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2부 제2장

산후의 몸을 이끌고 동생을 찾아온 돌리
산후의 몸을 이끌고 동생을 찾아온 돌리

의사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돌리가 찾아왔다. 그녀는 이날 진찰 회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겨울 끝무렵 딸아이 하나를 더 낳아 이제 막 산후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었고 자기 집에도 슬픔과 걱정이 한가득이었지만, 젖먹이와 병든 딸아이를 두고서라도 오늘 운명이 결정될 키티의 소식을 들으러 온 것이었다.

“그래서, 어때?” 돌리는 모자도 벗지 않은 채 응접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다들 표정이 밝네. 좋은 소식인가 보지?”

그들은 의사가 한 말을 전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의사가 제법 조리 있게, 게다가 길게 이야기했음에도 정작 그 말을 남에게 옮기려 하자 도무지 무엇을 말했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돌리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가장 친한 벗인 동생이 떠난다. 게다가 자기 삶은 즐겁지 않았다. 화해 뒤 스테판 아르카디예비치와의 관계는 굴욕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안나가 다시 이어붙여준 결혼의 결속은 튼튼하지 못했고, 가정의 화목은 바로 전에 금이 갔던 그 자리에서 다시 깨지고 있었다. 무엇 하나 확실히 드러난 것은 없었지만 스테판 아르카디예비치는 거의 집에 있지 않았고, 돈 역시 거의 들어오지 않았으며,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돌리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한 차례 겪은 질투의 고통이 두려워 그 의심을 억지로 밀어내곤 했다. 처음 폭발했던 질투는 한 번 겪고 나면 다시 똑같은 모양으로 돌아올 수 없었고, 이제는 남편의 새로운 외도를 실제로 알아낸다 해도 처음처럼 그녀를 뒤흔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그녀에게서 가정생활의 습관만 빼앗아갈 뿐이었으므로, 그녀는 남편에게 속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면서, 그런 나약함 때문에 남편보다도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업신여겼다. 게다가 대가족을 돌보는 걱정이 끊임없이 그녀를 짓눌렀다. 젖먹이의 수유가 제대로 되지 않는가 하면 유모가 그만두었고, 또 지금처럼 아이 하나가 병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떠냐?” 어머니가 물었다.

“아, maman, 어머니도 걱정이 많으신데요. 릴리가 아파요. 성홍열이 아닐까 걱정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잠깐 소식만 들으러 나온 거예요. 정말 성홍열이라면, 하느님이 막아주시길 바라지만, 이제 꼼짝없이 집에 붙들려 있어야 할 테니까요.”

유명한 의사가 돌아간 뒤 늙은 공작 역시 자기 방에서 나와 돌리에게 뺨을 내밀어 인사를 받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다음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결정했소, 떠나기로 했소?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요?”

“당신은 남아 있는 것이 좋겠어요, 알렉산드르.” 아내가 말했다.

“마음대로 하시오.”

“maman, 아빠도 우리와 함께 가시면 왜 안 돼요?” 키티가 말했다. “아빠도 더 즐거우실 테고 우리도 좋잖아요.”

늙은 공작은 일어나 손으로 키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키티는 얼굴을 들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족 가운데 아버지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늘 생각했다. 서로 말을 많이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랬다. 막내딸인 그녀는 아버지의 귀염둥이였고,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아버지의 푸르고 선한 눈과 마주치자, 아버지가 자기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나쁜 일을 다 이해하는 듯했다. 얼굴을 붉힌 키티는 입맞춤을 기다리며 아버지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러나 공작은 그저 그녀의 머리카락을 툭툭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어리석은 가발 같은 머리! 진짜 딸한테는 손도 닿지 않고 죽은 여자들의 머리털이나 쓰다듬고 있구나. 그래, 돌린카.” 그는 큰딸에게 돌아섰다. “네 그 으뜸패는 뭘 하고 지내느냐?”

“별일 없어요, 아빠.” 돌리는 남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늘 돌아다녀서 거의 보지도 못해요.” 그녀는 비꼬는 미소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에 가서 숲을 판다더니 아직 안 갔느냐?”

“아뇨, 늘 간다고만 해요.”

