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1부 제5장

관청 책상 앞, 능란하게 하루를 넘기는 관리
관청 책상 앞, 능란하게 하루를 넘기는 관리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학교에서 타고난 머리 덕분에 공부를 잘했지만 게으르고 장난기가 많아 성적은 늘 뒤쪽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방탕하게 살아왔고 높은 관등도 아니며 아직 나이도 많지 않았지만, 모스크바의 한 관청에서 상당히 명예롭고 봉급도 좋은 부서 책임자 자리를 맡고 있었다.

그 자리는 누이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의 도움으로 얻었다. 카레닌은 그 관청을 관할하는 부처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카레닌이 처남에게 그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해도, 백 명쯤 되는 다른 친척과 인척과 친구들―형제자매, 사촌, 삼촌과 고모들―을 통해 스티바 오블론스키는 연봉 6천 루블쯤 되는 지금 자리나 비슷한 자리를 얻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상당한 재산이 있었음에도 그의 경제 사정은 엉망이었으므로 그 정도 수입이 필요했다.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의 절반쯤은 스테판 아르카디치의 친척이거나 친구였다. 그는 세상의 힘 있는 사람이었거나 앞으로 힘 있는 사람이 될 사람들 속에서 태어났다.

나이 든 고관 가운데 삼분의 일은 그의 아버지 친구로, 스티바가 아직 셔츠 바람으로 뛰놀 때부터 그를 알았다. 또 삼분의 일은 그와 서로 ‘너’라고 부르는 사이였고, 나머지 삼분의 일도 좋은 지인이었다. 따라서 좋은 관직이나 임대권, 사업권 같은 세상의 혜택을 나누어 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친구였고 자기 사람인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오블론스키는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특별히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거절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다투지 않고, 모욕받았다고 화내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의 타고난 착한 성격으로는 원래 하지 않던 일들이었다.

자기에게 필요한 봉급을 주는 자리를 얻지 못할 거라는 말을 누가 했다면 그는 우스워했을 것이다. 그는 대단한 것을 요구한 적도 없었다. 같은 또래 사람들이 받는 것을 원했을 뿐이고, 그런 종류의 일이라면 다른 누구 못지않게 해낼 수 있었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착하고 명랑한 성격과 명백한 정직함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잘생기고 환한 외모, 반짝이는 눈, 검은 눈썹과 머리카락, 희고 혈색 좋은 얼굴에는 만나는 사람에게 육체적으로까지 친근함과 유쾌함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스티바! 오블론스키! 여기 있었군!”

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거의 언제나 기쁜 미소로 말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딱히 기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음 날이나 사흘 뒤 다시 만나면 사람들은 똑같이 반가워했다.

모스크바의 한 관청에서 부서 책임자가 된 지 3년째인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동료, 부하, 상관, 그리고 그와 업무로 관계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뿐 아니라 존경도 얻고 있었다.

그가 관청에서 이처럼 보편적인 존경을 얻은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성품이 있었다.

첫째는 사람들에게 몹시 너그러웠다는 점이다. 자신의 결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의 결점에도 관대했다.

둘째는 신문에서 배운 자유주의가 아니라 피 속에 밴 진짜 자유분방함이었다. 그는 신분이나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똑같고 공평하게 대했다.

그리고 셋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맡은 일에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일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법도 없었고 큰 실수를 저지르는 법도 없었다.

근무처에 도착한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공손한 문지기의 안내를 받으며 서류가방을 들고 작은 집무실로 들어갔다. 제복으로 갈아입고 회의실로 갔다. 서기들과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 즐겁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는 늘 그랬듯 재빨리 자기 자리로 가서 위원들과 악수하고 앉았다. 예의상 알맞을 만큼 농담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일을 시작했다.

즐겁게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자유로움과 소박함과 공식성의 경계를 스테판 아르카디치보다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비서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분 좋고 공손하게 서류를 들고 다가와,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관청에 퍼뜨린 친근하면서 자유주의적인 말투로 말했다.

“펜자 지방정부에서 드디어 자료를 받아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마침내 왔군요?”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서류 한 곳에 손가락을 끼워 두며 말했다.

“자, 여러분……”

회의가 시작되었다.

