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9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9장

《전쟁과 평화》 제6권 9장 삽화

그 무렵에도 늘 그렇듯이, 궁정과 성대한 무도회에 모이는 최상류 사회는 저마다 고유한 분위기를 지닌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집단은 프랑스파이자 나폴레옹과의 동맹을 지지하는 루먄체프 백작과 콜랭쿠르의 집단이었다. 엘렌은 남편과 함께 페테르부르크에 자리를 잡자마자 이 집단에서 매우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했다. 프랑스 대사관 사람들과, 지성과 세련된 태도로 이름난 그 집단의 많은 이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엘렌은 두 황제의 유명한 회담이 열렸을 때 에르푸르트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나폴레옹 측 저명인사들과 맺은 인연을 가지고 돌아왔다. 에르푸르트에서 그녀가 거둔 성공은 눈부셨다. 나폴레옹 자신도 극장에서 그녀를 눈여겨보고 이렇게 말했다. *“C’est un superbe animal.”* *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으로서 엘렌이 성공한 것은 피에르에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기 때문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지난 2년 사이 아내가 *“d’une femme charmante, aussi spirituelle que belle.”* *라는 평판까지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저명한 리뉴 공작은 그녀에게 여덟 쪽에 이르는 편지를 썼다. 빌리빈은 재치 있는 경구들을 아껴 두었다가 베주호바 백작부인 앞에서 선보였다. 베주호바 백작부인의 살롱에 초대받는 것은 지성을 인정받는 증서처럼 여겨졌다. 젊은이들은 엘렌의 저녁 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그녀의 살롱에서 할 말을 마련하려고 책을 읽었다. 대사관 서기관들뿐 아니라 대사들까지 그녀에게 외교상의 비밀을 털어놓았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엘렌은 하나의 세력이었다. 그녀가 몹시 어리석다는 것을 아는 피에르도 이따금 그녀의 야회와 만찬에 참석해 정치와 시와 철학을 논하는 모습을 보며 기묘한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모임에서 그는 자기 속임수가 언제 탄로 날지 늘 기다리는 마술사와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살롱을 이끄는 데는 바로 어리석음이 필요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속은 사람들이 그 속임수에서 즐거움을 얻었기 때문인지, 어쨌든 진상은 드러나지 않았다. 사랑스럽고 영리한 여인이라는 엘렌 베주호바의 평판은 너무나 확고해져서, 그녀가 아무리 공허하고 어리석은 말을 해도 모두가 한마디 한마디에 황홀해하며 그녀 자신은 상상조차 못 한 심오한 의미를 그 속에서 찾았다.

* “정말 훌륭한 동물이군.”

* “아름다운 만큼 재치도 넘치는 매력적인 여인.”

피에르는 화려한 사교계 여인에게 꼭 필요한 남편이었다. 그는 정신이 딴 데 팔린 괴짜이자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 *대귀족* 남편이었다. 응접실의 고상한 분위기와 전반적인 인상을 해치기는커녕, 우아하고 재치 있는 아내와 대조를 이루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지난 2년 동안 피에르는 추상적인 문제에 줄곧 몰두하고 나머지 모든 것을 진심으로 경멸한 결과,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아내의 사교 집단에서 모든 사람에게 무심하고 냉담하면서도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런 태도는 꾸며 낼 수 없는 것이어서 저절로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극장에 들어가듯 아내의 응접실에 들어갔고, 모든 사람과 알고 지냈으며 누구를 만나든 똑같이 반가워하고 똑같이 무관심해했다. 때로는 관심을 끄는 대화에 끼어들어 ‘대사관 신사들’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혀 짧은 소리로 자기 견해를 밝혔다. 그 견해는 때때로 당시 통용되던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았다. 하지만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저명한 여인’의 괴상한 남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워낙 확고했으므로, 누구도 그의 별난 행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날마다 엘렌의 집을 드나드는 수많은 젊은이 가운데, 이미 관직에서 크게 출세한 보리스 드루베츠코이는 엘렌이 에르푸르트에서 돌아온 뒤 베주호프 집안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엘렌은 그를 *“나의 시종(mon page)”*이라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대했다. 보리스를 향한 그녀의 미소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짓는 미소와 같았지만, 때로 그 미소는 피에르를 불편하게 했다. 보리스는 피에르에게 유난히 점잖고 서글픈 공손함을 보였다. 그 공손한 태도에 깃든 미묘한 기색도 피에르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는 3년 전 아내가 안겨 준 굴욕으로 너무나 고통받았기 때문에, 이제 같은 일이 되풀이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다. 첫째로 아내의 남편 노릇을 하지 않았고, 둘째로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으려 했다.

‘아니야, 이제 아내는 여류 지식인이 되었으니 이전의 연애 놀음은 완전히 단념했을 거야.’ 그는 속으로 말했다. ‘여류 지식인이 연애에 정신을 빼앗긴 사례는 이제껏 한 번도 없었어.’ 어디에서 얻었는지 모를 생각이었지만 피에르는 그것을 굳게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내의 응접실에 보리스가 있으면, 그는 거의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피에르는 육체적으로까지 영향을 받았다. 팔다리가 굳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몸놀림이 사라졌다.

‘참 이상한 반감이군.’ 피에르는 생각했다. ‘전에는 그를 무척 좋아했는데.’

세상 사람들의 눈에 피에르는 대단한 귀족이자 저명한 아내를 둔 다소 눈멀고 우스꽝스러운 남편이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영리한 괴짜이자 더없이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피에르의 영혼 속에서는 복잡하고 힘겨운 내적 성장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 과정은 그에게 많은 것을 드러내고 수많은 정신적 의혹과 기쁨을 안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