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8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8장

《전쟁과 평화》 제6권 8장 삽화

피에르는 또다시 그토록 두려워하던 우울에 사로잡혔다. 지부에서 연설한 뒤 사흘 동안 그는 집의 소파에 누워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디에도 나가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아내에게서 편지가 왔다. 아내는 만나 달라고 간청하면서 피에르 때문에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 또 자신의 온 생애를 그에게 바치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적었다.

편지 끝에는 며칠 뒤 외국에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겠다고 알렸다.

그 편지에 뒤이어 피에르가 다른 이들보다 덜 존경하는 프리메이슨 형제 한 사람이 억지로 그를 찾아왔다. 그는 대화를 피에르의 부부 문제로 돌리더니, 형제로서 충고한다며 아내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잘못이고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프리메이슨의 첫째가는 규칙 가운데 하나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와 동시에 장모인 바실리 공작의 아내도 아주 중요한 일을 의논해야 한다며 단 몇 분만이라도 찾아와 달라고 간청했다. 피에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상대로 일을 꾸미고 있으며, 자신과 아내를 다시 결합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의 심정으로는 그 일이 싫지만도 않았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인생의 어떤 것도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고, 자신을 사로잡은 우울 탓에 그는 자유도, 아내를 벌하겠다는 결심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옳은 사람도 없고 잘못한 사람도 없다. 그러니 그 여자에게도 잘못은 없다.’ 그는 생각했다.

피에르가 아내와 다시 결합하는 데 즉시 동의하지 않은 것은 우울한 상태라 어떤 행동도 취할 힘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 뿐이었다. 아내가 그에게 찾아왔다면 돌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제에 견주어 보면 아내와 함께 사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니었던가?

피에르는 아내에게도 장모에게도 답하지 않은 채 어느 날 밤늦게 여행 준비를 하고 요시프 알렉세예비치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떠났다.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모스크바, 11월 17일*

방금 은인에게서 돌아와 내가 겪은 일을 서둘러 적는다. 요시프 알렉세예비치는 궁핍하게 살며 3년째 고통스러운 방광 질환을 앓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가 신음하거나 불평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아주 소박한 음식을 먹는 때를 제외하고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문을 연구한다. 그는 다정하게 나를 맞아 자신이 누운 침대에 앉게 했다. 내가 동방과 예루살렘 기사단의 표지를 해 보이자 그도 같은 방식으로 응답한 뒤,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프로이센과 스코틀랜드 지부에서 무엇을 배우고 얻었는지 물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이야기했고, 우리 페테르부르크 지부에 제안한 내용과 그것이 받은 좋지 않은 반응, 형제들과의 결별에 대해서도 말했다. 요시프 알렉세예비치는 오랫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 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들려주었다. 그 말은 곧바로 내 지난날 전체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환히 밝혀 주었다. 그는 결사의 세 가지 목적을 기억하느냐고 물어 나를 놀라게 했다. 첫째는 비의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것, 둘째는 비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정화하고 개조하는 것, 셋째는 그러한 정화를 추구함으로써 인류를 개선하는 것이다. 이 셋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자기 개조와 자기 정화다. 오직 이 목적만은 어떤 환경에서도 언제나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목적이 우리에게 가장 큰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교만에 이끌려 이 목적을 놓치고, 불결한 자신에게는 받아들일 자격이 없는 비의에 몰두하거나, 스스로 비열함과 방탕의 본보기를 보이면서 인류를 개조하려 든다. 일루미나티주의는 사회 활동에 이끌리고 교만으로 부풀어 오른다는 바로 그 이유로 순수한 교리가 아니다. 요시프 알렉세예비치는 이를 근거로 내 연설과 활동 전체를 꾸짖었고,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내 집안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는 말했다. “내가 이미 말했듯이, 참된 프리메이슨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자신을 완성하는 데 있네. 우리는 흔히 삶의 모든 어려움을 없애면 목적에 더 빨리 다다르리라 생각하지만, 사랑하는 벗이여, 실은 그 반대라네. 오직 세속의 근심 한가운데에서만 우리는 세 가지 주요 목적을 이룰 수 있네. 첫째는 자기 인식이네. 인간은 비교를 통해서만 자신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 둘째는 자기 완성인데, 이는 투쟁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네. 셋째는 가장 중요한 덕, 곧 죽음에 대한 사랑을 얻는 것이네. 오직 삶의 부침만이 그 허무함을 보여 주고, 우리에게 타고난 죽음에 대한 사랑, 다시 말해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 대한 사랑을 키워 줄 수 있네.” 이 말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요시프 알렉세예비치는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코 삶에 싫증을 내지 않지만 죽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이 그토록 순수하고 고결함에도 그는 아직 자신이 죽음을 맞을 만큼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어 은인은 창조의 대정방형이 지닌 의미를 내게 온전히 설명하고, 3과 7이라는 수가 만물의 기초임을 일러 주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 형제들과의 교제를 피하지 말되 지부에서는 2등급 직책만 맡고, 형제들이 교만에서 벗어나 자기 인식과 자기 완성이라는 참된 길로 향하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자신을 감시하라고 충고했고, 이를 위해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내 모든 행동을 기록하게 될 이 수첩을 주었다.

*페테르부르크, 11월 23일*

나는 다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장모가 눈물을 흘리며 찾아와 엘렌이 이곳에 와 있고 내게 자기 말을 들어 달라고 간청한다고 말했다. 엘렌은 죄가 없으며, 내가 버린 탓에 불행하다는 등의 말을 했다. 한번이라도 만나 주면 아내가 바라는 일을 계속 거절할 힘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누구에게 도움과 충고를 구해야 할지 몰랐다. 은인이 이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주었을 것이다. 방으로 가서 요시프 알렉세예비치의 편지를 다시 읽고, 그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 모든 것에서 나는 간청하는 사람을 거절해서는 안 되며, 누구에게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고, 특히 나와 그토록 긴밀히 결속된 사람에게는 더욱 그래야 하며, 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내가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아내를 용서한다면, 그녀와의 결합은 오직 정신적인 목적만을 지녀야 한다. 나는 그렇게 결심했고 그 내용을 요시프 알렉세예비치에게 썼다. 아내에게는 과거를 잊어 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무엇이든 용서해 달라고 했으며, 자신에게는 아내를 용서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기뻤다. 아내를 다시 만나는 일이 내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그녀가 알 필요가 없다. 나는 이 큰 저택의 위층에 자리를 잡았으며, 다시 태어난 듯한 행복한 기분을 맛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