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23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23장

《전쟁과 평화》 제6권 23장 삽화

안드레이 공작은 결혼하려면 아버지의 동의를 받아야 했으므로 이튿날 시골로 떠났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겉으로는 침착하게 받아들였지만 속으로는 분노했다. 자기 삶이 이미 끝나 가는 마당에 누군가 삶을 바꾸거나 새로운 것을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대로 삶을 마치게만 해 준다면, 그 뒤에는 저들이 마음대로 해도 좋다.’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중요한 때를 위해 아껴 두던 외교술을 발휘해 차분한 어조로 모든 문제를 논했다.

첫째, 가문이나 재산이나 지위를 보아도 훌륭한 결혼이 아니었다. 둘째, 안드레이 공작은 이제 젊지 않았고 건강도 좋지 않은 반면(노인은 이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녀는 아주 어렸다. 셋째, 안드레이 공작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는데 철부지 처녀에게 맡기기는 아까웠다. “넷째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비꼬듯 바라보며 말했다. “부탁이니 1년 동안 미뤄라. 외국에 가서 치료도 받고, 네가 원하던 대로 니콜라이 공자를 가르칠 독일인 가정교사도 찾아보아라. 그런 뒤에도 네 사랑이든 열정이든 고집이든,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그것이 여전히 그만큼 크다면 결혼해라! 이것이 내 마지막 말이다. 명심해라, 마지막 말이야…….” 노공작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정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어조로 말을 마쳤다.

안드레이 공작은 노인이 자신의 감정이나 약혼녀의 감정이 1년을 견디지 못하거나, 그 전에 자신이 죽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청혼은 하되 결혼식을 1년 뒤로 미루기로 했다.

로스토프 집안에서 마지막 저녁을 보낸 지 3주 뒤, 안드레이 공작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이야기한 이튿날 나타샤는 온종일 볼콘스키를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둘째 날과 셋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피에르도 찾아오지 않았다. 안드레이 공작이 아버지를 만나러 떠난 사실을 모르는 나타샤는 그가 오지 않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났다. 나타샤는 어디에도 나가고 싶지 않아 한가하고 무기력한 그림자처럼 방에서 방으로 돌아다녔다. 밤에는 몰래 울었고 저녁이면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았다. 늘 얼굴을 붉히고 신경질을 부렸다. 모두가 자신의 실망을 알고 비웃거나 가엾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마음속 슬픔도 컸지만 자존심에 난 상처가 괴로움을 더욱 심하게 했다.

어느 날 나타샤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왜 벌을 받는지도 모르는 채 상처 입은 아이가 흘리는 눈물이었다.

백작부인이 나타샤를 달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말을 듣던 나타샤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만해요, 엄마! 나는 그 일에 관해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분은 그냥 왔다가 그만둔 거예요. 그만둔 거라고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시 울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분이 무서워요. 이제는 완전히 진정됐어요. 아주 평온해졌어요.”

이 대화를 나눈 이튿날 나타샤는 아침이면 기분을 유쾌하게 해 주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알고 있던 낡은 옷을 입었다. 그날 그녀는 무도회 이후 버렸던 옛 생활 방식으로 돌아갔다. 아침 차를 마친 뒤 울림이 큰 점을 특히 좋아하던 무도회장으로 가서 계명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첫 연습을 마치고 방 한가운데 멈춰 서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악절을 불렀다. 텅 빈 무도회장 전체를 채우며 울리다가 천천히 사라지는 아름다운 음을, 그런 소리가 나리라고 예상하지 못하기라도 한 듯 기쁘게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즐거워졌다. ‘이 일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서 무슨 소용이야? 지금도 모든 것이 좋은데.’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어 방 안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새로 장만해 아끼는 구두를 신고, 울리는 마룻바닥을 평범하게 디디지 않고 걸음마다 뒤꿈치에서 발끝으로 옮겨 디뎠다. 자신의 노랫소리를 들을 때만큼이나 뒤꿈치가 규칙적으로 딱딱 울리고 발끝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즐겁게 들었다. 거울 곁을 지나며 그 속을 바라보았다. ‘자, 이것이 나야!’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발견한 그녀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래, 아주 좋아! 나에게는 아무도 필요 없어.’

