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19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19장

《전쟁과 평화》 제6권 19장 삽화

이튿날 안드레이 공작은 그동안 찾아가지 못했던 몇몇 집을 방문했다. 무도회에서 다시 인사를 나눈 로스토프 집안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예의상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마음에 그토록 유쾌한 인상을 남긴 독특하고 열정적인 처녀가 자기 집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다.

나타샤는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짙은 푸른색 실내복을 입은 그녀는 안드레이 공작의 눈에 무도회복을 입었을 때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와 로스토프 가족 모두는 오랜 친구를 맞이하듯 소박하고 다정하게 그를 환영했다. 전에 안드레이 공작이 엄격하게 평가했던 온 가족은 이제 훌륭하고 소박하며 마음씨 좋은 사람들로 보였다. 페테르부르크에서는 특히 기분 좋은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노백작의 환대와 선량함 때문에, 안드레이 공작은 만찬까지 머물러 달라는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 그는 생각했다. ‘이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다. 물론 나타샤라는 얼마나 귀중한 보물을 지녔는지 조금도 모르지만 마음씨가 착한 이들이다. 생명력으로 넘치는, 놀라울 만큼 시적이고 매력적인 이 아가씨를 돋보이게 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배경은 없을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나타샤에게서 자신과 전혀 다르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기쁨으로 가득 찬 기묘한 세계를 느꼈다. 오트라드노예의 가로수길과 달 밝은 그날 밤의 창가에서 이미 그를 당혹스럽게 했던 또 하나의 세계였다. 이제 그 세계는 더 이상 그를 당혹스럽게 하지 않았고 낯설지도 않았다. 그 자신이 그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만찬 뒤 나타샤는 안드레이 공작의 부탁을 받고 클라비코드로 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창가에 서서 부인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이야기 도중 그는 말을 멈추고 갑자기 눈물이 목을 메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는 노래하는 나타샤를 바라보았고, 영혼 속에서는 새롭고 기쁜 무언가가 움직였다.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슬펐다. 울 이유라고는 전혀 없는데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인가? 지난날의 사랑? 리자 공작부인? 환멸?…… 미래에 대한 희망?……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가장 큰 까닭은 자기 안의 무한히 위대하고 끝없는 무언가와, 자신과 심지어 그녀까지도 이루고 있는 유한하고 물질적인 무언가 사이의 무서운 대조를 갑자기 생생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노래하는 동안 그 대조는 그를 짓누르면서도 기쁘게 했다.

노래를 마치자마자 나타샤는 그에게 다가와 자신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물었다. 묻고 나서 그런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느끼며 당황했다. 그는 나타샤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을 좋아하듯 그녀의 노래도 좋다고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밤늦게 로스토프 집을 떠났다. 습관대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곧 잠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촛불을 켜고 침대에 앉았다가 일어서고 다시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답답한 방에서 하느님의 신선한 공기 속으로 막 나온 듯 영혼이 생기와 기쁨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타샤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녀에 관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속에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삶 전체가 새로운 빛 속에 나타났다. ‘온갖 기쁨을 품은 삶, 삶 전체가 내 앞에 열려 있는데 나는 왜 이 좁고 폐쇄된 틀 안에서 애쓰고 고생하는가?’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행복한 미래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들의 교육을 직접 돌보고 가정교사를 찾아 아이를 맡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뒤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외국으로 가서 영국과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보아야 했다. ‘내 안에 이토록 힘과 젊음이 넘치는 동안 자유를 활용해야 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행복해지려면 행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피에르가 말했을 때 그는 옳았다. 이제 나는 그것을 믿는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고 행복해야 한다!’ 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