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이야기를 나눈 뒤 브론스키는 카레닌 집 현관으로 나와 멈춰 섰다.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걸어가야 하는지 마차를 타야 하는지조차 어렵게 기억했다.
수치스럽고 굴욕당했고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이 온몸을 채웠다.
그리고 그 굴욕을 씻어낼 방법도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만만하고 가볍게 달려오던 삶의 궤도 밖으로 튕겨나간 것 같았다.
언제나 확실하고 단단해 보였던 생활의 습관과 규칙들이 갑자기 거짓되고 지금 상황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는 속은 남편이 가엾고 우스운 존재, 자기 행복 앞에 우연히 놓인 방해물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바로 안나 자신이 그 남편을 불러내어 다른 높이로 올려놓았다.
그 높이에서는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남편은 거기서 악하지도 않고, 거짓되지도 않고, 우습지도 않은 사람으로 나타났다.
선하고 단순하며 위대한 사람이었다.
브론스키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배역은 갑자기 뒤바뀌었다.
브론스키는 그의 높이와 자기 비천함을 느꼈다.
남편의 옳음과 자기 잘못을 느꼈다.
그 남편은 자기 고통 속에서 관대했고, 브론스키 자신은 자기 속임수 속에서 낮고 하찮았다.
하지만 자기가 부당하게 경멸해왔던 그 사람 앞에서 느끼는 비천함은 지금 고통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 식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안나에 대한 열정은, 이제 그녀를 영원히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어느 때보다 더 강해졌다.
그녀가 병든 동안 그는 안나의 전부를 보았다.
영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전에는 한 번도 그녀를 정말 사랑해야 할 만큼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야 제대로 알고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녀 앞에서 굴욕당했고 영원히 잃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자기에 대한 부끄러운 인상만 남았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자기 수치스러운 얼굴에서 두 손을 억지로 떼어냈던 그 우스꽝스럽고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브론스키는 카레닌 집 현관에 길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삯마차를 불러드릴까요?”
문지기가 물었다.
“그래, 삯마차.”
브론스키는 사흘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옷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엎드려 두 팔을 포개고 그 위에 머리를 얹었다.
머리는 납처럼 무거웠다.
가장 이상한 생각과 기억과 이미지들이 놀랄 만큼 빠르고 또렷하게 서로 교대했다.
환자에게 약을 따라주다가 숟가락 밖으로 흘렸던 약물.
산파의 하얀 손.
침대 앞 바닥에 기묘한 자세로 무릎을 꿇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자야 해. 잊어야 해.’
그는 자기에게 말했다.
피곤한 건강한 사람이라면 자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잠들 수 있다고 확신하는 평소의 습관 그대로였다.
실제로 같은 순간 머릿속이 흐려지고 망각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의식 없는 삶의 파도가 거의 머리 위에서 닫히려는 찰나, 아주 강한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온몸이 소파 스프링 위에서 튀어올랐다.
두 손으로 몸을 받치고 놀라 무릎을 꿇은 채 벌떡 일어났다.
눈은 한 번도 잠든 적 없는 사람처럼 활짝 떠져 있었다.
불과 일 분 전까지 느끼던 머리의 무거움과 팔다리의 나른함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당신은 나를 진흙 속에 짓밟아도 좋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열로 붉어진 얼굴과 반짝이는 눈으로 자기 아닌 카레닌을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안나가 나타났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자기 얼굴에서 두 손을 떼어낼 때의, 자기가 생각해도 어리석고 우스운 자기 모습이 떠올랐다.
브론스키는 다리를 다시 펴고 옛 자세로 소파에 몸을 던져 눈을 감았다.
‘잠들어야 해. 잠들어.’
계속 되풀이했다.
그러나 눈을 감자 오히려 안나의 얼굴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경마 전날 밤, 영원히 잊지 못할 그 얼굴이었다.
‘그런 것은 이제 없어. 다시는 없을 거야. 그녀도 그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해. 그런데 나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다시 하나가 되지?’
그는 큰 소리로 말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같은 문장을 되풀이했다.
그 말의 반복은 머릿속에 몰려오는 다른 이미지와 기억들을 잠시 막아주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가장 좋았던 순간들과 가장 최근의 굴욕이 놀랄 만큼 빠르게 다시 번갈아 나타났다.
