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7권 1810~1811년 / 제1장
《전쟁과 평화》 · 제7권 1810~1811년

제1장

《전쟁과 평화》 제7권 1장 삽화

성서의 전승에 따르면 노동이 없는 상태, 곧 무위는 타락하기 전 최초의 인간이 누리던 복된 상태 가운데 하나였다. 타락한 인간은 무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했지만, 인류를 짓누르는 저주는 이마에 땀을 흘려 양식을 구해야 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우리의 도덕적 본성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마음까지 편할 수는 없다는 데에도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잘못하고 있다고 내면의 목소리가 일러 준다.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를 찾을 수 있다면, 태초의 복된 상태 가운데 하나를 되찾은 셈일 것이다. 이렇게 의무로 정해져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 무위는 한 계층 전체, 곧 군인들의 몫이다. 군 복무의 가장 큰 매력은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강제되면서도 비난받지 않는 무위에 있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1807년 이후에도 파블로그라드 연대에 계속 복무하며 이 복된 상태를 마음껏 누렸다. 그는 이미 데니소프에게서 넘겨받은 기병중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로스토프는 털털하고 선량한 사나이가 되었다. 모스크바 지인들이 보았다면 다소 품위 없다고 여겼겠지만, 전우와 부하와 상관들은 그를 좋아하고 존경했으며 그 자신도 생활에 무척 만족했다. 최근인 1809년부터 집에서 오는 편지에는 집안 형편이 갈수록 더 어지러워진다는 어머니의 하소연이 자주 담겼다. 이제는 늙은 부모를 기쁘게 하고 위로하기 위해 그가 돌아와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편지를 읽을 때마다 니콜라이는 온갖 삶의 얽힘에서 보호받으며 이토록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내는 환경에서 가족들이 자신을 데려가려 한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곤란한 문제와 일들, 관리인들과의 결산, 다툼과 음모, 친척 관계와 사교 생활, 소냐의 사랑과 자신이 한 약속이 뒤엉킨 삶의 소용돌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끔찍할 만큼 어렵고 복잡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프랑스어로 차갑고 격식을 갖춘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어머니”로 시작해 “어머니의 순종하는 아들”로 끝나는 편지에는 언제 돌아갈지 전혀 쓰지 않았다. 1810년에 부모에게서 온 편지에는 나타샤가 볼콘스키와 약혼했고 늙은 공작이 반대해 결혼식은 1년 뒤에 열릴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편지는 니콜라이를 슬프게 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무엇보다 가족 중 누구보다 아끼는 나타샤를 집에서 잃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또 기병 장교의 관점에서는, 그 자리에 있었다면 볼콘스키라는 사람에게 자기 집안과 인연을 맺는 일이 그다지 대단한 영광은 아니며 나타샤를 사랑한다면 늙어 빠진 아버지의 허락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는 잠시 휴가를 신청해 나타샤가 결혼하기 전에 만나 볼까 망설였다. 그러나 곧 군사 훈련이 시작되었고 소냐와 어지러운 집안 형편에 관한 생각도 들어 다시 귀향을 미뤘다. 그러다 그해 봄 아버지 몰래 쓴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그가 와서 일을 맡지 않으면 전 재산이 경매에 넘어가고 온 가족이 구걸하게 되리라고 썼다. 백작은 너무 나약하고 미텐카를 지나치게 믿었으며 마음도 너무 좋아서 모두가 그를 이용했고, 형편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네가 나와 온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부탁하니 당장 돌아오너라.” 백작부인은 이렇게 썼다.

이 편지는 니콜라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에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곧바로 알아차리는 실무가의 상식이 있었다.

지금 옳은 일은 전역까지는 아니더라도 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왜 가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점심 뒤 낮잠을 자고 나서 오랫동안 아무도 타지 않은 몹시 사나운 잿빛 종마 마르스에 안장을 얹으라고 명령했다. 거품투성이가 된 말을 타고 돌아온 뒤 라브루시카(데니소프의 하인으로 니콜라이 곁에 남아 있었다)와 저녁에 찾아온 전우들에게 휴가를 신청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알렸다. 참모부에서 자신이 대위로 진급할지, 지난 군사 훈련으로 성 안나 훈장을 받을지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떠난다는 생각은 어렵고 이상했다. 그는 그 일에 몹시 마음을 쓰고 있었다. 자신이 2천 루블에 팔겠다고 내기를 걸었고 가격을 흥정하는 폴란드인 골루홉스키 백작에게 적갈색 바탕에 흰 털이 섞인 말 세 필를 팔지 못한 채 떠난다는 것도 이상했다. 폴란드인 프샤즈지에츠카 양을 위해 경기병들이 여는 무도회도 그 없이 열린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창기병들이 폴란드인 보르조조프스카 양을 위해 무도회를 연 데 맞서서 마련한 행사였다. 그러나 그는 이 훌륭하고 밝은 세계를 떠나 모든 것이 어리석고 혼란스러운 어떤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주일 뒤 휴가를 받았다. 같은 연대뿐 아니라 여단 전체의 경기병 전우들은 한 사람당 15루블씩 거둬 니콜라이에게 송별 만찬을 열어 주었다. 악단 두 팀과 합창단 두 팀이 함께했다. 로스토프는 바소프 소령과 트레파크 춤을 추었다. 술 취한 장교들은 그를 헹가래 치고 끌어안다가 떨어뜨렸다. 제3기병중대의 병사들도 그를 헹가래 치며 “우라!”를 외쳤다. 그러고는 썰매에 태워 첫 역참까지 배웅했다.

