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집에서 나온 레빈은 현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한동안 자기가 방금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또렷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생각만은 분명했다.
‘놀랍고, 사랑스럽고, 불쌍한 여자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스테판 아르카디예비치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내가 뭐랬나? 직접 보면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했잖아.”
레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안나를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던 그 얼굴, 자기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갑자기 밝아지던 눈, 미소 속에 비치는 지성과 진실성, 그리고 그 모든 것 뒤에 숨어 있던 무엇인가 애처롭고 불안한 것이 자꾸 떠올랐다.
집에 도착하자 쿠지마가 나와 키티는 잘 있으며, 처제들도 이미 돌아갔다고 말했다. 편지도 두 통 와 있었다. 하나는 소콜로프가 보낸 것으로, 밀을 푸드당 다섯 루블 반보다 더 받고 팔기는 어렵고 당장 들어올 돈도 없다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누이에게서 온 것으로 자기 부탁을 아직 처리하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는 편지였다.
평소라면 레빈은 이 두 편지 때문에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밀을 그 값에 팔아도 되는지, 누이의 일을 왜 아직 끝내지 못했는지, 다음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모든 것이 이상할 만큼 쉽게 결정되었다. 밀은 다섯 루블 반에 팔라고 하면 되고, 누이의 일은 내일 직접 처리하면 된다. 도시생활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시골에서는 하루 종일 자기 생각만 상대해야 했지만, 여기서는 끊임없이 사람이 찾아오고 이야기가 이어지고 해야 할 일이 생겨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날 하루를 되짚어보았다.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자기 혼자였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문제들을 놓고 이야기했으며, 평소라면 전혀 관심이 없었을 일들이 그 순간에는 놀라울 만큼 흥미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두 군데가 있었다.
하나는 클럽에서 물고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서 들은 우스갯소리를 자기 말처럼 해버린 일이었다. 술기운과 들뜬 기분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안나에게 느낀 그 부드럽고 애처로운 감정이었다.
‘이상한 일이지. 나는 그 여자를 불쌍하게 여겼고…… 아니, 단지 불쌍한 것만은 아니었어.’
그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갑자기 불편해졌다.
키티는 혼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친 탓인지 얼굴에는 슬픔과 무료함이 엿보였다. 레빈은 들어가자마자 활기차게 그날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브론스키를 만났다는 말도 했다.
“브론스키도 봤어.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 사람을 만나도 전혀 불편하지 않더군. 오히려 아주 자연스러웠어.”
그 말을 하면서 레빈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브론스키 이야기를 끝낸 다음에는 안나를 만났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키티는 남편의 얼굴에 번지는 홍조를 놓치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아무것도 아니야. 스티바가 자꾸 부탁해서…… 안나 아르카디예브나에게 갔었어.”
말을 하고 나니 홍조는 더 짙어졌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는 거기에 간 일이 좋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키티의 눈이 커졌다. 그러나 그녀는 당장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아.”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당신 화난 건 아니지? 스티바가 얼마나 부탁했는지 몰라. 돌리도 내가 한번 만나보기를 바랐고.”
“내가 왜 화를 내?”
키티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차분함이 오히려 레빈을 불안하게 했다.
“그런데 정말…… 아주 사랑스럽고, 아주 불쌍하고, 그리고 좋은 여자야. 당신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어.”
“그래. 정말 불쌍한 사람이긴 하지.”
키티는 짧게 대답하고는 화제를 바꾸려는 듯 탁자 위 편지를 가리켰다.
“편지는 누구한테 왔어?”
레빈은 편지 이야기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나갔다. 잠시 뒤 돌아왔을 때 키티는 아까와 똑같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가까이 가자 그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키티! 왜 그래?”
“당신은 그 끔찍한 여자에게 반했어. 그 여자가 당신을 홀려버렸어. 눈에 다 보여!”
레빈은 너무 놀라 잠시 말을 잃었다.
“무슨 소리야?”
“그래, 맞아. 당신은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그다음에는 그 여자에게 갔어! 왜 갔어? 왜?”
“키티, 제발…….”
“나는 내일 당장 떠날 거야. 여기 더 있고 싶지 않아.”
질투가 그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레빈은 처음에는 부당한 비난을 받는다는 생각에 화가 났고, 자기도 한두 마디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러나 아내가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괴로워하고 있음을 보자 그의 분노는 가라앉았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서로 상처를 주었다가 다시 다독인 끝에야 키티의 울음은 조금 잦아들었다. 레빈은 자기가 안나에게 느낀 것을 숨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 나는 그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했어. 그리고…… 아주 매력적인 여자라고 느꼈어. 술도 마셨고, 하루 종일 사람들과 떠들며 정신이 들떠 있었어. 그래서 아마 평소보다 더 쉽게 그 사람의…… 그 교묘한 영향에 넘어갔던 것 같아. 하지만 다시는 찾아가지 않을 거야.”
그 말은 키티를 위로하려고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그가 느낀 바를 가능한 한 정직하게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정직함 때문에 키티도 마침내 그를 믿었다.
그들은 새벽 세 시가 넘도록 이야기했다. 완전한 평온을 되찾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제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잠들지는 않았다. 모스크바에서 계속 이어진 만남과 말과 음식과 술이 자기를 얼마나 어지럽혀놓았는지, 시골에서라면 한 번도 하지 않았을 행동을 왜 여기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는지 레빈은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지친 몸으로 잠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