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22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22장

《전쟁과 평화》 제6권 22장 삽화

이튿날 안드레이 공작은 백작의 초대를 받아 로스토프 가족과 만찬을 함께하고 남은 하루를 그곳에서 보냈다.

집안사람들은 안드레이 공작이 누구 때문에 찾아왔는지 모두 알아차렸다. 그도 그 사실을 감추지 않고 온종일 나타샤와 함께 있으려 했다. 두려우면서도 행복하고 황홀한 나타샤의 마음뿐 아니라 온 집안에, 반드시 일어날 어떤 중대한 일을 앞둔 듯한 경외감이 감돌았다. 백작부인은 안드레이 공작이 나타샤와 이야기할 때 슬프고 엄숙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쪽을 바라보기만 하면 소심하게 꾸며 낸 하찮은 대화를 시작했다. 소냐는 나타샤를 혼자 두기도 두려웠고, 두 사람 곁에 있으면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웠다. 나타샤는 잠시라도 그와 단둘이 남으면 기다림에서 오는 공포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드레이 공작의 소심한 태도는 그녀를 놀라게 했다. 그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저녁에 안드레이 공작이 떠난 뒤 백작부인은 나타샤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그래, 어떻게 됐니?”

“엄마! 제발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그 일은 말할 수 없어요.” 나타샤가 말했다.

그런데도 그날 밤 나타샤는 흥분했다가 두려워하면서 어머니의 침대에 오래 누워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칭찬했고,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어떻게 말했으며, 여름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지 어떻게 물었고, 이어 보리스에 관해서는 어떻게 물었는지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런…… 이런 일은…… 전에 한 번도 없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다만 그분 앞에 있으면 두려워요.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두려워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정말 사랑이라는 뜻일까요? 그렇죠? 엄마, 자요?”

“아니, 얘야. 나도 두렵구나.” 어머니가 대답했다. “이제 가 보렴!”

“어차피 잠들지 못할 거예요. 자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에요! 엄마! 엄마! 이런 일은 전에 한 번도 없었어요.” 그녀는 자기 안에서 깨달은 감정에 놀라고 두려워하며 말했다. “우리가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나타샤는 오트라드노예에서 안드레이 공작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미 그를 사랑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때 바로 이 사람을 선택했고(그녀는 자신이 그랬다고 굳게 믿었다), 이제 다시 만난 그 사람도 자신에게 무관심하지 않은 듯하다는 이 낯설고 뜻밖의 행복이 오히려 두려운 것 같았다.

“우리가 이곳에 있을 때 그분이 일부러 페테르부르크에 오게 되다니. 우리가 그 무도회에서 만나게 되다니. 운명이에요. 분명 운명이에요. 모든 일이 이것을 향해 이어졌어요! 바로 *그때*, 그분을 보자마자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어요.”

“그분이 또 무슨 말을 했니? 그 시들은 무엇이고? 읽어 보렴…….” 어머니는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나타샤의 앨범에 적어 준 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엄마, 그분이 홀아비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죠?”

“그만하렴, 나타샤! 하느님께 기도해라. ‘혼인은 하늘에서 맺어지는 법’이란다.” 어머니가 말했다.

“사랑하는 엄마, 정말 사랑해요!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나타샤는 기쁨과 흥분의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끌어안고 외쳤다.

바로 그때 안드레이 공작은 피에르와 함께 앉아 나타샤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그녀를 아내로 맞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날 엘렌 백작부인은 자기 집에서 모임을 열었다. 프랑스 대사와 최근 그녀의 집을 자주 찾는 외국 왕족 공작, 수많은 저명한 신사와 숙녀가 참석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피에르는 방들을 지나가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고 멍하며 침울한 모습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무도회가 열린 뒤부터 피에르는 신경성 우울이 발작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아내가 왕족 공작과 가까워진 뒤 뜻밖에도 궁정 시종관이 된 그는, 그때부터 궁정 사교계에서 억압감과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사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어두운 생각도 전보다 자주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돌봐 주던 나타샤와 안드레이 공작 사이에서 알아차린 감정은 자신의 처지와 친구의 처지를 대비시켜 그의 침울함을 더욱 짙게 했다. 아내에 관한 생각도, 나타샤와 안드레이 공작에 관한 생각도 똑같이 피하려 했다. 모든 것이 영원에 견주면 또다시 하찮게 보였고,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악령을 몰아내기를 바라며 밤낮으로 프리메이슨 업무를 억지로 붙들었다. 자정 무렵 백작부인의 방을 떠난 피에르는 위층의 천장이 낮고 담배 연기로 흐린 자기 방에서 낡은 실내복을 입고 앉아, 탁자 위에서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 지부의 회의록 원문을 베끼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들어왔다. 안드레이 공작이었다.

