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5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5장

《전쟁과 평화》 제6권 5장 삽화

위원 임명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안드레이 공작은 옛 지인들, 특히 권력을 지니고 있어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이제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는 전투 전날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불안한 호기심에 마음이 어지러우면서도 수백만 사람의 운명이 걸린 미래가 만들어지는 지배층으로 걷잡을 수 없이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연로한 사람들의 불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호기심, 내막을 아는 사람들의 신중한 침묵, 모두의 분주함과 골몰한 표정, 날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무수한 위원회와 조사위원회를 통해 그는 지금, 1809년의 이곳 페테르부르크에서 거대한 문관들의 전투가 준비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총사령관은 그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인물, 그러나 천재라고 여겨지는 스페란스키였다. 안드레이 공작이 막연히 알고 있던 이 개혁 운동과 그 운동을 이끄는 스페란스키가 그에게 너무도 강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군사 법규 문제는 곧 그의 의식에서 부차적인 자리로 밀려났다.

안드레이 공작은 당시 페테르부르크의 가장 높고 다양한 사교계 어디에서나 환영받기에 더없이 유리한 처지였다. 개혁파는 그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가까이하려 했다. 첫째, 그가 영리하고 박식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었고, 둘째, 농노들을 해방하여 자유주의자라는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를 비난하던 보수적이고 불만 많은 노인들의 무리는 그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개혁에 대한 자기들의 반감에 동조하리라 기대하며 그를 찾았다. 여성 사교계도 그를 기꺼이 맞았다. 그는 부유하고 명망 있으며 좋은 신랑감인 데다, 죽었다는 소문과 아내를 비극적으로 잃은 일로 낭만적인 후광까지 두른, 거의 새로 나타난 사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전부터 그를 알던 사람들은 지난 오 년 동안 그가 크게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태도가 부드러워지고 한층 남자다워졌으며, 예전의 허세와 오만과 경멸 어린 빈정거림은 사라지고 세월이 주는 평온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화제로 삼고 관심을 보이며 만나고 싶어 했다.

아락체예프 백작을 만난 다음 날, 안드레이 공작은 코추베이 백작의 집에서 저녁을 보냈다. 그는 실라 안드레예비치와 나눈 이야기를 백작에게 들려주었다. 코추베이는 안드레이 공작이 전쟁대신의 대기실에서 알아차렸던 것과 똑같이 막연한 빈정거림을 담아 아락체예프를 그 별명으로 불렀다.

“친애하는 공작, 이 일도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스페란스키 없이는 해결할 수 없소. 그가 모든 일을 맡아 처리하니까. 내가 말해 보겠소. 오늘 저녁 오기로 했네.”

“스페란스키가 군사 법규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안드레이 공작이 물었다.

코추베이는 볼콘스키의 순진함에 놀라기라도 한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며칠 전에도 그와 공작 이야기를 했소.” 코추베이가 말을 이었다. “공작이 해방한 농부들 이야기도 했지.”

“아, 농노들을 해방했다는 분이 공작이시오?”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의 한 노인이 볼콘스키를 경멸스럽게 돌아보며 말했다.

“수입도 나지 않는 작은 영지였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쓸데없이 노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자기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대답했다.

“시대에 뒤처질까 두려웠던 모양이군....” 노인은 코추베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소.” 그가 말을 이었다. “농노들을 풀어 주면 누가 밭을 갈겠소? 법을 쓰기는 쉽지만 다스리기는 어렵지.... 지금 일도 마찬가지요. 백작께 묻겠는데, 모든 사람이 시험을 치러야 한다면 누가 각 부서의 책임자가 되겠소?”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되겠지요.” 코추베이는 다리를 꼬고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내 밑에서 일하는 프랴니치니코프를 보시오. 훌륭하고 더없이 귀한 사람인데 벌써 예순이오. 그 사람도 시험을 치러야 한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교육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으니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코추베이 백작은 말을 끝맺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안드레이 공작의 팔을 잡고, 막 들어온 키 크고 대머리에 피부가 흰 마흔 살가량의 남자를 맞으러 갔다. 넓게 트인 커다란 이마와 유난히 독특한 흰빛을 띤 길쭉한 얼굴의 남자였다. 새로 온 사람은 푸른 연미복을 입고 목에는 십자가를 걸었으며 왼쪽 가슴에는 별 모양 훈장을 달고 있었다. 스페란스키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즉시 그를 알아보았고, 삶의 중대한 순간에 그러하듯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존경 때문인지, 질투 때문인지, 기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스페란스키의 온 모습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함이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이 속한 사교계에서 그는 어색하고 둔한 몸짓과 그토록 침착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함께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반쯤 감은 촉촉한 눈에서 그토록 단호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을,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는 그처럼 굳은 미소를 본 적도 없었고, 그토록 세련되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섬세하고 흰 얼굴과 손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손은 폭이 넓으면서도 몹시 통통하고 부드럽고 희었다. 안드레이 공작이 그와 같은 희고 부드러운 피부를 본 것은 병원에 오래 누워 있던 병사들의 얼굴에서뿐이었다. 이 사람이 국무비서이자 황제에게 보고하는 관리이며, 에르푸르트에서 황제를 수행하며 나폴레옹과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눈 스페란스키였다.

