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1부 제23장

왈츠가 끝나고 이어지는 카드리유
왈츠가 끝나고 이어지는 카드리유

브론스키와 키티는 왈츠를 몇 바퀴 돌았다. 왈츠가 끝나 키티가 어머니에게 다가가 노르드스톤 백작부인과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브론스키가 벌써 첫 카드리유를 추러 그녀를 데리러 왔다.

카드리유를 추는 동안 특별히 중요한 말은 오가지 않았다. 대화는 이리저리 끊겼다. 브론스키는 코르순스키 부부를 사랑스러운 마흔 살짜리 아이들이라고 아주 우습게 묘사했고, 앞으로 생길 사교계 극장 이야기도 했다.

단 한 번, 그가 레빈은 어디 있느냐, 아직 모스크바에 있느냐고 묻고는 자기는 레빈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고 덧붙였을 때만 그 말이 키티의 마음을 찔렀다.

하지만 키티도 카드리유에서 그 이상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가슴이 멎을 듯한 심정으로 마주르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주르카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거라고 생각했다.

카드리유를 추는 동안 브론스키가 마주르카를 신청하지 않은 것도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전 무도회들에서 늘 그랬듯 이번에도 그와 마주르카를 추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다섯 명에게 이미 마주르카 신청을 거절하면서 다른 사람과 추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마지막 카드리유 전까지 무도회 전체는 키티에게 즐거운 색채와 소리와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마법 같은 꿈이었다. 너무 지쳐 쉬고 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춤을 추었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는 지루한 젊은이 한 명과 마지막 카드리유를 추다가, 맞은편 짝으로 브론스키와 안나를 만나게 되었다.

키티는 무도회에 온 뒤로 안나와 가까이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안나를 보자, 전혀 새롭고 뜻밖인 모습을 발견했다.

자기 자신도 잘 알고 있는 한 가지 모습―성공에 들뜬 사람의 흥분―을 안나에게서 보았다. 안나는 자기가 불러일으키는 찬탄이라는 술에 취해 있었다.

키티는 그 감정을 알고 있었고, 그 징후도 알고 있었다. 안나의 눈에서는 떨리는 듯한 불빛이 번뜩였고, 행복과 흥분의 미소가 의지와 관계없이 입술을 휘게 했으며, 동작 하나하나에는 또렷한 우아함과 확실함과 가벼움이 있었다.

‘누구 때문이지?’

키티는 자신에게 물었다.

‘모두 때문일까, 아니면 한 사람 때문일까?’

그녀는 함께 춤추는 젊은이가 대화의 실마리를 놓쳐 괴로워하는데도 도와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코르순스키의 즐겁고 요란하고 명령조인 외침에 따라, 때로는 모두가 큰 원을 만들고 때로는 사슬 모양으로 움직이는 춤 동작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눈은 안나를 지켜보았다.

가슴이 갈수록 조여 왔다.

‘아니야. 군중의 찬탄이 저 여자를 취하게 만든 게 아니야. 한 사람의 찬탄이야.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설마 그 사람인가?’

브론스키가 안나와 이야기할 때마다 그녀의 눈에는 기쁜 빛이 번쩍였고 행복한 미소가 장밋빛 입술을 휘게 했다. 안나는 그 기쁨의 표시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지만 그것은 저절로 얼굴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키티는 브론스키를 보다가 경악했다.

안나의 얼굴이라는 거울 속에서 키티가 그토록 명확하게 보고 있던 것을 브론스키의 얼굴에서도 발견했다.

평소 그의 침착하고 단단한 태도와 태평스러울 만큼 평온했던 얼굴은 어디로 갔는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안나에게 말을 걸 때마다 그녀 앞에 엎드리기라도 하려는 듯 머리를 조금씩 숙였다. 그의 눈에는 오직 복종과 두려움만이 담겨 있었다.

‘당신을 모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시선은 매번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다만 나 자신을 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키티는 그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공통으로 아는 사람들 이야기를 했고, 지극히 하찮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키티에게는 그들이 주고받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과 자기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한 것은 그들이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반 이바노비치가 프랑스어를 말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가, 옐레츠카야에게는 더 나은 혼처를 찾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따위였는데도, 그 말들이 두 사람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고 그들 자신도 키티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도회도, 사교계도, 모든 것이 키티의 마음속에서 안개에 덮였다.

엄격하게 길러진 오랜 교육만이 그녀를 붙들어 주었다. 그것이 요구되는 일을 하게 했다―춤추고, 질문에 대답하고, 말을 하고, 심지어 웃기까지 하게 했다.

하지만 마주르카가 시작되기 전, 의자들을 배치하고 몇몇 커플들이 작은 홀에서 큰 홀로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 키티는 갑작스러운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다섯 남자의 신청을 거절했고, 이제 마주르카를 출 사람이 없었다.

사교계에서 워낙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아무에게도 신청받지 않았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제 새로 누가 청해 오리라는 희망조차 없었다.

어머니에게 몸이 아프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럴 힘도 없었다. 키티는 자기가 완전히 짓밟힌 듯했다.

그녀는 작은 응접실 깊숙이 들어가 안락의자에 털썩 앉았다. 공기처럼 가벼운 치맛자락이 가느다란 몸을 둘러싼 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드러난 채 힘없이 내려놓은 가늘고 부드러운 한쪽 소녀의 팔은 분홍색 얇은 천 주름 속에 파묻혔고, 다른 손에는 부채를 들고 짧고 빠른 동작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부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풀잎에 잠깐 내려앉았다가 금세 무지갯빛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나비 같았지만, 그녀의 가슴은 끔찍한 절망으로 아파 왔다.

