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1부 제22장

꽃으로 장식된 계단, 막 시작된 무도회
꽃으로 장식된 계단, 막 시작된 무도회

키티와 어머니가 꽃으로 장식된 커다란 계단에 들어섰을 때 무도회는 막 시작된 참이었다. 붉은 카프탄을 입고 머리에 분을 바른 하인들이 계단 곳곳에 서 있었고, 모든 것이 환한 불빛에 잠겨 있었다.

홀 안에서는 벌집 속처럼 일정하고 끊임없는 움직임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두 사람이 나무 장식 사이의 계단참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는 동안, 첫 왈츠를 시작한 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소리가 조심스럽고 또렷하게 홀에서 흘러나왔다.

다른 거울 앞에서 희끗희끗한 관자놀이 머리를 다듬으며 향수 냄새를 풍기던 평복 차림의 노신사가 계단에서 두 사람과 마주쳤다가 옆으로 비켜섰다. 모르는 아가씨인 키티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눈치였다.

턱수염이 없는 한 젊은이가, 늙은 셰르바츠키 공작이 ‘얼간이들’이라고 부르곤 하던 그런 사교계 청년 가운데 하나가, 가슴이 지나치게 깊게 파인 조끼 차림으로 걸으면서 흰 넥타이를 고쳐 맸다. 그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키티에게 카드리유를 신청했다. 첫 카드리유는 이미 브론스키에게 약속했으므로 키티는 두 번째 카드리유를 그에게 주어야 했다.

문가에서는 장갑 단추를 잠그던 군인이 자리를 비켜 주며 콧수염을 쓰다듬고 장밋빛 얼굴의 키티를 감탄스럽게 바라보았다.

옷과 머리 모양, 무도회 준비 하나하나에 키티는 많은 수고와 생각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분홍색 속치마 위에 복잡하게 겹쳐진 얇은 망사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에 들어서자, 그 모든 리본 장식과 레이스와 옷차림의 세부 사항에 자신이나 집안사람들이 단 한순간도 신경을 쓴 적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로웠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 얇은 망사와 레이스를 걸치고, 장미 한 송이와 두 장의 잎을 꽂은 높이 올린 머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홀에 들어가기 전, 늙은 공작부인이 딸의 허리 리본이 말려 올라간 것을 고쳐 주려 하자 키티는 몸을 살짝 피했다. 모든 것은 저절로 자기 몸에 아름답고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하며, 고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다.

그날은 키티에게 행복한 날 가운데 하나였다. 드레스는 어디 하나 조이지 않았고 레이스로 된 베르타 장식도 내려오지 않았다. 리본 장식도 구겨지거나 떨어지지 않았다. 높고 휘어진 굽의 분홍 구두는 발을 아프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발을 기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풍성한 금발 땋은 머리는 작은 머리 위에 자기 머리처럼 단단히 붙어 있었다. 팔의 모양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감싼 긴 장갑의 단추 세 개도 하나도 찢어지지 않고 모두 잠겼다. 메달이 달린 검은 벨벳 목띠는 특히 부드럽게 목을 감싸고 있었다.

그 목띠는 정말 아름다웠다. 집에서 거울을 보며 자기 목을 바라볼 때에도 키티는 그 검은 벨벳 목띠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다른 모든 것에는 조금쯤 의심이 있을 수 있었지만, 목띠만큼은 틀림없이 아름다웠다. 키티는 무도회장 거울 속에서 그것을 보고도 미소 지었다.

드러난 어깨와 팔에는 차갑고 매끄러운 대리석 같은 느낌이 있었고, 키티는 그 느낌을 특히 좋아했다. 눈은 반짝였고, 자기가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의식하는 장밋빛 입술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키티가 홀에 들어가 춤 신청을 기다리는 여자들이 얇은 망사와 리본, 레이스와 꽃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서 있는 무리―키티는 한 번도 그 무리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일이 없었다―에 채 닿기도 전에 벌써 누군가가 왈츠를 신청했다.