‘저 사람들이 안다면.’

그는 보고를 들으며 중요하다는 듯 머리를 기울인 채 생각했다.

‘불과 반 시간 전만 해도 자기네 의장이 얼마나 죄지은 어린애 같은 얼굴로 서 있었는지!’

보고서를 읽는 동안에도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두 시까지는 쉬지 않고 업무를 처리해야 했고, 두 시가 되면 휴식과 점심이 있었다.

아직 두 시가 되기 전, 회의실의 큰 유리문이 갑자기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초상화 아래와 관청의 상징물 뒤에 앉아 있던 위원들은 뜻밖의 구경거리가 생겨 반갑다는 듯 모두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문을 지키던 직원이 곧 그 사람을 내보내고 유리문을 닫았다.

사건 보고가 끝나자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일어나 몸을 쭉 폈다. 시대의 자유로운 풍조에 경의를 표하듯 회의실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자기 집무실로 향했다. 동료 두 사람, 노련한 관리 니키틴과 궁정 시종 그리네비치도 함께 나왔다.

“점심 뒤에 마저 끝낼 수 있겠지요.”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말했다.

“물론 끝내고말고요.”

니키틴이 대답했다.

“그 포민이라는 사람, 제법 사기꾼인 모양입니다.”

그리네비치가 방금 심리한 사건의 관련자를 두고 말했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으로 얼굴을 찌푸렸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까 들어왔던 사람은 누구였지?”

그가 문지기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허락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각하. 제가 잠깐 돌아선 사이에요. 각하를 찾기에 위원님들이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만……”

“어디 있나?”

“현관 쪽으로 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여기 있었는지…… 아, 저 사람입니다.”

문지기는 양가죽 모자도 벗지 않은 채 닳은 돌계단을 빠르고 가볍게 뛰어 올라오는, 어깨가 넓고 체격이 단단한 곱슬수염의 남자를 가리켰다. 서류가방을 든 마른 관리 한 명이 내려가다 멈춰서 그의 다리를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오블론스키에게 의문스럽게 눈길을 돌렸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계단 위에 서 있었다. 제복의 수놓은 깃 위로 드러난 온화하고 밝은 얼굴이 그 사람을 알아보자 더욱 환해졌다.

“역시 자네였군! 레빈, 드디어 왔어!”

그는 다가오는 레빈을 훑어보며 다정하면서도 놀리는 미소로 말했다.

“이런 소굴까지 나를 찾아오는 걸 마다하지 않았군?”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악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친구에게 입을 맞췄다.

“언제 왔나?”

“방금 도착했어. 자네가 몹시 보고 싶었지.”

레빈은 수줍어하면서도 화가 나고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자, 내 방으로 가세.”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친구 특유의 자존심 강하고 성마른 수줍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레빈의 팔을 잡고 마치 위험한 곳을 통과시켜 주듯 집무실로 이끌었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아는 사람 거의 모두와 서로 ‘너’라고 부르는 사이였다. 예순 살 노인도, 스무 살 청년도, 배우도, 장관도, 상인도, 황제의 부관인 장군도 그랬다. 그래서 그와 친하게 말을 트고 지내는 사람들 가운데는 사회 계단의 양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고, 서로가 오블론스키를 통해 무언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크게 놀랄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샴페인을 함께 마신 사람이라면 누구하고나 ‘너’라고 부르는 사이였다. 그리고 그는 누구하고나 샴페인을 마셨다.

부하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가 농담 삼아 ‘창피한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이런 친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는 특유의 눈치로 부하들이 받게 될 불편한 인상을 누그러뜨릴 줄 알았다.

레빈은 그런 ‘창피한 친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블론스키는 레빈이 혹시 자신이 부하들 앞에서 두 사람의 친분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음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그를 집무실로 데려간 것이다.

레빈과 오블론스키는 거의 동갑이었으며, 그저 샴페인을 마셔 친해진 사이도 아니었다. 젊은 시절부터 친구이자 동료였다. 두 사람은 성격과 취향이 달랐지만 젊은 시절 만나 친구가 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활동 분야가 달라진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생기듯, 이성으로는 상대의 삶을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서로의 생활을 낮추어 보았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사는 삶만이 진짜 삶이고, 친구가 사는 삶은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오블론스키는 레빈을 보기만 하면 약간 놀리는 듯한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레빈이 시골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사실 관심도 없었지만, 그가 시골에서 모스크바로 흥분하고 서두르는 모습으로 올라오는 것을 벌써 여러 차례 보았다.