‘어쩌면 내가 잘못 본 걸지도 몰라.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지도 몰라.’

그러고는 자기가 본 모든 것을 다시 떠올렸다.

“키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난 이해를 못 하겠어.”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양탄자 위를 소리 없이 다가오며 말했다.

키티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그녀는 재빨리 일어났다.

“키티, 마주르카 안 춰?”

“안 춰, 안 춰.”

키티는 눈물이 섞여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내 앞에서 안나에게 마주르카를 신청했어.”

노르드스톤은 키티가 ‘그’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들으리라는 것을 알고 말했다.

“그러니까 안나가 ‘셰르바츠카야 공녀와 추는 것 아니에요?’라고 하더라.”

“아, 상관없어!”

키티가 대답했다.

키티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녀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제 그녀는 어쩌면 자기가 사랑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거절했다. 다른 사람을 믿었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은 자기와 마주르카를 추던 코르순스키를 찾아 키티에게 춤을 신청하라고 시켰다.

키티는 첫 번째 커플로 춤을 추었다. 다행히도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코르순스키는 자기 ‘영지’를 지휘하느라 줄곧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브론스키와 안나는 거의 키티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멀리 보는 눈으로도 그들을 보았고, 춤 동작 때문에 가까이 마주칠 때도 보았다. 보면 볼수록 자기 불행이 이미 일어났다는 확신만 커졌다.

사람들로 가득 찬 이 홀에서 두 사람만은 완전히 둘만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늘 단단하고 독립적이던 브론스키의 얼굴에서는, 키티를 놀라게 했던 그 상실감과 복종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영리한 개의 표정과도 비슷했다.

안나가 미소 지으면 그 미소가 브론스키에게 그대로 옮겨 갔다. 안나가 생각에 잠기면 그도 심각해졌다.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키티의 눈을 안나의 얼굴로 끌어당겼다.

단순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안나는 아름다웠다. 팔찌를 낀 풍만한 팔도 아름다웠고, 진주 목걸이를 한 단단한 목도 아름다웠으며, 흐트러진 머리에서 빠져나온 곱슬머리도 아름다웠다. 작은 발과 손의 우아하고 가벼운 동작도 아름다웠고, 생기로 빛나는 얼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속에는 무언가 무섭고 잔인한 것이 있었다.

키티는 전보다 더 안나의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그럴수록 더 고통스러웠다. 키티는 완전히 짓눌려 있었고 그 감정은 얼굴에도 나타났다.

마주르카 동작 속에서 브론스키가 키티와 맞닥뜨렸을 때 처음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만큼 키티의 얼굴이 변해 있었다.

“멋진 무도회군요!”

브론스키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 말했다.

“네.”

키티가 대답했다.

마주르카 중간쯤, 코르순스키가 새로 고안한 복잡한 동작을 반복하던 때였다. 안나가 원 한가운데로 나가 남자 두 명을 붙잡고는 한 여자와 키티를 자기 쪽으로 불렀다.

키티는 겁먹은 눈으로 안나를 보며 다가갔다.

안나는 눈을 약간 가늘게 뜨고 키티를 바라보며 미소 지은 뒤 그녀의 손을 눌러 잡았다. 하지만 자기 미소에 키티의 얼굴이 오직 절망과 놀라움으로 답하는 것을 알아차리자, 안나는 얼굴을 돌리고 다른 여자에게 즐겁게 말을 걸었다.

‘그래. 저 여자에게는 무언가 낯설고 악마 같으면서도 매혹적인 것이 있어.’

키티는 생각했다.

안나는 저녁 식사까지 남으려 하지 않았지만 집주인이 붙들었다.

“아,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그러지 마십시오.”

코르순스키가 안나의 맨팔을 자기 연미복 소매 사이에 끼우며 말했다.

“제가 코티용에 얼마나 멋진 생각을 해 놓았는데요! Un bijou!

그는 조금씩 움직이며 안나를 끌고 가려고 애썼다. 집주인도 찬성한다는 듯 웃었다.

“아니요, 저는 안 남을 거예요.”

안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 미소와 달리 대답하는 말투에는 결심이 너무 뚜렷해서 코르순스키도 집주인도 그녀가 남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에요. 모스크바에서는 오늘 이 한 번의 무도회에서 페테르부르크의 한겨울 내내 춘 것보다 더 많이 춘 것 같아요.”

안나는 곁에 서 있는 브론스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행 전에 쉬어야 해요.”

“정말 내일 떠나실 생각입니까?”

브론스키가 물었다.

“네, 그럴 생각이에요.”

안나는 그의 대담한 질문이 놀랍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때, 억누를 수 없이 떨리며 반짝이는 그녀의 눈과 미소는 브론스키를 불태우듯 스쳤다.

안나 아르카디예브나는 저녁 식사에 남지 않고 돌아갔다.

이 장의 주

  1. vis-à-vis: 프랑스어로 “마주 보는 상대, 맞은편”.
  2. grand rond: 프랑스어로 “큰 원”.
  3. chaîne: 프랑스어로 “사슬”. 춤에서 서로 손을 잡고 이어지는 대형을 가리킨다.
  4. Un bijou!: 프랑스어로 “보석 같은 것이에요!”, 여기서는 “아주 멋진 겁니다!” 정도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