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바로 곁에는 널빤지로 얼기설기 지은 임시 마구간이 세워져 있었고, 브론스키의 말도 전날 그곳으로 옮겨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아직 말을 보지 못했다. 지난 며칠 동안에는 자기가 직접 운동을 시키지 않고 조련사에게 맡겨두었으므로, 프루프루가 어떤 상태로 와 있는지, 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그의 마부 겸 말 관리인, 이른바 ‘보이’가 멀리서부터 마차를 알아보고 조련사를 불렀다. 높은 장화를 신고 짧은 재킷을 입었으며 턱 밑에만 한 줌의 수염을 남긴 바싹 마른 영국인이, 기수들 특유의 어딘가 서툴고 풀어진 걸음으로 팔꿈치를 벌리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마중 나왔다.
“프루프루는 어때?” 브론스키가 영어로 물었다.
“All right, sir. 아주 좋습니다, 나리.” 영국인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는 모자를 들어 올리며 덧붙였다. “재갈덮개를 씌워놓았는데 말이 흥분해 있습니다. 들어가시면 더 불안해집니다.”
“그래도 들어가겠어. 한번 보고 싶군.”
“그렇다면 오십시오.” 영국인은 입술을 거의 벌리지 않은 채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말하고, 팔꿈치를 휘두르며 느슨한 걸음으로 앞장섰다.
그들은 임시 마구간 앞의 작은 뜰로 들어갔다. 깨끗한 재킷을 입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당번 소년이 빗자루를 손에 든 채 그들을 맞아 뒤따라왔다. 마구간에는 칸막이마다 모두 다섯 마리의 말이 들어 있었다. 브론스키는 자기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마호틴의 붉은 갈색 말 글라디아토르도 오늘 이곳에 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섯 베르쇼크나 더 높은 거구였다.
브론스키는 자기 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자기 말보다 더 글라디아토르를 보고 싶었다.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마인의 예의에 따르면 경쟁자의 말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그 말에 대해 물어보는 것조차 점잖지 못한 일이었다. 복도를 지나는데 소년이 왼쪽 두 번째 마방 문을 열었고, 브론스키는 흰 다리를 가진 커다란 밤색 말을 얼핏 보았다. 글라디아토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남의 펼쳐진 편지를 우연히 본 사람처럼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려 프루프루의 마방으로 갔다.
“저기에 마…… 마크…… 나는 도무지 그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가 없군.” 영국인은 뒤쪽을 향해 말하며 더러운 손톱이 붙은 굵은 엄지손가락으로 글라디아토르의 마방을 가리켰다.
“마호틴 말인가? 그래, 내게 진짜 상대라고 할 만한 말은 그 한 마리뿐이지.”
“만일 나리께서 저 말을 타신다면,” 영국인이 말했다. “저라면 나리에게 돈을 걸겠습니다.”
“프루프루 쪽이 더 예민해. 하지만 저 말은 힘이 더 좋지.” 브론스키는 자기 기승술을 칭찬받은 것이 기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애물 경주는 결국 타는 솜씨와 pluck에 달린 겁니다.” 영국인이 말했다.
Pluck, 곧 기력과 담력이라면 브론스키는 자기에게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었을 뿐 아니라, 훨씬 중요한 것으로서,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보다 더 많은 pluck을 지니고 있을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정말 더 땀을 빼놓을 필요는 없었나?”
“없었습니다.” 영국인이 대답했다. “그리고 제발 큰 소리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말이 흥분합니다.” 그는 그들이 서 있는 잠긴 마방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서는 말이 짚을 밟아 발을 이리저리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문을 열었고, 브론스키는 조그만 창 하나로만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마방 안으로 들어갔다.
새 짚 위에서 발을 바꾸어 디디며, 재갈덮개를 쓴 짙은 갈색 암말이 서 있었다. 반어둠에 눈이 익자 브론스키는 다시 한번 자기가 사랑하는 말의 몸 전체를 한눈에 껴안듯 바라보았다.
