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는 마담 슈탈과도 알게 되었다.
마담 슈탈과의 교제와 바렌카와의 우정은 키티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슬픔 속에서 위로를 주었다.
키티가 위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새로운 교제를 통해 과거의 삶과 아무 관계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렸기 때문이다.
높고 아름다운 세계, 그 높은 곳에 올라가면 지나간 일을 평온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듯한 세계였다.
키티는 지금까지 본능에 따라 살아온 삶 외에도 정신적인 삶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삶은 종교를 통해 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키티가 알고 있던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종교였다.
과부원 교회에서 미사와 철야예배를 드리며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신부님에게 교회슬라브어 문장을 외우던 그런 종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생각과 감정들이 하나의 줄처럼 이어져 있는 높고 신비로운 종교였다.
누가 믿으라고 명령하기 때문에 그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도 있는 신앙이었다.
키티는 이것을 말로 배운 것은 아니었다.
마담 슈탈은 키티를, 자기 젊은 시절의 추억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며 사랑스러운 아이로 대했다.
그녀가 직접 신앙 이야기를 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사람이 겪는 모든 슬픔에는 사랑과 믿음만이 위로를 줄 수 있으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그리스도에게는 하찮은 슬픔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는 곧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하지만 키티는 마담 슈탈의 동작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 키티의 표현대로라면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 하나하나에서, 무엇보다 바렌카를 통해 알게 된 그녀 삶 전체의 이야기에서 지금까지 자기가 모르고 있던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마담 슈탈의 성격이 아무리 고상하고, 그 인생 이야기가 아무리 감동적이며, 말이 아무리 높고 부드럽더라도 키티는 본능적으로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을 알아차렸다.
키티의 가족들 이야기를 물으며 마담 슈탈이 경멸하듯 한번 웃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적인 선함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또 한번은 가톨릭 신부가 찾아와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마담 슈탈은 일부러 전등갓의 그림자 속으로 얼굴을 감추고 유난히 특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두 가지 관찰이었지만 키티는 마음이 불편해졌고 마담 슈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렌카는 달랐다.
친척도 친구도 없이 혼자이며, 슬픈 실망을 겪고도 무엇 하나 욕망하지 않고 무엇도 아쉬워하지 않는 바렌카는 키티가 감히 꿈꾸기만 하던 바로 그 완전한 존재였다.
키티는 바렌카를 보며 이해했다.
자기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만 하면 평온하고 행복하며 아름다워질 수 있다.
키티 역시 그렇게 되고 싶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이제 분명히 이해했다고 믿은 키티는 그것을 감탄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았다.
새롭게 열린 삶에 곧장 자기 영혼 전체를 맡겼다.
바렌카가 들려준 마담 슈탈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키티는 벌써 미래의 행복한 삶의 계획까지 만들어놓았다.
마담 슈탈의 조카 알린이 그랬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자기도 어디에서 살든 불행한 사람을 찾아내 돕고, 가능한 한 복음을 나누고, 환자에게, 죄수에게, 죽어가는 사람에게 복음을 읽어줄 것이다.
특히 알린이 했다는, 죄수들에게 복음을 읽어주는 생각이 키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머니에게도 바렌카에게도 말하지 않은 키티만의 비밀스러운 꿈이었다.
언젠가 자기 계획을 크게 실천할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수많은 환자와 불행한 사람이 모인 이 요양지에서는 바렌카를 본받아 새로운 원칙을 실제로 적용할 기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처음 공작부인은 키티가 마담 슈탈, 특히 바렌카에게 ‘열광’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아차렸다.
키티는 바렌카가 하는 일을 따라할 뿐 아니라 걸음걸이와 말투, 눈을 깜빡이는 방식까지 자기도 모르게 흉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뒤 공작부인은 단순한 열광과는 별개로 딸 안에서 어떤 진지한 정신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키티는 저녁이면 마담 슈탈이 준 프랑스어 복음서를 읽었다.
예전에는 하지 않던 일이었다.
사교계 지인들을 피하고 바렌카가 보살피는 환자들과 가까워졌다.
특히 병든 화가 페트로프의 가난한 가족과 친밀해졌다.
키티는 그 집안에서 자기가 자선간호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분명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좋았다.
공작부인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페트로프의 아내는 더없이 점잖은 여자였고, 키티가 하는 일을 본 독일의 공작부인까지 키티를 칭찬하며 ‘위로의 천사’라고 불렀다.
