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1부 제9장

차가운 날, 동물원 스케이트장 앞에 내린 레빈
차가운 날, 동물원 스케이트장 앞에 내린 레빈

네 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레빈은 동물원 앞에서 마차를 내렸다. 그는 셰르바츠키 집안의 마차가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녀가 반드시 그곳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맑고 차가운 날이었다. 입구에는 마차와 썰매와 임대 마차가 줄지어 서 있었고 헌병들도 보였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밝은 햇살 아래 모자를 번쩍이며 입구와 눈을 치운 오솔길을 오갔다. 조각한 지붕 장식이 달린 러시아식 작은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붐볐다. 눈 무게로 온 가지를 늘어뜨린 정원의 오래된 자작나무들은 새 축제 예복을 입은 것 같았다.

레빈은 스케이트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흥분하면 안 돼. 진정해야 해. 대체 왜 이러지? 뭐가 두려워? 조용히 해, 바보 같은 심장아.’

진정하려고 애쓸수록 숨은 더 막혔다.

아는 사람이 그를 만나 인사를 했지만 레빈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썰매를 끌어올리고 내리는 쇠사슬이 덜컹거리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썰매가 쿵쿵거리며, 즐거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언덕 쪽으로 다가갔다.

몇 걸음 더 가자 스케이트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는 즉시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녀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레빈은 가슴을 가득 채운 기쁨과 두려움으로 먼저 알았다.

키티는 스케이트장 맞은편 끝에서 한 부인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옷차림이나 자세에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레빈에게는 쐐기풀 속의 장미를 알아보는 것만큼이나 그 군중 속에서 그녀를 찾아내는 일이 쉬웠다.

모든 것이 그녀 때문에 빛났다. 그녀는 주변의 모든 것을 비추는 미소 그 자체였다.

‘정말 내가 저 아래 얼음 위로 내려가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가 생각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범접할 수 없는 성소처럼 보였다. 한순간 그는 겁이 나 거의 돌아갈 뻔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억누르고 생각해야 했다. 그녀 주위에는 온갖 사람들이 다니고 있고, 자신 역시 스케이트를 타러 온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아래로 내려갔다. 태양을 오래 쳐다볼 수 없듯 그녀를 오래 똑바로 보지 않으려 했지만, 보지 않고도 태양을 느끼듯 그녀를 보고 있었다.

이 요일, 이 시간의 스케이트장에는 같은 사교계 사람들이 모였고 서로 대부분 아는 사이였다. 솜씨를 자랑하는 능숙한 사람도 있었고, 의자를 밀며 겁먹고 어설픈 동작으로 배우는 사람도 있었으며, 소년들과 건강을 위해 스케이트를 타는 노인들도 있었다.

레빈에게는 그들 모두가 선택받은 행복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키티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키티를 앞질렀고, 따라잡았고, 심지어 말을 걸었으며, 키티와 상관없이 좋은 얼음과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키티의 사촌 니콜라이 셰르바츠키가 짧은 재킷과 몸에 붙는 바지를 입고 스케이트를 신은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레빈을 보자 소리쳤다.

“아, 러시아 최고의 스케이터! 언제 왔어요? 얼음이 아주 좋아요. 스케이트 신으세요.”

“스케이트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레빈은 대답했다.

키티가 있는 자리에서 저토록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단 한순간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태양이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키티는 코너에 있었다. 높은 부츠를 신은 가느다란 두 발을 약간 안쪽으로 모은 채, 다소 겁먹은 듯 그를 향해 미끄러져 왔다. 러시아식 옷을 입은 소년 하나가 팔을 휘저으며 몸을 낮추고 그녀를 앞질러 갔다.

키티는 아직 아주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끈에 매달린 작은 손난로에서 손을 빼 언제든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벌리고, 알아본 레빈을 바라보며 그에게도 자기 두려움에도 미소 짓고 있었다.

회전을 마치자 탄력 있는 발로 얼음을 밀어 셰르바츠키에게 곧장 미끄러져 왔다. 그의 팔을 잡고 웃으며 레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레빈이 상상하던 것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그는 키티를 생각할 때면 어린아이 같은 맑음과 선량함이 드러나는 작고 금발인 머리와, 그 머리가 늘씬한 소녀의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놓인 모습까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얼굴의 어린아이 같은 표정과 몸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이루었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충격처럼 그를 사로잡는 것은 온순하고 차분하며 진실한 두 눈의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미소였다. 그 미소는 언제나 레빈을 마법 같은 세계로 옮겨 놓았다. 그는 어린 시절 아주 드문 행복한 날들에만 느꼈던 것 같은 감동과 부드러움을 느꼈다.

“오신 지 오래됐어요?”

키티가 손을 내밀며 물었다.

