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로 들어간 미하일로프는 손님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브론스키의 얼굴에서, 특히 광대뼈의 표정을 자기 기억 속에 따로 저장해두었다.
그의 예술가적 감각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쓸 재료를 모으고 있었다.
동시에 이제 자기 작품에 대한 판단이 내려질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흥분은 점점 강해졌다.
그런데도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사소한 표정들만으로 세 사람에 대한 자기 판단을 빠르고 섬세하게 만들어냈다.
저 남자, 골레니셰프는 이곳에서 본 적 있는 러시아인이었다.
미하일로프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고 어디서 만났는지, 무슨 말을 나눴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굴은 기억했다.
평생 한 번이라도 본 얼굴은 전부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얼굴은 자기 상상 속에 있는 거대한 분류 가운데 ‘겉으로만 중요해 보이고 실제 표정은 빈약한 얼굴’이라는 칸에 들어 있음을 기억했다.
풍성한 머리카락과 훤히 드러난 넓은 이마가 얼굴에 외적인 중요성을 주었지만, 좁은 콧등 위에는 어린아이 같고 불안한 작은 표정 하나밖에 없었다.
브론스키와 카레니나는, 미하일로프 생각으로는, 다른 부유한 러시아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미술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애호가와 감정가인 척하는 사람들일 것이었다.
‘고대 거장들은 벌써 모조리 보았겠지. 이제 현대 작가들의 작업실을 순회하고 있을 거야. 독일인 사기꾼 작업실도, 영국인 프리라파엘라이트 바보의 작업실도 봤고, 나한테는 전부 봤다는 표시를 하러 왔겠지.’
그는 생각했다.
미하일로프는 아마추어들이 현대화가의 작업실을 둘러보는 태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영리할수록 더 심했다.
그들은 결국 이렇게 말하기 위해 찾아다녔다.
‘예술은 타락했다. 새로운 것을 보면 볼수록 옛 거장들이 얼마나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인지 알겠다.’
미하일로프는 이 모든 것을 예상했다.
손님들 얼굴에서도 보았다.
자기들끼리 무심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태도, 마네킹과 흉상을 대충 훑어보는 방식, 작가가 그림을 열어주기를 자유롭게 거닐며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그것이 보였다.
그런데도 스케치를 뒤집고 가리개를 올리고 큰 그림을 덮은 천을 벗길 때 그는 몹시 흥분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부자 러시아 귀족을 짐승이나 바보쯤으로 생각했으면서도, 브론스키와 특히 안나에게는 이상하게 마음이 갔기 때문에 흥분은 더 컸다.
“자, 보시지요.”
그는 부산스러운 걸음으로 옆으로 물러나며 그림을 가리켰다.
“빌라도의 권고 장면입니다. 마태복음 27장.”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그리고 손님들 뒤쪽으로 갔다.
그들이 말없이 그림을 바라본 몇 초 동안 미하일로프도 그림을 보았다.
그런데 자기 그림을 처음 보는 외부 사람의 눈으로,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았다.
그 몇 초 동안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멸했던 바로 이 손님들이 가장 높고 공정한 심판을 내려주리라고 미리 믿어버렸다.
지난 삼 년 동안 자기가 그림을 그리며 품어온 모든 판단을 잊었다.
의심한 적 없던 장점들도 전부 잊었다.
손님들의 낯선 눈으로 그림을 보니 좋은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전면에는 화난 빌라도의 얼굴과 고요한 그리스도의 얼굴이 있고, 뒤에는 빌라도의 시종들과 벌어지는 일을 바라보는 요한의 얼굴이 있었다.
얼굴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탐색과 실수와 수정 끝에 자기 안에서 고유한 인격으로 자라났는지, 그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고 기뻤는지.
전체의 균형을 위해 위치를 몇 번이나 옮겼는지.
얼마나 힘들게 색과 색조의 차이를 얻었는지.
그 모든 것이 지금 손님들의 눈으로 보자 진부하고 천 번 반복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얼굴, 그림 전체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얼굴, 발견했을 때 그렇게 황홀했던 얼굴마저 그들의 눈으로 보자 전부 사라졌다.
그저 티치아노와 라파엘로와 루벤스가 끝없이 그려온 그리스도를 한 번 더 그려놓은 것뿐이었다.
병사도 빌라도도 그와 똑같았다.
모든 것이 평범하고 빈약하고 낡았고, 심지어 그림 솜씨까지 좋지 않았다.
색은 산만하고 힘이 없었다.
이 사람들은 화가 앞에서는 위선적으로 정중한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둘만 남으면 자기를 불쌍히 여기며 비웃을 것이다.
침묵은 일 분도 되지 않았지만 미하일로프에게는 너무 괴로웠다.
침묵을 깨고 자기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골레니셰프에게 말을 걸었다.
“전에 뵌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안나와 브론스키의 얼굴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불안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럼요. 로시 집에서 만났죠. 이탈리아 아가씨가 낭송을 했던 저녁 말입니다. 새 라셸이라고 하던…….”
골레니셰프는 그림에서 조금도 미련 없이 눈을 떼고 자유롭게 말했다.
하지만 미하일로프가 자기 그림에 대한 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덧붙였다.
“그림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진행됐군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특히 빌라도의 모습이 놀랍습니다. 그 사람을 그대로 이해하게 되거든요. 선량하고 괜찮은 사람이지만 뼛속까지 관리라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 다만 내 생각에는…….”
미하일로프의 온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눈이 빛났다.
뭔가 말하려 했지만 흥분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아 헛기침하는 척했다.
