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는 고개를 숙이고 바슐리크의 술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걸어왔다. 얼굴은 강렬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으나 그 빛은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어두운 밤 한가운데서 타오르는 화재의 무서운 빛을 닮아 있었다. 남편을 보자 안나는 고개를 들고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미소를 지었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요? 웬일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바슐리크를 벗어 던지고 멈추지도 않은 채 화장실 쪽으로 계속 갔다. “이제 잘 시간이에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그녀는 문 안쪽에서 말했다.
“안나, 당신과 이야기할 것이 있소.”
“나하고요?” 안나는 놀란 듯 말하며 문 밖으로 나와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이야기인데요?” 그녀는 앉으며 물었다. “좋아요,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야기해요. 하지만 자는 편이 더 좋을 텐데요.”
안나는 입에 떠오르는 대로 말을 했고, 그러면서도 자기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얼마나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말이며, 정말로 그저 잠이 오기만 하는 사람처럼 들리는가! 그녀는 자신이 거짓말로 만든 꿰뚫을 수 없는 갑옷을 입고 있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자기를 돕고 떠받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안나, 나는 당신에게 경고해야 하오.” 그가 말했다.
“경고한다고요?” 그녀가 말했다. “무엇을요?”
그녀가 너무나 단순하고 명랑하게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남편처럼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목소리에서도 말뜻에서도 부자연스러운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달랐다. 자기가 평소보다 몇 분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그녀가 알아차리고 이유를 묻던 것을 알고 있었고, 기쁘거나 즐겁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무엇이든 즉시 자기에게 이야기하던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려 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다. 그는 전에 언제나 자신에게 열려 있던 그녀 영혼의 깊은 곳이 지금은 닫혀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뿐 아니었다. 그녀의 말투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래요, 닫혔어요. 그래야 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는 지금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기 집의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 같은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면 아직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생각했다.
“내가 경고하고 싶은 것은,”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부주의와 경솔함 때문에 사교계에 당신 이야기를 할 구실을 줄 수 있다는 것이오. 오늘 브론스키 백작과 너무 활발하게 이야기한 일은…….” 그는 그 이름을 단단하고 차분하게, 한 음절씩 또렷이 발음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소.”
그는 이제 자기가 보기에도 꿰뚫을 수 없어 두려운, 웃음기 어린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말하는 동안 자기 말이 모두 쓸데없고 헛되다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언제나 그래요.” 안나는 남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가 한 말 가운데 일부러 맨 마지막 대목만 이해한 것처럼 대답했다. “내가 지루해하면 지루하다고 싫어하고, 즐거워하면 또 즐거워한다고 싫어하잖아요. 나는 오늘 지루하지 않았어요. 그게 당신을 모욕하나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몸을 떨고 손가락을 꺾으려고 두 손을 구부렸다.
“아, 제발 그 소리 내지 마세요. 나는 정말 싫어요.” 안나가 말했다.
“안나, 정말 당신이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애써 자신을 억누르고 손의 움직임을 멈추며 조용히 말했다.
“도대체 왜 그래요?” 안나는 너무나 진심으로 우스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게 뭘 바라는 거예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잠시 침묵하고 손으로 이마와 눈을 문질렀다. 그는 자기가 하려던 일, 즉 세상 사람들 눈에 잘못 비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아내에게 경고하는 대신, 그녀의 양심에 관계된 일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여, 자기가 상상한 어떤 벽과 싸우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오.” 그는 다시 차갑고 침착하게 말했다. “부디 내 말을 들어주기 바라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질투를 상대를 모욕하고 자신을 낮추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오. 하지만 지키지 않고서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을 수 없는 일정한 예의의 법칙이 있소. 오늘 내가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준 인상으로 보아 모두가 알아차렸소. 오늘 당신의 태도와 행동이 사람들이 바랄 수 있는 모습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는 것을.”
“정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안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아무 상관도 없고, 사교계 사람들이 알아차렸다는 것만 걱정하는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그녀는 덧붙이고 일어나 문 쪽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막으려는 듯 앞으로 움직였다.
그의 얼굴은 못생기고 어두웠다. 안나는 남편의 얼굴이 그렇게 된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멈춰 서서 머리를 뒤쪽 한편으로 기울인 채 빠른 손놀림으로 머리핀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좋아요, 듣고 있어요. 또 무슨 말이 나오는지.” 그녀는 차분하고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관심 있게 듣고 있기도 해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으니까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차분하며 정확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지, 또 적절한 단어들이 어떻게 저절로 골라지는지 놀라고 있었다.
“당신의 감정을 낱낱이 캐물을 권리는 내게 없소. 일반적으로 나는 그런 일을 무익하고 심지어 해롭다고 생각하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시작했다. “자기 영혼을 파헤치다 보면 그대로 두었으면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을 끄집어내는 경우가 많소. 당신의 감정은 당신 양심의 문제요. 그러나 나는 당신 앞에서, 나 자신 앞에서,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당신의 의무를 지적할 책임이 있소. 우리의 삶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결합되어 있소. 그 결합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죄악뿐이며, 그런 종류의 죄악은 무거운 벌을 가져오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 세상에, 하필 오늘 이렇게 졸릴 때!” 안나는 손으로 머리를 재빠르게 뒤지며 남아 있는 머리핀을 찾았다.
“안나, 하느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시오.”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소.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도 하는 것이라고 믿어주시오. 나는 당신의 남편이고 당신을 사랑하오.”
한순간 그녀의 얼굴이 아래로 떨어졌고, 눈에 있던 비웃음의 불빛이 꺼졌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다시 그녀를 거슬리게 했다.
‘사랑한다고? 이 사람이 사랑할 수 있나?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은 그 말조차 쓰지 않았을 거야.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해.’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안나가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분명히 말해봐요…….”
“잠깐, 내 말을 끝내게 해주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우리 아들과 당신 자신이오. 다시 말하지만 내 말이 당신에게 전적으로 쓸데없고 부적절하게 보일 수도 있소. 내가 잘못 생각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있소. 그렇다면 용서해주기 바라오. 하지만 당신 자신이 아주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다고 느낀다면 생각해보고, 마음이 무언가 말한다면 내게 말해주기 바라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기도 모르게 미리 준비해두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말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게다가…….” 안나는 갑자기 빠르게 말하며 가까스로 미소를 참았다. “정말 이제 잘 시간이에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한숨을 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실로 갔다.
안나가 침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벌써 누워 있었다. 입술은 엄격하게 다물려 있었고 눈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 안나도 자기 침대에 누워, 그가 다시 말을 걸지 않을까 매 순간 기다렸다. 그가 말할까 봐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그녀는 꼼짝하지 않은 채 오래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를 잊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브론스키를 보았고, 그를 생각하는 순간 자기 가슴이 흥분과 죄 많은 기쁨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고르고 평온한 코골이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도 자기 코고는 소리에 놀란 듯 소리가 멎었다. 그러나 두 번 숨을 쉰 뒤 다시 같은 소리가 고르고 침착하게 이어졌다.
“늦었어, 늦었어, 이제 너무 늦었어.” 안나는 미소를 띠고 속삭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눈을 뜬 채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자기 눈의 빛을 스스로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