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4부 제3장

등불 아래 마주 앉아 묻는 말
등불 아래 마주 앉아 묻는 말

“그 사람과 마주쳤지?”

두 사람이 등불 아래 놓인 탁자 곁에 앉자 안나가 물었다.

“늦은 벌이야, 그게.”

“그래.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회의에 있어야 하지 않았어?”

“갔다가 돌아왔고 또 어디론가 나갔어. 하지만 이제 됐어.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어디 있었어? 계속 왕자하고 있었지?”

안나는 브론스키 생활의 모든 세부를 알고 있었다.

브론스키는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집에 돌아와 곧 잠들어버렸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흥분과 행복으로 빛나는 안나의 얼굴을 보니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왕자가 떠나는 것에 관해 보고할 일이 있었다고만 말했다.

“이제 끝났어? 왕자는 갔고?”

“하느님께 감사해야지. 끝났어. 당신은 그 일이 얼마나 견딜 수 없었는지 믿지 못할 거야.”

“왜? 그게 늘 당신들 젊은 남자들이 사는 생활 아니야?”

안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탁자 위에 놓인 뜨개질감을 집어들고 브론스키를 보지 않은 채 걸려 있던 코바늘을 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생활을 오래전에 그만뒀어.”

브론스키는 갑자기 달라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 뜻을 알아내려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한 주 동안 그 생활을 거울처럼 바라본 셈인데…….”

그는 가지런하고 튼튼한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어.”

안나는 뜨개질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뜨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빛나고 적의마저 느껴지는 눈으로 브론스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리자가 왔었어.”

안나는 갑자기 말을 꺼냈다.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이 무서운데도 아직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기는 있더군.”

그녀는 빈정거렸다.

“어제 당신들 ‘아테네의 밤’ 이야기를 해줬어. 역겹더군.”

“나는 그저 말하려던 것이…….”

“그때 그 테레즈였지? 예전에 당신이 알던 여자?”

“내가 말하려는 건…….”

“당신들 남자는 정말 역겨워! 여자는 그런 걸 잊을 수 없다는 걸 왜 상상조차 못 하지?”

안나는 점점 흥분해갔다.

바로 그 흥분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를 브론스키에게 드러냈다.

“특히 자기 남자의 생활을 알 수 없는 여자에게는 더 그래. 내가 뭘 알아? 뭘 알았지? 당신이 내게 말해준 것뿐이잖아. 그런데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안나! 그건 나를 모욕하는 말이야. 나를 믿지 않는 거야? 내 생각 가운데 당신에게 열어 보이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어?”

“알아, 알아.”

안나는 질투를 몰아내려고 애쓰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당신은 몰라. 믿어, 나는 당신을 믿어……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던 거였어?”

그러나 브론스키는 곧바로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최근 점점 더 자주 안나에게 찾아오는 이런 질투의 발작은 그를 무섭게 했다.

그는 그것이 자기 사랑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감추려 애써도 그 순간에는 마음이 차갑게 식곤 했다.

몇 번이나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안나의 사랑은 행복이라고.

이제 안나는 사랑이 삶의 모든 좋은 것보다 무거워진 여자가 사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모스크바에서 안나를 따라 떠날 때보다 행복에서 훨씬 더 멀어져 있었다.

그때는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행복은 앞으로 있었다.

지금은 가장 좋은 행복이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나는 처음 그가 보았던 여자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몸은 전체적으로 더 퍼졌고, 배우 이야기를 할 때의 얼굴에는 악의가 번져 아름다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브론스키는 마치 자기가 꺾어놓은 뒤 시든 꽃을 바라보듯 안나를 보았다.

그 꽃을 왜 꺾고 망가뜨렸는지 이해시켜주었던 옛 아름다움을 이제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 사랑이 가장 강했을 때에는, 정말 마음만 먹었다면 그 사랑을 마음에서 뽑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사랑이 없는 듯 느껴지는 순간에는 오히려 이 결속을 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왕자 이야기는?”

