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7부 제26장

처음으로 하루가 통째로 지나간 다툼
처음으로 하루가 통째로 지나간 다툼

그들이 다툰 채로 하루가 통째로 지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다툼조차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이 완전히 식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가 증명서를 가지러 방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그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단 말인가? 그녀를 보고, 절망으로 가슴이 찢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도, 그토록 무심하고 침착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단 말인가? 그는 단지 그녀에게 마음이 식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안나는 그가 실제로 했던 잔인한 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가, 그가 분명 속으로 하고 싶어 했고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말들까지 스스로 지어내기 시작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격앙되었다.

‘나는 당신을 붙잡지 않소.’

그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원하는 곳으로 가시오. 당신이 남편과 이혼하려 하지 않은 건 아마 그에게 돌아가려고 그랬던 모양이지. 돌아가시오. 돈이 필요하다면 주겠소. 몇 루블이나 필요하오?’

거칠고 잔인한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모진 말들을 안나는 상상 속의 브론스키 입으로 모조리 말하게 했고, 마치 그가 정말 그런 말을 한 것처럼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곧 또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고 맹세했잖아. 거짓말을 못 하는 정직한 사람이잖아. 그리고 내가 이렇게 공연히 절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었나?’

그날 안나는 윌슨 부인에게 다녀오느라 두 시간을 보낸 것 말고는 하루 종일, 모든 것이 끝난 것인지 아니면 아직 화해할 희망이 있는지, 지금 당장 떠나야 하는지 아니면 한 번 더 그를 만나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지냈다.

그녀는 하루 종일 그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하녀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전해달라고 하고는 마음속으로 하나의 시험을 정했다.

‘하녀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가 찾아오면 아직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야. 오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끝난 거고. 그러면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겠어.’

저녁에 그녀는 밖에서 멈추는 그의 마차 소리를 들었다. 이어 초인종 소리, 그의 발걸음, 하녀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전해 들은 말을 그대로 믿었다. 더는 아무것도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끝난 것이었다.

그 순간 죽음이 생생하고도 뚜렷하게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의 마음속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다시 일으키고, 그를 벌하고, 자기 가슴에 자리 잡은 악한 무엇이 그와 벌여온 싸움에서 끝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의 죽음이었다.

이제 보즈드비젠스코예로 가든 가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남편에게서 이혼을 얻든 얻지 못하든 그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그를 벌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늘 먹던 만큼의 아편을 잔에 따르다가, 이 병에 든 것을 전부 마시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에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얼마나 후회하고, 그녀의 기억을 얼마나 사랑하게 될지를 생각하는 것이 다시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뜨고, 거의 다 타들어가는 촛불 하나가 비추는 천장의 회반죽 장식과, 병풍 때문에 그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바라보며,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져 그의 기억 속에만 남았을 때 그가 느낄 일을 아주 선명하게 상상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어떻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가버릴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그녀는 없어졌다.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는 저곳에…….’

그때 갑자기 병풍의 그림자가 흔들리더니 천장 장식 전체를 집어삼키고, 천장 전체를 덮었다. 반대편의 다른 그림자들도 거칠게 달려들었다. 한순간 그림자들이 물러나는 듯하더니 다시 더 빠르게 밀려왔고, 흔들리고 한데 뒤섞이더니 사방이 캄캄해졌다.

‘죽음!’

안나는 생각했다.

너무도 큰 공포가 덮쳐와 한동안 자기가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성냥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다 타서 꺼진 촛불 대신 새 촛불에 불을 붙이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아니야. 뭐든 좋으니 살아야 해! 나는 그를 사랑하잖아. 그도 나를 사랑해.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고 이것도 지나갈 거야.’

삶으로 되돌아왔다는 기쁨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안나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공포에서 달아나기라도 하듯 서둘러 그의 서재로 갔다.

브론스키는 서재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안나는 그의 곁으로 가 위에서 촛불을 비추며 오랫동안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처럼 그가 잠들어 있을 때에는 그를 너무도 사랑해서,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정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깨어난다면 차갑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확신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잘못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깨우지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아편을 먹은 뒤 새벽녘에야 무겁고도 온전하지 못한 잠에 빠졌다. 잠들어 있는 내내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듯한 이상한 잠이었다.

