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가 완전했다고 느낀 안나는 다음 날 아침부터 활기차게 떠날 준비를 했다.
두 사람이 전날 서로 양보하느라 월요일에 갈지 화요일에 갈지까지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이제 안나는 하루 일찍 가든 늦게 가든 전혀 상관없다는 기분으로 부지런히 짐을 꾸렸다.
그녀가 자기 방에서 열린 트렁크 앞에 서서 가져갈 물건들을 골라내고 있을 때, 평소보다 일찍 옷을 다 차려입은 브론스키가 들어왔다.
“지금 maman에게 다녀오겠소. 예고로프를 통해 돈을 보내달라고 할 수 있을 거요. 그러면 나는 내일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오.”
안나의 기분이 아무리 좋았다 해도 그가 어머니의 별장에 간다는 말은 가시처럼 마음을 찔렀다.
“아니에요, 나도 준비를 다 못할 거예요.”
그녀는 말하고 곧바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한 대로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던 거잖아.’
“아니, 당신이 원한 대로 하세요. 식당에 가 있어요. 나도 곧 갈게요. 필요 없는 것들만 골라놓고요.”
그녀는 이미 옷가지 더미를 안고 있는 안누시카의 팔 위에 또 하나를 얹으며 말했다.
브론스키가 식당에서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있을 때 안나가 나왔다.
안나는 이 셋방도, 낯선 가구도, 모든 것이 임시라는 느낌도 싫었다. 보즈드비젠스코예는 이제 두 사람이 다시 평온해질 수 있는 약속된 장소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날 윌슨 부인에게 가서 맡겨둔 옷도 전해주고 몇 가지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정말 내일이에요?”
안나는 밝은 어조로 물었다.
그때 브론스키의 시종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전보의 수령증을 어디서 찾을지 물으러 들어왔다.
전보가 왔다는 사실 자체에는 아무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브론스키는 무엇인가 안나에게 감추려는 사람처럼 서둘러 수령증은 서재에 있다고 말하고는 즉시 화제를 돌렸다.
“내일까지는 꼭 모든 일을 끝내겠소.”
“누구에게서 온 전보예요?”
안나는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물었다.
“스티바에게서.”
브론스키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왜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요? 스티바와 나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을 수 있지요?”
브론스키는 시종을 다시 불러 전보를 가져오라고 했다.
“보여주지 않은 건 스티바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는데도 전보부터 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오. 결정된 것이 없는데 전보를 쳐서 무엇 하겠소?”
“이혼 이야기예요?”
“그렇소. 아직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고 하는군. 며칠 안에 최종 대답을 주겠다고 했대요. 자, 읽어봐요.”
안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보를 받아 읽었다. 브론스키가 말한 그대로였고, 마지막에는 ‘희망은 적지만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까지 모두 해보겠다’는 스티바의 말이 덧붙어 있었다.
“나는 어제 이혼을 언제 받든, 심지어 받지 못하더라도 이제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어요.”
안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걸 나에게 감출 이유는 하나도 없었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여자들과 주고받는 편지도 이렇게 감출 수 있고 실제로 감추고 있겠지.’
브론스키는 화제를 돌리듯 야시빈 이야기를 꺼냈다. 야시빈이 보이토프와 함께 오늘 아침 들르려고 했고, 페브초프에게서 갚을 수 있는 액수보다 더 많은 돈, 거의 육만 루블을 따낸 것 같다고 했다.
“아니에요.”
안나는 브론스키가 일부러 화제를 바꾸는 것이 자기의 신경질을 지적하는 것처럼 느껴져 더 화가 났다.
“왜 그 소식이 내가 관심을 가질 만큼 중요해서 이혼 전보까지 감춰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나는 그 문제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그리고 당신도 나만큼 관심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모든 일이 분명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심을 두는 거요.”
“분명함은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어요.”
안나는 그의 말 자체보다 차갑고 침착한 말투에 점점 더 화가 나며 말했다.
“당신은 왜 이혼을 원하는 거지요?”
‘맙소사, 또 사랑 이야기군.’
브론스키는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왜인지 당신도 알잖소.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요.”
“아이들은 없을 거예요.”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아이들을 위해서군요. 나는 생각하지도 않고.”
안나는 그가 분명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했음에도 그것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말했다.
아이를 더 가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두 사람 사이의 불쾌하고 예민한 쟁점이었다. 안나는 브론스키가 아이를 원한다는 것을, 그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처럼 받아들였다.
“아, 방금 당신을 위해서라고 말했잖소. 무엇보다 당신을 위해서요.”
브론스키는 아픈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되풀이했다.
“당신이 이렇게 자꾸 흥분하는 가장 큰 이유도 우리 처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해요.”
‘그래, 이제는 가장하지도 않는군. 저 차가운 증오가 그대로 보이잖아.’
안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눈을 통해 자기를 조롱하고 심판하는 냉혹한 재판관 같은 존재를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
“이유는 그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내 ‘흥분’의 원인이 내가 완전히 당신 손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일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게 왜 불확실한 처지이지요? 오히려 그 반대잖아요.”