프루프루는 중간 키의 말이었고 체형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뼈대가 가늘었다. 흉골은 앞으로 힘차게 튀어나와 있었으나 가슴은 좁았다. 엉덩이는 약간 처졌고 앞다리, 특히 뒷다리는 눈에 띄게 안쪽으로 휘어 있었다. 앞뒤 다리의 근육도 특별히 굵지는 않았다. 그러나 배 둘레는 놀랄 만큼 넓었는데, 훈련으로 살이 빠져 배가 홀쭉해진 지금은 그 점이 특히 두드러졌다. 무릎 아래 다리뼈는 정면에서 보면 손가락보다 굵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옆에서 보면 놀랄 만큼 넓었다. 갈비뼈 부분만 빼면 몸 전체가 양옆에서 눌리고 깊이로 길게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결점을 잊게 만드는 특성이 프루프루에게는 최고도로 갖추어져 있었다. 영국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피’, 곧 혈통이었다. 얇고 민감하며 새틴처럼 매끄러운 피부 아래 팽팽히 뻗은 힘줄의 그물 사이로 도드라져 보이는 근육은 뼈처럼 단단해 보였다. 야윈 머리에서는 반짝이고 명랑한 눈이 불룩하게 솟아 있었고, 코 쪽으로 내려갈수록 머리가 넓어져 피가 비치는 얇은 막 안쪽의 큰 콧구멍으로 이어졌다. 몸 전체, 특히 머리에는 힘찬 동시에 섬세한 어떤 뚜렷한 표정이 있었다. 프루프루는 입의 기계적인 구조만 허락했다면 곧 사람의 말로 말을 걸었을 것만 같은 그런 동물 가운데 하나였다.
적어도 브론스키에게는, 자기를 바라보는 지금 자기 마음을 프루프루가 모두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브론스키가 들어서는 순간 말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불룩한 눈을 비스듬히 돌려 흰자위가 핏빛으로 충혈될 만큼 뒤쪽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재갈덮개를 흔들고 탄력 있게 다리를 번갈아 옮겼다.
“보십시오. 얼마나 흥분하는지.” 영국인이 말했다.
“오, 사랑스러운 녀석! 자, 자.” 브론스키는 말에게 다가가며 달랬다.
그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프루프루는 더 흥분했다. 그러나 브론스키가 머리 곁까지 가자 갑자기 조용해졌고, 얇고 부드러운 털 아래 근육이 떨렸다. 브론스키는 단단한 목을 쓰다듬고, 뾰족한 등성이 위에서 반대쪽으로 넘어간 갈기의 한 가닥을 바로잡은 다음, 박쥐 날개처럼 얇고 팽팽해진 콧구멍 가까이 자기 얼굴을 가져갔다.
프루프루는 팽팽하게 벌어진 콧구멍으로 요란하게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뿜고는 몸을 떨며 뾰족한 귀를 눕혔다. 그리고 단단하고 검은 윗입술을 브론스키에게 내밀어 그의 소매를 잡으려는 듯했다. 그러나 재갈덮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 듯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조각해놓은 듯한 다리를 하나씩 바꾸어 디뎠다.
“진정해, 예쁜아, 진정해.” 그는 말의 엉덩이를 한 번 더 손으로 쓰다듬고, 말의 상태가 더없이 좋다는 기쁜 확신을 품은 채 마방 밖으로 나왔다.
말의 흥분은 브론스키에게도 옮아왔다. 그는 피가 심장으로 몰리는 것을 느꼈고, 자기 역시 말처럼 움직이고 싶고 물어뜯고 싶었다. 두렵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다.
“좋소, 그럼 당신을 믿겠소.” 그는 영국인에게 말했다. “여섯 시 반까지는 경주장에 와 있어.”
