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7부 제24장

죄지은 사람처럼 온순하게 맞으러 나가는 안나
죄지은 사람처럼 온순하게 맞으러 나가는 안나

“그래요, 즐거웠어요?”

안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온순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를 맞으러 나가며 물었다.

“늘 그렇듯이.”

브론스키는 그녀를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안나가 좋은 기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미 이런 급격한 전환에 익숙했고, 오늘은 자기 자신도 기분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특히 반가웠다.

“이게 뭐요! 잘됐군!”

그는 현관의 트렁크들을 가리켰다.

“그래요, 가야지요. 오늘 마차를 타고 바람을 쐬었는데 날씨가 아주 좋아서 시골에 가고 싶어졌어요. 당신을 붙잡는 일은 없지요?”

“나도 그것 하나만 바라고 있었소. 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오지. 차를 내오라고 해요.”

그는 서재로 들어갔다.

안나는 ‘잘됐군’이라는 말이 마치 떼쓰던 아이가 마침내 울음을 그쳤을 때 칭찬하듯 들려 모욕감을 느꼈다. 더구나 자기는 죄를 지은 듯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데 브론스키는 자기 옳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한순간 다시 싸우고 싶은 욕망이 솟았으나 안나는 힘을 주어 눌렀다.

브론스키가 돌아오자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말을 섞어가며 그날 있었던 일과 떠날 계획을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체 왜 여기 앉아서 이혼을 기다리고 있지? 이혼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우리가 시골에서 사는 데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이제 기다리지도, 기대하지도, 그 문제 이야기를 듣지도 않을래요. 그 일이 내 생활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겠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물론이오.”

브론스키가 대답했지만, 그녀가 이 말을 어떤 상태에서 하는지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눈빛이었다.

안나는 그가 다녀온 저녁식사 이야기를 물었다.

“저녁도 좋았고 보트 경주도 괜찮았소. 다만 모스크바 사람들은 꼭 무언가 우스운 일을 하나씩 끼워넣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 같소. 웬 여자가 나타났는데, 스웨덴 왕비에게 수영을 가르쳤다는 여자라더군. 자기 솜씨를 보여주었소.”

“어떻게요? 직접 헤엄을 쳤어요?”

안나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빨간 수영복 같은 것을 입고. 늙고 못생긴 여자였소. 그래서 언제 떠나는 거요?”

그러나 안나는 그 여자의 이야기에 이상하게 집착해 몇 가지를 더 물었다. 자기도 왜 그러는지 알면서 멈추지 못했다.

마침내 출발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모레면 좋겠군요.”

“예…… 아니, 잠깐. 모레는 일요일이오. 나는 maman에게 가야 해.”

브론스키가 말했다.

어머니라는 말을 입 밖에 낸 순간 그는 안나의 의심에 찬 날카로운 눈길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당황했다.

바로 그 당황함이 안나에게는 의심의 확인이었다.

이제 그녀의 눈앞에는 스웨덴 왕비의 수영 교사가 아니라, 모스크바 근교의 브론스카야 백작부인 영지에 머물고 있는 소로키나 공작 영애가 떠올랐다.

“내일 다녀오면 안 돼요?”

“그럴 수가 없소. 내가 처리하러 가는 일에 필요한 위임장과 돈이 내일까지는 준비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예 가지 않겠어요.”

“왜 그렇소?”

“나는 더 늦게는 안 가요. 월요일에 가든지, 아니면 영영 안 가든지.”

“도대체 왜? 그건 말이 안 되잖소.”

브론스키는 놀란 사람처럼 말했다.

“당신에게는 말이 안 되겠지요. 당신은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으니까. 내 생활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여기서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은 한나 하나뿐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것도 가식이라고 말했지요. 어제 당신이 말했잖아요. 나는 내 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영국 아이를 사랑하는 척한다고, 그건 부자연스럽다고.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사는 것이 당신 눈에는 자연스러운 생활인지 알고 싶군요!”

그 순간 안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자기가 조금 전의 결심을 스스로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기가 스스로를 망치고 있음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증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고, 그에게 굴복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소. 당신이 갑자기 그 아이에게 쏟는 열정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했을 뿐이오.”

“당신은 늘 솔직하다고 자랑하면서 왜 진실을 말하지 않지요?”

“나는 솔직하다고 자랑한 적도 없고 거짓말을 한 적도 없소.”

브론스키는 치솟는 분노를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참 유감이군.”

