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26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26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26장 삽화

보로디노 전투 전날인 8월 25일, 프랑스 황제의 궁정 장관 드 보세는 파리에서, 파비에 대령은 마드리드에서 발루예보의 나폴레옹 숙소로 왔다.

궁정 예복으로 갈아입은 드 보세는 황제에게 가져온 상자를 앞세우고 나폴레옹의 천막 첫 칸으로 들어갔다. 그는 주위에 모인 나폴레옹의 부관들과 이야기하며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파비에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아는 장군들과 이야기했다.

나폴레옹 황제는 아직 침실에서 나오지 않고 몸단장을 마치고 있었다. 그는 콧김을 뿜고 끙끙거리며 시종이 솔로 문지르도록 등과 털이 난 통통한 가슴을 번갈아 내밀었다. 다른 시종은 병 입구를 손가락으로 막고 황제의 귀하게 길러진 몸에 오드콜로뉴를 뿌렸다. 어디에 얼마나 뿌려야 하는지는 자기만 안다는 표정이었다. 나폴레옹의 짧은 머리는 젖어 이마에 달라붙었지만 부어 누런 얼굴에는 육체적인 만족감이 나타났다. “계속해, 더 세게!” 그는 몸을 조금씩 움찔하고 끙끙거리며 몸을 문지르는 시종에게 중얼거렸다. 전날 전투에서 잡은 포로 수를 보고하러 들어온 부관은 보고를 마친 뒤 문 옆에서 물러가도 좋다는 허락을 기다렸다. 나폴레옹은 눈살을 찌푸리고 눈썹 아래로 그를 바라보았다.

“포로가 없다고?” 그는 부관의 말을 되풀이했다. “저들이 우리에게 그들을 전멸시키라고 강요하는군. 러시아군에는 더욱 나쁜 일이지…… 계속해…… 더 세게, 더 세게!” 그는 등을 구부리고 살찐 어깨를 내밀며 중얼거렸다.

“좋아. 드 보세 씨와 파비에도 들여보내라.” 그는 부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폐하.” 부관은 천막 문으로 사라졌다.

시종 둘이 황제 폐하에게 재빨리 옷을 입혔다. 푸른색 근위대 군복 차림의 나폴레옹은 단단하고 빠른 걸음으로 접견실로 갔다.

그사이 드 보세는 입구 바로 앞 의자 두 개 위에 황후가 보내온 선물을 부지런히 펼쳐 놓고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예상 밖으로 빨리 옷을 입고 나왔기 때문에 깜짝 선물을 다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나폴레옹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즉시 알아차렸고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에게 자기를 놀라게 하는 기쁨을 빼앗고 싶지 않아 드 보세를 보지 못한 척하며 파비에를 불렀다. 그는 유럽 반대편 살라망카에서 싸운 병사들의 영웅적인 행동과 헌신에 관한 파비에의 말을 엄숙히 눈살을 찌푸리고 조용히 들었다. 병사들은 황제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 하나와 황제를 기쁘게 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하나로 싸웠다는 이야기였다. 전투의 결과는 참담했다. 나폴레옹은 자기가 없는 곳에서는 달리 될 수 없었다는 듯 파비에의 보고 중 비꼬는 말을 했다.

“모스크바에서 그것을 만회해야겠군.” 나폴레옹이 말했다. “나중에 다시 보지.” 그는 말하고 그사이 의자 위에 무언가를 놓고 천으로 덮어 깜짝 선물을 준비한 드 보세를 불렀다.

드 보세는 부르봉 왕가의 늙은 신하들만이 할 줄 아는 프랑스 궁정식 인사로 깊이 절하고 봉투를 내밀며 다가왔다.

나폴레옹은 유쾌하게 돌아서서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서둘러 왔군. 아주 반갑네. 그래, 파리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그는 방금 전의 엄한 표정을 갑자기 가장 다정한 어조로 바꾸며 물었다.

“폐하, 온 파리가 폐하의 부재를 슬퍼하고 있습니다.” 드 보세는 마땅한 대답을 했다.

나폴레옹은 드 보세가 그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정신이 맑을 때에는 그것이 거짓임도 알았지만 듣는 것은 즐거웠다. 그는 다시 귀를 만져 주는 영예를 베풀었다.

“그토록 먼 길을 오게 해 유감이군.” 그가 말했다.

“폐하, 저는 모스크바 성문 앞에서 폐하를 뵙는 것 이상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드 보세가 대답했다.

나폴레옹은 미소 짓고 멍하니 고개를 들며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부관 하나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금으로 된 코담배갑을 내밀자 그가 받았다.