아침에는 브론스키와 관계를 맺기 전부터 여러 번 되풀이해 꾸었던 무서운 악몽이 다시 나타나 그녀를 깨웠다.

헝클어진 수염을 한 늙은 농부가 쇳덩이 위로 몸을 숙이고 무엇인가를 하며 뜻도 알 수 없는 프랑스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늘 그 악몽에서 그랬듯이―바로 그것이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안나는 그 농부가 자기에게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쇠붙이를 다루며 자기 위에서 무언가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바로 자기에게 무서운 일을 하고 있었다.

안나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자 전날의 일이 안개 속에서 떠오르듯 희미하게 기억났다.

‘다툼이 있었지. 전에도 몇 번 있었던 그런 일이었어. 나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그는 들어오지 않았어. 내일 우리는 떠나. 그를 만나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해.’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한 뒤, 그가 서재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쪽으로 향했다.

응접실을 지나는데 현관 앞에 마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자 라일락빛 모자를 쓴 젊은 처녀가 탄 마차가 보였다. 처녀는 초인종을 누르는 하인에게 몸을 내밀어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현관에서 몇 마디가 오간 뒤 누군가가 위층으로 올라왔고, 이어 응접실 옆에서 브론스키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안나는 다시 창가로 갔다.

브론스키가 모자도 쓰지 않은 채 현관으로 나와 마차 곁으로 다가갔다. 라일락빛 모자를 쓴 젊은 처녀가 그에게 꾸러미 하나를 건넸다. 브론스키는 웃으며 무슨 말을 했다. 마차가 떠나자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안나의 영혼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갑자기 걷혔다.

전날의 감정들이 새 통증과 함께 병든 가슴을 조였다. 자기가 어떻게 이토록 자신을 낮춰 하루 종일 이 남자의 집에 머물렀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결심을 알리기 위해 그의 서재로 들어갔다.

“소로키나가 딸과 함께 들렀소. maman이 보내는 돈과 서류를 가져왔어. 어제 받지 못했거든. 머리는 어떻소? 좀 나아졌소?”

브론스키는 그녀의 어둡고 엄숙한 얼굴을 보지도, 그 뜻을 이해하지도 않겠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안나는 방 한가운데 서서 아무 말 없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를 한번 보더니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는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안나는 몸을 돌려 천천히 방을 나갔다.

그가 아직 그녀를 불러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안나가 문까지 갔는데도 그는 침묵했다. 들리는 것은 종이를 넘기는 사각거림뿐이었다.

“아, 그런데.”

그녀가 이미 문에 이르렀을 때 브론스키가 말했다.

“내일은 정말 떠나는 거지? 그렇지?”

“당신은 떠나겠죠. 나는 아니에요.”

안나는 몸을 돌려 말했다.

“안나, 이런 식으로는 살 수 없소…….”

“당신은 떠나겠죠. 나는 아니에요.”

그녀는 되풀이했다.

“이건 이제 견딜 수가 없소!”

“당신은…… 당신은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거예요.”

안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그 말이 나올 때의 절망적인 표정에 놀란 브론스키는 벌떡 일어나 뒤쫓아가려 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이를 악물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보기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협박’ 자체가 품위 없는 짓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화가 났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야. 반응하지 않는 것.’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시내에 나갔다가 어머니에게 다시 들를 준비를 했다. 위임장에 어머니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안나는 그가 서재와 식당을 오가는 발소리를 들었다. 응접실 앞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 쪽으로 오지 않았다. 다만 보이토프에게 종마를 자기 없이 내어주라고 지시했을 뿐이었다.

이윽고 마차가 준비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나갔다.

그런데 다시 현관문이 열렸고 누군가가 위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브론스키가 두고 간 장갑을 가지러 시종이 올라온 것이었다.

안나는 창가로 갔다.

브론스키는 창문 쪽을 전혀 바라보지 않은 채 장갑을 받아들고, 마부의 등을 손으로 건드리며 무슨 말을 했다.

그리고 창문은 한 번도 올려다보지 않은 채 마차에 올라 평소처럼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장갑을 끼면서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