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1부 제34장

빚과 술로 어질러진 페트리츠키의 아파트
빚과 술로 어질러진 페트리츠키의 아파트

페테르부르크를 떠날 때 브론스키는 모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넓은 자기 아파트를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동료인 페트리츠키에게 맡겨 두었다.

페트리츠키는 젊은 중위였다. 특별히 좋은 가문 출신도 아니고 부유하기는커녕 온통 빚뿐이었다. 저녁이면 늘 술에 취했고, 우습거나 더러운 갖가지 사건 때문에 자주 영창에 들어가곤 했지만 동료들과 상관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밤 열두 시가 가까워 철도역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던 브론스키는 집 앞에 익숙한 임대 마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자기 집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부터 문 너머에서 남자들의 웃음소리와 프랑스어를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여자 목소리, 그리고 페트리츠키의 외침이 들렸다.

“악당이 온 거라면 들여보내지 마!”

브론스키는 당번병에게 자기가 왔다고 알리지 말라고 하고 조용히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페트리츠키의 친구인 실톤 남작부인이 둥근 탁자 앞에 앉아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보랏빛 새틴 드레스가 번쩍였고, 혈색 좋은 금발의 예쁜 얼굴을 한 그녀는 카나리아처럼 파리식 말투로 방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외투 차림의 페트리츠키와, 아마 근무를 마치고 온 듯 완전 군복 차림인 카메롭스키 대위가 그녀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브라보! 브론스키!”

페트리츠키가 벌떡 일어나 의자를 덜컹거리며 소리쳤다.

“집주인께서 몸소 돌아오셨군! 남작부인, 새 커피포트로 이 사람에게 커피 한잔 주시오. 이런, 정말 뜻밖인데! 자네 서재를 이렇게 훌륭하게 장식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들겠지?”

그는 남작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은 아는 사이잖아?”

“물론이지!”

브론스키가 즐겁게 웃으며 남작부인의 작은 손을 잡아 흔들었다.

“그럼요! 오랜 친구지요.”

“여행에서 바로 돌아오셨군요.”

남작부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도망가야겠어요. 아, 제가 방해가 된다면 당장 가겠어요.”

“남작부인께서 계신 곳에서는 언제나 남작부인이 주인이십니다.”

브론스키가 말했다.

“안녕, 카메롭스키.”

그는 카메롭스키의 손을 차갑게 잡으며 덧붙였다.

“당신은 왜 저런 예쁜 말을 한 번도 못 해요?”

남작부인은 페트리츠키에게 말했다.

“왜 못 해요? 점심 먹은 뒤에는 나도 못지않게 할 수 있지.”

“점심 뒤에는 아무 공로도 없지요! 자, 그럼 제가 커피를 드릴게요. 가서 씻고 몸단장하세요.”

남작부인은 다시 자리에 앉아 새 커피포트의 나사를 정성스레 돌리며 말했다.

“피에르, 커피를 주세요.”

그녀는 페트리츠키의 성을 빗대 그를 ‘피에르’라고 불렀다. 두 사람의 관계를 숨길 생각도 없었다.

“제가 더 넣을게요.”

“망가뜨릴 텐데.”

“안 망가뜨려요! 그런데 당신 아내는요?”

남작부인이 갑자기 브론스키와 동료의 대화를 끊으며 물었다.

“아내를 데려오지 않았어요? 우리는 여기서 벌써 당신을 결혼시켜 버렸는데.”

“아닙니다, 남작부인. 나는 집시로 태어났고 집시로 죽을 겁니다.”

“더 좋아요, 더 좋아. 손 내밀어요.”

남작부인은 브론스키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농담을 섞어 요즘 자기 인생 계획을 이야기하고 그의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도무지 이혼을 해 주려고 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하지요?”

그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이제 소송을 시작하려고 해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카메롭스키, 커피 좀 봐 주세요―어머, 가 버렸네. 보시다시피 나는 중요한 일 때문에 바빠요! 소송을 하고 싶은 것은 내 재산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말도 안 되지 않아요? 내가 남편에게 충실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경멸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내 재산을 차지하겠다는 거예요.”

브론스키는 예쁜 여자가 즐겁게 지껄이는 말을 기분 좋게 들었다. 맞장구치고 반쯤 농담 같은 조언을 해 주며 이런 종류의 여자들을 대할 때 쓰는 익숙한 말투로 즉시 돌아갔다.

그의 페테르부르크 세계에서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쪽은 낮은 부류였다.

상스럽고 어리석으며, 무엇보다 우스운 사람들.

그들은 남편은 교회에서 결혼한 한 아내와 살아야 하며, 처녀는 순결해야 하고, 여자는 정숙해야 하고, 남자는 남자답고 절제하며 굳세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이를 교육하고 자기 밥벌이를 하고 빚도 갚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 밖에도 그와 비슷한 갖가지 어리석은 일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구식이고 우스운 인간들의 부류였다.

하지만 다른 한 부류가 있었다.

진짜 사람들.

브론스키와 그 친구들은 모두 그쪽에 속했다.

거기서는 무엇보다 우아하고 아름답고 관대하고 용감하고 명랑해야 했다. 어떤 정열에도 얼굴 붉히지 않고 몸을 내맡길 수 있어야 했으며, 그 밖의 모든 것을 비웃어야 했다.

