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 공작부인이 나왔다. 두 사람이 단둘이 있고 얼굴이 모두 흐트러진 것을 보자 공포가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레빈은 공작부인에게 인사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키티도 눈을 들지 않은 채 침묵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거절했구나.’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리고 목요일마다 손님을 맞을 때 짓는 평소의 미소가 얼굴에 환하게 번졌다. 그녀는 앉아서 레빈에게 시골 생활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레빈도 다시 앉았다. 손님들이 도착하면 눈에 띄지 않게 떠날 생각이었다.
5분쯤 지나 지난겨울 결혼한 키티의 친구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마르고 누르스름하며 검게 빛나는 눈을 가진 병약하고 신경질적인 여자였다. 키티를 좋아했다. 결혼한 여자들이 처녀 친구를 사랑할 때 흔히 그렇듯, 자신의 행복관에 맞는 남편을 키티에게 골라 주고 싶어 했으며 그 남편감으로 브론스키를 원했다.
초겨울 셰르바츠키 집에서 자주 마주쳤던 레빈은 처음부터 그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빈을 만나기만 하면 놀려 대는 것이 그녀가 언제나 즐기는 일이었다.
“난 그 사람이 자기 위대함의 높이에서 나를 내려다볼 때가 좋아.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해서 나하고 똑똑한 대화를 그만둘 때도 좋고, 나에게 몸을 낮춰 줄 때도 좋아. 정말 좋아요.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몸을 낮춰 주다니! 그 사람이 나를 견디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그녀는 레빈에 관해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녀의 말은 맞았다. 레빈은 실제로 그녀를 견디지 못했다. 특히 그녀가 스스로 장점이라고 자랑하는 것, 즉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태도와, 거칠고 일상적인 모든 것을 세련되게 멸시하고 무관심해하는 태도를 경멸했다.
노르드스톤과 레빈 사이에는 사교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친절하게 지내면서도 서로를 너무 경멸한 나머지 진지한 말을 주고받을 수조차 없고, 심지어 서로에게 모욕을 당할 수도 없는 그런 관계였다.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은 들어오자마자 레빈에게 달려들었다.
“아!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우리 타락한 바빌론에 또 오셨군요.”
그녀는 조그맣고 누런 손을 내밀며 말했다. 초겨울 어느 날 레빈이 모스크바를 바빌론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래요, 바빌론이 착해진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타락한 건가요?”
그녀는 비웃는 듯 키티를 힐끗 보며 덧붙였다.
“백작부인께서 제 말을 그렇게 잘 기억해 주시니 대단히 영광입니다.”
레빈은 이미 자신을 추슬렀고 즉시 평소처럼 백작부인과 농담 반 적대 반의 관계로 돌아가 대답했다.
“제 말이 백작부인께 아주 강한 인상을 준 모양이군요.”
“그럼요! 나는 전부 적어 놓는걸요. 자, 키티, 오늘도 스케이트를 탔니?”
그녀는 키티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일어나 가는 것이 아무리 어색해도, 레빈으로서는 저녁 내내 남아 가끔 자기를 바라보면서도 눈길을 피하는 키티를 보는 것보다 그 어색함을 감수하는 편이 나았다.
그가 일어서려 하자 공작부인이 그가 조용히 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모스크바에는 오래 계실 건가요? 당신은 지방 젬스트보 일을 하시는 것 같던데 오래 머물기는 어렵겠지요.”
“아닙니다, 공작부인. 이제 젬스트보 일은 하지 않습니다. 며칠만 있으려고 왔습니다.”
‘오늘 이 사람은 뭔가 이상하네.’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은 그의 엄격하고 진지한 얼굴을 자세히 보며 생각했다. ‘평소처럼 논쟁에 끌려들지도 않잖아. 하지만 내가 끌어내고 말지. 키티 앞에서 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 꼭 그렇게 할 거야.’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그녀가 말했다. “한 가지 설명해 주세요. 당신은 이런 일을 다 아시니까요. 칼루가에 있는 우리 영지에서 남자 농민이고 여자 농민이고 가진 걸 몽땅 술로 마셔 버리고 이제 우리에게 아무것도 내지 않아요. 대체 이건 무슨 뜻이죠? 당신은 늘 농민을 칭찬하시잖아요.”
그때 다른 부인이 방으로 들어와 레빈은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백작부인. 하지만 저는 정말 그런 건 전혀 모르고 말씀드릴 것도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그 부인을 따라 들어오는 군인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브론스키겠지.’
레빈은 생각했다. 확인하려고 키티를 보았다.
키티는 이미 브론스키를 바라본 뒤 레빈 쪽을 돌아보았다. 바로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환하게 빛난 그녀의 눈을 보고 레빈은 키티가 이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입으로 직접 말해 준 것만큼이나 확실히 알았다.
