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11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11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11장 삽화

한 시간 뒤 두냐샤가 공작 영애에게 와서 드론이 왔고, 공작 영애의 명에 따라 모든 농민이 헛간 옆에 모여 주인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고 알렸다.

“하지만 나는 오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드론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라고 했을 뿐이야.”

“제발, 하느님을 생각해서라도 공작 영애님,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모두 속임수예요.” 두냐샤가 말했다. “야코프 알파티치가 돌아오면 우리도 떠나요…… 제발 나가지 마세요…….”

“무엇이 속임수라는 거지?” 마리야 공작 영애가 놀라서 물었다.

“저는 알아요. 제발 제 말만 들으세요! 유모에게도 물어보세요. 공작 영애님이 명하신 대로 보구차로보를 떠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대요.”

“네가 무언가 잘못 알고 있구나. 나는 떠나라고 명한 적이 없어.”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드로누시카를 불러 다오.”

드론이 와서 두냐샤의 말을 확인했다. 농민들은 공작 영애의 명을 받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부른 적이 없어요.” 공작 영애가 말했다. “당신이 내 말을 잘못 전한 게 틀림없어요. 나는 농민들에게 곡식을 주라고만 했어요.”

드론은 대답 대신 한숨만 쉬었다.

“명하시면 사람들은 돌아갈 것입니다.” 그가 말했다.

“아니요, 아니에요. 내가 사람들에게 나가겠어요.” 마리야 공작 영애는 유모와 두냐샤가 말렸지만 현관 밖으로 나갔다. 드론과 두냐샤, 유모, 미하일 이바노비치가 뒤를 따랐다.

‘아마 내가 그들에게 곡식을 주는 것은 이곳에 남아 있도록 매수하려는 것이고, 나 자신은 떠나면서 그들을 프랑스군의 처분에 맡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마리야 공작 영애는 생각했다. ‘모스크바 근처 우리 영지에서 한 달씩 먹을 양식과 살 곳을 주겠다고 해야겠다. 안드레이 오빠라면 내 처지에서 이보다 더 많은 일을 했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땅거미 속에서 헛간 옆 풀밭에 서 있는 무리에게 다가갔다.

남자들은 서로 몸을 더 바짝 붙이며 술렁였고 재빨리 모자를 벗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눈을 내리깔고 치맛자락에 발이 걸리면서도 그들에게 가까이 갔다. 늙고 젊은 수많은 눈이 제각기 다른 얼굴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얼굴도 따로 분간할 수 없었다. 모두에게 한꺼번에 말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버지와 오빠를 대표한다는 느낌이 다시 용기를 주었고 그녀는 대담하게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이 와 주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녀는 눈을 들지 않은 채 빠르고 세차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말했다. “드로누시카가 전쟁 때문에 여러분이 파산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겪는 불행이며, 나는 여러분을 돕는 데 아무것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나도 이곳이 위험해서 떠납니다…… 적이 가까이 왔으니까요…… 왜냐하면…… 친구들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드립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도록 우리의 곡식을 모두 가져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이곳에 붙잡아 두려고 곡식을 준다는 말을 들었다면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재산을 가지고 모스크바 근처 우리 영지로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도록 내가 보살피겠다고 약속합니다. 먹을 것과 살 곳을 드리겠습니다.”

공작 영애는 말을 멈췄다. 무리에서는 한숨 소리만 들렸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에게 좋은 주인이셨던 돌아가신 아버지와 내 오빠와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녀는 다시 말을 멈췄다. 아무도 침묵을 깨지 않았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겪는 불행이니 함께 나누겠습니다. 내 것은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녀는 결론을 내리고 눈앞의 얼굴들을 살펴보았다.

모든 눈이 똑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기심인지 충성심인지, 감사인지 불안과 불신인지 알아낼 수 없었으나 모든 얼굴의 표정은 똑같았다.

“은혜에는 모두 깊이 감사드립니다만 영주의 곡식을 받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무리 뒤쪽에서 한 목소리가 말했다.

“하지만 왜 안 되나요?” 공작 영애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무리를 둘러보니 이제 마주치는 눈마다 즉시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왜 받으려 하지 않나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공작 영애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그녀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왜 말하지 않으시나요?” 그녀는 바로 앞에서 지팡이에 몸을 기댄 아주 늙은 남자에게 물었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씀해 주세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녀는 그의 눈길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그 말에 화가 난 듯 고개를 아주 깊이 숙이고 중얼거렸다.

“왜 동의하겠습니까? 우리는 곡식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 모든 것을 버려야 해? 우리는 동의하지 않아. 동의 못 해…… 공작 영애님은 가엾지만 우리는 따르지 않겠어. 혼자 떠나시오, 혼자…….” 무리의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그 무리의 모든 얼굴에 똑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호기심이나 감사의 표정이 아니라 분노에 찬 결의의 표정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러분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떠나려 하지 않나요? 여러분이 살 곳과 먹을 것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곳에 있으면 적이 여러분을 파멸시킬 텐데요…….”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군중의 외침에 묻혔다.

“우리는 따르지 않겠어. 파멸시키라지! 당신네 곡식은 받지 않겠어. 동의하지 않아.”

마리야 공작 영애는 다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려 했으나 무리 속에서는 단 한 사람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모두가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이상하고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아, 교묘한 이야기로군! 저 여자를 따라가 다시 농노가 되라고! 집을 허물고 가서 예속되라고! 참 좋은 말이지! ‘곡식을 주겠다’고 하시네!” 군중 속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고개를 떨군 채 군중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떠날 수 있도록 말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드론에게 다시 내린 뒤 자기 방으로 가 혼자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