레빈은 모스크바에 올 때마다 들떠 있고 성급하고 조금 위축되어 있었으며, 그렇게 위축되는 자기 자신에게 또 화가 나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세상사에 관해 완전히 새롭고 뜻밖인 견해를 가지고 왔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그것을 놀리면서도 좋아했다.

마찬가지로 레빈도 친구의 도시 생활과 그가 하찮게 여기는 관직을 마음속으로 경멸하며 웃었다. 차이는 오블론스키가 모두가 하는 대로 하면서 자신감 있고 선량하게 웃는 반면, 레빈은 자신감이 없었고 때로는 화까지 내며 웃는다는 점이었다.

“우린 자네를 오래 기다렸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집무실에 들어가, 이제 위험이 끝났다는 듯 레빈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정말, 정말 반갑군. 그래, 잘 지냈나? 언제 왔어?”

레빈은 오블론스키의 낯선 두 동료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특히 우아한 그리네비치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휘어진 길고 누런 손톱, 셔츠에 달린 크고 번쩍이는 커프스 단추가 그의 눈길을 모조리 빼앗아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듯했다.

오블론스키는 즉시 그것을 알아차리고 웃었다.

“아, 그렇지. 소개하지. 내 동료들일세. 필리프 이바니치 니키틴, 미하일 스타니슬라비치 그리네비치. 그리고 이쪽은 레빈―젬스트보 활동가이자 새로운 지방 자치의 사람, 한 손으로 다섯 푸드를 드는 체조가이며 축산가, 사냥꾼, 내 친구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 세르게이 이바니치 코즈니셰프의 동생이지.”

“반갑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형님이신 세르게이 이바니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네비치는 긴 손톱이 달린 가느다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레빈은 얼굴을 찌푸리고 차갑게 악수한 뒤 곧바로 오블론스키에게 돌아섰다. 그는 러시아 전역에 이름난 작가인 이복형을 깊이 존경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콘스탄틴 레빈으로 대하지 않고 유명한 코즈니셰프의 동생으로 대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아니, 난 이제 젬스트보 활동가가 아니야. 모두하고 싸우고는 회의에도 가지 않아.”

레빈이 말했다.

“벌써?”

오블론스키가 웃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나?”

“긴 이야기야. 언젠가 해 줄게.”

그렇게 말한 레빈은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면 젬스트보 활동이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고 깨달았어. 한쪽에서는 장난감이야. 의회 놀이를 하고 있지. 나는 그런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 만큼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았어.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는 말을 더듬었다.

“군의 패거리들이 돈을 챙기는 수단일 뿐이야. 예전에는 후견 기관이나 법원이 그랬다면 이제는 젬스트보지. 뇌물 형태는 아니지만, 받을 자격도 없는 봉급 형태로.”

그는 마치 누군가가 방금 자기 의견에 반대라도 한 것처럼 격앙되어 말했다.

“이야! 보아하니 또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군. 이번엔 보수주의 단계인가?”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말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

“그래, 나중에. 하지만 자네를 꼭 만나야 했어.”

레빈은 그리네비치의 손을 혐오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살짝 웃었다.

“유럽식 옷은 다시는 입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분명 프랑스 재단사가 만든 레빈의 새 옷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것 봐! 또 새로운 단계로군.”

레빈은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성인이 자기도 모르게 살짝 붉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수줍은 자신이 우스워 보인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그래서 더 부끄러워져 거의 눈물이 날 정도로 붉어지는 소년처럼 얼굴 전체가 새빨개졌다.

그 지적이고 남자다운 얼굴이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변한 모습이 워낙 뜻밖이어서 오블론스키도 그만 바라보는 것을 멈췄다.

“그래, 어디서 만나지? 자네하고 정말, 정말 할 이야기가 있어.”

레빈이 말했다.

오블론스키는 생각하는 듯했다.