그런데 대체 어떤 사람인가?
좋든 싫든 이제 레빈은 떠날 수 없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보다 행복한 경쟁자를 만나면 그 사람 안의 좋은 점은 모조리 외면하고 나쁜 점만 보려고 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가슴이 저미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자기 경쟁자가 자신을 이긴 바로 그 장점을 찾아내고 오직 좋은 점만을 보려고 한다.
레빈은 후자에 속했다.
그러나 브론스키에게서 좋은 점과 매력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즉시 눈에 들어왔다.
브론스키는 키가 크지 않고 단단한 체격의 검은 머리 남자였다. 선량하고 잘생긴 데다 극도로 침착하고 단호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짧게 깎은 검은 머리와 말끔하게 면도한 턱에서부터 새것처럼 말쑥한 넓은 군복에 이르기까지 얼굴과 몸의 모든 것이 단순하면서도 세련되어 보였다.
브론스키는 들어오는 부인에게 길을 비켜 준 뒤 공작부인에게, 이어 키티에게 다가갔다.
키티에게 다가갈 때 그의 아름다운 눈은 유난히 다정하게 빛났고, 거의 알아차리기 어려운 행복하면서도 겸손하게 승리한 듯한 미소를 띠었다. 적어도 레빈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브론스키는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키티에게 작지만 넓은 손을 내밀었다.
모두에게 인사하고 몇 마디 나눈 뒤 그는 앉았다. 자기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는 레빈에게는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두 분을 소개하지요.” 공작부인이 레빈을 가리키며 말했다.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 씨.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 백작.”
브론스키는 일어나 친근하게 레빈의 눈을 보며 악수했다.
“이번 겨울에 함께 식사하기로 했던 것 같은데요.” 그는 소박하고 열린 미소로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골로 떠나셨더군요.”
“콘스탄틴 드미트리치는 도시와 우리 도시 사람들을 멸시하고 미워한답니다.”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말했다.
“제 말이 꽤 강한 인상을 드렸나 봅니다. 그렇게 잘 기억하고 계신 걸 보니.” 레빈은 말하고, 아까 이미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브론스키는 레빈과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을 번갈아 보고 웃었다.
“늘 시골에 계십니까?” 그가 물었다. “겨울에는 지루하지 않습니까?”
“할 일이 있으면 지루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하고 있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요.” 레빈은 날카롭게 대답했다.
“저도 시골을 좋아합니다.” 브론스키는 레빈의 말투를 알아차리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척 말했다.
“하지만 백작님도 늘 시골에서 살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오래 살아 본 적은 없으니까요. 이상한 감정을 느낀 적은 있습니다.” 브론스키가 계속했다. “어머니와 니스에서 한겨울을 보냈을 때만큼 러시아 시골, 짚신을 신은 농민들이 사는 러시아 시골을 그리워한 적이 없었어요. 니스는 그 자체로 지루한 곳이죠. 나폴리나 소렌토도 잠깐 있을 때나 좋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에 가면 러시아가 더 생생하게 떠오르고, 특히 시골이 생각납니다. 마치……”
그는 키티와 레빈을 번갈아 보며 침착하고 친근한 눈길로,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했다.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말을 끝내지 않고 멈추어 주의 깊게 들었다.
대화는 한순간도 끊이지 않았다. 평소 대화 주제가 떨어질 때를 대비해 ‘고전 교육과 실용 교육’ 그리고 ‘보편적 병역제’라는 두 개의 무거운 대포를 준비해 두는 늙은 공작부인도 그것들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노르드스톤 백작부인 역시 레빈을 특별히 자극할 틈을 찾지 못했다.
레빈은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매 순간 ‘이제 가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무언가를 기다렸다.
이야기는 회전 탁자와 영혼에 관한 것으로 넘어갔다. 심령술을 믿는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은 자기가 보았다는 기적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 백작부인, 꼭 저를 데리고 가 주십시오. 하느님께 맹세코 꼭요! 저는 별난 일을 찾아다니는데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브론스키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다음 토요일에요.”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대답했다. “그런데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당신은 믿으세요?”
“왜 저한테 묻습니까? 제가 뭐라고 할지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래도 당신 생각을 듣고 싶어요.”
“제 생각은 이것뿐입니다. 그런 회전 탁자는 이른바 교양 있는 사회가 농민들보다 조금도 낫지 않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농민들은 사악한 눈초리, 저주, 사랑의 주문을 믿고, 우리는……”
“그럼 믿지 않는다는 거예요?”
“믿을 수 없습니다, 백작부인.”
“하지만 내가 직접 봤다면요?”
“농촌 여자들도 자기가 도깨비를 직접 봤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뜻인가요?”
그녀가 불쾌하게 웃었다.
