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초더미 위에서 보낸 밤은 레빈에게 헛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운영해온 농장 자체가 싫어졌고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수확은 훌륭했지만 올해만큼 실패가 많고 농민들과 적대적인 관계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 실패와 적대의 원인이 이제 레빈에게 완전히 분명하게 보였다.
직접 노동하면서 느꼈던 매력.
그 노동 때문에 농민들과 가까워진 느낌.
그들의 삶을 향한 질투.
그 삶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
그날 밤에는 더 이상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방법까지 생각해보는 의지가 된 그 욕망.
이 모든 것이 레빈이 자기가 만들어놓은 농장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농업에 관한 책을 쓰면서 노동자를 농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온 것도 이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개량한 소 무리, 파바 같은 좋은 소들.
거름을 주고 쟁기로 갈아놓은 토지.
버드나무를 둘러 심은 아홉 개의 고른 밭.
깊게 갈아넣은 거름 구십 데샤티나.
줄뿌림 파종기와 그 밖의 모든 농기계.
이런 것들은 자기가 혼자 일하거나 자기 생각에 공감하는 동료들과 함께했다면 모두 훌륭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기가 경영하던 농업이 사실 자기와 노동자들 사이의 끈질기고 잔인한 투쟁이라는 것을 뚜렷이 보았다.
한쪽, 자기 쪽에는 모든 것을 자기가 더 낫다고 믿는 모범에 맞게 바꾸려는 끊임없는 긴장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있었다.
그 투쟁에서는 레빈이 온 힘을 다해도, 반대쪽에서는 아무 노력이나 악의를 들이지 않아도, 농장은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태로 흘러가고 좋은 도구와 좋은 가축과 땅이 헛되이 망가졌다.
무엇보다도 그 일에 쏟는 힘 자체가 완전히 낭비될 뿐 아니라, 농업의 의미가 이제 벌거벗은 형태로 보이자 그 힘을 쏟는 목적 자체가 가장 비열한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두고 싸우고 있었던가?
레빈은 자기 한 푼 한 푼을 지키려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일꾼에게 줄 돈조차 모자랄 수 있었다.
반면 농민들은 그저 편안하고 즐겁게, 자기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일하기를 원했다.
레빈의 이해는 모든 일꾼이 가능한 한 많이 일하고, 정신을 놓지 않고, 키질기와 말갈퀴와 탈곡기를 부수지 않게 조심하며 자기가 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일꾼에게는 가능한 한 편하게, 중간중간 쉬면서, 무엇보다 아무 걱정 없이 자기 일을 잊듯 일하는 것이 좋았다.
올여름 레빈은 매번 이것을 보았다.
씨앗을 받을 가치가 없는, 잡초와 쑥이 섞인 나쁜 클로버밭만 건초로 베라고 보냈더니 씨앗용으로 가장 좋은 구획부터 줄줄이 베어버렸다.
관리인이 그렇게 시켰다고 변명했고, 대신 건초가 아주 좋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레빈은 베기 쉬운 밭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건초를 뒤집으라고 기계를 보냈더니 첫 줄에서부터 부숴버렸다.
농부는 자기 머리 위에서 날개가 휙휙 돌아가는 마부석에 앉아 있는 것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자들이 금방 뒤집어놓습니다.”
쟁기는 쓸모없게 되었다.
일꾼은 들린 칼날을 낮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억지로 그대로 돌리면서 말을 괴롭히고 밭을 망쳐놓았다.
그리고 다시 주인에게 마음 편히 있으라고 했다.
밤 지키기를 하려는 사람이 없어 말들이 밀밭에 들어갔다.
하지 말라고 명령했는데도 일꾼들은 돌아가며 밤새 말을 지켰고, 하루 종일 일한 바냐가 잠들어 사고를 내놓고는 “나리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자기 죄를 인정했다.
가장 좋은 어린 암소 세 마리를 너무 먹여 죽였다.
물을 먹이지 않고 클로버 두 번째 풀에 풀어놓아서 배가 불러 죽었다는 말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이웃집에서는 사흘 만에 소 백열두 마리가 죽었다는 이야기로 위로했다.
그 모든 일은 누군가 레빈이나 그의 농장을 해치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농민들이 자기를 좋아하고 단순한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농민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다만 즐겁고 걱정 없이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레빈의 이해관계는 그들에게 낯설고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가장 정당한 이해와 필연적으로 반대되어 있었다.
레빈은 오래전부터 자기 농업방식에 불만을 느꼈다.
자기 배에 물이 새고 있다는 것은 보면서도 어디에서 새는지는 찾지도 않았고, 어쩌면 일부러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속일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농업은 흥미가 없는 것을 넘어 혐오스러워졌다.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삼십 베르스타 떨어진 곳에 키티 셰르바츠카야가 와 있었다.
레빈은 보고 싶으면서도 볼 수 없었다.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전에 그가 갔을 때 다시 오라고 했다.
그 말에는 이제 오면 자기 동생에게 다시 청혼하라는 뜻, 이번에는 키티가 받아들일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었다.
레빈 자신도 마차 속 키티를 본 순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키티가 있는 것을 알면서 오블론스키 집에 갈 수는 없었다.
자기가 청혼했고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두 사람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놓고 있었다.
‘그 여자가 원했던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그 생각을 하면 키티에게 차갑고 적대적인 감정이 생겼다.
‘나는 원망하지 않는 목소리로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분노 없이 그 여자를 볼 수 없을 거야. 그러면 당연히 나를 더 싫어하게 되겠지.’
‘게다가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그런 말을 들은 뒤 어떻게 그 집에 갈 수 있지? 내가 안다는 것을 숨길 수 있을까? 마치 관대한 사람이 되어 그 여자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러 가는 꼴이 되잖아. 내가 용서하는 사람, 다시 사랑해줄 영광을 내려주는 사람 역할이라니!’
‘왜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런 말을 한 거야? 우연히 만났다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되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해. 불가능해!’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키티가 탈 여자 안장을 하나 빌려달라는 쪽지를 보내왔다.
당신에게 여자용 안장이 있다고 들었어요. 직접 가져다주면 좋겠어요.
그것은 레빈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영리하고 섬세한 여자가 어떻게 자기 동생을 이렇게 낮은 위치에 놓을 수 있는가?
레빈은 답장 쪽지를 열 장이나 썼다가 모두 찢어버렸다.
가겠다고 쓸 수는 없었다.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못 간다고 하면서 사정이 있어서라거나 떠날 예정이라고 쓰는 것은 더 나빴다.
그는 아무 답장 없이 안장만 보냈다.
그리고 자기 행동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느낌을 품은 채 다음 날, 이제는 지긋지긋해진 농장일 전체를 관리인에게 넘겨주고 먼 지방에 사는 친구 스비야시스키에게 떠났다.
스비야시스키 주변에는 도요새가 아주 잘 잡히는 습지가 있었다.
얼마 전에도 오래전부터 한 약속대로 자기 집에 와달라고 편지를 보내왔다.
수로프스키 군의 도요새 습지는 오래전부터 레빈을 유혹해왔지만 그는 농장일 때문에 계속 여행을 미뤘다.
이제는 셰르바츠키 가족의 가까운 곳에서도, 무엇보다 농장에서 떠나는 것이 기뻤다.
특히 사냥여행이었다.
어떤 슬픔이 있을 때든 사냥은 레빈에게 가장 좋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