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 제3장
《전쟁과 평화》 · 제6권 1808~1810년

제3장

《전쟁과 평화》 제6권 3장 삽화

다음 날 아침, 안드레이 공작은 백작에게만 작별을 고하고 여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은 채 집으로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옹이진 늙은 참나무가 그토록 기이하고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주었던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섰을 때에는 벌써 유월 초였다. 숲은 이제 온통 잎이 무성하고 그늘이 짙고 빽빽해져, 마구에 달린 방울 소리가 여섯 주 전보다 한층 둔하게 울렸다. 숲속 여기저기에 흩어진 어린 전나무들도 더는 전체의 아름다움에 거슬리지 않았다. 주위 분위기에 어우러져 솜털 같은 새순을 달고 연한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온종일 더웠다. 어디선가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었으나 조그만 구름 하나가 빗방울 몇 개를 흩뿌려 길과 물오른 잎들을 살짝 적셨을 뿐이었다. 숲의 왼쪽은 그늘에 잠겨 어두웠고, 오른쪽은 햇빛 속에서 젖고 윤이 나 반짝였으며 산들바람에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꽃을 피우고 있었고, 나이팅게일은 지저귀며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번갈아 울림을 보내왔다.

‘그래, 이 숲 어딘가에 내가 뜻을 같이했던 그 참나무가 있었지.’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 있지?’ 그는 길 왼쪽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찾던 바로 그 참나무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완전히 달라진 늙은 참나무는 물오른 짙은 초록 잎으로 둥근 지붕을 활짝 펼치고, 저녁 햇살 속에서 황홀한 듯 가볍게 떨며 서 있었다. 옹이진 손가락도, 오래된 상처도, 지난날의 의심과 슬픔도 이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잔가지조차 없는 곳에서도 단단한 백 년 묵은 껍질을 뚫고 잎이 돋아나 있었다. 그 노목이 그런 잎을 피워 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 바로 그 참나무야.’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그러자 갑자기 까닭을 설명할 수 없는 봄날의 기쁨과 새로 태어나는 듯한 감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삶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들이 일시에 기억 속으로 되살아났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던 아우스터리츠, 죽은 아내의 책망하는 얼굴, 나루터의 피에르, 밤의 아름다움에 벅차하던 소녀, 그 밤과 달,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갑자기 마음속으로 밀려들었다.

‘아니야, 서른한 살에 삶이 끝난 것은 아니야!’ 안드레이 공작은 갑자기 최종적이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나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해. 모두가 알아야 해. 피에르도, 하늘로 날아가고 싶어 하던 저 소녀도, 모두가 나를 알아야 해. 내 삶이 나만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이 내 삶과 동떨어져 살아가지 않도록 해야 해. 내 삶이 그들 모두에게 비치고, 그들과 내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해!’

 

집에 도착한 안드레이 공작은 그해 가을 페테르부르크로 가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을 뒷받침할 온갖 이유를 찾아냈다. 그가 페테르부르크로 가야 하며 관직에 다시 나가는 것마저 반드시 필요하다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한 달 전에는 고요한 시골을 떠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을 어떻게 의심한 적이 있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겪은 삶의 경험을 어떤 일에 적용하지 않고 다시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경험이 무의미하게 낭비되리라는 사실이 이제는 분명해 보였다. 지난날에도 이와 똑같이 보잘것없는 논리적 근거를 내세워 정반대의 결론을 명백한 진실처럼 여겼다는 사실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삶의 가르침을 얻고도 자신이 유익한 사람이 될 가능성과 행복이나 사랑의 가능성을 다시 믿는다면 스스로를 비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이성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랴잔 여행을 다녀온 뒤로 시골은 지루해졌고 예전의 일들에도 흥미를 잃었다. 서재에 혼자 앉아 있다가도 자주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가서 자기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죽은 리자의 초상화를 보았다. 그리스식으로 머리를 말아 올린 리자는 금빛 액자 속에서 다정하고 명랑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전처럼 끔찍한 말을 건네지 않고, 그저 명랑하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두 손을 등 뒤로 맞잡은 채 오랫동안 방 안을 거닐었다. 때로 얼굴을 찌푸리고 때로 미소를 지으며,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은 비이성적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죄처럼 은밀한 생각들을 되새겼다. 그 생각들은 피에르와 명성, 창가의 소녀, 참나무, 여인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이어져 있었다. 그런 순간 누군가 방에 들어오면 그는 유난히 냉정하고 엄격했으며, 무엇보다도 불쾌하리만큼 논리적으로 굴었다.

“오라버니.” 그런 때 마리야 공작 영애가 들어와 말하곤 했다. “오늘은 어린 니콜라이가 밖에 나갈 수 없어요. 날씨가 몹시 추워요.”

“날이 덥다면.” 안드레이 공작은 그럴 때마다 여동생에게 몹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속옷 차림으로 내보내도 되겠지. 하지만 날이 추우니 그런 때 입으라고 만든 따뜻한 옷을 입히면 돼. 날이 춥다는 사실에서 따라 나오는 결론은 그것이지, 바깥 공기가 필요한 아이를 집 안에 붙잡아 두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야.” 그는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는 은밀하고 비논리적인 감정 때문에 누군가를 벌주기라도 하듯 극도로 논리적인 어조로 덧붙였다.

그런 순간이면 마리야 공작 영애는 지적인 일이 남자들을 메마르게 만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