하인 한 사람이 방에서 무언가를 치우려고 들어오려 했지만 나타샤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인이 나간 뒤 문을 닫고 다시 걸었다. 그날 아침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도취되는, 가장 좋아하던 기분으로 돌아왔다. ‘나타샤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녀는 여러 사람을 대표하는 어떤 제삼의 남자가 말하듯 다시 생각했다. ‘예쁘고 목소리도 좋고 젊으며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내버려두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아무리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이제는 마음이 편할 수 없었고, 곧 그 사실을 느꼈다.

현관에서 바깥문이 열리고 누군가 “계십니까?”라고 묻는 소리가 난 뒤 발소리가 들렸다. 나타샤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현관에서 나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다시 자기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 얼굴은 창백했다. *그분*이었다. 닫힌 문 너머로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히 알았다.

창백하고 흥분한 나타샤는 응접실로 달려갔다.

“엄마! 볼콘스키가 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엄마, 무서워요. 견딜 수가 없어요! 나는…… 괴로워하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해요?…….”

백작부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드레이 공작이 흥분하고 진지한 얼굴로 방에 들어왔다. 나타샤를 보자마자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백작부인과 나타샤의 손에 입을 맞추고 소파 곁에 앉았다.

“찾아뵙는 기쁨을 누린 지 오래되었군요…….” 백작부인이 말을 꺼냈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은 그녀가 하려던 질문에 대답하며 말을 끊었다. 해야 할 말을 서둘러 꺼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것은 아버지께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일을 의논해야 했습니다. 어젯밤에야 돌아왔습니다.” 그는 나타샤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멈춘 뒤 덧붙였다. “백작부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백작부인은 깊이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말씀하세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타샤는 자리를 떠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언가가 목을 움켜쥐었고, 예의도 잊은 채 눈을 크게 뜨고 안드레이 공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바로 이 순간에!……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다시 나타샤를 흘끗 바라보자 그녀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렇다. 지금 당장, 바로 이 순간에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터였다.

“가거라, 나타샤! 내가 부르마.” 백작부인이 속삭였다.

나타샤는 두려움과 애원이 담긴 눈으로 안드레이 공작과 어머니를 바라보고 나갔다.

“따님의 손을 청하려고 왔습니다, 백작부인.”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백작부인의 얼굴이 뜨겁게 붉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작님의 청혼은…….” 마침내 그녀가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침묵하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공작님의 청혼은…….” 백작부인은 당황했다. “우리에게 기쁜 일이고, 청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도 기쁩니다. 남편도…… 그럴 거라고 믿지만…… 그 애의 뜻에 달렸습니다…….”

“백작부인께서 동의하시면 따님과 이야기하겠습니다…… 동의해 주시겠습니까?”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네.” 백작부인이 대답했다.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드레이 공작이 손에 입을 맞추려고 몸을 굽히자, 그녀는 낯선 느낌과 다정함이 뒤섞인 감정을 품고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아들처럼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가 자신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남자라고 느꼈다. “남편도 동의하리라고 확신합니다.” 백작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공작님의 아버지는…….”

“제 계획을 말씀드린 아버지는 결혼식을 1년 동안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분명히 내걸고 동의하셨습니다. 그 점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나타샤가 아직 어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오래나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애를 보내겠습니다.” 백작부인은 말하고 방을 나갔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녀는 딸을 찾으며 되풀이했다.

소냐는 나타샤가 침실에 있다고 말했다. 나타샤는 창백한 얼굴에 눈물도 없이 침대에 앉아 성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빨리 성호를 그으며 무언가 속삭였다. 어머니를 보자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그래서요, 엄마?…… 어떻게 됐어요?…….”

