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3부 제4장

농부에게 낫을 빌려 직접 풀을 베던 기억
농부에게 낫을 빌려 직접 풀을 베던 기억

형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레빈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개인적인 일은 이러했다.

지난해 어느 날 풀베기 현장에 갔다가 관리인에게 화가 난 레빈은 자기 마음을 진정시키는 늘 쓰던 방법을 택했다.

농부에게서 낫을 하나 빌려 직접 풀을 베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일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뒤로 몇 차례 다시 낫을 잡았고, 집 앞 초원을 전부 베었다.

올해는 봄부터 계획까지 세웠다.

농부들과 나란히 하루 종일 풀을 베리라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형이 온 뒤로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형을 하루 종일 혼자 두는 것이 미안했고, 또 자기가 농부들과 풀을 베는 모습을 형이 우습게 여기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초원을 걸으며 지난해 풀을 베던 감각을 떠올리자 이미 거의 결심이 섰다.

형과의 짜증 나는 논쟁 뒤에는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몸을 좀 써야 해. 안 그러면 성격이 아주 못돼질 것 같아.’

그는 생각했다.

형 앞에서도 농부들 앞에서도 조금 어색하더라도 풀을 베기로 결정했다.

저녁 무렵 콘스탄틴 레빈은 농장 사무실로 가 일에 관한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마을들에 사람을 보내 내일 풀베기에 나올 일꾼들을 부르라고 했다.

베어야 할 곳은 칼리노프 초원, 농장 가운데 가장 넓고 좋은 초원이었다.

“그리고 내 낫은 티트에게 보내서 날을 잘 두드려놓고 내일 가져오라고 해주세요. 나도 아마 같이 벨 겁니다.”

레빈은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관리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저녁 차 자리에서 레빈은 형에게도 말했다.

“날씨가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내일부터 풀베기를 시작하려고요.”

“나는 그 일을 아주 좋아하지.”

세르게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나도 무척 좋아해요. 예전에도 농부들과 가끔 같이 벴어요. 내일은 하루 종일 베려고요.”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고개를 들어 호기심 있게 동생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냐? 농부들과 완전히 똑같이, 하루 종일?”

“네. 아주 즐거워요.”

“육체운동으로는 훌륭하겠구나. 하지만 네가 과연 하루 종일 견딜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조금도 비웃지 않고 말했다.

“해봤어요. 처음엔 힘들지만 곧 익숙해져요. 뒤처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런데 농부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주인이 별난 짓 한다고 웃지 않나?”

“아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요. 그 일은 너무 힘들면서 동시에 너무 즐거워서 남을 생각할 틈이 없어요.”

“그런데 점심은 어떻게 할 거냐? 거기로 라피트 포도주와 구운 칠면조를 보내달라고 하기도 어색하잖아.”

“아니요. 그 사람들이 쉴 때 맞춰서 집에 와 먹으면 돼요.”

다음 날 아침 콘스탄틴 레빈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농사일 지시를 하느라 늦어졌고, 풀베기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일꾼들은 이미 두 번째 이랑을 베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래쪽에는 그늘진 초원이 벌써 베여 있었다.

회색빛으로 길게 놓인 풀더미 줄과, 첫 이랑을 시작한 곳에 벗어놓은 겉옷들이 검은 점처럼 보였다.

가까이 갈수록 농부들이 길게 한 줄로 늘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낫을 휘두르며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겉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셔츠만 입은 사람도 있었다.

레빈은 마흔두 명을 세었다.

그들은 오래된 둑이 있던 울퉁불퉁한 낮은 곳을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레빈은 자기 농부 몇 사람을 알아보았다.

아주 긴 흰 셔츠를 입고 허리를 구부린 채 낫을 휘두르는 늙은 예르밀도 있었다.

전에는 레빈 집에서 마부로 일했고, 매 이랑을 힘껏 넓게 베어나가는 젊은 바시카도 있었다.

그리고 풀베기에서는 레빈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티트도 있었다.

작고 마른 농부인 티트는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맨 앞에서 걸었다.

마치 낫을 가지고 놀기라도 하는 것처럼 넓은 이랑을 가볍게 잘라냈다.

레빈은 말에서 내려 길가에 묶고 티트에게 다가갔다.

티트는 덤불 속에서 낫 하나를 더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준비됐습니다, 나리. 면도칼처럼 잘 듭니다. 저절로 베어질 겁니다.”

티트는 웃으며 모자를 벗고 낫을 건넸다.

레빈은 낫을 받아 자세를 잡았다.

자기 이랑을 끝낸 일꾼들은 땀에 젖었지만 즐거운 얼굴로 하나둘 길로 나와 웃음을 참으며 주인에게 인사했다.

모두가 레빈을 바라봤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름투성이에 수염 없는 얼굴을 하고 양가죽 외투를 입은 키 큰 늙은이가 길로 나와 레빈에게 말을 걸었다.

“나리, 이미 멍에를 멨으면 뒤처지면 안 됩니다!”

그가 말했다.

농부들 사이에서 억눌린 웃음이 들렸다.

“뒤처지지 않게 해보지요.”

레빈은 티트 뒤에 서서 출발할 때를 기다리며 대답했다.

“잘 보시오.”

늙은이가 다시 말했다.

티트가 자리를 내주었고 레빈이 뒤따랐다.

길가의 풀은 낮았고, 오랫동안 낫질을 하지 않은 데다 모든 시선이 자기에게 향해 있어 당황한 레빈은 처음 몇 분 동안 힘껏 휘둘렀음에도 형편없이 베었다.