“고마워요.”

손난로에서 떨어진 손수건을 레빈이 주워 주자 그녀가 덧붙였다.

“저요? 얼마 안 됐습니다. 어제…… 아니, 오늘 왔습니다.”

그는 흥분한 나머지 질문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댁에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자기가 그녀를 찾은 목적을 떠올리는 순간 당황해 얼굴을 붉혔다.

“스케이트를 타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주 잘 타시네요.”

키티는 그가 왜 저렇게 당황하는지 알아내려는 듯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당신의 칭찬이라면 가치가 크겠네요. 당신이 최고의 스케이터였다는 전설이 아직 남아 있거든요.”

키티는 검은 장갑을 낀 작은 손으로 손난로에 내려앉은 서리 가루를 털며 말했다.

“예전에는 정말 열심히 탔습니다. 완벽하게 타 보고 싶었죠.”

“당신은 무슨 일이든 열정을 다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스케이트 타는 걸 정말 보고 싶어요. 어서 신으세요. 같이 타요.”

‘같이 타자고!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레빈은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금방 신고 오겠습니다.”

그는 말했다.

스케이트를 빌리러 갔다.

“오랜만입니다, 나리.”

스케이트를 신겨 주는 사람이 그의 발을 받쳐 뒤꿈치 나사를 조이며 말했다.

“나리 뒤로는 솜씨 좋은 분이 통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그는 끈을 팽팽히 조였다.

“좋아, 좋아. 제발 빨리.”

레빈은 자기 얼굴에 저절로 번지는 행복한 미소를 억누르기 어려워하며 말했다.

‘그래, 바로 이게 삶이고 행복이야! 같이, 그녀가 그렇게 말했어. 같이 타자고 했어. 지금 말할까? 그런데 지금 내가 행복해서, 희망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서 말하기가 두려운 거잖아. 그 다음에는…… 하지만 말해야 해. 해야 해! 나약함은 집어치워!’

레빈은 일어나 외투를 벗고, 오두막 근처 거친 얼음 위에서 힘껏 달려 매끈한 얼음으로 나갔다. 그는 힘을 들이지 않고 미끄러졌다. 마치 의지만으로 속도를 높이고 줄이고 방향을 바꾸는 듯했다.

그는 수줍게 키티에게 다가갔지만 그녀의 미소가 또 그를 안심시켰다.

키티는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미끄러졌다. 속도를 높일수록 키티는 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당신하고 타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쩐지 당신은 믿을 수 있거든요.”

“당신이 제게 기대고 있으면 저도 제 자신을 믿게 됩니다.”

그는 말했다.

그러나 말이 나오자마자 자기가 한 말을 두려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실제로 그 말이 끝난 순간, 구름이 태양을 가린 듯 키티 얼굴에서 다정함이 사라졌다. 레빈은 그녀가 생각에 잠길 때 나타나는 익숙한 표정을 알아보았다. 매끄러운 이마에 가느다란 주름이 생겼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제가 여쭤볼 자격은 없지만……”

그가 급히 말했다.

“왜요?……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어요.”

키티는 차갑게 대답하고 즉시 덧붙였다.

“마드무아젤 리농은 아직 못 보셨어요?”

“아직입니다.”

“가 보세요. 당신을 아주 좋아하세요.”

‘뭐지? 내가 키티를 언짢게 했어. 하느님, 도와주세요!’

레빈은 생각하며 벤치에 앉은, 회색 곱슬머리를 한 늙은 프랑스 여인에게 달려갔다.

가짜 이를 드러내며 웃는 마드무아젤 리농은 오랜 친구를 맞듯 그를 맞았다.

“그래요, 우리는 자라고 있지요.”

그녀는 키티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늙어 가고요. Tiny bear가 이제 커다란 곰이 됐네요!”

프랑스 여인은 웃으며, 레빈이 세 자매를 영국 동화의 곰 세 마리에 빗대던 옛날 농담을 떠올렸다.

“기억하시죠? 예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레빈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 십 년 동안 그 농담을 즐겁게 기억하며 웃어 왔다.

“자, 가세요, 가서 타세요. 우리 키티, 아주 잘 타게 되었죠?”

레빈이 다시 키티에게 미끄러져 갔을 때 그녀 얼굴은 더 이상 굳어 있지 않았다. 눈은 다시 진실하고 다정했다. 그러나 레빈은 그 다정함 속에 일부러 차분하려는 특별한 기색이 있다고 느꼈고 우울해졌다.

두 사람은 늙은 가정교사와 그녀의 기이한 습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키티가 레빈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겨울에 시골에서 지내면 지루하지 않으세요?”

“아뇨, 지루하지 않습니다. 아주 바쁩니다.”