“당신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 유감이군.”
브론스키는 자기 생각을 끝까지 말하려는 고집으로 그녀를 가로막았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당신이 나를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데 있어요.”
“그 점에 대해서라면 아주 안심하셔도 돼요.”
안나는 그에게서 몸을 돌려 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새끼손가락을 세운 채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몇 모금을 마신 뒤 그를 바라보았고, 브론스키의 표정에서 그가 자기 손과 그 동작과 입술이 내는 작은 소리까지 모두 싫어한다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읽었다.
“당신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든, 당신을 어떻게 결혼시키려 하든 나는 전혀 관심 없어요.”
안나는 떨리는 손으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오.”
“아니, 바로 그 이야기예요. 그리고 믿어도 좋아요. 늙었든 젊었든, 당신 어머니든 남의 어머니든, 자기 아들의 행복과 명예가 어디에 있는지 마음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무정한 여자에게 나는 아무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안나, 내가 존경하는 어머니에 대해 무례하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오.”
“자기 아들의 행복과 명예가 무엇인지 마음으로 모르는 여자라면 마음이 없는 여자예요.”
“다시 부탁하겠소. 내가 존경하는 어머니에게 무례하게 말하지 마시오.”
브론스키는 목소리를 높이며 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과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전날 화해의 장면과 그의 뜨거운 애무를 세세히 떠올렸다.
‘바로 저 애무, 똑같은 애무를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도 베풀었고, 또 베풀 것이고, 베풀고 싶어 하겠지!’
“당신은 어머니를 사랑하지도 않아요. 전부 말뿐이에요, 말, 말, 말!”
안나는 증오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브론스키가 말을 꺼냈다.
“결정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나는 결정했어요.”
안나는 나가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야시빈이 방으로 들어왔다.
안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멈춰 섰다.
마음속에서는 폭풍이 일고 있었고 지금 자신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삶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면서도, 왜 언젠가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될 타인 앞에서 이 순간 평온한 척해야 하는지 안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즉시 마음속 폭풍을 눌러버리고 자리에 앉아 손님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그 돈 문제는 어떻게 됐어요? 빚을 받았나요?”
안나가 야시빈에게 물었다.
“별로 잘된 건 없습니다. 전부는 못 받을 것 같고, 수요일에는 떠나야 합니다. 두 분은 언제 가십니까?”
야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브론스키를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있었음을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아마 모레쯤.”
브론스키가 말했다.
“두 분은 꽤 오래전부터 간다고 하셨는데.”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갑니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빛은 화해 가능성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곧 야시빈과 도박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불쌍한 페브초프가 가엾지도 않아요?”
“글쎄요,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가엾은지 아닌지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상대가 불쌍한지 아닌지 묻지 않잖습니까. 내 재산 전부가 여기 들어 있습니다.”
야시빈은 옆주머니를 두드렸다.
“지금 나는 부자지만 오늘 밤 클럽에 가서 거지가 될 수도 있어요. 나와 카드판에 앉는 사람도 나를 속옷까지 벗겨놓으려 하고, 나도 그 사람을 그렇게 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싸우는 거고, 바로 거기에 재미가 있죠.”
“그런데 결혼했다면요? 아내는 어떡하고요?”
야시빈은 웃었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지요.”
“헬싱포르스는?”
브론스키가 대화에 끼어들어 웃고 있던 안나를 바라보았다.
브론스키의 눈길과 마주치자 안나의 얼굴은 갑자기 차갑고 엄격해졌다.
‘잊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어요.’
그 얼굴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정말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안나가 야시빈에게 물었다.
“맙소사, 몇 번이나요! 하지만 말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카드도 칠 수 있지만 약속 시각이 오면 일어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도 사랑은 할 수 있지만 저녁 카드판에 늦지 않을 정도로만 하지요. 그렇게 정리합니다.”
그때 종마를 사러 온 보이토프가 도착했다.
안나는 일어나 방을 나왔다.
브론스키는 집을 나서기 전에 안나의 방에 들렀다. 안나는 처음에는 탁자 위에서 무엇인가 찾는 척하려 했으나, 그런 연기가 스스로 부끄러워 곧바로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프랑스어로 물었다.
“감베타의 증명서를 가지러 왔소. 말을 팔았거든.”
그의 어조는 말보다 더 분명하게 ‘지금 설명할 시간도 없고, 설명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잘못도 없어.’
브론스키는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싶다면, 그건 자기 일이지.’
그러나 방을 나가려다가 안나가 무슨 말을 한 듯해 돌아보았고, 갑자기 연민 때문에 가슴이 떨렸다.
“뭐라고 했소, 안나?”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녀는 똑같이 차갑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무 말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브론스키의 마음도 다시 차가워졌다.
그는 몸을 돌려 나갔다. 문을 나서며 거울 속에 비친 안나의 얼굴을 보았다.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입술이었다. 그는 멈춰서 위로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내기도 전에 발이 먼저 방 밖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날 브론스키는 하루 종일 집에 없었다.
늦은 밤 돌아왔을 때 하녀는 안나 아르카디예브나가 머리가 아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