스페란스키는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올 때 으레 그러듯 이 얼굴에서 저 얼굴로 시선을 옮기지 않았고 서둘러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으리라는 확신을 품고 천천히 말했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만 바라보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스페란스키의 말과 몸짓 하나하나를 각별히 주의해서 지켜보았다. 어떤 사람들, 특히 가까운 이들에게 엄격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는 새 사람을 만날 때마다—특히 스페란스키처럼 명성으로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날 때면—그에게서 인간적 자질의 완벽함을 발견하리라 기대하곤 했다.

스페란스키는 궁정에 붙들리는 바람에 더 일찍 오지 못해 유감이라고 코추베이에게 말했다. 황제가 자기를 붙잡아 두었다고는 말하지 않았고, 안드레이 공작은 그 꾸며 낸 겸손을 알아차렸다. 코추베이가 안드레이 공작을 소개하자 스페란스키는 평소의 미소를 띤 채 천천히 시선을 볼콘스키에게 돌리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공작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도 공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코추베이가 아락체예프가 볼콘스키를 어떻게 맞았는지 몇 마디 들려주자 스페란스키의 미소가 더욱 뚜렷해졌다.

“군사 법규 위원회의 위원장은 제 좋은 친구 마그니츠키 씨입니다.” 그는 단어와 음절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발음하며 말했다. “공작이 원한다면 그와 연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문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멈췄다. “그가 공작에게 공감하며 합리적인 모든 일을 진전시키는 데 기꺼이 협력하리라 믿습니다.”

곧 스페란스키 주위로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들었고, 부하 프랴니치니코프 이야기를 했던 노인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드레이 공작은 대화에 끼어들지 않은 채 스페란스키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잘것없는 신학생에 불과했던 이 사람이 이제는 저 통통하고 흰 두 손에 러시아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볼콘스키는 생각했다. 스페란스키가 노인에게 대답할 때 보인 유난히 경멸적이고도 침착한 태도는 안드레이 공작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높은 곳에서 몸을 낮춰 노인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노인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스페란스키는 미소를 지으며 군주께서 흡족해하시는 일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자신이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동안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스페란스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드레이 공작에게 다가와 그를 방 반대편으로 데려갔다. 볼콘스키에게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저 존경스러운 분이 저를 끌어들인 활기찬 대화 때문에 공작과 이야기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는 가볍게 경멸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미소는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하찮음을 자신과 안드레이 공작이 함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치는 듯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우쭐해졌다. “공작에 관해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농노 문제에 관한 공작의 행동 때문입니다. 그런 사례는 처음이며 본받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랄 만한 일이었지요. 둘째는 궁정 관직자에게 부여되던 관등에 관한 새 칙령을 모욕으로 여기지 않은 시종관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칙령 때문에 온갖 소문과 잡담이 나돌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아버지께서도 제가 그 특권을 이용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낮은 관등에서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세기의 인물인 공작의 아버지는, 단지 자연스러운 정의를 회복할 뿐인 이 조치를 그토록 비난하는 우리 동시대인들보다 분명 높은 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비난에도 어느 정도 근거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대답했다. 자신도 느끼기 시작한 스페란스키의 영향력에 저항하려는 것이었다. 모든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는 쉽고 능숙하게 말했지만 이제 스페란스키와 이야기하면서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유명인의 성격을 관찰하는 데 지나치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개인적인 야심의 근거라면 있겠지요.” 스페란스키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어느 정도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근거도 있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스페란스키가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물었다.

“저는 몽테스키외를 존경합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대답했다. “그리고 ‘군주정의 원리는 명예이다’라는 견해는 논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족에게 부여된 일정한 권리와 특권은 그러한 명예심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le principe des monarchies est l’honneur me paraît incontestable. Certains droits et privilèges de la noblesse me paraissent être des moyens de soutenir ce sentiment.*)”

* “군주정의 원리는 명예라는 견해는 논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족에게 부여된 일정한 권리와 특권은 그러한 명예심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란스키의 창백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고, 그 변화로 오히려 그의 얼굴은 한결 보기 좋아졌다. 안드레이 공작의 생각이 그의 흥미를 끈 듯했다.

“그 문제를 그런 관점에서 보신다면(*Si vous envisagez la question sous ce point de vue*)…….” 스페란스키가 말을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어를 말할 때 분명 다소 어려움을 겪었고, 러시아어를 말할 때보다 훨씬 천천히 말했지만 태도만큼은 완전히 침착했다.

* “그 문제를 그런 관점에서 보신다면.”

스페란스키는 명예라는 것을 공무에 해로운 특권으로 지탱할 수는 없다고 말을 이었다. 명예는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관념이거나, 칭찬과 그에 따른 포상을 추구하며 서로 겨루게 하는 원천이라고 했다. 그의 논리는 간결하고 단순하고 명료했다.

“경쟁심의 원천인 명예를 지탱하는 제도라면 위대한 나폴레옹 황제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공무 수행을 해치기는커녕 성공에 도움이 되는 제도이지, 신분이나 궁정의 특권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점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궁정의 특권도 같은 목적을 이루어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대답했다. “궁정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지위를 품위 있게 지킬 의무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공작은 그 특권을 이용하려 하지 않으셨군요.” 스페란스키가 말했다. 그는 미소로 상대를 곤란하게 한 논쟁을 우호적으로 끝내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수요일에 저를 찾아오는 영예를 베풀어 주신다면, 마그니츠키와 이야기한 뒤 공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을 알려 드리고 좀 더 자세히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도 누리겠습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프랑스식으로 고개를 숙였다.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가능한 한 눈길을 끌지 않으려 하며 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