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37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37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37장 삽화

의사 하나가 피 묻은 앞치마를 입고 천막에서 나왔다. 작고 피 묻은 손의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워 더럽히지 않으려 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보았지만 부상자들의 머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잠시 쉬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한동안 머리를 좌우로 돌리다가 한숨을 쉬고 아래를 보았다.

“좋아, 곧 보겠네.” 안드레이 공작을 가리킨 위생병에게 대답하고 천막 안으로 옮기라고 했다.

기다리던 부상자들 사이에서 불평이 일었다.

“저승에서도 귀족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갈 모양이군!” 한 사람이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막 치워 위생병이 씻고 있는 탁자 위에 옮겨졌다. 천막 안의 일을 뚜렷이 알아볼 수 없었다. 사방의 애처로운 신음과 허벅지와 배와 등의 고통 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졌다. 주위의 모든 것은 낮은 천막을 가득 채운 벌거벗고 피 흘리는 인간의 육체라는 하나의 인상으로 합쳐졌다. 몇 주 전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스몰렌스크 길가 더러운 연못을 채운 것과 같은 육체, 같은 ‘대포의 먹이’였다. 그때도 그 광경은 예감처럼 그를 공포로 채웠다.

천막에는 수술대가 셋 있었다. 둘은 사람이 차지했고 셋째에 안드레이 공작을 눕혔다. 잠시 혼자 남은 그는 다른 두 탁자에서 벌어지는 일을 저절로 보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탁자에는 옆에 벗어 놓은 군복으로 보아 카자크 병사인 듯한 타타르인이 앉아 있었다. 병사 넷이 그를 붙잡고 안경 쓴 의사가 근육질의 갈색 등을 절개했다.

“우, 우, 우!” 타타르인은 신음하다가 거무스름하고 들창코이며 광대뼈가 높은 얼굴을 갑자기 들고 흰 이를 드러냈다. 몸을 비틀고 떨며 높고 날카롭고 긴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많이 둘러싼 다른 탁자에는 키가 크고 살찐 남자가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누워 있었다. 곱슬머리의 색과 머리 모양이 안드레이 공작에게 이상하게 낯익었다. 위생병들이 가슴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크고 희고 통통한 한쪽 다리는 열병에 걸린 듯 계속 빠르게 떨렸다. 남자는 경련하며 흐느끼고 숨이 막혔다. 의사 둘, 그중 하나는 창백하게 떨면서 피투성이인 다른 다리에 말없이 무언가 했다. 외투를 덮은 타타르인의 처치를 마친 안경 쓴 의사는 손을 닦으며 안드레이 공작에게 왔다.

그는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을 흘끗 보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옷을 벗겨! 무엇을 기다리나?” 의사는 위생병들에게 화를 냈다.

소매를 걷은 위생병이 서둘러 단추를 풀고 옷을 벗기자 안드레이 공작에게 가장 오래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돌아왔다. 의사는 상처 위로 몸을 숙여 만져 보고 깊이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에게 손짓하자 배를 찢는 고통에 안드레이 공작은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부서진 허벅지뼈 조각을 꺼내고 찢긴 살을 잘라 상처에 붕대를 감은 뒤였다. 얼굴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이 눈을 뜨자 의사는 몸을 숙여 말없이 입술에 입 맞추고 급히 떠났다.

고통을 겪고 난 안드레이 공작은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행복을 누렸다. 인생에서 가장 좋고 행복한 순간, 특히 옷을 벗고 잠자리에 누우면 유모가 몸을 숙여 자장가를 불러 주고 자신은 베개에 머리를 파묻으며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처럼 기억에 돌아왔다.

의사들은 머리 모양이 낯익은 부상자를 분주히 돌보며 일으켜 세우고 달랬다.

“보여 줘…… 아, 우…… 아! 아, 우!” 고통에 억눌리고 흐느낌으로 끊기는 겁먹은 신음이 들렸다.

그 신음을 듣자 안드레이 공작은 울고 싶었다. 영광 없이 죽기 때문인지, 삶과 헤어지는 것이 슬프기 때문인지, 돌아올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고 곁의 남자가 애처롭게 신음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다정하고 거의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부상자에게 굳은 피가 묻고 장화가 여전히 신겨진 절단된 다리를 보여 주었다.

“아! 아, 우!” 그는 여자처럼 흐느꼈다.

안드레이 공작이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막고 서 있던 의사가 옆으로 물러났다.

‘하느님! 이게 무엇이지? 왜 저 사람이 여기에 있지?’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방금 다리를 절단해 비참하게 흐느끼며 쇠약해진 남자는 아나톨 쿠라긴이었다. 사람들이 팔로 받쳐 들고 물 한 잔을 내밀었으나 떨리고 부은 입술로 잔 가장자리를 물지 못했다. 아나톨은 고통스럽게 흐느꼈다. ‘그래,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은 어쩐지 나와 가깝고 고통스럽게 이어져 있어.’ 안드레이 공작은 눈앞의 일을 아직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생각했다. ‘저 사람은 내 어린 시절과 삶에 무슨 관계가 있지?’ 답을 찾지 못한 순간 순수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의 영역에서 뜻밖의 새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1810년 무도회에서 처음 본 나타샤, 가느다란 목과 팔, 황홀해질 준비가 된 겁먹고 행복한 얼굴이 떠올랐다. 전보다 더 강하고 생생한 사랑과 다정함이 영혼에서 깨어났다. 그는 이제 눈물로 가득하고 부은 눈으로 희미하게 자기를 보는 이 남자와 자신을 이어 주는 관계를 기억했다. 모든 것이 떠올랐고 그 남자에 대한 황홀한 연민과 사랑이 행복한 마음을 넘치게 채웠다.

안드레이 공작은 더는 참지 못하고 동료 인간과 자신, 자기와 그들의 잘못을 위해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눈물을 흘렸다.

‘연민, 형제에 대한 사랑,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적에 대한 사랑. 그래, 하느님께서 땅에서 가르치고 마리야 공작 영애가 가르쳤으나 내가 이해하지 못한 그 사랑이야. 그래서 삶과 헤어지기 싫었던 것이고 내가 살았더라면 남아 있었을 것이야. 하지만 이제 너무 늦었어. 나는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