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26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26장

《전쟁과 평화》 제6권 26장 삽화

한여름에 마리야 공작 영애는 스위스에 있는 안드레이 공작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낯설고 놀라운 소식이 담겨 있었다. 그가 나타샤 로스토바와 약혼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 전체에서 약혼녀를 향한 사랑의 환희와 누이에게 품은 다정하고 믿음 깊은 애정이 흘러넘쳤다. 그는 지금처럼 사랑한 적이 없고, 이제야 비로소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알게 되었다고 썼다. 지난번 민둥산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에게는 결심을 말하면서도 누이에게 알리지 않은 일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아버지에게 동의해 달라고 청했다가 그를 화나게 하고, 목적도 이루지 못한 채 불쾌한 감정을 고스란히 감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썼다. “그때는 지금처럼 일이 확실히 결정되지도 않았소. 아버지는 당시 1년을 미루라고 고집하셨지만 이제 그 기간의 절반인 *6개월*이 이미 지났고, 내 결심은 전보다 더욱 굳건해졌소. 의사들이 이곳 온천에 나를 붙들어 두지만 않았다면 벌써 러시아로 돌아갔을 것이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귀국을 3개월 미뤄야 하오. 누이는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알고 있지.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소. 지금까지도 독립적이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오. 하지만 아버지가 우리 곁에 머물 시간이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분의 뜻을 거스르고 분노를 일으킨다면 내 행복의 절반이 무너질 것이오. 이제 같은 문제를 두고 아버지께도 편지를 쓰고 있소. 좋은 때를 골라 편지를 전해 주고 아버지가 이 일 전체를 어떻게 보시는지, 기간을 4개월 줄이는 데 동의하실 희망이 있는지 알려 주기를 바라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오래 망설이고 의심하고 기도한 끝에 편지를 아버지에게 드렸다. 이튿날 노공작은 딸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라비에게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써라…… 얼마 남지 않았다. 곧 그 아이를 자유롭게 해 줄 테니.”

공작 영애가 대답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말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목소리를 점점 높이며 외쳤다.

“결혼해라, 결혼해, 아들아!…… 좋은 집안이지!…… 영리한 사람들이고, 그렇지? 부자고, 그렇지? 그래, 어린 니콜라이에게 훌륭한 계모가 생기겠구나! 내일이라도 결혼하고 싶으면 하라고 써라. 그 여자는 어린 니콜라이의 계모가 되고, 나는 부리엔과 결혼하마!…… 하, 하, 하! 그 아이에게도 계모가 없으면 안 되지! 다만 한 가지, 내 집에는 여자가 더 필요 없다. 결혼해서 따로 살라고 해라. 어쩌면 너도 가서 함께 살겠구나?” 그는 마리야 공작 영애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제발 가라! 추운 밖으로 나가…… 서리 속으로…… 서리 속으로…… 서리 속으로!”

이렇게 분노를 터뜨린 뒤 공작은 그 일에 관해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나약한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억눌러 둔 감정은 딸을 대하는 태도로 드러났다. 이전에 딸을 비꼬던 구실에 이제 새로운 것이 더해졌다. 계모에 대한 암시와 부리엔 양에게 보이는 다정한 태도였다.

“내가 왜 그 여자와 결혼하면 안 되느냐?” 그는 딸에게 물었다. “훌륭한 공작부인이 될 텐데!”

최근 마리야 공작 영애는 놀라움과 당혹감 속에서 아버지가 정말 그 프랑스 여자와 갈수록 더 가까이 지내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안드레이 공작에게 편지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썼지만, 아버지가 그 결혼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오라버니를 위로했다.

어린 니콜라이와 그의 교육, 안드레이 오라버니, 신앙은 마리야 공작 영애의 기쁨이자 위안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인 희망이 필요하듯 그녀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도 삶의 가장 큰 위안을 주는 은밀한 꿈과 희망이 있었다. 노공작 몰래 찾아오는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여러 순례자인 *하느님의 사람들*이 그 위안의 꿈과 희망을 주었다. 오래 살고 삶을 더 많이 경험하고 관찰할수록 마리야 공작 영애는 이 땅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인간의 근시안에 더욱 놀랐다. 이룰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한 죄 많은 행복을 얻으려고 수고하고 고통받고 다투며 서로를 해쳤다. 안드레이 공작은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죽었다. 그런데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자기 행복을 다른 여자에게 다시 결속하려 했다. 아버지는 안드레이에게 더 명문이고 부유한 혼처를 원했기 때문에 반대했다. 그들은 모두 한순간만 이어지는 이익을 얻으려고 다투고 괴로워하며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고, 자신의 영원한 영혼을 해쳤다. 우리 자신도 이것을 알 뿐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도 땅에 내려와 이 삶은 한순간이며 하나의 시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삶에 매달리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왜 아무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까?’ 마리야 공작 영애는 생각했다. ‘멸시받는 이 *하느님의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루를 등에 지고 공작의 눈에 띌까 두려워 뒷문으로 나를 찾아온다. 학대받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공작에게 죄를 짓게 할까 두려워서다. 가족과 집과 세속의 안녕에 관한 모든 근심을 버리고,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 삼베 누더기를 걸치고 가명을 써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모두를 위해, 자신을 쫓아내는 사람과 보호해 주는 사람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 삶과 진리보다 더 높은 삶과 진리는 없다!’

순례자 가운데 테오도시야라는 조용하고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는 쉰 살의 자그마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30년 넘게 맨발로 돌아다니며 무거운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살았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녀를 특히 좋아했다. 어느 날 성상 앞의 등불이 어슴푸레 밝힌 방에서 테오도시야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 오직 그녀만이 삶의 참된 길을 찾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너무나 강렬하게 떠올라 마리야 공작 영애는 자신도 순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테오도시야가 잠든 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 일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마침내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순례를 떠나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이 생각은 고해 신부인 수도사 아킨피 신부에게만 털어놓았고, 그는 그녀의 뜻을 찬성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순례자에게 줄 선물이라는 구실로 자신이 입을 순례자의 옷 한 벌을 마련했다. 거친 웃옷과 나무껍질 신발, 투박한 외투와 검은 머릿수건이었다. 그녀는 이 비밀스러운 보물이 든 서랍장에 다가갈 때마다 계획을 실행할 때가 벌써 온 것은 아닌지 망설이며 멈춰 서곤 했다.

흔히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에게는 기계적으로 나오는 단순한 말이 자신에게는 깊은 의미로 가득해 마음이 격해졌다. 몇 번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집에서 달아나기 직전까지 갔다. 상상 속에서 그녀는 벌써 테오도시야 곁에서 거친 누더기를 입고 지팡이를 든 채, 등에 자루를 메고 먼지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질투와 세속적인 사랑과 욕망에서 벗어나 이 성지에서 저 성지로 떠돌다가 마침내 더는 슬픔도 탄식도 없고 영원한 기쁨과 행복만 있는 곳에 도달했다.

‘어느 곳에 도착해 기도를 드리고, 그곳에 익숙해지거나 사랑하게 될 틈도 없이 더 멀리 떠나야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가다가 어디선가 쓰러져 죽으면, 마침내 슬픔도 탄식도 없는 영원하고 고요한 안식처에 다다를 거야…….’ 마리야 공작 영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 아버지, 특히 어린 코코(어린 니콜라이)를 보면 결심이 약해졌다.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보다 아버지와 어린 조카를 더 사랑하는 죄인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