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베르스카야 공작부인이 안나를 초대한 크로케 모임에는 여자 두 명과 그들의 숭배자들이 올 예정이었다.
그 두 여인은 페테르부르크의 새롭고 선택된 사교계에서 대표적인 존재들이었고, 무엇인가를 또 흉내 낸 이름을 흉내 내어 ‘세상의 일곱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무리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물론 최고 사교계의 사람이었지만 안나가 늘 어울리던 모임과는 완전히 적대적인 집단이었다.
게다가 리자 메르칼로바의 늙은 숭배자이자 페테르부르크의 영향력 있는 인물인 스트레모프는 관직상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적이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안나는 원래 가고 싶지 않았다.
벳시의 쪽지에 있던 암시들도 바로 그 거절을 두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브론스키를 만날 희망 때문에 가고 싶어졌다.
안나는 다른 손님보다 먼저 트베르스카야 공작부인 집에 도착했다.
그녀가 들어갈 때, 궁정 시종 같은 모습으로 구레나룻을 말끔히 빗은 브론스키의 하인도 함께 들어왔다.
그는 문 앞에서 멈춰 모자를 벗고 안나를 먼저 지나가게 했다.
안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 순간에야 전날 브론스키가 자기는 오지 않겠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아마 그 사실을 쪽지로 알리러 온 모양이었다.
현관에서 겉옷을 벗으며 안나는 브론스키의 하인이, 궁정 시종처럼 ‘ㄹ’ 발음까지 또렷하게 굴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백작님께서 공작부인께.”
그는 쪽지를 건넸다.
안나는 하인에게 주인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대로 돌아나가 브론스키에게 자기에게 오라고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아니면 자기가 직접 그에게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앞쪽에서는 이미 안나의 도착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었고, 트베르스카야 공작부인의 하인이 열린 문 곁에서 몸을 반쯤 돌린 채 안나가 안쪽 방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작부인께서는 정원에 계십니다.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정원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다른 방의 하인이 말했다.
집에서와 똑같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무엇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더 나빴다.
아무 행동도 할 수 없고 브론스키를 만날 수도 없는데, 자기 마음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여기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안나는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혼자가 아니었으며, 주위에는 익숙한 사교계의 화려하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보다 편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흰 드레스를 입고 투시케비치와 친척 처녀 하나를 데리고 다가오는 벳시를 만났을 때, 안나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었다.
벳시의 흰 드레스는 놀라울 만큼 세련되었다.
그 친척 처녀는 시골에 있는 부모에게는 더없는 영광스럽게도 유명한 공작부인의 집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안나에게 평소와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벳시는 곧 알아차렸다.
“잠을 못 잤어요.”
안나는 자기들을 향해 오는 하인을 주시하며 말했다.
자기 생각에는 브론스키의 쪽지를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와줘서 정말 기뻐요.”
벳시가 말했다.
“나는 지쳐서 저 사람들이 오기 전에 차 한 잔 마시려고 했어요. 투시케비치, 당신은 마샤와 가서 잔디를 깎아놓은 곳의 크로케장을 한번 살펴봐요.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We'll have a cosy chat, 그렇죠?”
벳시는 우산을 든 안나의 손을 누르며 웃었다.
“더구나 나는 오래 있을 수 없어요. 꼭 늙은 브레데에게 들러야 해요. 백 년 전부터 가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안나가 말했다.
본래 자기 천성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거짓말은 이제 사교계에서는 쉽고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어떤 즐거움까지 주었다.
불과 일 초 전까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말을 왜 했는지 안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
브론스키가 오지 않을 테니 어떻게든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해서 그를 만나보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왜 하필 여러 사람 가운데 늙은 궁정 여인 브레데를 핑계로 떠올렸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뒤에 실제로 브론스키를 만날 가장 교묘한 방법을 궁리했을 때도 이것보다 나은 핑계를 찾지 못했다.
“아니에요. 절대로 보내주지 않을 거예요.”
벳시는 안나의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모욕당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꼭 내 사교계가 당신의 평판을 해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 같잖아요.”
그녀는 늘 하인에게 말을 할 때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덧붙였다.
“작은 응접실로 차를 가져오세요.”
하인이 건넨 쪽지를 읽었다.
“알렉세이는 우리를 뛰어넘어버렸네요.”
벳시는 프랑스어로 말했다.
“못 온다고 썼어요.”
그 말투는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크로케 참가자 이상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안나는 벳시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벳시가 자기 앞에서 브론스키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들으면 순간적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믿게 되곤 했다.
“아.”
안나는 거의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계속했다.
“당신 모임이 어떻게 누구의 평판을 손상시킬 수 있어요?”
비밀을 숨기는 이 말의 놀이 자체는 다른 여자들에게 그렇듯 안나에게도 강한 매력이 있었다.
숨겨야 할 필요나 숨기는 목적 때문이 아니라, 바로 숨기는 과정 자체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나는 교황보다 더 가톨릭적일 수는 없잖아요. 스트레모프와 리자 메르칼로바는 사교계에서도 가장 높은 사람들인데. 어디든 받아들여지고요. 그리고 나는…….”
안나는 ‘나는’에 특별히 힘을 주었다.
“한 번도 엄격하거나 편협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냥 시간이 없을 뿐이에요.”