그 남자는 무도회에서 가장 훌륭한 파트너이자 무도회 서열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사람, 이름난 무도회 진행자이며 의전 담당자이자 기혼의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 예고루시카 코르순스키였다.

그는 바니나 백작부인과 첫 왈츠 한 바퀴를 막 끝낸 참이었다. 몇 쌍이 춤을 추기 시작한 자기 ‘영지’를 둘러보다가 들어오는 키티를 발견하자, 무도회 진행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느긋하고도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는 키티가 원하는지 묻지도 않고 허리를 감싸려는 듯 팔을 들어 올렸다. 키티는 부채를 누구에게 맡길지 둘러보았고, 여주인이 웃으며 받아 주었다.

“제시간에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코르순스키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도대체 늦게 오는 그런 버릇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키티는 왼팔을 굽혀 그의 어깨에 얹었다. 분홍 구두를 신은 작은 두 발이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 미끄러운 마룻바닥 위를 빠르고 가볍고 고르게 움직였다.

“당신과 왈츠를 추면 오히려 쉬는 기분입니다.”

그는 처음의 느린 왈츠 스텝을 밟으며 말했다.

“정말 놀라운 가벼움과 précision이군요.”

그는 친한 여자들에게 거의 언제나 하던 말을 키티에게도 했다.

키티는 그의 칭찬에 미소 지으며 그의 어깨 너머로 홀 안을 계속 살폈다. 그녀는 무도회에서 모든 얼굴이 하나의 마법 같은 인상으로 뒤섞여 버리는 첫 사교계 데뷔의 아가씨도 아니었고, 모든 얼굴이 너무 익숙해 지겨워진 무도회의 베테랑도 아니었다. 그 두 단계의 중간쯤에 있었다. 들떠 있으면서도 동시에 주위를 살펴볼 만큼 자신을 다스릴 수 있었다.

홀 왼쪽 구석에는 사교계의 정수라 할 만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코르순스키의 아내이며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을 드러낸 미녀 리디가 있었고, 여주인도 있었으며, 사교계의 꽃이 모이는 곳이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크리빈의 대머리가 빛나고 있었다. 젊은 남자들은 감히 다가가지는 못하면서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키티는 스티바를 찾아냈고, 곧 검은 벨벳 드레스 차림의 안나의 아름다운 몸과 머리도 보았다.

그리고 그도 거기 있었다.

키티는 레빈을 거절했던 그날 저녁 이후로 브론스키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멀리 있는 것도 잘 보는 키티의 눈은 즉시 그를 알아보았고, 그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렸다.

“한 바퀴 더?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코르순스키가 약간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어디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카레니나가 여기 있는 것 같군요…… 그쪽으로 데려다주세요.”

“명령하시는 곳으로 가야지요.”

코르순스키는 걸음을 늦추며 왈츠를 추는 채로 홀 왼쪽 구석의 무리를 향해 곧장 나아갔다.

Pardon, mesdames, pardon, pardon, mesdames.

그는 그렇게 말하며 레이스와 얇은 망사와 리본의 바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깃털 하나 건드리지 않고 키티를 급히 한 바퀴 돌리는 바람에 망사 스타킹을 신은 가느다란 두 다리가 드러났고, 드레스 자락은 부채처럼 펼쳐져 크리빈의 무릎을 덮었다.

코르순스키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가슴을 활짝 편 뒤, 키티를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에게 데려다주려고 팔을 내밀었다.

얼굴이 달아오른 키티는 크리빈의 무릎에서 드레스 자락을 거두어 들였다. 약간 어지러운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며 안나를 찾았다.