안나는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악마는 몰아냈어, 몰아냈어.”

두 사람은 질투를 ‘악마’라고 불렀다.

“왜 그렇게 힘들었다고 한 거야?”

“아, 견딜 수가 없었어.”

브론스키는 놓쳤던 생각을 다시 잡으려 애썼다.

“가까이서 알면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 사람이야. 한마디로 정의하면 품평회에서 일등상을 받을 만큼 잘 먹여 키운 동물일 뿐이야.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는 않겠지. 많이 돌아다녔고 교육도 받은 사람 아니야?”

“그 사람들의 교육은 다른 거야. 교육을 받은 이유 자체가, 교육 따위를 경멸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인 것 같아. 그 사람들은 동물적인 쾌락 말고는 무엇이든 경멸하잖아.”

“하지만 당신들도 그런 동물적인 쾌락을 사랑하잖아.”

안나가 말했다.

또 그 어두운 눈빛이 브론스키를 피했다.

“왜 그렇게 그 사람을 옹호하지?”

브론스키는 웃었다.

“옹호하지 않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어. 다만 당신 자신이 그런 쾌락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거절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야. 그런데 테레즈가 이브 차림을 하고 있는 걸 보는 것은 즐거웠던 모양이지…….”

“또, 또 악마군!”

브론스키는 안나가 탁자에 올려놓은 손을 잡아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당신은 내가 얼마나 기다리며 괴로웠는지 몰라. 나는 질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정말 아니야. 당신이 여기 내 옆에 있으면 믿어.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삶을 당신 혼자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때는…….”

그녀는 그에게서 몸을 조금 떼고 마침내 뜨개질에서 코바늘을 빼냈다.

그리고 등불 아래 희게 반짝이는 털실에 집게손가락으로 한 코씩 빠르게 걸기 시작했다.

자수가 놓인 소매 밖으로 드러난 가느다란 손목이 신경질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어디에서 만났어?”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부자연스러울 만큼 맑게 울렸다.

“문에서 마주쳤어.”

“그리고 그 사람은 이렇게 당신에게 인사를 했지?”

안나는 얼굴을 길게 만들고 눈을 반쯤 감으며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브론스키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위에 방금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자기를 향해 인사하던 바로 그 표정이 살아난 것을 보았다.

그는 웃었다.

안나는 자기 매력 가운데 하나였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사랑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브론스키가 말했다.

“별장에서 당신과 이야기한 뒤 당신과 관계를 끊었거나, 나에게 결투를 신청했더라면 이해하겠어. 그런데 이건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이런 상태를 견디는 거지? 고통을 겪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 사람이?”

안나는 비웃었다.

“완전히 만족하고 있을걸.”

“모든 일이 이렇게 훌륭해질 수 있는데 왜 우리 셋 모두 괴로워해야 하는 거지?”

“그 사람은 안 괴로워. 내가 모르겠어? 거짓으로 속까지 가득 찬 사람이야. 뭔가 느끼는 사람이 나와 지금 그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야. 자기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데 같은 집에 살 수 있어?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어? ‘너’라고 부르면서?”

안나는 또 자기도 모르게 남편을 흉내 냈다.

“너, ma chère, 너, 안나!”

“남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야. 인형이야!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아. 내가 그 사람 처지였다면 나 같은 아내를 진작 죽였을 거야. 갈기갈기 찢었을 거야. 그러면서 ‘너, ma chère, 안나’라고 말하지 않았겠지.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야. 관청 기계야. 내가 당신의 아내이고 그 사람이 남이라는 걸, 자기가 불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해…… 그만하자, 그 사람 이야기는 하지 말자.”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어, 정말 잘못 생각해.”

브론스키는 안나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만하지. 그 사람 이야기는 말자. 당신 이야기를 해줘. 뭘 했어? 상태는 어때? 무슨 병이야? 의사는 뭐라고 했고?”