골레니셰프의 예술 이해능력을 아무리 낮게 평가하고 있었고, ‘관리다운 빌라도’라는 올바른 말이 가장 중요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그런 하찮은 첫마디만 나오고 더 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 원래라면 모욕적일 수도 있었겠지만, 미하일로프는 그 말 하나에 황홀했다.
자기도 빌라도를 바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 생각이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백만 가지 참된 생각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 말의 중요성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그는 그 말 하나 때문에 골레니셰프를 좋아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절망에서 황홀로 넘어갔다.
그림 전체가 다시 살아났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을 그대로 가진 채.
미하일로프는 자기도 빌라도를 그렇게 이해했다고 말하려 했지만 입술이 떨려 말을 하지 못했다.
브론스키와 안나 역시 그림 앞에서 흔히 사람들이 쓰는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화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고, 미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무 쉽게 나오는 어리석은 말을 큰소리로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다.
미하일로프는 그림이 그들에게도 인상을 준 듯하다고 느껴 다가갔다.
“그리스도의 표정이 정말 놀라워요.”
안나가 말했다.
자기가 본 것 가운데 그 표정이 가장 좋았고, 그림의 중심이라는 것도 느꼈으므로 그 부분을 칭찬하면 화가가 기뻐하리라 생각했다.
“빌라도를 불쌍히 여기고 있는 것이 보여요.”
그것 역시 그림과 그리스도의 형상에서 찾아낼 수 있는 수백만 개의 옳은 생각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스도의 표정에 연민이 있어야 했다.
사랑과 지상의 것이 아닌 평온과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와 말이 무의미하다는 자각이 그 안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빌라도가 관료적인 육체생활을 대표한다면 그리스도는 정신생활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빌라도에 관리의 표정이 있고 그리스도에 연민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 모든 것과 그보다 더 많은 생각이 미하일로프의 머릿속을 한순간에 지나갔다.
그의 얼굴은 또 기쁨으로 빛났다.
“그리고 인물을 처리한 것도 좋습니다. 주위에 얼마나 공기가 있는지, 뒤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처럼.”
골레니셰프가 말했다.
그 말에는 그림의 주제나 사상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요, 정말 놀라운 솜씨입니다.”
브론스키가 말했다.
“뒤쪽 인물들이 이렇게 공간에서 떨어져 나오잖아. 바로 기술이지.”
그는 골레니셰프 쪽을 보며 말했다.
자기가 그렇게 얻고 싶어 하다가 절망했던 ‘기술’에 관해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암시한 것이었다.
“그래, 정말 놀라워.”
안나와 골레니셰프가 동의했다.
미하일로프는 그렇게 흥분한 상태였는데도 ‘기술’이라는 말이 마음을 아프게 긁는 것을 느꼈다.
브론스키를 화가 난 눈으로 바라보다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그는 ‘기술’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나 도대체 사람들이 그 말로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기술이라는 것은 작품 내용과 완전히 독립된 기계적인 그림 솜씨와 붓솜씨였다.
지금의 칭찬에서도 그렇듯 사람들은 기술을 작품의 내적 가치와 대비해서 말하곤 했다.
마치 나쁜 것을 잘 그리는 일이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하일로프가 아는 것은 이뿐이었다.
자기 눈에 열린 형상에서 덮개를 벗겨내면서 그 작품 자체를 상하지 않게 하려면 아주 많은 주의와 조심이 필요하다는 것.
그 모든 덮개를 제대로 벗겨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거기에 따로 ‘그리는 능력’이나 ‘기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어린아이에게나 자기 집 요리사 여자에게도 자기가 보는 것이 똑같이 열렸다면, 그 사람들도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을 벗겨내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반대로 아무리 능숙한 직업화가라도 먼저 내용의 경계가 자기에게 열리지 않았다면 기계적인 솜씨만으로 아무것도 그릴 수 없었다.
더구나 굳이 기술을 말한다면 자기 그림은 그 점에서 칭찬받을 작품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렸던 모든 것에서 덮개를 벗길 때 조심하지 못해 생긴, 자기 눈을 찌르는 결점들을 보고 있었다.
이제는 전체를 망가뜨리지 않고 고칠 수도 없었다.
거의 모든 인물과 얼굴에는 아직 완전히 벗겨내지 못한 덮개의 흔적이 남아 그림을 손상시키고 있었다.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된다면…….”
골레니셰프가 말했다.
“아, 좋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미하일로프는 억지로 웃었다.
“당신 그림의 그리스도는 신이 된 인간, 인간신이지 신이 인간이 된 존재, 곧 신인(神人)은 아닙니다. 물론 바로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내 마음속에 없는 그리스도를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미하일로프는 어둡게 말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 경우,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된다면…… 그림 자체가 너무 좋아 내 말이 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당신 그림에서는 동기가 다릅니다. 그래도 이바노프를 예로 들어봅시다. 만일 그리스도를 역사적인 인물의 수준으로 내리는 것이라면, 이바노프는 차라리 다른, 새롭고 아직 건드리지 않은 역사적 주제를 골랐어야 했다고 나는 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술에 주어진 가장 위대한 주제라면요?”
“찾아보면 다른 것도 있겠지요. 문제는 예술이 논쟁과 논증을 견디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바노프의 그림 앞에서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저 사람은 하느님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생겨버립니다. 그러면 인상의 통일이 무너지지요.”
“왜 그렇습니까? 내 생각에는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미하일로프가 말했다.
“그 문제는 이제 논쟁거리가 될 수도 없습니다.”
골레니셰프는 동의하지 않았다.
예술에는 통일된 인상이 필요하다는 자기 처음 주장을 유지하면서 미하일로프의 논리를 완전히 눌러버렸다.
미하일로프는 흥분했지만 자기 생각을 변호해낼 말은 찾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