“이렇게 하지. 구린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하세. 세 시까지는 시간이 있어.”

“아니.”

레빈은 생각한 뒤 대답했다.

“난 아직 들를 곳이 있어.”

“좋아. 그럼 저녁을 같이 먹지.”

“저녁? 내 이야기는 사실 별것 없어. 두 마디만 묻고 싶은 거야.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그럼 지금 두 마디를 해. 긴 이야기는 저녁에 하고.”

“두 마디라는 건……”

레빈이 말했다.

“아니, 별일은 아니고.”

수줍음을 억누르려 애쓰느라 얼굴이 갑자기 성난 표정으로 변했다.

“셰르바츠키 집안은 어때? 다들 예전 그대로야?”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레빈이 처제 키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살짝 웃었고 눈이 즐겁게 빛났다.

“두 마디라면서? 난 두 마디로는 대답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잠깐만.”

비서가 친근한 공손함과, 업무 지식에서는 상관보다 자기가 조금 더 낫다는 모든 비서 특유의 겸손한 자부심을 띠고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설명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다정하게 비서의 소매에 손을 얹었다.

“아니, 제가 말한 대로 처리하세요.”

그는 미소로 지적의 날을 누그러뜨리며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간단히 설명하고 서류를 밀어 놓았다.

“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자하르 니키티치, 부탁합니다. 그대로 하세요.”

당황한 비서가 물러났다.

비서와 의논하는 동안 수줍음에서 완전히 벗어난 레빈은 두 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짚고 서 있었다. 얼굴에는 비웃는 듯한 관심이 떠올랐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군.”

그가 말했다.

“뭘 모르겠다는 거야?”

오블론스키는 여전히 유쾌하게 웃으며 담배를 꺼냈다. 그는 레빈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말을 들으리라 기대했다.

“자네들이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레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는 저 일을 어떻게 진지하게 할 수 있지?”

“왜 못 해?”

“할 일이 없잖아.”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일이 산더미야.”

“서류 일이겠지. 그래, 자넨 그런 데 재능이 있어.”

“그러니까 내겐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뜻인가?”

“어쩌면.”

레빈이 말했다.

“그래도 난 자네의 위엄을 감탄하며 보고 있어. 이렇게 위대한 사람이 내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지. 하지만 자네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그는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어 오블론스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좋아. 조금만 기다려 봐. 자네도 언젠가는 우리처럼 될 거야. 카라진 군에 땅이 3천 데샤티나나 있고, 저런 근육에 열두 살 소녀 같은 싱싱함까지 있으니 지금은 좋겠지. 하지만 자네도 언젠가는 우리 쪽으로 올 거야. 자, 자네가 물은 이야기로 돌아가면, 달라진 건 없어. 다만 자네가 너무 오래 안 온 게 아쉽군.”

“왜?”

레빈이 겁먹은 듯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이야기하지. 그런데 자넨 정확히 무슨 일로 왔어?”

“아, 그것도 나중에 이야기하세.”

레빈은 다시 귀까지 빨개져 말했다.

“좋아. 알겠어.”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말했다.

“우리 집으로 부르고 싶지만 아내가 몸이 좀 좋지 않아. 그런데 셰르바츠키 사람들을 보고 싶으면 오늘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동물원에 있을 게 틀림없어. 키티가 스케이트를 타거든. 자네 먼저 가게. 나도 들렀다가 같이 어디 가서 저녁을 먹지.”

“좋아. 그럼 이따 보자.”

“자네를 아니까 하는 말인데, 잊어버리거나 갑자기 시골로 가 버리면 안 돼!”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웃으며 뒤에서 외쳤다.

“안 그래. 틀림없어.”

레빈은 문까지 나가고 나서야 오블론스키의 두 동료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그대로 방을 나갔다.

“대단히 힘이 넘치는 분인 모양이군요.”

그리네비치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고개를 저었다.

“행복한 친구지! 카라진 군에 3천 데샤티나의 땅이 있고, 앞으로의 인생이 전부 남아 있고, 저렇게 싱싱하기까지 하니! 우리하고는 달라.”

“각하는 뭐가 불만이십니까?”

“아주 형편없어. 좋지 않아.”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