모스크바에서 가져온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인상 때문에 브론스키는 처음 몇 분 동안만 약간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곧 낡고 편안한 신발에 발을 넣듯 예전의 즐겁고 기분 좋은 자기 세계로 다시 들어갔다.

커피는 끝내 제대로 끓지 않았다. 사방으로 튀고 넘쳐 버렸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을 해 주었다. 모두가 소리치고 웃을 핑계가 생겼으며 비싼 양탄자와 남작부인의 드레스까지 커피로 얼룩졌다.

“자, 이제 정말 안녕. 이러다가는 당신이 영원히 씻지도 못하겠어요. 그러면 점잖은 사람에게 가장 큰 죄악인 불결함이 내 양심에 걸리겠지. 그러니까 정말 칼을 목에 들이대라고 조언하시는 거죠?”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작은 손이 그의 입술 가까이에 오도록 하십시오. 그가 손에 입을 맞출 테고 그러면 모든 일이 잘 끝날 겁니다.”

브론스키가 대답했다.

“그럼 오늘 프랑스 극장에서!”

드레스가 요란하게 스치는 소리와 함께 남작부인은 사라졌다.

카메롭스키도 일어났다. 브론스키는 그가 완전히 나가기도 전에 손만 내밀어 작별하고 세면실로 갔다.

브론스키가 씻는 동안 페트리츠키는 그가 떠난 뒤 자기 처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간단히 설명했다.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아버지는 더는 돈을 주지 않을 것이며 빚도 갚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재단사는 감옥에 넣겠다고 하고, 다른 채권자도 반드시 감옥에 보내겠다고 위협했다. 연대장은 이런 추문이 계속되면 군대를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작부인은 질릴 만큼 성가셨다. 특히 자꾸 돈을 주겠다고 해서 더 그랬다.

그런데 또 다른 여자가 하나 있는데, 나중에 브론스키에게 보여 주겠다고 했다. 굉장한 여자이며 멋지고 엄격한 동양풍, 말하자면 ‘노예 레베카 같은 genre’라고 했다.

베르코셰프와도 어제 크게 싸워 그쪽에서 결투 입회인을 보낼 생각까지 했지만 물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모든 일이 훌륭하고 지극히 즐겁다고 했다.

페트리츠키는 친구가 자기 처지의 세부 사항을 깊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재미있는 소식을 모조리 들려주기 시작했다.

브론스키는 삼 년 동안 살던 자기 아파트의 너무나 익숙한 환경에서 페트리츠키의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익숙하고 근심 없는 페테르부르크 생활로 돌아온 기분 좋은 감정을 느꼈다.

“그럴 리가!”

그는 펌프식 세면대 페달에서 발을 떼며 소리쳤다. 붉고 건강한 목에 물을 끼얹고 있던 참이었다.

“그럴 리가!”

로라가 밀레예프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페르팅고프를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소리쳤다.

“그 남자는 여전히 그렇게 멍청하고 만족스러워해? 그런데 부줄루코프는?”

“아, 부줄루코프에게는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있었어!”

페트리츠키가 소리쳤다.

“그 사람은 무도회에 미쳐 있잖아. 궁정 무도회라면 하나도 빼놓지 않는다고. 새 투구를 쓰고 대무도회에 갔어. 새 투구 본 적 있나? 아주 좋아. 더 가볍고. 아무튼 그 사람이 서 있는데…… 아니, 잘 들어 봐.”

“듣고 있어.”

브론스키는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몸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어느 대공비가 외교관 한 명과 지나가는데, 공교롭게도 새 투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대공비가 새 투구를 직접 보고 싶어 했지…… 보니까 우리 친구가 딱 서 있는 거야.”

페트리츠키는 부줄루코프가 투구를 쓰고 서 있는 모습을 흉내 냈다.

“대공비가 투구를 보여 달라고 하는데―이 친구가 안 주는 거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 옆에서 사람들이 눈짓하고 고갯짓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내놔!’ 해도 안 내놔.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는 거야. 상상이 가나?…… 마침내 그 뭐더라…… 그 사람이 직접 투구를 가져가려고 하는데도 안 내놔! 결국 억지로 빼앗아 대공비에게 건넸지.

‘이것이 새 투구입니다.’

대공비가 말하면서 투구를 뒤집었는데, 상상이 가나? 거기서 쿵! 배 하나, 사탕, 사탕이 두 파운드나 쏟아진 거야! 우리 친구가 잔뜩 챙겨 넣어 뒀던 거지!”

브론스키는 몸을 젖혀 가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뒤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투구만 생각나면 튼튼하고 고른 이를 드러내며 건강한 웃음을 다시 터뜨렸다.

모든 소식을 들은 뒤 브론스키는 하인의 도움을 받아 군복을 입고 부대에 출두 신고를 하러 갔다.

그 일이 끝나면 형에게도 가고 베치에게도 가며 몇 군데 방문할 생각이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카레니나를 만날 수 있는 사교계에 다시 드나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늘 그랬듯 브론스키는 그날도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집을 나섰다.

이 장의 주

  1. 모르스카야 거리(Морская): 당시 페테르부르크 중심부의 주요 거리 가운데 하나.
  2. genre: 프랑스어로 “유형,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