여행의 전반부인 크레멘추크에서 키예프까지는 이런 경우에 흔히 그렇듯 로스토프의 모든 생각이 뒤에 남겨 둔 기병중대를 향했다. 그러나 여정의 절반을 넘어서자 적갈색 바탕에 흰 털이 섞인 말 세 필과 보급 담당관 도조베이코를 잊기 시작했다. 오트라드노예의 형편이 어떨지, 그곳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불안하게 생각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집에 관한 생각은 강해졌다. 마치 그의 감정도 인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법칙을 따르기라도 하듯 훨씬 더 강해졌다. 오트라드노예 전 마지막 역참에서 마부에게 3루블의 사례금을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어린아이처럼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재회의 환희와,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렀을까?’ 하는 충족되지 않은 기대의 묘한 감정이 지나가자 니콜라이는 옛 가정의 세계에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거의 그대로였고 조금 늙었을 뿐이었다. 예전에는 없던 불안과 이따금 생기는 불화가 새로워진 점이었다. 니콜라이는 곧 그 까닭이 집안의 어려운 형편에 있음을 알아냈다. 소냐는 거의 스무 살이 되었다. 더는 아름다워지지 않았고 현재 모습보다 나아질 가능성도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니콜라이가 돌아온 뒤 그녀의 온몸에서는 행복과 사랑이 흘러나왔다. 이 처녀의 충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은 그를 기쁘게 했다. 페탸와 나타샤가 니콜라이를 가장 놀라게 했다. 페탸는 열세 살의 크고 잘생긴 소년이 되어 있었다. 명랑하고 재치 있고 장난기 많았으며 목소리도 벌써 변성하고 있었다. 나타샤는 니콜라이가 바라볼 때마다 오랫동안 놀라 웃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너는 전과 전혀 다르구나.” 그가 말했다.

“어떻게요? 더 못생겨졌어요?”

“그 반대야. 그런데 이 위엄은 뭐지? 꼭 공작 영애 같구나!” 그는 나타샤에게 속삭였다.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나타샤가 기쁘게 외쳤다.

나타샤는 안드레이 공작과 나눈 사랑 이야기와 그가 오트라드노예를 찾아온 일을 들려주고,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도 보여 주었다.

“오빠도 기뻐요?” 나타샤가 물었다. “나는 이제 아주 평온하고 행복해요.”

“아주 기쁘지.” 니콜라이가 대답했다. “훌륭한 사람이야…… 그런데 아주 많이 사랑하니?”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나타샤가 대답했다. “나는 보리스도, 선생님도, 데니소프도 사랑했지만 이것은 전혀 달라요.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됐어요. 그분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이제 나는 차분하고 만족스러워요. 전과는 전혀 달라요.”

니콜라이는 결혼을 1년이나 미루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타샤는 격앙된 태도로 오빠에게 맞섰다. 달리할 수 없고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그 집안에 들어가는 것은 나쁜 일이며 자신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오빠는 전혀 이해하지 못해요.” 그녀가 말했다.

니콜라이는 침묵하고 나타샤의 말에 동의했다.

오빠는 나타샤를 바라보며 자주 놀랐다. 약혼한 남자와 헤어져 지내는 사랑에 빠진 처녀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감정은 고르고 차분했으며 예전처럼 쾌활했다. 니콜라이는 그것이 놀라웠고 볼콘스키의 구혼까지 의심스럽게 보았다. 특히 나타샤가 안드레이 공작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그녀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이 혼담에는 언제나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듯했다.

‘왜 미루는 거지? 왜 약혼식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생각했다. 한번은 어머니와 이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어머니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결혼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 놀라면서도 얼마간 만족했다.

“여기 그분이 쓴 편지를 보렴.” 어머니는 딸의 장래 결혼 행복을 두고 어머니가 늘 품는 숨은 불만을 드러내며 안드레이 공작의 편지를 아들에게 보여 주었다. “12월 전에는 오지 않겠다고 썼구나. 무엇이 그분을 붙들고 있을까? 아마 병이겠지! 건강이 아주 약하잖니. 나타샤에게는 말하지 마라. 그 애가 저렇게 명랑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도 말고. 처녀 시절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 거야. 하지만 그분의 편지가 올 때마다 그 애가 어떤지 나는 안다! 그래도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하느님께 빌어야지!” 백작부인은 언제나 이 말로 끝맺었다. “그분은 훌륭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