“그래!” 공작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떠날 준비를 해야겠군. 알겠습니다, 마님.” 그는 아내에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너, 카탸.” 그가 막내딸에게 덧붙였다. “어느 날 좋은 아침에 눈을 딱 뜨고 네 자신한테 이렇게 말해라. ‘아니, 나는 아주 건강하고 기분도 좋잖아. 그러니 아빠랑 다시 이른 아침 서리 밟으러 산책을 나가야지.’ 어때?”

아버지가 한 말은 아주 단순해 보였지만, 키티는 그 말을 듣자 죄를 들킨 사람처럼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 아빠는 다 알고 있어. 전부 이해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이 말로, 부끄럽더라도 그 부끄러움을 견디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대답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입을 열었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방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자매가 마주 앉아 겨우 꺼내는 속마음
자매가 마주 앉아 겨우 꺼내는 속마음

“당신은 꼭 그런 농담을 해야겠어요!” 공작부인은 남편을 몰아붙였다. “당신은 언제나…….” 그녀는 늘 하던 나무람을 시작했다.

공작은 꽤 오랫동안 아내의 질책을 말없이 들었으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가엾은 아이가 얼마나 불쌍한데요, 얼마나 불쌍한데. 당신은 그 원인을 조금이라도 암시하기만 해도 그 애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느끼지 못해요. 아! 사람을 그렇게 잘못 보다니!” 공작부인이 말했다. 말투가 달라지는 것을 듣고 돌리와 공작은 그녀가 브론스키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비열하고 고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막는 법이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요.”

“아,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소!” 공작은 음울하게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나가려다 문가에 멈췄다. “법은 있소, 여보. 그리고 당신이 기어이 이 이야기를 꺼냈으니 누가 모든 일의 원인인지 말해주지. 당신이오, 당신, 당신 하나요. 그런 젊은 건달들을 다루는 법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소! 그렇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애초에 없었더라면, 나도 늙은이지만 그 멋쟁이를 결투장에 세웠을 거요. 그래, 그런데 지금은 치료한다고 돌팔이들이나 데리고 다니시오.”

공작은 더 할 말이 많은 듯했으나 공작부인이 남편의 말투를 듣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늘 그랬듯 즉시 기세가 꺾이고 뉘우쳤다.

“Alexandre, Alexandre…….” 그녀는 남편에게 다가가며 속삭이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가 울기 시작하자 공작도 곧 조용해졌다. 그는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자, 그만, 그만하시오! 당신도 힘들다는 걸 알아. 어떻게 하겠소? 아주 큰 불행은 아니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니…… 감사하게 생각합시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중얼거렸고, 공작부인의 눈물 젖은 입맞춤이 자기 손에 닿자 거기에 답하고는 방을 나갔다.

키티가 울며 방을 나간 순간부터, 돌리는 어머니이자 가정의 여인으로서 몸에 밴 감각으로 이곳에는 이제 여자끼리 해야 할 일이 남았음을 즉시 알아차리고 그 일을 할 준비를 했다. 그녀는 모자를 벗고 마음속으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몰아세울 때는 딸로서의 공손함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어머니를 말렸고, 아버지가 폭발했을 때는 침묵했다. 어머니 때문에 부끄러웠고, 금세 다시 다정해진 아버지에게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가자 그녀는 이제 가장 필요한 일을 하기로 했다. 키티에게 가서 달래주는 일이었다.

“maman, 사실 오래전부터 말씀드리고 싶었는데요. 레빈이 마지막으로 여기 왔을 때 키티에게 청혼하려 했다는 것 아세요? 스티바에게 말했다고 해요.”

“그래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그럼 혹시 키티가 레빈을 거절한 건 아닐까요? 어머니께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니다. 어느 쪽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 그 애는 너무 자존심이 세잖니. 하지만 나는 알아. 모든 것이 그 일 때문이야…….”

“생각해 보세요. 키티가 레빈을 거절했다면……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키티는 레빈을 거절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알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 끔찍하게 속인 거예요.”

자기가 딸 앞에서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생각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던 공작부인은 화를 냈다.

“아, 나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전부 자기 머리로 살겠다면서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maman, 저는 키티에게 가볼게요.”

“가거라. 내가 못 가게라도 하니?” 어머니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