 나서주는 사람들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무슨 말을 들어도 동의하기만 했다.

안나가 이미 집을 떠난 뒤, 영국인 가정교사가 사람을 보내 앞으로 자기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지 따로 먹어야 하는지 묻고서야, 그는 처음으로 자기 처지를 완전히 이해했고 그 끔찍함에 놀랐다.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과거와 현재를 한데 연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행복하게 살았던 오래전 과거가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과거에서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으로 넘어가는 고통은 이미 겪어냈다.

그때의 상태는 괴로웠지만 적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일 안나가 자기 외도를 고백한 바로 그때 집을 떠났다면 그는 슬프고 불행했겠지만, 지금처럼 자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출구 없는 상태에는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얼마 전 보여준 용서와 감동과 병든 아내와 자기 아이도 아닌 갓난아기를 향한 사랑을, 지금의 현실과 도무지 연결할 수 없었다.

그 모든 행동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지금 그는 혼자 남았다.

치욕을 당했고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사람, 모두에게 경멸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내가 떠난 뒤 이틀 동안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평소처럼 청원인을 받고 사무실 책임자를 만났고 위원회에도 갔다.

저녁은 식당으로 나가 먹었다.

왜 그렇게 하는지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틀 동안 영혼의 모든 힘은 오직 침착하고 심지어 무관심해 보이기 위해 쓰였다.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의 방과 물건들을 어떻게 할지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지금 일어난 일이 전혀 예상 밖이 아니고 평범한 일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사건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누구도 그의 절망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안나가 떠난 둘째 날, 코르네이가 안나가 값을 치르지 않고 남겨둔 유행상점의 청구서를 가져와 점원이 직접 와 있다고 말하자,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점원을 들어오게 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각하. 혹시 제가 부인 각하께 직접 청구해야 한다면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생각에 잠겼다.

점원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책상 앞에 앉았다.

두 손에 머리를 묻고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있었다.

몇 번이나 말을 시작하려다가 멈췄다.

주인의 상태를 알아차린 코르네이가 점원에게 다른 날 다시 오라고 했다.

혼자 남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더는 강하고 침착한 역할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대기 중인 마차도 돌려보내고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저녁식사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는 지난 이틀 동안 만난 모든 사람, 방금 온 점원과 코르네이를 포함해 누구의 얼굴에서도 자기를 향한 경멸과 분노를 분명히 보았다고 느꼈다.

그 압력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미움을 자기에게서 돌릴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미움은 자기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부끄럽고 혐오스러울 만큼 불행하기 때문에 미워했다.

바로 자기 마음이 갈기갈기 찢겼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자비 없이 대할 것이라고 느꼈다.

상처를 입어 고통에 울부짖는 개를 다른 개들이 물어 죽이듯 사람들도 자기를 짓밟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상처를 숨기는 것이었다.

그는 이틀 동안 본능적으로 그렇게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 불평등한 싸움을 계속할 힘이 없었다.

절망은 자기 슬픔 속에 완전히 혼자라는 의식 때문에 더 깊어졌다.

페테르부르크뿐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자기가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하고, 높은 관리나 사교계 인물이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으로서 자기를 불쌍히 여겨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고아로 자랐다.

형제가 둘이었다.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그가 열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재산도 얼마 없었다.

중요한 관리였으며 죽은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삼촌 카레닌이 형제를 키웠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중등학교와 대학을 모두 메달을 받고 졸업했다.

삼촌의 도움으로 곧바로 눈에 띄는 관직 경로에 들어섰고, 그 뒤로는 오직 관직상의 야심에만 자기를 내맡겼다.

학교에서도 대학에서도, 그 뒤 관직에서도 아무와도 친구관계를 맺지 않았다.

형이 영혼으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외무부에 들어가 늘 외국에서 살았고,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결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가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안나의 이모인 부유한 지방 귀족 여인이, 아직 아주 늙지는 않았으나 이미 젊다고 할 수도 없던 장관과 자기 조카 안나를 이어주었다.

그리고 카레닌이 고백을 하거나 도시를 떠나는 것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는 처지로 몰아갔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결혼해야 할 이유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똑같이 많았다.

의심스러울 때는 결정을 보류한다는 자기 원칙을 바꿀 만한 결정적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안나의 이모는 공통의 지인을 통해, 카레닌이 이미 처녀의 평판을 손상시켰으며 명예를 위해서라도 청혼해야 한다고 암시했다.

그는 청혼했다.

그리고 자기가 느낄 수 있는 모든 애정을 약혼녀와 아내에게 주었다.

안나에게 쏟은 그 애정은 그에게 남아 있던, 다른 사람과 마음으로 관계를 맺을 필요까지 없애버렸다.

이제 그의 수많은 지인 가운데 가까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른바 ‘인맥’은 많았다.

저녁식사에 초대할 수도 있고, 관심 있는 사건에 협조를 부탁할 수도 있고, 어떤 청원인을 위해 추천을 부탁할 수도 있고, 다른 인물이나 고위 정부의 행동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관습과 습관으로 정해진 한 구역 안에 단단히 갇혀 있었고, 그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학시절 친구 한 사람이 뒤에 다시 가까워졌고, 개인적 불행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먼 교육지구의 감독관으로 있었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가깝고 가능한 상대는 사무실 책임자와 의사였다.

사무실 책임자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슬류딘은 단순하고 영리하고 선량하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그에게 개인적인 호의가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오 년 동안 이어진 상하관계가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벽을 세웠다.

서류에 서명을 끝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오랫동안 침묵하며 미하일 바실리예비치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말을 하려고 했으나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는 이미 문장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나에게 닥친 불행을 들었겠지요?’

그러나 결국 평소처럼 말했다.

“그러면 이것은 준비해주시오.”

그리고 그를 돌려보냈다.

의사도 자기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말없는 합의가 있었다.

서로 일이 산더미처럼 많고 늘 서둘러야 한다는 합의였다.

여자 친구들은 떠올리지 않았다.

그중 첫 번째인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도 생각나지 않았다.

여자는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지금 그에게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