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1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1장

《전쟁과 평화》 제6권 1장 삽화

안드레이 공작은 두 해를 내리 시골에서 보냈다.

피에르가 자기 영지에서 시도했으나 이 일 저 일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느라 끝내 이루지 못한 계획들을 안드레이 공작은 드러내지 않고 별다른 어려움도 없이 모두 실행했다.

그에게는 피에르에게 부족한 실무적 끈기가 누구보다도 강했고, 그 덕분에 부산을 떨거나 무리하지 않고도 일들이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의 영지 가운데 한 곳에서는 농노 삼백 명이 해방되어 자유로운 농업 노동자가 되었다. 러시아에서 그런 사례로는 가장 이른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영지들에서는 농노의 의무 노동을 현금 지대로 바꾸었다. 보구차로보에는 자기 비용으로 교육받은 산파를 고용했고, 사제에게 돈을 주어 농민과 집안 농노의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게 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시간의 절반을 민둥산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보냈다. 아들은 아직 유모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가 안드레이 공작의 영지를 두고 부르는 이름인 ‘보구차로보 수도원’에서 보냈다. 피에르에게 세상사에 무관심하다고 말했던 것과 달리 그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부지런히 좇았고 많은 책을 받아 읽었다. 그러면서 삶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인 페테르부르크에서 손님들이 자신이나 아버지를 찾아올 때면, 시골을 한 번도 떠나지 않는 자기가 국내외 정세에 관해서는 그들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 깨닫곤 했다.

영지 일과 온갖 책을 읽는 일 외에도 안드레이 공작은 이 무렵 불행하게 끝난 지난 두 차례 원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군의 규칙과 법규를 개혁하기 위한 의견서를 작성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1809년 봄, 그는 자신이 후견을 맡은 아들이 물려받은 랴잔의 영지들을 둘러보러 갔다.

봄 햇살을 받으며 사륜마차에 앉은 그는 새로 돋은 풀과 자작나무의 첫 잎, 맑고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떠가는 봄날의 첫 흰 구름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멍하면서도 즐거운 눈길로 이쪽저쪽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지난해 피에르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나루터를 건넜다. 진창이 된 마을과 타작마당, 파릇한 겨울 호밀밭을 지나고, 다리 근처에 아직 눈이 남아 있는 비탈을 내려갔다. 빗물에 개흙이 질척해진 오르막을 올라 그루터기가 남은 밭과 군데군데 푸른빛이 돋은 덤불을 지난 뒤, 길 양옆으로 자작나무가 자라는 숲에 들어섰다. 숲속은 바람 한 점 없이 거의 더울 정도였다. 끈끈한 푸른 잎을 단 자작나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지난해의 마른 잎을 밀어 올리며 연보랏빛 꽃과 첫 풀잎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자작나무 사이에 여기저기 흩어진 작은 전나무들은 거친 상록색으로 겨울을 불쾌하게 떠올리게 했다. 숲에 들어서자 말들은 콧김을 내뿜기 시작했고 땀을 흘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하인 표트르가 마부에게 무슨 말을 하자 마부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마부의 맞장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표트르는 마부석에서 몸을 돌려 주인을 향했다.

“나리, 참 좋습니다!” 그가 공손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엇이?”

“참 좋습니다, 나리!”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아, 봄을 말하는 모양이군.’ 그는 몸을 돌리며 생각했다. ‘그래, 정말 벌써 온통 푸르구나.... 이른데! 자작나무도, 벚나무도, 오리나무도 벌써 잎이 돋고 있어.... 하지만 참나무는 아직 기척이 없군. 아, 저기 한 그루가 있구나!’

길가에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숲을 이룬 자작나무들보다 아마 열 배는 나이가 많을 그 나무는 굵기도 열 배, 키도 두 배나 되었다. 둘레는 두 사람이 팔을 벌려도 감싸지 못할 만큼 거대했고, 오래전에 부러진 것이 분명한 가지들과 상처투성이의 껍질을 지니고 있었다. 거대하고 볼품없는 팔다리를 비대칭으로 벌리고 옹이진 손과 손가락을 뻗은 채, 미소 짓는 자작나무들 사이에 늙고 준엄하며 오만한 괴물처럼 서 있었다. 숲 여기저기에 흩어진 죽은 듯한 상록 전나무들과 이 참나무만이 봄의 매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봄도 햇빛도 알려 하지 않았다.

‘봄, 사랑, 행복이라!’ 참나무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 어리석고 무의미하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속임수에 아직도 싫증이 나지 않았느냐? 언제나 똑같고 언제나 거짓이지! 봄도, 태양도, 행복도 없다! 저기 웅크리고 죽은 듯 서 있는 전나무들을 보아라. 언제나 똑같지. 나를 보아라. 등에서든 옆구리에서든 자라난 바로 그 자리에서 껍질 벗겨지고 부러진 손가락을 뻗고 있지 않느냐. 자라난 그대로 서 있는 나는 너희의 희망도 거짓말도 믿지 않는다.’

안드레이 공작은 숲을 지나면서 그 참나무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라도 하듯 몇 번이나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참나무 아래에도 꽃과 풀이 피어 있었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 속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뻣뻣하고 일그러지고 음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래, 저 참나무가 옳아. 천 번 옳아.’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젊은이들이나 다시 그 속임수에 넘어가라고 하지. 하지만 우리는 삶을 알고 있어. 우리의 삶은 끝났어!’

그 참나무와 이어진 새 생각들이 절망적이면서도 서글프게 감미로운 연쇄를 이루며 그의 영혼 속에서 일어났다. 이번 여행에서 그는 자기 삶을 새삼 다시 헤아려 본 듯했고, 절망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예전의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자신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일은 없으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데 만족하고 스스로 동요하거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