“가거라, 그분에게 가. 네게 청혼하셨다.” 백작부인은 나타샤가 느끼기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가거라.” 어머니는 달려 나가는 딸에게 슬프고 나무라는 듯 말하며 깊이 한숨을 쉬었다.

나타샤는 자신이 어떻게 응접실로 들어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방에 들어가 그를 보자 멈춰 섰다. ‘이 낯선 사람이 이제 내게 *모든 것*이 되었다는 말인가?’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고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 모든 것이야! 이제 이 세상 모든 것보다 그분 한 사람만이 소중해.’ 안드레이 공작은 눈을 내리깔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희망을 품어도 되겠습니까?”

그는 나타샤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진지하고 열정적인 표정에 놀랐다.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물으세요? 모를 수 없는 일을 왜 의심하세요? 느끼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왜 말을 하세요?’

나타샤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멈추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입을 맞추었다.

“나를 사랑합니까?”

“네, 네!” 나타샤는 화가 난 듯 중얼거렸다. 이어 큰 한숨을 쉬더니 숨이 갈수록 가빠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아, 너무 행복해요!” 그녀는 대답했다. 눈물 사이로 미소 짓고 그에게 더욱 가까이 몸을 숙였다. 잠시 머뭇거리며 그렇게 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듯하다가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나타샤의 두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았지만 마음속에서 전에 느낀 사랑을 찾지 못했다.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갑자기 변했다. 예전처럼 시적이고 신비한 갈망의 매력은 사라졌다. 대신 여자로서, 아이로서 드러내는 그녀의 나약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과, 그녀의 헌신과 믿음을 마주한 두려움, 그리고 이제 자신을 그녀에게 영원히 결속시키는 의무에 대한 무겁지만 기쁜 감각이 있었다. 지금의 감정은 예전처럼 밝고 시적이지는 않았지만 더 강하고 진지했다.

“어머니께서 1년 동안은 결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안드레이 공작은 여전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내가, 모두가 ‘철부지 처녀’라고 부르던 내가 이제 이 낯설고 사랑스럽고 영리한 남자, 아빠조차 존경하는 이 사람의 *아내*이자 동등한 사람이 된다는 말인가?’ 나타샤는 생각했다. ‘정말일까? 정말 이제는 삶을 장난처럼 대할 수 없고, 내가 어른이 되어 내 모든 말과 행동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 그런데 그분이 무엇을 물었지?’

“아니요.” 그녀는 대답했지만 그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어리고 나는 이미 인생에서 너무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걱정됩니다. 당신은 아직 자신을 모르니까요.”

나타샤는 온 정신을 집중해 들으며 그의 말뜻을 이해하려 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내 행복을 미루는 이 1년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안드레이 공작이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는 자신을 확실히 알 시간이 될 겁니다. 1년 뒤 나를 행복하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우리의 약혼은 비밀로 해 둡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거나,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안드레이 공작은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나타샤가 그의 말을 끊었다. “당신이 오트라드노예에 처음 오신 바로 그날부터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그녀는 자신이 진실을 말한다고 굳게 믿으며 외쳤다.

“1년 동안 자신을 알게 될 겁니다…….”

“꼬박 1년이라고요!” 나타샤는 갑자기 되풀이했다. 결혼을 1년 동안 미룬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왜 1년이에요? 왜 1년이나…….”

안드레이 공작은 결혼을 미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타샤는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결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얼굴에 드러났다.

“끔찍해요! 아, 정말 끔찍해요! 끔찍해!” 나타샤는 갑자기 외치고 다시 흐느껴 울었다. “1년을 기다리다가는 죽고 말 거예요. 그럴 수 없어요, 끔찍해요!”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자 동정과 당혹감이 떠올라 있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무엇이든 할게요!”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그치며 말했다. “나는 정말 행복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에 들어와 약혼한 두 사람을 축복했다.

그날부터 안드레이 공작은 나타샤의 약혼자로 로스토프 집을 자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