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식탁에서 일어났을 때 레빈은 키티를 따라 응접실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분명하게 그녀를 뒤쫓는 모습이 불편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남자들 사이에 남아 행복을 품은 채 공동대화에 끼어 있었다.
키티 쪽을 보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언제 자기를 보는지 모두 느끼고 있었다.
이제 그는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조금 전 키티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모든 사람을 좋게 생각하고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대화는 러시아 농촌공동체 이야기로 흘렀다.
페스초프는 그 공동체 안에 자기가 ‘합창적 원리’라고 부르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주장했다.
레빈은 페스초프에게도, 러시아 공동체의 의미를 자기 방식으로 인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는 형에게도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둘의 말을 부드럽게 만들고 서로 화해시키려고만 이야기했다.
자기가 하는 말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들과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편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고 있었다.
그 하나는 처음에는 응접실 저쪽에 있었는데, 어느새 움직여 문간에 와 멈췄다.
돌아보지도 않았는데 자기에게 시선과 미소가 닿고 있음을 느꼈다.
레빈은 끝내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키티는 문간에서 젊은 셰르바츠키와 함께 서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아노 치러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레빈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시골에 있으면 음악이 없어서 아쉬워요.”
“아니에요. 우리는 당신을 부르러 온 거예요.”
키티는 선물을 주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와줘서 고마워요. 왜 저렇게 논쟁을 좋아하세요? 어차피 누구도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잖아요.”
“정말 그렇습니다.”
레빈이 말했다.
“아주 영리한 사람들끼리 뜨겁게 논쟁하는 걸 보면, 결국은 서로 상대가 무엇을 증명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많아요.”
레빈은 영리한 사람들의 논쟁에서 이런 일을 여러 번 보았다.
엄청난 노력과 논리의 세밀한 구분과 수많은 말을 다 써놓은 뒤에야, 둘이 오랫동안 증명하려 애썼던 것을 사실은 논쟁 시작부터 서로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다만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달랐고, 그 사랑하는 것을 직접 이름 붙이면 공격받을까 봐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때는 논쟁 도중 상대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갑자기 이해하게 되고, 자기도 그것을 사랑하게 되어 곧바로 동의하며 모든 근거가 쓸모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반대로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그것 때문에 온갖 논거를 만들어왔던 바로 그것을 마침내 잘, 진심으로 표현했을 때 상대가 갑자기 동의해 논쟁이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레빈은 바로 그것을 말하려고 했다.
키티는 이해하려고 이마를 조금 찌푸렸다.
그가 설명을 시작하자마자 벌써 알아들었다.
“알겠어요. 상대가 왜 논쟁하는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아내면…… 그러면 가능하다는 거죠?”
그녀는 레빈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생각을 정확히 알아맞히고 간결하게 말했다.
레빈은 행복하게 웃었다.
페스초프와 형 사이의 복잡하고 장황한 논쟁에서, 이렇게 말 거의 없이 가장 복잡한 생각까지 분명히 전달되는 상태로의 갑작스러운 이동이 너무도 놀라웠다.
셰르바츠키는 둘에게서 떨어졌다.
키티는 준비되어 있던 카드탁자로 가 앉아 분필 하나를 집고 새 초록색 천 위에 퍼져나가는 동그라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저녁식사 때 하던 여성의 자유와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레빈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가족 안에서 얼마든지 여성의 일을 찾을 수 있다는 돌리의 견해에 동의했다.
가난한 집이든 부자집이든 도움을 주는 여자가 필요 없는 가족은 없고, 유급이든 친족이든 유모와 돌보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근거였다.
“아니에요.”
키티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오히려 더 대담하게 진실한 눈으로 레빈을 바라보았다.
“처녀가 어떤 사정 때문에 굴욕 없이 가족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자기 혼자서는…….”
레빈은 그 암시만으로 알아들었다.
“아, 그래요! 맞아요. 맞습니다.”
그는 말했다.
식사 중 페스초프가 여성의 자유에 관해 말하던 모든 것을 레빈은 이제 이해했다.