“전부 문제없습니다.” 영국인이 말했다.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my lord?” 그는 평소 거의 쓰지 않는 ‘마이 로드’라는 호칭을 뜻밖에도 입에 올렸다.
브론스키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사람의 눈을 직접 보지 않고 이마를 바라보는 특유의 방식으로 영국인을 쳐다보며, 감히 그런 질문을 한 것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영국인이 지금 자기를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경주에 나갈 기수로 보고 묻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브랸스키에게 갈 일이 있어. 한 시간 뒤면 집으로 돌아올 거야.”
‘오늘 이 질문만 몇 번째야!’ 그는 속으로 생각했고, 좀처럼 그러지 않던 그가 얼굴을 붉혔다.
영국인은 유심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브론스키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덧붙였다.
“경주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함입니다. 기분 상하지 마시고, 어떤 일로도 마음을 흩뜨리지 마십시오.”
“All right.” 브론스키는 웃으며 대답하고 마차에 올라 페테르고프로 가라고 명령했다.
몇 걸음 가지도 않아 아침부터 비를 품고 있던 구름이 밀려오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나쁜데!’ 브론스키는 마차 덮개를 올리며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진창이었는데 이제 완전히 늪이 되겠군.’
닫힌 마차 안에 혼자 있게 되자 그는 어머니의 편지와 형의 쪽지를 꺼내 읽었다.
그렇다. 언제나 같은 이야기였다. 어머니도, 형도, 모두가 자기의 마음 문제에 끼어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간섭은 브론스키에게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감정인 분노를 일으켰다.
‘그들이 무슨 상관이지? 왜 모두가 나를 돌보는 것을 자기 의무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나를 가만두지 않지? 그들도 이것이 자기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보기 때문이야. 평범하고 천박한 사교계의 정사라면 나를 그냥 두었을 텐데. 이것은 다른 것,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도 느끼고 있어. 이 여자가 내게는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그런데 바로 그것을 이해할 수 없으니 성가시게 여기는 거야. 우리의 운명이 어떤 것이든, 앞으로 무엇이 되든, 그 운명은 우리가 만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불평하지 않아.’
그는 ‘우리’라는 말 속에서 자기 자신과 안나를 하나로 묶었다.
‘아니, 그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려 들어. 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어. 이 사랑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어. 삶 자체가 없어.’
그가 모두의 간섭에 화를 내는 것은 바로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들 모두가 옳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나와 자기를 묶어놓은 사랑은 사교계의 정사처럼 얼마 뒤 지나가고, 두 사람의 삶에 즐겁거나 불쾌한 추억만 남기는 일시적인 열정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와 안나가 처한 상황의 모든 고통스러움을 느꼈고, 온 세상의 눈앞에 그대로 드러난 처지에서 사랑을 숨기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을 묶은 열정이 너무 강해 두 사람이 사랑 이외의 모든 것을 잊고 있는데도, 남들에게 끊임없이 마음을 쓰면서 거짓말하고 속이고 잔꾀를 부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천성에는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거짓과 속임을 강요받았던, 되풀이되어온 여러 순간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특히 안나가 이런 거짓과 속임의 필요를 부끄러워하는 것을 그가 한두 번이 아니게 알아차렸던 순간들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안나와 관계를 맺은 뒤 때때로 그에게 찾아오던 이상한 감정이 다시 엄습했다. 무언가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한 것인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인지, 세상 전체에 대한 것인지 그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 이상한 감정을 밀쳐냈다. 이번에도 몸을 한번 털어내듯 생각을 떨치고 다시 사유를 이어갔다.
‘그래, 예전의 그녀는 불행했지만 자존심이 있었고 침착했어. 하지만 지금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 침착하고 품위 있게 있을 수가 없어. 그래, 이건 끝내야 해.’
그때 처음으로, 이 거짓을 그만두어야 하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분명한 형태로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녀도 나도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의 사랑만 가지고 어디론가 둘이 숨어버리는 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