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5부 제8장

미안할 만큼 행복했던 첫 시기
미안할 만큼 행복했던 첫 시기

자유를 얻은 뒤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던 첫 시기에 안나는 스스로 미안하게 느껴질 만큼 행복했고 생명의 기쁨으로 가득했다.

남편의 불행에 대한 기억은 그 행복을 더럽히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너무 끔찍한 일이어서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남편의 불행이 자기에게 너무 큰 행복을 주었으므로 후회하기 어려웠다.

병이 난 뒤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 남편과의 화해, 다시 갈라진 일, 브론스키가 다쳤다는 소식, 브론스키의 출현, 이혼을 준비한 일, 남편의 집에서 나온 일, 아들과 헤어진 일은 모두 열병 속에서 꾼 꿈처럼 느껴졌다.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안나는 외국에서 브론스키와 단둘이 있었다.

남편에게 준 악을 기억하면 혐오와 비슷한 감정이 일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를 붙잡아 같이 끌어내리는 다른 사람을 억지로 떼어냈을 때 느낄 법한 감정이었다.

그 사람은 가라앉아 죽었다.

물론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끔찍한 세부는 차라리 떠올리지 않는 것이 낫다.

안나는 관계를 끊던 첫 순간 자기 행동을 위로하는 한 가지 논리를 찾아냈었다.

이제 과거를 떠올릴 때면 다른 것보다 바로 그 생각을 기억했다.

‘나는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어.’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 내 행복을 얻지는 않을 거야. 나 역시 괴로울 거고 계속 괴로워할 거야.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을 잃었으니까. 정직한 이름을 잃고 아들을 잃었어. 나쁜 일을 했으니 행복을 원하지 않을 거야. 이혼도 원하지 않고 수치와 아들과의 이별을 견딜 거야.’

그러나 안나는 아무리 진심으로 괴로워하려 했어도 실제로는 괴롭지 않았다.

치욕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있었던 사교적 감각 덕분에 외국에서 러시아 사교계 여성들을 피했고, 한 번도 우스운 위치에 놓이지 않았다.

어디에서나 자기들 관계를 당사자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하는 척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진 것조차 처음에는 크게 괴롭지 않았다.

브론스키의 딸인 작은 아냐가 너무 사랑스러웠고, 어머니가 회복한 뒤부터 안나에게 그렇게 강하게 마음을 묶어놓아 아들이 생각나는 일이 드물었다.

회복과 함께 커진 생명의 욕구가 너무 강했고, 새로운 생활조건은 너무 낯설면서도 즐거워 안나는 죄책감을 느낄 만큼 행복했다.

브론스키를 더 알면 알수록 더 사랑했다.

그 사람 자체를 사랑했고, 자기를 사랑하는 그 사람의 사랑을 사랑했다.

그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가졌다는 사실은 끊임없는 기쁨이었다.

가까이 있는 것 자체가 언제나 즐거웠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는 성격의 모든 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군복을 벗고 평복을 입으면서 달라진 외모도, 처음 사랑에 빠진 젊은 여자에게 그렇듯 매력적으로 보였다.

브론스키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안나는 특별히 고귀하고 높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를 향한 자기의 감탄이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까지 두려웠다.

그에게서 아름답지 않은 것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자기가 브론스키보다 얼마나 하찮은 사람인지를 안나는 감히 그에게 보이지 못했다.

그가 그것을 알면 사랑이 식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근거는 전혀 없었지만 지금 가장 무서운 것은 브론스키의 사랑을 잃는 일이었다.

동시에 그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 감사하지 않을 수도 없었고, 얼마나 감사하는지 보여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안나가 보기에는 브론스키에게는 국가를 위해 활동할 분명한 소명이 있었고 반드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 야심을 희생했고 그 사실을 단 한 번도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전보다 더 다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안나를 대했다.

안나가 자기 처지 때문에 단 한순간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의 마음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토록 남성적인 사람이 안나 앞에서는 반대하지도 않았고 자기 뜻을 따로 내세우지도 않았다.

오직 그녀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차려 해주는 일에만 정신을 쓰는 듯했다.

안나는 그것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지나치게 긴장된 배려, 자기를 둘러싼 돌봄의 공기가 어떤 때는 숨막히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브론스키는 그렇게 오래 바라던 것이 완전히 이루어졌는데도 온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망의 성취가 자기가 기대한 거대한 행복의 산 가운데 모래알 하나밖에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행복을 욕망의 성취라고 상상할 때 저지르는 영원한 오류가 자기에게도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안나와 함께 살게 되어 군복을 벗은 처음 얼마 동안에는 자기가 전에는 몰랐던 자유 일반의 매력을 느꼈고, 사랑할 자유를 누렸다.

만족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혼 속에서 새로운 욕망을 원하는 욕망,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일어났다.

자기도 모르게 스쳐가는 변덕을 하나씩 붙잡고 그것을 욕망이며 목적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사회생활의 의무와 습관이 하루 시간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하루 열여섯 시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했다.

예전에 외국여행 때 즐기던 독신자의 향락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한번 친구들과 늦은 저녁을 보냈다가 예상하지 못한 안나의 우울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다.

현재 둘의 애매한 처지 때문에 현지 사회나 러시아 사회와 폭넓게 교제하기는 어려웠다.

명소 구경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볼 것은 거의 다 본 데다, 영리한 러시아인인 브론스키에게는 영국 사람들이 관광이라는 행위에 부여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중요성이 없었다.

굶주린 짐승이 눈에 잡히는 물건마다 먹을 것인지 기대하고 물어뜯듯, 브론스키는 자기도 모르게 정치에 손을 댔다가 새 책에 손을 댔다가 그림에 손을 댔다.

젊어서부터 그림에 재능이 조금 있었고,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판화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적도 있었으므로 결국 그림에 멈췄다.

만족되지 못한 욕망의 남은 힘을 전부 거기에 쏟았다.

그에게는 미술을 이해하는 능력도 있었고, 좋은 취향으로 이미 존재하는 예술을 정확히 흉내 내는 능력도 있었다.

그래서 자기는 화가에게 필요한 바로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종교화와 역사화와 사실주의 가운데 어느 장르를 택할지 망설이다가 그림을 시작했다.

모든 장르를 이해했고, 어느 방식에서도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림의 장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면서, 자기가 그릴 것이 기존의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영혼 안에 있는 것에서 직접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 점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예술 속에 구현된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아주 빠르고 쉽게 흥분했고, 똑같이 빠르고 쉽게 자기가 그리는 그림을 흉내 내려고 한 장르와 아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여러 장르 가운데 가장 좋아한 것은 우아하고 효과적인 프랑스풍이었다.

그 방식으로 그는 이탈리아 의상을 입은 안나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브론스키에게도, 그림을 본 모든 사람에게도 초상은 아주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