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5부 제9장

프레스코와 노란 커튼이 늘어진 낡은 궁
프레스코와 노란 커튼이 늘어진 낡은 궁

높은 회반죽 천장과 벽의 프레스코, 모자이크 바닥, 높은 창에 늘어진 무거운 노란 다마스크 커튼, 받침대와 벽난로 위의 꽃병, 조각한 문, 그림이 걸린 어두운 홀들을 가진 낡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팔라초.

그 집으로 옮기고 난 뒤 외관 자체가 브론스키의 기분 좋은 착각을 도와주었다.

자기는 무직 상태의 러시아 지주나 궁정 사냥관리관이라기보다 계몽된 예술애호가이자 후원자이고, 동시에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사교계와 인맥과 야심을 포기한 겸손한 화가라는 착각이었다.

팔라초로 옮긴 뒤 브론스키가 선택한 역할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골레니셰프를 통해 몇몇 흥미로운 사람들과 알게 되었고 처음 얼마 동안은 마음도 편했다.

이탈리아인 미술교수의 지도로 모델을 보며 소묘를 했고 중세 이탈리아 생활을 공부했다.

최근 중세 이탈리아의 생활에 너무 빠져 모자와 어깨에 걸치는 담요까지 중세풍으로 하고 다녔다.

그 모습은 그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어느 날 아침 골레니셰프가 찾아왔을 때 브론스키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 살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군. 미하일로프의 그림은 봤나?”

아침에 막 도착한 러시아 신문을 내밀며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러시아 화가에 관한 기사를 가리켰다.

그 화가는 오래전부터 화제가 되던 작품을 이제 완성했는데, 작품은 완성 전부터 이미 구매자가 정해져 있었다.

신문은 이렇게 뛰어난 화가를 정부와 미술아카데미가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봤지.”

골레니셰프가 대답했다.

“물론 재능은 있어. 하지만 방향이 완전히 틀렸어. 역시 이바노프와 슈트라우스와 르낭식의 그리스도 이해, 종교미술 이해지.”

“무슨 그림인데요?”

안나가 물었다.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입니다. 새 유파의 사실주의대로 그리스도를 완전한 유대인으로 그렸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화제에 질문이 들어오자 골레니셰프는 즉시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거칠게 잘못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술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은 이미 옛 거장들에 의해 정해진 형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아니라 혁명가나 현인을 그리고 싶으면 역사 속에서 소크라테스나 프랭클린이나 샤를로트 코르데를 고르면 됩니다. 그런데 굳이 예술에서 그 방식으로 다룰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을 고르고는…….”

“그런데 그 미하일로프가 정말 그렇게 가난한가?”

브론스키가 물었다.

그림이 좋든 나쁘든 러시아 예술의 후원자로서 화가를 돕는 것이 자기 역할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쎄. 그는 초상화가로는 뛰어나. 바실치코바 초상 못 봤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초상화를 안 그리려고 하는 모양이니 정말 돈이 없을 수도 있지. 내가 말하려던 것은…….”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의 초상화를 부탁하면 어떨까?”

브론스키가 말했다.

“내 초상은 왜요?”

안나가 말했다.

“당신이 그린 것이 있잖아요. 그 뒤로는 다른 초상화는 원하지 않아요. 아냐를 그리게 하는 편이 좋겠어요. 저기 아냐가 나오네.”

안나는 창밖을 보았다.

예쁜 이탈리아인 유모가 아기를 안고 정원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안나는 곧 아무렇지 않게 브론스키를 한번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유모는 안나의 생활에서 유일한 숨겨진 괴로움이었다.

브론스키가 자기 그림에 넣을 머리를 그 유모를 모델로 그리면서 아름답고 중세적인 모습이라고 감탄했다.

안나는 유모를 질투하는 것이 두렵다는 사실을 자기에게조차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유모와 유모의 어린 아들에게 유난히 다정했고 지나칠 만큼 잘해주었다.

브론스키도 창밖을 바라본 뒤 안나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즉시 골레니셰프에게 몸을 돌렸다.

“그 미하일로프를 알고 있나?”

“만나본 적 있어. 그런데 이상한 사람이고 교육은 전혀 못 받았어. 요즘 자주 보이는 야생의 신인류 가운데 하나랄까. 모든 불신과 부정과 유물론의 개념 속에서 d'emblée, 처음부터 길러진 자유사상가들 말이야.”

골레니셰프는 안나와 브론스키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알아차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말을 길게 이어갔다.

“예전에는 자유사상가가 종교와 법과 도덕이라는 관념 속에서 교육받은 뒤 자기 투쟁과 노동을 통해 자유사상에 도달했지.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유형이 생겼어. 도덕의 법칙이나 종교나 권위가 있었다는 말조차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채 태어날 때부터 모든 부정의 관념 속에서 자라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야생인이 되는 거지. 미하일로프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그는 미하일로프가 모스크바의 궁정 하인의 아들인 듯하며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미술아카데미에서 이름을 얻은 뒤에는 영리한 사람이므로 교양을 얻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가 교양의 원천이라고 생각해 찾아간 것은 잡지였다.

“옛날에 교양을 쌓고 싶어 하는 사람, 이를테면 프랑스 사람이 있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고전 전체를 공부했을 겁니다. 신학자와 비극작가와 역사가와 철학자까지, 자기 앞에 놓인 온갖 정신노동을 거쳐야 했겠지. 그런데 우리 시대의 사람은 곧바로 부정적인 문헌에 들어가 그 부정적 과학의 농축액을 아주 빠르게 흡수하고 나면 준비가 끝납니다.”

골레니셰프의 말은 점점 열이 올랐다.

“이십 년 전만 해도 그런 문헌에서 권위와 옛 관념에 대항한 투쟁의 흔적이라도 보았을 겁니다. 그러면 그 싸움을 통해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했음을 알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옛 관념을 논박해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문헌만 읽게 됩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다. 진화, 선택, 생존경쟁. 끝.’이라고 해버려요. 내 논문에서…….”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안나가 말했다.

오랫동안 브론스키와 조심스레 눈길을 주고받으며, 브론스키가 미하일로프의 교육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돕고 초상화를 주문하려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 그 사람에게 직접 가보죠.”

골레니셰프는 정신을 차리고 기꺼이 동의했다.

화가가 먼 구역에 살고 있었으므로 마차를 타기로 했다.

한 시간 뒤 안나는 골레니셰프 곁에 앉고 브론스키는 맞은편 앞자리에 앉아 먼 구역의 새롭고 아름다운 집 앞에 도착했다.

나온 문지기 아내에게 미하일로프가 작업실에는 아무나 들어가게 하지만 지금은 두 걸음 떨어진 자기 아파트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세 사람은 카드들을 건네며 그림을 보아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러 보내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