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2부 제31장

비 내리는 아침, 우산을 든 회랑의 사람들
비 내리는 아침, 우산을 든 회랑의 사람들

날씨가 궂었다. 아침 내내 비가 내려 환자들은 우산을 들고 회랑 안에 몰려 있었다.

키티는 어머니와 모스크바 출신 대령과 함께 걸었다. 대령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성복으로 산 유럽식 외투를 즐겁게 뽐내고 있었다.

그들은 회랑 한쪽을 오가면서 반대편을 걷는 레빈을 피하려 했다.

바렌카는 어두운색 드레스에 챙을 아래로 꺾은 검은 모자를 쓰고 눈먼 프랑스 여인과 함께 회랑의 처음부터 끝까지 걸었다.

키티와 마주칠 때마다 두 처녀는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maman, 저 사람에게 말을 걸어봐도 돼요?”

낯선 친구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키티가 물었다.

바렌카가 광천수 샘으로 다가가고 있었고, 그대로 가면 샘 근처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하고 싶다면, 우선 내가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마.”

어머니가 대답했다.

“도대체 그 아가씨에게서 무엇을 그렇게 특별하게 발견한 거니? 동행하는 아가씨 같은데. 원하면 마담 슈탈과 내가 먼저 인사를 해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시누이를 내가 알았거든.”

공작부인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며 덧붙였다.

키티는 마담 슈탈이 자기 어머니와 사귀는 것을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아 어머니의 자존심이 상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조르지 않았다.

“정말 놀랄 만큼 사랑스러워요.”

키티는 바렌카가 프랑스 여자에게 물잔을 건네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세요. 모든 게 얼마나 자연스럽고 다정한지.”

“네가 누구에게 한번 빠지기만 하면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나는 참 우습구나.”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러다가 자기들 쪽으로 레빈이 여자 동행자와 독일인 의사와 함께 걸어오는 것을 보고 덧붙였다.

“아니다,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

레빈은 의사와 무언가를 큰 소리로, 화가 난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몸을 돌려 되돌아가려는 순간 큰 말소리가 아니라 고함이 들렸다.

레빈은 걸음을 멈춘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의사 역시 흥분해 있었다.

사람들이 둘레로 모여들었다.

공작부인과 키티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지만 대령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려고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몇 분 뒤 대령이 그들을 따라잡았다.

“무슨 일이었어요?”

공작부인이 물었다.

“창피한 일이지요!”

대령이 대답했다.

“외국에서 러시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제일 두렵다니까요. 그 키 큰 신사가 의사와 싸웠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면서 못할 소리를 다 하고 지팡이까지 휘두르려 했어요. 정말 망신이지요!”

“아, 정말 불쾌하군요.”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끝났어요?”

“다행히 그…… 버섯처럼 생긴 모자를 쓴 아가씨가 끼어들었습니다. 러시아 여자 같던데요.”

“mademoiselle 바렌카요?”

키티가 기뻐하며 물었다.

“그래요, 그래. 그 아가씨였어요. 누구보다 먼저 정신을 차리고 그 신사의 팔을 잡아 데리고 갔습니다.”

“보세요, maman.”

키티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제가 왜 저 사람에게 감탄하는지 이제 아시겠죠.”

그다음 날부터 낯선 친구를 다시 살펴보던 키티는 마드무아젤 바렌카가 레빈과 그의 여자 동행자에게도 다른 환자들에게 하던 것과 똑같이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렌카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외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그 여자를 위해 통역까지 해주었다.

키티는 어머니에게 바렌카와 알게 해달라고 더욱 간절히 부탁했다.

공작부인은 자기와 사귀는 것을 일부러 피하는 듯한 마담 슈탈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불쾌했지만, 바렌카에 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교제가 특별히 해로울 것은 없으며, 그렇다고 특별히 대단히 좋은 것도 없으리라는 정도의 내용을 알아낸 뒤, 결국 자기가 먼저 바렌카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딸은 광천 샘으로 가고 바렌카가 빵집 맞은편에 멈추어 있을 때였다.

“당신과 알고 지내도 되겠습니까?”

공작부인은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딸아이가 당신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답니다. 아마 나를 모르겠지요. 나는…….”

“저도 꼭 같은 마음입니다, 공작부인.”

바렌카가 재빨리 대답했다.

“어제 우리 불쌍한 동포를 도와준 일은 정말 좋은 일이었어요.”

공작부인이 말했다.

바렌카는 얼굴을 붉혔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제가 특별히 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레빈이 곤란한 일을 벌이지 않도록 구해주었다면서요.”

“아, 그 일이라면…… 그의 동행 여자가 저를 불렀어요. 그래서 진정시켜보려고 했을 뿐이에요. 많이 아프신 데다 의사에게 불만이 있었어요. 저는 이런 환자들을 돌보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요.”

“멘톤에서는 이모님과 함께 산다고 들었는데, 마담 슈탈이 이모님이시지요? 나는 그분의 시누이를 알고 있었답니다.”

“아니에요, 제 이모가 아닙니다. 저는 그분을 maman이라고 부르지만 친척은 아니에요. 그분이 저를 길러주셨어요.”

바렌카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 말이 너무도 꾸밈없이 나왔고 얼굴의 진실하고 열린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워, 공작부인은 왜 키티가 이 바렌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레빈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공작부인이 물었다.

“떠난답니다.”

바렌카가 대답했다.

바로 그때 광천 샘 쪽에서 키티가 다가왔다.

어머니가 자기의 낯선 친구와 마침내 인사를 나누었다는 기쁨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 키티. 네가 그렇게 간절히 알고 싶어 하던 mademoiselle…….”

“바렌카라고 불러주세요.”

바렌카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보탰다.

“모두 그렇게 불러요.”

키티는 기쁨으로 얼굴을 붉히고 새 친구의 손을 오래도록 말없이 힘주어 잡았다.

바렌카의 손은 그 손잡음에 힘을 주어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키티의 손 안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조용하고 기쁘면서도 약간 슬픈 미소가 번져, 크지만 아름다운 이가 드러났다.

“저도 오래전부터 이러고 싶었어요.”

바렌카가 말했다.

“하지만 늘 그렇게 바쁘시잖아요…….”

“아, 오히려 저는 아무 일도 안 해요.”

바렌카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바로 그 순간 새 친구들을 떠나야 했다.

병든 사람의 딸인 러시아 여자아이 둘이 그녀에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바렌카, 엄마가 불러요!”

아이들이 소리쳤다.

바렌카는 아이들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