“그래, 자네에게는 운이 좋았군.” 그는 열린 담배갑을 코로 가져가며 말했다. “여행을 좋아하니 사흘 뒤면 모스크바를 보겠어. 그 아시아의 수도를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즐거운 여행이 될 걸세.”

그때까지 자기도 몰랐던 여행 취미까지 배려해 준 데 대해 드 보세는 감사히 절했다.

“아니, 이것은 무엇인가?” 나폴레옹은 모든 궁정인이 천 아래 감춘 것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드 보세는 궁정인다운 솜씨로 황제에게 등을 보이지 않은 채 몸을 반쯤 돌려 두 걸음 물러나며 동시에 천을 잡아당기고 말했다.

“황후께서 폐하께 보내신 선물입니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이 나폴레옹에게 낳아 주었고 사람들이 무슨 까닭인지 ‘로마 왕’이라고 부르는 아들을 제라르가 밝은 색으로 그린 초상화였다.

시스티나 성모상의 아기 예수 같은 표정을 한 곱슬머리의 아주 예쁜 소년이 공과 막대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공은 지구를 나타냈고 다른 손의 막대기는 왕홀을 나타냈다.

이른바 로마 왕이 막대기로 지구를 찌르는 모습을 통해 화가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리에서 그림을 본 모든 사람에게 그랬듯 그 비유는 나폴레옹에게도 아주 명백하고 마음에 드는 듯했다.

“로마 왕!” 그는 우아한 손짓으로 초상화를 가리켰다. “훌륭하군!”

마음대로 얼굴 표정을 바꾸는 이탈리아인 특유의 타고난 능력으로 그는 초상화에 다가가 사려 깊고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역사에 남으리라고 느꼈다. 자기의 위대함 덕분에 아들이 지구를 공 삼아 막대기 놀이를 할 수 있게 된 자신이 그 위대함과 대조되는 가장 소박한 부성애를 보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눈이 흐려진 그는 앞으로 가서 주위를 보았다. 의자가 저절로 몸 아래 놓인 듯했고 그는 초상화 앞에 앉았다. 그가 손짓 한 번 하자 모두가 발끝으로 걸어 나가 위대한 인물과 그의 감동만 남겨 두었다.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던 그는 자기도 까닭을 모른 채 초상화에서 가장 밝은 부분을 나타낸 두꺼운 물감을 손으로 만졌다. 일어나 드 보세와 당직 장교를 다시 불렀다. 그는 천막 주위에 주둔한 고참 근위대가 숭배하는 군주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로마 왕을 보는 기쁨을 누리도록 초상화를 밖으로 가져가라고 명령했다.

나폴레옹이 드 보세 씨에게 함께 아침을 먹는 영예를 베풀고 있을 때, 예상대로 초상화를 보러 달려온 고참 근위대 장교와 병사들의 황홀한 함성이 들렸다.

“황제 폐하 만세! 로마 왕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홀한 외침이 울렸다.

아침 식사 뒤 나폴레옹은 드 보세가 있는 자리에서 전군에 내릴 훈령을 구술했다.

“짧고 힘차군!” 그는 고치지 않고 단번에 구술한 포고문을 읽어 본 뒤 말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병사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이 그토록 바라던 전투다. 승리는 그대들에게 달렸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승리이며, 필요한 모든 것, 편안한 숙소와 빠른 귀국을 보장해 줄 것이다. 아우스터리츠, 프리틀란트, 비테프스크, 스몰렌스크에서처럼 행동하라. 먼 후손이 오늘 그대들의 공적을 자랑스럽게 기억하게 하라.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두고 “그는 모스크바 앞의 위대한 전투에 참가했다.”라고 말하게 하라!

“모스크바 앞에서!” 나폴레옹은 되풀이하고 여행을 그토록 좋아하는 드 보세 씨에게 승마에 동행하라고 권한 뒤 말에 안장을 얹어 둔 천막 밖으로 나갔다.

“폐하께서는 너무도 친절하십니다!” 드 보세는 황제의 동행 요청에 대답했다. 그는 자고 싶었고 말을 탈 줄도 몰랐으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여행가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드 보세는 말에 올라야 했다. 나폴레옹이 천막에서 나오자 아들의 초상화 앞에 모인 근위대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나폴레옹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를 치워라!” 그는 우아하고 장엄한 손짓으로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가 전장을 보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드 보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뒤 깊이 한숨을 쉬어 황제의 말을 얼마나 깊이 평가하고 이해하는지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