안나는 여자들과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키티가 반드시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보랏빛 드레스가 아니라, 가슴이 깊이 파인 검은 벨벳 드레스 차림이었다. 오래된 상아처럼 매끄럽게 다듬어진 풍만한 어깨와 가슴, 그리고 아주 작은 손으로 이어지는 둥근 팔이 드러나 있었다. 드레스 전체에는 베네치아 기퓌르 레이스가 둘러져 있었다.

검고 다른 색이 한 올도 섞이지 않은 머리에는 작은 팬지 화환이 놓여 있었고, 흰 레이스 사이의 검은 허리 리본에도 똑같은 꽃이 달려 있었다. 그녀의 머리 모양 자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뒤통수와 관자놀이에서 언제나 제멋대로 빠져나오는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뿐이었고, 그것이 오히려 안나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단단하고 매끈한 목에는 진주 한 줄이 감겨 있었다.

키티는 매일 안나를 보았고 그녀에게 반해 있었으며, 반드시 보랏빛 옷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안나를 보자 비로소 자기는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안나는 전혀 새롭고 뜻밖인 모습이었다.

안나에게 보랏빛은 어울릴 수 없었다. 그녀의 매력은 언제나 자기 옷차림보다 앞으로 튀어나온다는 데 있었다. 옷이 결코 먼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풍성한 레이스가 달린 검은 드레스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액자에 불과했다. 보이는 것은 오직 안나뿐이었다―소박하고 자연스럽고 우아하면서도 동시에 명랑하고 생기 넘치는 안나.

안나는 언제나 그렇듯 몸을 아주 곧게 세우고 서 있었다. 키티가 그 무리에 다가갔을 때 그녀는 집주인에게 머리를 조금 돌린 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요, 저는 돌을 던지지 않을 거예요.”

안나는 그가 한 어떤 말에 대답했다.

“물론 이해는 못 하겠지만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즉시 다정하고 보호하듯 짓는 미소로 키티를 향했다. 여자의 빠른 눈길로 키티의 옷차림을 훑은 뒤, 아주 희미하지만 키티는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머리를 끄덕여 그녀의 옷과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홀에도 춤을 추면서 들어오는군요.”

그녀가 덧붙였다.

“이 아가씨는 제가 가장 믿는 조수 가운데 한 분입니다.”

코르순스키는 아직 만나지 못했던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공녀께서 무도회를 즐겁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지요.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왈츠 한 바퀴만.”

그는 몸을 숙였다.

“두 분은 서로 아십니까?”

집주인이 물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와 제 아내는 흰 늑대처럼 모두에게 알려져 있지요.”

코르순스키가 대답했다.

“왈츠 한 바퀴,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추지 않아도 되는 때에는 춤추지 않아요.”

안나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안 됩니다.”

코르순스키가 대답했다.

그때 브론스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춤을 피할 수 없다는 거군요. 갑시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인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말하며 재빨리 코르순스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화가 난 걸까?’

안나가 일부러 그의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키티는 생각했다.

브론스키가 키티에게 다가와 첫 카드리유를 약속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그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해 유감이었다고 말했다.

키티는 왈츠를 추는 안나를 감탄하며 바라보면서 그의 말을 들었다. 브론스키가 자기에게 왈츠를 신청해 주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청하지 않았다. 키티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브론스키는 얼굴을 붉히더니 급히 왈츠를 청했다. 그러나 그가 막 키티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고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음악이 갑자기 멈추었다.

키티는 바로 가까이에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녀가 그를 바라본, 사랑으로 가득 찬 눈길, 그리고 그 사랑에 그가 답하지 않았다는 기억은 그 뒤 여러 해 동안 고통스러운 수치심으로 그녀의 마음을 베어 놓았다.

Pardon, pardon! 왈츠, 왈츠!”

홀 반대편에서 코르순스키가 소리쳤다. 그는 눈에 띄는 첫 아가씨를 붙잡고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이 장의 주

  1. précision: 프랑스어로 “정확함, 정밀함”.
  2. Pardon, mesdames: 프랑스어로 “실례합니다, 부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