“아, 자네였군!” 피에르는 골똘하고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열심히 일하는 중이네.” 그는 불행한 사람들이 일로 삶의 괴로움에서 도피할 때 짓는 표정으로 원고를 가리켰다.

새로운 생명으로 황홀해진 듯 얼굴을 환히 밝힌 안드레이 공작은 피에르 앞에 멈추었다. 친구의 슬픈 표정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행복한 사람의 이기심으로 그에게 미소 지었다.

“그래, 친구.” 그가 말했다. “어제 자네에게 말하려 했고 오늘은 그 말을 하러 왔네. 이런 일은 전에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어. 친구, 나는 사랑에 빠졌네!”

피에르는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안드레이 공작 곁의 소파에 무거운 몸을 털썩 내려놓았다.

“나타샤 로스토바와, 그런가?” 그가 말했다.

“그래, 그래! 그 아이 말고 또 누가 있겠나? 전에는 절대로 믿지 않았겠지만 이 감정은 나보다 강해. 어제는 괴로워하며 고통받았지만, 그 고통조차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네. 나는 지금껏 살아 있지 않았어. 이제야 비로소 사는 것 같지만 그 아이 없이는 살 수 없네! 하지만 그 아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아이에게 너무 늙었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나?”

“내가? 내가? 자네에게 뭐라고 말했었지?” 피에르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네…… 그 아가씨는 보물이야…… 보기 드문 사람이네…… 친구, 부탁이니 이리저리 따지지도 의심하지도 말고 결혼하게, 결혼해, 결혼하라고…… 그러면 자네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으리라고 확신하네.”

“하지만 그 아이는?”

“자네를 사랑해.”

“허튼소리 말게…….” 안드레이 공작은 미소 지으며 피에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랑한다니까. 나는 알아.” 피에르가 사납게 외쳤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 보게.” 안드레이 공작은 피에르의 팔을 붙잡고 다시 말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아나? 누군가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야겠네.”

“그래, 어서 말하게. 나는 정말 기뻐.” 피에르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실제로 달라졌고 이마의 주름이 펴졌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안드레이 공작의 말에 귀 기울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전혀 다른 사람, 완전히 새로워진 사람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의 우울과 삶에 대한 경멸과 환멸은 어디로 갔는가? 안드레이 공작이 마음을 터놓기로 한 사람은 피에르뿐이었다. 그는 영혼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피에르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그는 먼 미래의 계획을 대담하고 가볍게 세웠다. 아버지의 변덕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희생할 수는 없다고 말했고, 아버지가 이 결혼에 동의해 나타샤를 사랑하게 만들거나 동의 없이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사로잡은 감정을 자기와는 별개이고 독립된 낯선 무언가인 듯 경탄했다.

“내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도 믿지 않았을 걸세.”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전에 알았던 감정과는 전혀 달라. 이제 내게 온 세상은 두 부분으로 나뉘었네. 한쪽은 그 아이가 있는 곳이고, 그곳에는 기쁨과 희망과 빛이 모두 있네. 다른 한쪽은 그 아이가 없는 모든 곳이고, 그곳에는 음울함과 어둠뿐이야…….”

“어둠과 음울함.” 피에르가 되풀이했다. “그래, 그래, 무슨 말인지 아네.”

“빛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나는 무척 행복하네! 자네는 나를 이해하지? 자네가 나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을 아네.”

“그래, 그래.” 피에르는 감동하면서도 슬픈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며 맞장구쳤다. 안드레이 공작의 운명이 밝게 보일수록 자신의 운명은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