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렸어! 끝났어!’
안나는 창가에 선 채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러자 다 타버린 촛불 곁에서 느꼈던 어둠의 인상과 무서운 꿈의 기억이 하나로 합쳐져, 그 대답처럼 차가운 공포로 가슴을 가득 채웠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그녀는 소리쳤다.
방을 가로질러 가 거칠게 종을 울렸다. 이제 혼자 남아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워 하인이 오기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직접 마중 나가듯 문 쪽으로 걸어갔다.
“백작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하인은 백작이 마구간으로 갔다고 대답했다.
“마님께서 외출하고 싶으시면 마차를 곧 돌려보내라고도 하셨습니다.”
“좋아요. 잠깐만. 내가 지금 쪽지를 쓸 테니 미하일을 시켜 마구간으로 보내세요. 빨리요.”
안나는 앉아서 썼다.
‘내가 잘못했어요. 집으로 돌아와요. 우리 이야기해야 해요. 제발, 하느님을 생각해서라도 와줘요. 무서워요.’
그녀는 쪽지를 봉해 하인에게 건넸다.
이제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하인을 따라 방에서 나와 아이방으로 갔다.
‘아니야, 이건 그애가 아니야! 그애의 푸른 눈은 어디 있지? 그 다정하고 수줍은 미소는?’
생각이 뒤엉킨 탓에 아이방에서 세료자를 볼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던 안나는, 세료자 대신 통통하고 발그레하며 검은 머리를 한 어린 딸을 보자 가장 먼저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는 탁자 곁에 앉아 마개 하나를 탁자에 세게, 끈질기게 두드리며 까막까치밥 열매 두 알 같은 검은 눈으로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국인 보모에게 자기는 아주 건강하며 내일 시골로 떠날 것이라고 대답한 뒤, 안나는 딸 곁에 앉아 유리병 마개를 아이 앞에서 빙글빙글 돌려주었다.
그러나 아이가 맑고 큰 소리로 웃고 한쪽 눈썹을 움직이는 순간, 그것이 너무 생생하게 브론스키를 닮아서 안나는 터져 나오려는 흐느낌을 누르며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정말 모든 것이 끝난 걸까? 아니야. 그럴 수 없어. 그는 돌아올 거야. 하지만 그 여자와 이야기한 뒤 보였던 그 미소와 생기를 내게 어떻게 설명할 거지? 그래도 설명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믿어줄 거야. 내가 그를 믿지 못한다면 내게 남는 것은 하나뿐이야. 그런데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아.’
안나는 시계를 보았다.
열두 분이 지나 있었다.
‘지금쯤 쪽지를 받았고 돌아오고 있을 거야. 얼마 안 걸려. 열 분만 더…… 그런데 오지 않는다면?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울어서 눈이 부은 얼굴을 보여서는 안 돼. 씻으러 가자. 그래, 그런데 내가 머리는 빗었나, 안 빗었나?’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으나 기억할 수 없었다.
손으로 머리를 만져보았다.
‘빗기는 했어. 그런데 언제 빗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나.’
자기 손의 감각조차 믿을 수 없어 거울 앞으로 가 정말 머리를 빗었는지 확인했다.
분명 머리는 단정히 빗겨 있었다. 그러나 언제 그렇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누구지?’
안나는 거울 속에서 염증으로 붉어지고 이상하게 번쩍이는 두 눈으로 겁먹은 채 자기를 바라보는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나야.’
갑자기 그것이 자기임을 깨달았다.
거울 속 자기 몸 전체를 바라보자 브론스키의 입맞춤이 몸 위에 닿았던 감각이 살아났고, 그녀는 몸을 떨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고는 손을 입술로 들어 자기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게 뭐지? 내가 미쳐가는 건가?’
그녀는 침실로 갔다. 안누시카가 방을 정돈하고 있었다.
“안누시카.”
안나는 하녀 앞에 멈춰 섰으나 정작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자기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댁에 가시려고 하셨잖아요.”
하녀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말했다.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그래, 갈 거야.”
‘거기까지 십오 분, 돌아오는 데 십오 분. 그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고 곧 올 거야.’
안나는 시계를 꺼내 다시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이런 상태로 남겨두고 가버릴 수 있지? 나와 화해하지 않은 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어?’
창가로 가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으로 보면 이미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계산을 잘못했는지도 몰랐다. 다시 그가 떠난 시각을 떠올리고 몇 분이 지났는지 세기 시작했다.
자기 시계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큰 시계 쪽으로 가던 때 누군가가 집 앞에 도착했다.
창밖을 보니 그의 마차였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고 아래층에서 목소리들만 들렸다. 쪽지를 가지고 나갔던 사람이 그 마차를 타고 돌아온 것이었다.
안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백작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니제고로드 길로 가셨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녀는 발그레하고 명랑한 미하일이 자기 쪽지를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을 보며 물었다.
‘그래, 그는 이 쪽지를 받지도 못했어.’
그제야 기억났다.
“이 쪽지 그대로 백작부인 브론스카야의 시골집으로 가져가. 어디인지 알지? 그리고 즉시 답을 받아와.”
안나는 심부름꾼에게 말했다.
‘그럼 나는, 나는 뭘 하지?’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돌리에게 가자. 맞아. 안 그러면 정말 미쳐버릴 거야. 그리고 전보도 보낼 수 있어.’
그녀는 전보를 썼다.
‘당신과 반드시 이야기해야 해요. 지금 곧 와주세요.’
전보를 보내고 옷을 입으러 갔다.
이미 외출복을 입고 모자까지 쓴 뒤, 전보다 살이 오른 침착한 안누시카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작고 선한 회색 눈에는 뚜렷한 연민이 떠올라 있었다.
“안누시카, 얘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안나는 흐느끼며 말하고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걱정하실 것 없어요,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이런 일도 있는 거죠. 나가셨다가 기분을 좀 푸세요.”
하녀가 말했다.
“그래, 나갈 거야.”
안나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전보가 오면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댁으로 보내…… 아니, 내가 직접 돌아올게.”
‘그래, 생각하면 안 돼. 무언가 해야 해. 나가야 해. 무엇보다 이 집에서 나가야 해.’
자기 심장 속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끓어오름을 공포에 질려 느끼며 안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 마차에 올랐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부석에 오르기 전에 표트르가 물었다.
“즈나멘카, 오블론스키 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