레빈은 키티가 만드는 차분한 분위기에 자신도 끌려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말했다. 초겨울에도 그랬듯 일단 그 분위기에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오래 계실 건가요?”

키티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레빈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 차분한 우정의 분위기에 다시 굴복한다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또 시골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저항하기로 했다.

“어떻게 모르세요?”

“모릅니다.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말을 내뱉자마자 레빈은 경악했다.

키티가 그 말을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듣고 싶지 않았는지, 그녀는 마치 발이 걸린 사람처럼 두 번 얼음을 찍은 뒤 급히 그에게서 멀어졌다. 마드무아젤 리농에게 가서 무언가 말하고는 여자들이 스케이트를 벗는 오두막 쪽으로 향했다.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했지! 하느님, 도와주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세요.’

레빈은 속으로 기도했다. 동시에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고 싶어져 속도를 내며 바깥쪽과 안쪽으로 큰 원을 그렸다.

그때 새로 나타난 스케이터 가운데 가장 솜씨 좋은 젊은이 하나가 담배를 입에 문 채 스케이트를 신고 카페에서 나왔다. 그는 달려가더니 계단을 스케이트로 그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쾅쾅 뛰며 내려와도 팔은 자유로운 자세 그대로였다. 얼음 위에 내려서자 그대로 미끄러져 갔다.

“아, 저건 새로운 기술이군!”

레빈은 말하고 즉시 위로 올라가 그 기술을 따라 하려 했다.

“다치지 마세요! 익숙해야 하는 겁니다!”

니콜라이 셰르바츠키가 소리쳤다.

레빈은 계단 위에 서서 가능한 한 힘껏 달려 내려왔다. 익숙지 않은 움직임 속에서 팔로 균형을 잡았다. 마지막 계단에서 발이 걸렸지만 손끝을 얼음에 살짝 짚는 순간 강하게 몸을 일으켜 균형을 되찾았고, 웃으며 계속 미끄러져 갔다.

‘정말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그때 마드무아젤 리농과 함께 오두막에서 나오던 키티는 조용한 애정이 담긴 미소로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랑하는 오빠를 보듯 한 미소였다.

‘혹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내가 나쁜 짓을 한 걸까? 사람들은 이걸 교태라고 말하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분이 아니라는 걸 알아. 그런데도 함께 있으면 즐겁고,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왜 아까 그런 말을 했을까?’

키티는 생각했다.

키티와 그녀를 계단에서 맞는 어머니가 떠나는 것을 본 레빈은 격한 운동으로 얼굴이 붉어진 채 멈춰 서 생각에 잠겼다. 스케이트를 벗고 정원 출구에서 모녀를 따라잡았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공작부인이 말했다.

“목요일에는 언제나처럼 손님을 받아요.”

“그럼 오늘 저녁이군요?”

“오시면 기쁘겠습니다.”

공작부인은 건조하게 말했다.

그 차가운 태도 때문에 키티는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의 냉담함을 누그러뜨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따 뵈어요.”

그때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얼굴과 눈을 반짝이며 승리한 사람처럼 즐겁게 정원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장모에게 다가가자 돌리의 건강을 묻는 질문에 슬프고 죄지은 사람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장모와 낮고 우울한 목소리로 잠시 이야기한 뒤 가슴을 펴고 레빈의 팔짱을 꼈다.

“자, 갈까?”

그가 말했다.

“내내 자네 생각을 했어. 자네가 와서 정말 기뻐.”

그는 의미심장하게 레빈의 눈을 바라보았다.

“가세, 가세.”

행복한 레빈이 대답했다. 그의 귀에는 여전히 ‘이따 뵈어요’라고 말하던 키티의 목소리가 울렸고, 그 말을 할 때의 미소가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앙글리야’로 갈까, ‘에르미타주’로 갈까?”

“어디든 좋아.”

“그럼 ‘앙글리야’로 가지.”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에르미타주’보다 ‘앙글리야’에 빚이 더 많았기 때문에 그곳을 골랐다. 그 때문에 그 호텔을 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차 있나? 좋아. 나는 내 마차를 돌려보냈거든.”

두 친구는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레빈은 키티 얼굴의 표정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했다. 어느 순간에는 희망이 있다고 자신했다가 다음 순간에는 절망하며 자기 희망이 어리석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그녀의 미소와 ‘이따 뵈어요’라는 말 이전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고 느꼈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길에서 저녁 메뉴를 짜고 있었다.

“자네 터봇 좋아하지?”

그가 도착할 무렵 레빈에게 물었다.

“뭐라고?”

레빈이 되물었다.

“터봇? 그래, 아주 좋아하지.”

이 장의 주

  1. Tiny bear: 영어로 “아기 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