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4부 제16장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선 키티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선 키티

공작부인은 안락의자에 말없이 앉아 미소를 짓고 있었고, 공작은 그 곁에 앉았다. 키티는 아버지의 의자 옆에 서서 여전히 그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침묵했다.

공작부인이 먼저 그 모든 생각과 감정을 말로 옮겨 실제 생활의 문제로 바꾸어놓았다.

그 말은 그들 모두에게 첫순간 이상할 만큼 낯설고 심지어 조금 아프게까지 느껴졌다.

“그럼 언제로 하지? 이제 축복도 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해야지. 결혼식은 언제가 좋을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알렉산드르?”

“여기 있잖소.”

늙은 공작은 레빈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주인공이지.”

“언제요?”

레빈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게 물으신다면…… 내 생각에는 오늘 축복을 받고 내일 결혼식을 해도 좋습니다.”

“아니, mon cher, 그런 소리는 그만둬요. 무슨 바보 같은…….”

“그럼 일주일 뒤요.”

“이 사람 정말 미쳤네.”

“왜요?”

“세상에, 그럼 지참금은 어떡하고?”

‘지참금이라는 것도 있고 이런 일들도 있구나.’

레빈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참금이며 축복이며 이런 모든 것이 내 행복을 망칠 수 있을까? 아니, 아무것도 망칠 수 없어.’

그는 키티를 바라보았다.

지참금 이야기는 그녀를 조금도, 정말 조금도 모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것도 필요한 거구나.’

그는 생각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한 것뿐이에요.”

그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럼 우리가 알아서 생각해보죠. 오늘은 축복하고 약혼을 알리고. 그건 그렇게 합시다.”

공작부인은 남편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공작이 그녀를 붙잡아 안았다.

젊은 연인처럼 다정하게 웃으면서 몇 번이나 아내에게 입을 맞췄다.

노부부는 한순간 당황한 듯했다.

지금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이 자기들인지, 아니면 딸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인지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공작과 공작부인이 나가자 레빈은 약혼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이제 그는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었고 말도 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것은 정작 하려던 말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한 번도 희망한 적은 없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언제나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가 말했다.

“이것은 운명이었다고 믿어요.”

“그러면 나는요?”

키티가 말했다.

“그때도…….”

그녀는 말을 멈췄다가 진실한 눈으로 단호하게 그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때도, 내가 내 행복을 밀쳐냈을 때도 나는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다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겼던 거예요. 꼭 말해야 해요…… 그 일을 잊을 수 있겠어요?”

“어쩌면 그게 더 좋았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나에게 용서해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나도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이…….”

그것은 그가 반드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였다.

레빈은 처음부터 두 가지를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키티만큼 순결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은 고통스러웠지만, 둘 다 말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아니, 지금은 말하지 마세요. 나중에.”

그는 말했다.

“좋아요. 나중에 말해요. 하지만 꼭 말해주세요.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전부 알아야 해요. 이제는 끝났으니까.”

레빈이 말을 이었다.

“끝났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어도 당신이 나를 받아들일 것이고,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뜻이지요? 그렇지요?”

“네, 네.”

두 사람의 대화는 마드무아젤 리농 때문에 끊겼다.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다정하게 웃는 그녀가 사랑하는 제자를 축하하러 들어왔다.

그녀가 나가기도 전에 하인들이 축하하러 왔다.

그 뒤 친척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레빈은 약혼 다음 날부터 결혼식 날까지 이어진, 행복하고도 정신없는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계속 어색했고 지루했고, 자기에게 요구되는 많은 일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행복의 긴장은 계속 더 높아져갔다.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했고, 그 모든 일이 오히려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레빈은 자기의 약혼에는 남들의 약혼과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고, 흔히 하는 약혼의 형식이 자기만의 특별한 행복을 망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행복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졌으며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자기만의 행복처럼 느껴졌다.

“이제 사탕을 먹어야 해요.”

마드무아젤 리농이 말하면 레빈은 사탕을 사러 갔다.

“아주 기쁩니다.”

스비야시스키가 말했다.

“꽃다발은 포민한테서 사는 게 좋습니다.”

“꽃다발도 꼭 필요한가요?”

그러면 레빈은 포민에게 달려갔다.

형은 지출이 많고 선물도 해야 하니 돈을 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물도 해야 해?”

그러면 그는 풀다에게 달려갔다.

과자점에서도, 포민의 가게에서도, 풀다의 가게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기뻐했으며,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처럼 그의 행복을 함께 축하해주었다.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전에는 마음에 들지 않고 냉정하거나 무심해 보이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그에게 감탄했고, 모든 일에서 양보하며 그의 감정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었으며, 그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그의 확신, 곧 자기 약혼녀가 완전함 그 자체라는 믿음까지 함께 나누고 있었다.

키티도 똑같이 느꼈다.

노르드스톤 백작부인이 자기는 키티에게 조금 더 나은 상대를 바랐다는 뜻을 넌지시 비치자, 키티는 너무도 뜨겁고 설득력 있게 세상에 레빈보다 나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증명해, 결국 백작부인까지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 뒤 노르드스톤은 키티가 있는 자리에서 레빈을 만날 때면 조금도 비웃지 않고 존경과 감탄의 미소를 지었다.

약혼기간 동안 유일하게 무거웠던 일은 레빈이 약속했던 고백이었다.

그는 늙은 공작에게 상의한 뒤 허락을 받고 자기 일기장을 키티에게 건넸다.

그 일기에는 그를 괴롭히던 것들이 적혀 있었다.

애초 레빈은 언젠가 자기 아내가 될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일기를 써오기도 했다.

그를 괴롭힌 것은 두 가지였다.

자기가 순결하지 못하다는 것과 신앙이 없다는 것.

불신앙에 대한 고백은 거의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았다.

키티는 신앙심이 깊고 종교의 진리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지만, 그의 바깥으로 드러난 불신앙은 그녀의 마음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사랑을 통해 레빈의 영혼 전체를 알고 있다고 느꼈고, 그 영혼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보았다.

그 상태를 사람들이 ‘불신앙’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다른 고백은 그녀를 몹시 울게 했다.

레빈은 마음속의 큰 투쟁 끝에 일기장을 건넸다.

둘 사이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키티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실제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기 마음을 그녀의 자리로 옮겨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극장에 가기 전 셰르바츠키 집에 도착해 키티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자기가 만들어낸 돌이킬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울어 눈이 퉁퉁 부은, 가엾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고서야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와 그녀의 비둘기 같은 순결 사이에 놓인 심연을 이해했다.

그리고 자기가 한 일을 보고 공포를 느꼈다.

“가져가세요, 이 끔찍한 책들을 가져가세요!”

키티는 탁자 위의 일기장을 밀어내며 말했다.

“왜 나한테 보여준 거예요!…… 아니, 그래도 보여준 게 더 나아요.”

절망한 레빈의 얼굴이 불쌍해진 듯 그녀는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끔찍해요, 너무 끔찍해!”

레빈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용서할 수 없습니까?”

그가 속삭였다.

“아니에요, 용서했어요. 하지만 끔찍해요!”

그러나 그의 행복은 너무 컸다.

이 고백도 행복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행복에 새로운 색조 하나를 더했을 뿐이었다.

키티는 그를 용서했다.

그리고 그 뒤 레빈은 자기를 더더욱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느꼈다.

도덕적으로 그녀 앞에 더 낮게 몸을 숙였고, 자기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얻은 이 행복을 훨씬 더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