‘손을 치워.’
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손을 내리고, 수치와 어리석음이 그대로 드러난 자기 얼굴을 느꼈다.
브론스키는 계속 누워 잠을 청했다.
희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에 새 그림이 떠오르는 것을 막으려고 어떤 생각에서 우연히 나온 말을 작은 소리로 되풀이했다.
문득 자기 입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소중히 여길 줄 몰랐어. 누릴 줄 몰랐어. 소중히 여길 줄 몰랐어. 누릴 줄 몰랐어…….”
‘이게 뭐지? 내가 미쳐가는 건가?’
그는 자기에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 사람들이 왜 미치고, 왜 자기에게 총을 쏘는 건데?’
그는 스스로 답했다.
눈을 뜨자 머리 곁에 형수 바랴가 수놓아준 쿠션이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쿠션의 술을 만지고 바랴를 떠올려보았다.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는지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자기와 관계없는 다른 일을 생각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아니, 자야 해.’
그는 쿠션을 끌어당겨 머리를 박았다.
하지만 눈을 감은 채 있는 것에도 힘이 필요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에게는 이제 끝났어.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해. 무엇이 남았지?’
그의 생각은 안나에 대한 사랑을 뺀 나머지 삶 전체를 빠르게 훑었다.
‘야심? 세르푸홉스코이? 사교계? 궁정?’
어느 것에도 생각을 붙잡아둘 수가 없었다.
전에는 이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군복 상의를 벗고 허리띠를 풀었다.
숨을 쉽게 쉬려고 털이 난 가슴을 드러낸 채 방 안을 걸었다.
‘이렇게 미쳐가는 거야.’
그는 되풀이했다.
‘그리고 이렇게 자살하는 거야…… 수치스럽지 않으려고.’
천천히 덧붙였다.
그는 문으로 가서 잠갔다.
그 뒤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고 이를 세게 악문 채 탁자로 갔다.
권총을 집어 살펴보고, 탄환이 든 약실 쪽으로 돌린 뒤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숙인 채 손에 권총을 들고 이 분쯤 그대로 서 있었다.
힘껏 생각하려는 표정이었다.
“당연하지.”
마침내 그는 말했다.
마치 길고 명료한 논리의 흐름이 의심할 수 없는 결론으로 자기를 데려온 사람처럼.
그러나 실제로 그에게 설득력 있게 느껴진 그 ‘당연하지’는, 지난 한 시간 동안 수십 번씩 반복한 똑같은 생각과 기억의 원을 다시 돌고 난 결과일 뿐이었다.
영원히 잃은 행복에 대한 같은 기억.
앞으로의 모든 삶이 무의미하다는 같은 생각.
자기 굴욕에 대한 같은 인식.
그 생각과 감정의 순서마저 같았다.
“당연하지.”
생각이 세 번째로 다시 그 마법에 걸린 원으로 들어가자 그는 또 말했다.
권총을 왼쪽 가슴에 대고, 손 전체를 갑자기 움켜쥐듯 힘껏 움직여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슴을 후려치는 강한 충격 때문에 몸이 뒤로 날아갔다.
탁자 모서리를 잡으려다가 권총을 떨어뜨렸고, 비틀거리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래쪽에서 바라보는 탁자의 굽은 다리와 휴지통과 호랑이 가죽이 낯설었다.
응접실에서 하인의 빠르고 삐걱거리는 발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돌아왔다.
생각을 모아 자기가 바닥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호랑이 가죽과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보고 자기가 총을 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보 같군. 빗나갔어.”
그는 중얼거리며 권총을 손으로 더듬었다.
권총은 바로 곁에 있었지만 그는 다른 곳을 계속 찾았다.
찾으려고 몸을 반대쪽으로 뻗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피가 계속 흘렀다.
멋진 구레나룻을 기르고 평소 사람들에게 자기 신경이 약하다고 자주 불평하던 하인은 주인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피 흘리는 주인을 그대로 두고 도움을 부르러 달아났다.
한 시간 뒤 형수 바랴가 왔다.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동시에 도착한 의사 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부상자를 침대에 눕히고, 그대로 곁에 남아 간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