안나는 아직도 조롱 섞인 기쁨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편에게서 우습고 추한 점을 더 찾아냈으며 말할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브론스키가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는 병이 아니라 당신 상태 때문일 거야. 언제지?”

안나의 눈에서 조롱의 빛이 꺼졌다.

대신 브론스키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미소, 고요한 슬픔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곧, 아주 곧. 당신은 우리의 처지가 괴롭고 끝내야 한다고 했지.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당신이 안다면, 자유롭고 떳떳하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내놓을 거야! 그러면 나도 괴로워하지 않고, 내 질투로 당신을 괴롭히지도 않을 텐데…… 그리고 곧 그렇게 될 거야.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아니야.”

그 일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자 안나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너무 가엾어져 눈물이 솟았다.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등불 아래에서 반지와 흰빛으로 반짝이는 손을 브론스키의 소매 위에 올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아닐 거야. 이 말을 하려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하게 만들었어. 곧, 곧 모든 일이 풀릴 거야. 그러면 우리 모두, 모두 편안해지고 더는 고통받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브론스키는 이해하면서도 말했다.

“언제냐고 물었지? 곧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남지 못할 거야. 말 끊지 마!”

그녀는 급히 말을 쏟아냈다.

“나는 알아. 확실히 알아. 나는 죽을 거야. 내가 죽어서 나와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너무 기뻐.”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브론스키는 그녀의 손으로 몸을 숙여 입을 맞췄다.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누를 수 없는 감동을 숨기려는 듯했다.

“그래, 이렇게. 이게 좋아.”

안나는 그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것 하나뿐이야.”

브론스키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바보 같은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니, 사실이야.”

“뭐가 사실이라는 거야?”

“내가 죽는다는 것. 나는 꿈을 꿨어.”

“꿈?”

브론스키는 되풀이했고, 순간 자기 꿈속의 농부를 떠올렸다.

“그래, 꿈.”

안나가 말했다.

“오래전부터 꾸는 꿈이야. 내가 내 침실로 뛰어 들어갔어. 거기서 무언가를 가져오고, 무언가를 알아내야 했어. 꿈이라는 게 그렇잖아.”

안나는 공포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런데 침실 한쪽 구석에 무언가가 서 있어.”

“아, 무슨 그런 헛된 꿈을 믿어…….”

그러나 안나는 끊지 못하게 했다.

그녀에게는 너무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 무언가가 몸을 돌렸고, 자세히 보니까 수염이 헝클어진 농부였어. 키가 작고 무서웠어. 나는 도망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자루 위로 몸을 숙이고 두 손으로 그 안에서 무언가를 휘젓고 있었어…….”

안나는 그 동작을 손으로 흉내 냈다.

얼굴에는 공포가 드러났다.

브론스키도 자기 꿈을 떠올리며 똑같은 공포가 영혼 속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휘젓고 프랑스어로 중얼거렸어. 아주 빨리, ‘르’ 발음을 굴리면서. ‘Il faut le battre le fer, le broyer, le pétrir…’ 쇠를 두들기고, 부수고, 반죽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너무 무서워 깨어나려고 했어.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 꿈속에서 깬 거였어. 이게 무슨 뜻일까 하고 묻는데 코르네이가 나한테 말했어. ‘출산 때 돌아가실 겁니다, 마님. 출산 때문에…….’ 그러고 진짜 깨어났어.”

“말도 안 돼, 아무 의미 없는 꿈이야!”

브론스키는 말했지만 자기 목소리에 설득력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그만 말하자. 종을 눌러줘. 차를 내오라고 할게.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때 안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얼굴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공포와 흥분은 사라지고 고요하고 진지하며 축복받은 것 같은 주의 깊은 표정이 나타났다.

브론스키는 그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안나는 자기 몸 안에서 새 생명이 움직이는 것을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