키티의 마음속에 결혼하지 못한 여자로 남는 데 대한 공포와 굴욕이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키티를 사랑했으므로 그 공포와 굴욕을 자기 것으로 느꼈다.
그리고 한순간에 자기 논거를 모두 버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키티는 계속 분필로 탁자 위에 선을 그렸다.
눈에는 조용한 빛이 반짝였다.
그녀의 마음을 따라 레빈도 온 존재에 점점 더 강한 행복의 긴장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 탁자를 전부 낙서해버렸네요.”
키티는 분필을 내려놓으며 일어나려는 동작을 했다.
‘이 사람이 가버리면 나는 혼자 어떻게 하지?’
레빈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분필을 집었다.
“잠깐만요.”
그는 탁자 앞에 앉았다.
“오래전부터 하나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키티의 다정하지만 조금 겁먹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물어보세요.”
“자, 이것입니다.”
그는 초성만 썼다.
ㄷ, ㄷ, ㄴ, ㅇ, ㄱ, ㅂ, ㄱ, ㅇ, ㄱ, ㅇ, ㅇ, ㄸ?
그 말의 뜻은 이러했다.
“그때 내게 ‘이건 가능하지 않다’고 대답했을 때, 그것은 ‘결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까, 아니면 ‘그때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까?”
키티가 이 복잡한 문장을 알아맞힐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레빈은 마치 자기 목숨이 그녀가 그 뜻을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는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키티는 진지하게 글자를 보다가 이마를 손에 기대고 읽었다.
가끔 레빈을 보며 눈으로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뜻이 맞나요?’
“알겠어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글자는 무슨 말입니까?”
레빈은 ㄱ을 가리켰다.
‘결코’를 뜻하는 글자였다.
“‘결코’라는 말이에요.”
키티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요!”
레빈은 재빨리 글자를 지우고 분필을 그녀에게 내밀며 일어났다.
키티가 썼다.
ㄱㄸ ㄴ ㄷㄹ ㄷㄷㅎ ㄷㅎ ㅂㅇㅇ.
돌리는 카레닌과 나눈 대화 때문에 생긴 슬픔을 완전히 잊었다.
키티가 분필을 들고 수줍고 행복한 미소로 레빈을 올려다보는 모습과, 레빈의 아름다운 몸이 탁자 위로 굽혀져 불타는 듯한 눈으로 글자와 키티를 번갈아 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레빈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는 뜻을 이해했다.
“그때 나는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어요.”
레빈은 겁먹은 듯 묻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만?”
키티의 미소가 대답했다.
“네.”
“그러면 지…… 지금은?”
레빈이 물었다.
“좋아요. 그럼 읽어보세요.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할게요. 정말, 정말 바라는 것을.”
키티는 썼다.
ㄷㅅㅇ ㅈㅇ ㅁㄱ ㄴ ㄱㅇ ㅇㅇㅇ ㅂㄹㅇ.
그 뜻은 이러했다.
“당신이 지난 일을 잊고, 그 일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라요.”
레빈은 긴장으로 떨리는 손가락으로 분필을 잡다가 부러뜨렸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내게는 잊을 것도 용서할 것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키티는 미소를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그녀는 속삭였다.
레빈은 앉아 다시 아주 긴 문장을 초성으로 썼다.
키티는 모두 이해했다.
그가 “맞습니까?”라고 물을 필요도 없이 분필을 받아 즉시 대답했다.
이번에는 레빈이 오래도록 알아보지 못했다.
행복이 눈을 가린 것 같았다.
그녀가 뜻한 단어들을 도무지 글자에 대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행복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에서 자기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이미 읽고 있었다.
그는 글자 세 개를 썼다.
아직 다 쓰기도 전에 키티는 그의 손이 쓰는 것을 읽고, 스스로 끝을 마저 쓴 뒤 그 아래 대답했다.
네.
“비밀문자 놀이하니?”
늙은 공작이 다가오며 말했다.
“자, 이제 극장에 제시간에 가고 싶으면 출발해야겠다.”
레빈은 일어나 키티를 문까지 배웅했다.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키티가 레빈을 사랑한다는 것, 부모에게 말하겠다는 것, 그리고 내일 아침 레빈이 찾아오리라는 것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