뒤쪽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낫자루가 잘못 끼워졌군. 손잡이가 너무 높아. 저러니 허리를 얼마나 구부려야 하나.”

한 사람이 말했다.

“뒤꿈치 쪽으로 더 눌러야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

“괜찮아, 익숙해지면 돼.”

늙은이가 말했다.

“봐, 이제 간다…… 너무 넓게 베면 힘들어져…… 주인이니까 자기 걸 잘해보겠다고 애쓰는 거지! 그런데 봐, 이랑 꼴이! 우리 같은 놈이 저렇게 베었으면 옛날엔 등에 한 대 맞았겠어.”

풀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레빈은 말을 듣기는 했지만 대답하지 않고, 어떻게든 더 잘 베려고 애쓰며 티트 뒤를 따라갔다.

백 걸음쯤 갔다.

티트는 멈추지도 않고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계속 나아갔다.

하지만 레빈은 이미 자기가 버티지 못할까 두려울 만큼 지쳐 있었다.

마지막 힘으로 낫을 휘두르고 있다고 느껴 티트에게 쉬자고 말하려던 순간, 바로 그때 티트가 스스로 멈췄다.

그는 몸을 굽혀 풀을 한 줌 집고 낫날을 닦은 뒤 숫돌로 갈기 시작했다.

레빈은 몸을 폈고 크게 숨을 내쉬며 주위를 보았다.

뒤의 농부 역시 분명히 지쳐 있었던 모양이다.

레빈까지 오기도 전에 곧바로 멈춰 낫을 갈기 시작했다.

티트는 자기 낫과 레빈의 낫날을 물에 적셨고, 다시 출발했다.

두 번째 구간도 똑같았다.

티트는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걸음씩 일정하게 나아가며 멈추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레빈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따라갔으나 점점 힘들어졌다.

이제는 정말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순간이면 이상하게도 바로 그때 티트가 멈춰 낫을 갈았다.

그렇게 첫 번째 긴 이랑을 다 갔다.

레빈에게 그 이랑은 특별히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나 끝에 도착해 티트가 낫을 어깨에 얹고 자기가 벤 자리에 남은 발뒤꿈치 자국을 따라 천천히 다음 이랑으로 걸어가자, 레빈도 자기가 벤 길을 따라갔다.

얼굴에서는 땀이 비처럼 흘러 코끝에서 뚝뚝 떨어졌고, 등은 물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지만 그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이제 자기가 끝까지 견딜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기뻤다.

다만 자기가 벤 이랑이 형편없다는 사실 하나가 그 기쁨을 조금 흐렸다.

‘팔을 덜 쓰고 몸 전체로 더 움직여야 해.’

레빈은 실로 잘라놓은 것처럼 고른 티트의 이랑과, 흩어지고 들쭉날쭉하게 놓인 자기 이랑을 비교하며 생각했다.

레빈이 알아차리기에 첫 이랑에서는 티트가 특별히 빠르게 갔다.

아마 주인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었고, 마침 이랑도 길었다.

그다음부터는 좀 쉬워졌다.

그래도 농부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온 힘을 써야 했다.

레빈은 이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직 농부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과 될 수 있는 한 일을 잘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귀에는 낫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눈앞에는 점점 멀어지는 티트의 곧은 몸, 반원형으로 휘어진 베인 자리, 자기 낫날 앞에서 천천히 물결치며 쓰러지는 풀과 꽃송이, 그리고 저 앞에서 휴식이 기다리는 이랑 끝만 보였다.

일을 하던 중 갑자기 뜨겁고 땀에 젖은 어깨 위로 기분 좋은 차가움이 느껴졌다.

어디서 오는 감각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낫을 가는 동안 하늘을 보았다.

낮고 무거운 구름이 다가왔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몇몇 농부들은 겉옷이 있는 곳으로 가 옷을 걸쳤지만, 다른 사람들은 레빈과 마찬가지로 상쾌한 비를 반기며 어깨를 즐겁게 움츠릴 뿐이었다.

이랑이 하나, 또 하나 지나갔다.

긴 이랑도, 짧은 이랑도, 풀이 좋은 곳도 나쁜 곳도 지나갔다.

레빈은 시간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지금이 이른지 늦은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의 노동에 엄청난 즐거움을 주는 변화가 생겼다.

일하는 도중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는 순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몸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바로 그런 순간에는 자기 이랑도 티트의 것처럼 거의 곧고 훌륭하게 나왔다.

하지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고 더 잘하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순간이면 노동은 다시 무겁게 느껴졌고 이랑도 나빠졌다.

한 이랑을 더 끝내고 다시 들어가려 했을 때 티트가 멈춰 늙은이에게 가서 무언가 조용히 말했다.

두 사람은 해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왜 다음 이랑으로 안 들어가지?’

레빈은 농부들이 쉬지 않고 벌써 네 시간 가까이 베었다는 사실, 이제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생각했다.

“나리, 아침 먹읍시다.”

늙은이가 말했다.

“벌써요? 그래요, 먹지요.”

레빈은 낫을 티트에게 건네고, 겉옷 곁에 둔 빵을 가지러 가는 농부들과 함께 살짝 비에 젖은 길고 넓은 베인 초원을 가로질러 말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제야 자기가 날씨를 잘못 보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비가 자기 건초를 적시고 있었다.

“건초를 망치겠네.”

그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리. 비 올 때 베고 맑을 때 걷는 법입니다!”

늙은이가 말했다.

레빈은 말을 풀어 집으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막 일어난 참이었다.

커피를 마신 레빈은 형이 옷을 다 입고 식당에 나오기도 전에 다시 풀베기 현장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