“아마 스트레모프와 만나고 싶지 않은 것 아닐까요? 그 사람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위원회에서 창을 부딪치는 건 그들 사정이고 우리와는 상관없지요. 사교계에서는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크로케에도 열정적이고. 직접 보면 알 거예요. 리자를 쫓아다니는 늙은 연인의 우스운 처지인데도 거기서 빠져나오는 솜씨를 보면 정말 기막혀요. 아주 매력적이에요. 사포 슈톨츠는 아직 모르죠? 완전히 새롭고 새로운 스타일이에요.”
벳시는 즐겁고 총명한 눈으로 안나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작은 서재에 들어갔다.
“그런데 알렉세이에게는 편지를 써야겠어요.”
벳시는 책상 앞에 앉아 몇 줄을 쓰고 봉투에 넣었다.
“저녁에 오라고 쓰는 거예요. 저녁 식사에 여자 하나가 남자 짝 없이 남게 생겼거든요. 설득력이 있는지 봐줘요. 미안한데 잠깐만 혼자 있어요. 당신이 봉해서 보내주세요. 나는 지시할 일이 좀 있어서.”
그녀는 문 쪽에서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안나는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고 벳시의 편지 앞에 앉았다.
내용을 읽지도 않고 맨 아래에 자기 손으로 덧붙였다.
꼭 만나야 해요. 브레데 정원으로 와주세요. 여섯 시에 거기 있겠어요.
봉투를 닫았다.
벳시는 돌아와 안나가 보는 앞에서 편지를 하인에게 내주었다.
차는 작은 쟁반탁자에 실려 서늘한 응접실로 들어왔다.
손님들이 오기 전 벳시가 약속한 대로 두 사람 사이에는 정말 ‘편안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올 예정인 사람들 이야기를 하나씩 하다가 리자 메르칼로바에게 화제가 멈췄다.
“나는 그 여자가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늘 마음이 갔어요.”
안나가 말했다.
“당신은 좋아해야 해요. 리자는 당신에게 완전히 반했어요. 어제 경마 뒤에 나한테 와서 당신을 못 만났다고 거의 절망하더군요. 당신은 진짜 소설의 여주인공이고 자기가 남자였다면 당신 때문에 천 가지 어리석은 일을 했을 거라고 해요. 스트레모프가 그러더군요. 남자가 아니어도 이미 많이 하고 있다고.”
잠시 침묵한 뒤 안나는 물었다.
말투로 보아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 이상으로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제발 알려줘요. 나는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리자와 칼루시스키 공작, 그 ‘미시카’라는 사람 관계가 정확히 뭐예요? 둘을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어떤 관계죠?”
벳시는 눈으로 웃으며 안나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새로운 방식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들은 전부 그런 방식을 택했어요. 밀가루방앗간 너머로 모자를 던져버렸다고 할까요. 다만 모자를 던지는 데에도 방식이 있고 방식이 있죠.”
“그래도 칼루시스키와 정확히 무슨 관계예요?”
벳시는 뜻밖에도 크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좀처럼 그렇게 웃지 않는 여자였다.
“이제 먀흐카야 공작부인의 영역을 침범하시는군요. 완전히 무서운 아이 같은 질문이에요.”
벳시는 웃음을 참으려다 결국, 평소 잘 웃지 않는 사람이 한번 웃음을 터뜨렸을 때의 전염성 강한 웃음에 빠졌다.
“당사자들에게 물어봐야겠네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니, 웃지 말아요.”
안나도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옮아 말했다.
“정말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남편의 역할이 뭔지도 모르겠고.”
“남편이요? 리자 메르칼로바의 남편은 아내에게 담요를 가져다주고 언제나 무엇이든 시킬 준비가 되어 있죠. 그다음 실제로 무슨 일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좋은 사회에서는 옷을 입는 일의 어떤 세부에 관해서 말하거나 생각하지도 않잖아요. 이것도 똑같아요.”
“롤란다키의 축제에는 갈 거예요?”
안나는 화제를 바꾸려고 물었다.
“아마 안 가요.”
벳시는 대답했다.
친구를 보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작고 투명한 찻잔들에 향기로운 차를 따랐다.
안나 쪽으로 한 잔 밀어주고 작은 담배를 꺼내 은제 홀더에 끼워 불을 붙였다.
“보세요. 나는 행복한 위치에 있어요.”
벳시는 이제 웃지 않고 찻잔을 들며 말했다.
“나는 당신도 이해하고 리자도 이해해요. 리자는 어린아이처럼 무엇이 좋고 나쁜지 모르는 순진한 천성 가운데 하나예요. 적어도 아주 젊었을 때는 몰랐지요. 이제는 자기가 모르는 그 태도가 자기에게 잘 어울린다는 것도 알아요. 어쩌면 지금은 일부러 모르는 척할지도 모르죠.”
벳시는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게 그 여자에게는 어울려요. 같은 일을 비극적으로 보면 고통으로 만들 수 있고, 단순하게, 심지어 즐겁게 보면 전혀 다르게 살 수 있어요. 어쩌면 당신은 모든 것을 너무 비극적으로 보는 편인지도 몰라요.”
“내가 나 자신을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안나는 진지하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남들보다 더 나쁜 사람일까요, 더 좋은 사람일까요? 나는 더 나쁜 것 같아요.”
“무서운 아이, 무서운 아이.”
벳시가 되풀이했다.
바로 그때 손님들이 도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