“존중이라는 건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었을 때 그 빈 곳을 감추려고 만들어낸 말이에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고 더 정직해요.”

“아니, 이제는 정말 견딜 수 없소!”

브론스키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 앞에 멈춰 서서, 아직 말하지 않은 많은 말을 억누르는 사람처럼 천천히 말했다.

“도대체 왜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요? 인내에도 한계가 있소.”

“그게 무슨 뜻이지요?”

한 번의 눈길로 읽히는 서로의 기분
한 번의 눈길로 읽히는 서로의 기분

안나는 그의 얼굴 전체, 특히 차갑고 위협적인 눈 속에 드러난 명백한 증오를 공포에 질려 바라보며 외쳤다.

“내 말은…….”

브론스키는 말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소. 당신은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거요?”

“내가 무엇을 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버리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것조차 이제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건 사랑이에요. 그런데 사랑이 없어요. 그러니 모든 것이 끝난 거예요.”

안나는 문 쪽으로 향했다.

“잠깐! 기다려요!”

브론스키는 찌푸린 이마를 풀지 않은 채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거요? 나는 출발을 사흘 미루자고 했을 뿐인데, 당신은 내가 거짓말쟁이고 부정직한 사람이라고 했소.”

“그래요. 그리고 다시 말하겠어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내게 들먹이는 사람은―”

안나는 예전 싸움에서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부정직한 사람보다 더 나빠요. 그런 사람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에요.”

“아니, 인내에도 한계가 있소!”

브론스키는 소리치며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다.

‘그는 나를 미워해. 이제 분명해.’

안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틀거리듯 방을 나왔다.

‘그는 다른 여자를 사랑해. 그것은 더 분명해. 나는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은 없어. 그러니 모든 것은 끝났어. 그리고 끝내야 해.’

그녀는 자기 방에 들어가 거울 앞 안락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어떻게?’

어릴 때 자기를 길러준 숙모에게 갈 것인지, 돌리에게 갈 것인지, 혼자 외국으로 떠날 것인지, 브론스키는 지금 서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이것이 정말 마지막 결별인지 아니면 화해가 가능할지, 페테르부르크의 옛 지인들이 자기를 두고 무슨 말을 할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어떻게 받아들일지―결별 뒤에 벌어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그 생각들 어느 것에도 그녀는 온 영혼을 내주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 다른 하나의 흐릿한 생각이 있었고, 그것만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으나 아직 그 정체를 스스로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를 다시 생각하다가, 안나는 출산 뒤 중병을 앓았던 때와 그때 자기를 떠나지 않던 감정을 떠올렸다.

‘왜 나는 그때 죽지 않았을까?’

그때 자기가 했던 말과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갑자기 마음속에 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래, 그것 하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 죽는 거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수치도, 세료자의 수치도, 내 끔찍한 수치도 모두 죽음으로 구원할 수 있어. 내가 죽으면 그는 뉘우칠 거야. 나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할 거야. 나 때문에 괴로워할 거야.’

안나는 자기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듯한 얼어붙은 미소를 지은 채 의자에 앉아 왼손의 반지들을 뺐다 끼웠다 하면서, 자신이 죽은 뒤 브론스키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를 여러 모습으로 생생하게 상상했다.

그때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의 발소리였다.

안나는 반지를 정리하는 데 몰두한 척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브론스키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안나, 당신이 원한다면 모레 떠납시다. 나는 무엇이든 당신 뜻대로 하겠소.”

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래요?”

“당신도 알잖아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더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버려요, 버려요!”

그녀는 흐느낌 사이로 말했다.

“나는 내일 떠날 거예요…… 아니, 그보다 더 할 수도 있어요. 내가 누구예요? 타락한 여자예요. 당신 목에 매달린 돌덩이예요. 나는 당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 싶지 않아!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게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다른 여자를 사랑해요!”

브론스키는 그녀에게 진정하라고 애원했다. 질투할 아무 근거도 없으며 자기는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전보다 더 사랑한다고 되풀이했다.

“안나, 왜 이렇게 당신 자신과 나를 괴롭히는 거요?”

그는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다정함이 가득했고, 안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눈물의 울림을 듣는 듯했으며, 자기 손등 위에서 실제로 그 눈물의 습기까지 느끼는 것 같았다.

한순간 전까지의 절망적인 질투는 순식간에 절망적일 만큼 뜨거운 애정으로 바뀌었다.

안나는 그를 끌어안고 그의 머리와 목과 두 손에 미친 듯이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