“아니야, 마샤. 콘스탄틴 드미트리치는 자기가 믿을 수 없다는 뜻이야.” 키티가 레빈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레빈은 그것을 알아차렸고 더욱 화가 나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브론스키가 밝고 솔직한 미소로 즉시 끼어들어 불편해지려는 대화를 구해 냈다.
“가능성 자체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그가 물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전기가 존재한다고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힘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전기가 발견되었을 때에는,” 레빈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알 수 있는 현상이 발견되었을 뿐이고, 그 현상이 어디서 생기고 무엇을 일으키는지는 몰랐습니다. 그것을 응용할 생각을 하기까지는 여러 세기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심령술사들은 정반대입니다. 처음부터 탁자가 글씨를 쓴다, 영혼이 찾아온다고 말해 놓고 그다음에야 그것이 미지의 힘이라고 주장합니다.”
브론스키는 평소처럼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분명 레빈의 이야기에 실제로 관심이 있었다.
“그렇지만 심령술사들이 말하는 건 이런 것이겠죠. 지금은 그것이 어떤 힘인지 모르지만 힘은 존재하고 이런 조건에서 작용한다. 그 힘이 무엇인지는 과학자들이 연구하면 된다. 그런 식입니다. 만약 그것이……”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레빈이 다시 그의 말을 끊었다. “전기의 경우에는 수지를 양털에 문지를 때마다 일정한 현상이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매번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대화가 응접실에 어울리기에는 너무 심각해지고 있다고 느낀 듯 브론스키는 반박하지 않았다. 화제를 바꾸려고 즐겁게 웃으며 여자들 쪽으로 돌아섰다.
“백작부인, 지금 한번 해 봅시다.”
그러나 레빈은 자기가 생각한 것을 끝까지 말하고 싶었다.
“내 생각엔,” 그가 말을 이었다. “심령술사들이 자기 기적을 어떤 새로운 힘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가장 잘못됐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힘을 말하면서 그것을 물질적인 실험에 부치려 합니다.”
모두가 그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고 레빈 자신도 그것을 느꼈다.
“내 생각에는 당신이 아주 훌륭한 영매가 될 것 같아요.”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말했다. “당신에게는 뭔가 황홀해지는 기질이 있거든요.”
레빈은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얼굴만 붉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녀님, 지금 바로 탁자를 시험해 봅시다. 제발요.” 브론스키가 말했다. “공작부인, 괜찮으시겠습니까?”
브론스키는 일어나 작은 탁자를 찾았다.
키티도 탁자로 가려고 일어섰고, 지나가다가 레빈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온 마음으로 그가 가엾었다. 자기가 원인이 된 불행 속에 있는 사람이라 더욱 가엾었다.
‘나를 용서할 수 있다면 용서해 주세요. 나는 너무 행복해요.’
그녀의 눈길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모두가 미워. 당신도, 나 자신도.’
레빈의 눈길이 대답했다.
그는 모자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아직 떠날 운명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막 작은 탁자 둘레에 자리를 잡으려 하고 레빈이 나가려는 순간 늙은 공작이 들어왔다. 그는 여자들에게 인사한 뒤 레빈을 보자 곧장 다가왔다.
“아!” 늙은 공작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왔나? 자네가 여기 있는 줄도 몰랐군. 정말 반갑네.”
늙은 공작은 때로 레빈에게 반말을 하고 때로 존댓말을 했다. 그는 레빈을 껴안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일어나 자기에게 인사할 때를 기다리는 브론스키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키티는 이미 벌어진 일 뒤에 아버지의 다정함이 레빈에게 얼마나 괴로울지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가 브론스키의 인사에 얼마나 차갑게 답하는지도 보았다. 브론스키가 친근하지만 어리둥절한 눈으로 자기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도 보았다. 왜 자기를 싫어하는지 이해하려 애쓰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키티는 얼굴을 붉혔다.
“공작님, 콘스탄틴 드미트리치를 우리에게 양보해 주세요.”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말했다. “우리가 실험을 하려고 하거든요.”
“무슨 실험? 탁자를 돌리려고? 미안하지만, 신사 숙녀 여러분, 내 생각엔 차라리 반지 놀이가 더 재미있을 것 같군.”
늙은 공작은 브론스키를 바라보며, 탁자 돌리기를 하자고 한 사람이 그라고 짐작하고 말했다.
“반지 놀이에는 적어도 의미는 있잖아.”
브론스키는 단호한 눈으로 놀란 듯 공작을 바라보았다가 살짝 미소 짓고 곧바로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에게 다음 주 큰 무도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오시겠지요?”
그가 키티에게 물었다.
늙은 공작이 등을 돌리자 레빈은 눈에 띄지 않게 빠져나왔다.
그 저녁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마음에 담아 나온 장면은 브론스키의 무도회 질문에 답하며 웃는 행복한 키티의 얼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