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끝난 뒤 키티는 어머니에게 레빈과 나눈 대화를 이야기했다. 레빈이 몹시 가엾었지만 누군가에게 청혼을 받았다는 생각은 기뻤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데에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침대에 누운 뒤 오랫동안 잠들 수 없었다. 한 가지 인상이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다녔다.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키티와 브론스키를 번갈아 바라보던 레빈의 얼굴이었다. 찌푸린 눈썹 아래 선량한 두 눈이 어둡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가 너무 가엾어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곧 자기가 레빈 대신 선택한 사람을 생각했다. 남자답고 단호한 얼굴, 고귀한 침착함,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드러나는 선량함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기뻐졌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가엾어, 정말 가엾어. 하지만 어쩌겠어?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러나 마음속 목소리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레빈을 유혹한 것을 후회하는 것인지, 거절한 것을 후회하는 것인지 키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행복에는 의심이라는 독이 섞여 있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키티는 잠이 들 때까지 속으로 되풀이했다.
그 시각 아래층 공작의 작은 서재에서는 사랑하는 딸을 둘러싸고 부모 사이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벌어지고 있었다.
“뭐냐고? 바로 이거요!” 공작은 두 팔을 휘두르다 다람쥐 털로 안을 댄 실내복이 벌어지자 얼른 여미며 소리쳤다. “당신에게는 긍지도, 품위도 없어. 이런 비열하고 어리석은 혼담 놀음으로 딸을 망신시키고 망치고 있잖소!”
“아니, 하느님 맙소사, 공작, 내가 뭘 했다고 그러세요?”
공작부인은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딸과 이야기를 나눈 뒤 행복하고 만족한 마음으로 평소처럼 남편에게 잠자리에 들겠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레빈의 청혼과 키티의 거절을 굳이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브론스키와의 일이 이제 거의 결정된 것 같고 그의 어머니가 오기만 하면 결판이 날 듯하다고 넌지시 말했다.
그러자 바로 그 말에 공작이 갑자기 화를 내며 점잖지 못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짓을 했느냐고? 첫째, 당신은 신랑감을 일부러 꾀어다 놓고 있소. 모스크바 전체가 떠들어 댈 거요. 그래도 싸지. 저녁 모임을 열 거면 모두를 부르시오. 골라 놓은 신랑감만 부르지 말고. 내가 ‘얼간이들’이라고 부르는 그 모스크바 젊은이들을 다 불러. 피아노 치는 사람도 데려오고, 다 같이 춤추게 하라고. 오늘처럼 신랑감만 모아다 짝지으려고 하지 말고. 보기 역겨워, 역겨워! 결국 당신은 저 아이 머리를 어지럽혀 놓았어. 레빈은 저 인간보다 천 배는 나은 사람이오. 저 페테르부르크 멋쟁이들은 기계로 찍어 내는 것처럼 모두 똑같고 하나같이 형편없어.”
“그 사람이 황족이라 해도 내 딸은 누구에게 매달릴 필요가 없소!”
“그래서 내가 대체 뭘 했는데요?”
“뭘 했냐면……” 공작이 화가 나 외쳤다.
“내가 알아요. 당신 말을 듣고 있으면 우리는 딸을 평생 시집도 못 보내요.” 공작부인이 말을 끊었다. “그럴 거면 시골로 내려가 버려야죠.”
“그게 더 낫지.”
“잠깐만요. 내가 누구한테 매달리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전혀 아니에요. 젊은 남자가, 그것도 아주 괜찮은 젊은 남자가 딸을 사랑하게 됐고, 아이도 그를 좋아하는 것 같고……”
“그래요, 당신 눈에는 그런 것 같겠지! 그런데 정말 딸이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자는 내가 결혼할 생각 없는 것만큼이나 결혼할 생각이 없으면 어쩔 거요? 아, 차라리 내가 이 꼴을 안 봤으면 좋겠어! ‘아, 심령술! 아, 니스! 아, 무도회!’”
공작은 아내를 흉내 낸다고 생각하며 말할 때마다 무릎을 굽혔다.
“저러다 카텐카를 불행하게 만들면, 정말 저 아이가 마음을 빼앗기면……”
“왜 당신은 그렇게 생각해요?”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알아. 남자에 관한 일은 우리가 볼 눈이 있지, 여자들은 몰라. 난 진지한 의도를 가진 사람을 알아봐. 그게 레빈이야. 그리고 저 깃털 같은 멋쟁이도 알아. 저런 인간은 즐기러 다니는 것뿐이오.”
“또 혼자 그런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는군요……”
“나중에 후회할 거요. 하지만 그땐 늦지. 다셴카 때처럼.”
“됐어요, 됐어요. 그 이야기는 그만해요.” 공작부인은 불행한 돌리를 떠올리고 그를 막았다.
“좋소. 그럼 잘 자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십자가를 그어 주고 입을 맞춘 뒤 헤어졌다. 그러나 각자 자기 생각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공작부인은 처음에는 오늘 저녁이 키티의 운명을 결정했고 브론스키의 의도에도 의심할 것이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녀 역시 키티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속으로 여러 번 되풀이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