지나치지만 않았다면 모든 것이 아주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작부인이 보기에는 딸이 지나치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말해주었다.
“무슨 일이든 과장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키티는 대답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그리스도교를 실천하는 데 어떻게 ‘지나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고 생각했다.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주라고 하는 가르침을 따르는 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공작부인은 그런 지나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키티가 자기 영혼의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열어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키티는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어머니에게 감추고 있었다.
어머니를 존경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바로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키티는 다른 누구에게라도 어머니보다 먼저 이 생각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나 파블로브나가 우리 집에 온 지 꽤 되었구나.”
어느 날 공작부인이 페트로프의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오라고 했는데…… 어쩐지 기분이 상한 것 같더구나.”
“아니에요, maman. 나는 못 느꼈어요.”
키티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너도 그 집에 간 지 오래됐니?”
“내일 산으로 함께 산책하기로 했어요.”
키티가 대답했다.
“그래, 다녀오렴.”
공작부인은 딸의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 이유를 알아내려 했다.
바로 그날 바렌카가 저녁을 먹으러 와서 안나 파블로브나가 내일 산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공작부인은 키티가 또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았다.
둘만 남자 공작부인이 물었다.
“키티, 페트로프네와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니? 왜 안나 파블로브나는 아이들도 보내지 않고 우리 집에도 오지 않는 거지?”
키티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안나 파블로브나가 왜 자기에게 불만이 있는 듯한지 정말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완전한 진실이었다.
키티는 안나 파블로브나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짐작은 어머니에게 말할 수도 없고 자기 자신에게조차 말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알면서도 자기 자신에게조차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잘못 짐작한 것이라면 너무도 끔찍하고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키티는 이 가족과 맺어온 모든 관계를 기억 속에서 몇 번이고 되짚었다.
자기를 만날 때 안나 파블로브나의 둥글고 선한 얼굴에 나타나던 순진한 기쁨을 떠올렸다.
환자인 남편 몰래 둘이 의논하던 일도 생각했다.
의사가 금지한 일을 페트로프가 하지 못하도록 작업에서 떼어내고 산책에 데려가기 위해 함께 궁리하던 일들.
어린 아들이 키티에게 정을 붙여 ‘내 키티’라고 부르고 키티가 없으면 잠들지 않으려고 하던 일.
모든 것이 얼마나 좋았던가!
그다음 키티는 갈색 외투를 입고 긴 목이 드러난 페트로프의 몹시도 야윈 모습을 떠올렸다.
듬성듬성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처음에는 키티에게 무섭게까지 보였던 질문하는 듯한 푸른 눈, 그리고 키티 앞에서 명랑하고 활기차게 보이려 애쓰던 병든 사람 특유의 힘겨운 노력도 생각했다.
처음 그에게, 그리고 모든 폐병 환자에게 느꼈던 혐오감을 이겨내려고 애쓴 자기 자신도 기억했다.
그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해내느라 애쓰던 일.
자기를 바라보던 소심하고 감동한 눈길도 떠올렸다.
그때마다 느꼈던 이상한 연민과 어색함, 그리고 그 뒤에는 자기가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 있었다.
모든 것이 얼마나 좋았던가!
하지만 그것은 처음뿐이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모든 것이 망가졌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일부러 꾸민 듯한 친절로 키티를 맞으면서도 계속 남편과 키티를 감시하고 있었다.
키티가 다가갈 때마다 페트로프가 감동하듯 기뻐하는 것이 정말 안나 파블로브나가 차가워진 이유일까?
‘그래.’
키티는 떠올렸다.
‘사흘 전에 안나 파블로브나가 짜증스럽게 “봐요, 당신만 기다렸어요. 몸이 그렇게 약해졌는데도 당신 없이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잖아요”라고 말했을 때, 평소의 착한 태도와는 다른 부자연스러운 무엇인가가 있었어.’
‘내가 담요를 건네주었을 때도 어쩌면 싫었는지 몰라. 너무나 평범한 일인데도 그 사람이 너무 어색하게 받고 너무 오래 고맙다고 해서 나까지 민망해졌지. 그리고 내 초상화. 정말 잘 그렸는데. 무엇보다 그 눈길…… 당황하면서도 다정했던 눈길!’
‘그래, 그래, 그거야.’
키티는 공포를 느끼며 자기에게 되풀이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래서는 안 돼! 그 사람은 그렇게 불쌍한데!’
그러나 바로 이 의심 때문에 새로 찾은 삶의 아름다움에는 독이 섞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