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4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4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4장 삽화

니콜라이 볼콘스키 공작의 영지 민둥산은 스몰렌스크에서 동쪽으로 40마일, 모스크바로 가는 큰길에서 2마일 떨어져 있었다.

공작이 알파티치에게 지시를 내린 바로 그날 저녁, 데살은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만나 뵙기를 청했다. 그는 공작의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안전을 확보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안드레이 공작의 편지를 보면 민둥산에 머무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알파티치 편으로 스몰렌스크 주지사에게 편지를 보내 현 상황과 민둥산이 어느 정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려 달라고 청하는 것이 좋겠다고 정중히 권했다. 데살이 마리야 공작 영애를 대신하여 주지사에게 편지를 썼고 그녀가 서명했다. 알파티치는 그 편지를 주지사에게 직접 건네고, 위험하다면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모든 지시를 받은 알파티치는 공작에게 선물 받은 흰 비버 털모자를 쓰고 공작처럼 지팡이를 든 채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살이 잘 오른 밤색 잡색 말 세 마리가 가죽 덮개가 달린 작은 마차에 매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큰 방울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싸 두었고 마구의 작은 방울들에는 종이를 쑤셔 넣었다. 공작은 민둥산에서는 누구도 방울을 울리며 마차를 몰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알파티치는 먼 길을 갈 때 방울 소리를 좋아했다. 그의 수하들인 수석 서기, 회계실 서기, 부엌데기, 요리사, 늙은 여자 둘, 어린 시동, 마부와 여러 집안 농노가 그를 배웅했다.

딸은 그가 깔고 앉고 등에 받칠 무명천 싸개를 씌운 솜털 방석을 놓아 주었다. 늙은 처형은 작은 보따리 하나를 슬쩍 넣었고 마부 하나가 그를 마차에 태워 주었다.

“거참! 거참! 여자들의 부산이란! 여자들, 여자들이란!” 알파티치는 숨을 훅훅 내쉬며 공작과 똑같이 빠르게 말하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서기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한 뒤 알파티치는 이제 공작을 흉내 내려 하지 않고 대머리에서 모자를 벗어 성호를 세 번 그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돌아오세요, 야코프 알파티치! 그리스도를 생각해서라도 우리를 잊지 마세요!” 아내가 전쟁과 적에 관한 소문을 떠올리며 외쳤다.

“여자들, 여자들이란! 여자들의 부산이지!” 알파티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길을 떠났다. 누렇게 익은 호밀밭과 아직 푸르고 무성한 귀리밭, 이제 막 두 번째로 갈아엎고 있어 새까만 밭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길을 가면서 그해 곡식이 훌륭하게 자란 것을 기쁜 마음으로 보았다. 여기저기 이미 수확을 시작한 호밀밭의 기다란 이랑들을 유심히 살피고 파종량과 수확량을 계산하면서, 공작의 지시 가운데 잊은 것이 없는지 생각했다.

도중에 두 번 말을 먹이고 8월 4일 저녁 무렵 도시에 도착했다.

알파티치는 길에서 끊임없이 치중대와 부대를 마주치거나 앞질렀다. 스몰렌스크에 가까워지자 멀리서 포성이 들렸지만 별다른 인상을 받지 않았다. 그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훌륭한 귀리밭에 야영지가 들어서고 병사들이 사료로 쓰려고 귀리를 베고 있는 광경이었다. 알파티치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으나 자기 일을 생각하다가 곧 잊었다.

30년이 넘도록 그의 삶에서 관심을 두는 모든 것은 공작의 의지 안에 한정되어 있었고, 그는 한 번도 그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공작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알파티치의 관심을 끌지 않았고, 그에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8월 4일 저녁 스몰렌스크에 도착한 알파티치는 드네프르강 건너편 가치나 교외에 있는 페라폰토프의 여관에 묵었다. 지난 30년 동안 늘 묵던 곳이었다. 약 30년 전, 페라폰토프는 알파티치의 조언을 받아 공작에게서 숲을 사들인 뒤 장사를 시작했고, 이제 그 지방에 집과 여관과 곡물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마흔 남짓한 건장하고 거무스름하며 얼굴이 붉은 농민이었다. 입술이 두툼하고 코는 넓고 울퉁불퉁했으며, 검고 찌푸린 눈썹 위에도 비슷하게 불거진 혹이 있었고 배는 둥글었다.

페라폰토프는 무명 셔츠 위에 조끼를 입고 거리 쪽으로 열린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알파티치를 보자 그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시오, 야코프 알파티치.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는데 당신은 들어오는군요.” 그가 말했다.

“왜 도시를 떠난다는 거요?” 알파티치가 물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그렇지! 언제나 프랑스군을 두려워한단 말이오.”

“여자들의 부산이지, 여자들의 부산이야!” 알파티치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야코프 알파티치. 놈들을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으니 그대로 될 거요. 그런데 농민들은 짐마차 한 대에 3루블을 달라고 하니, 그리스도인답지 않지!”

야코프 알파티치는 그 말을 듣고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사모바르와 말에게 먹일 건초를 달라고 했고, 차를 마신 뒤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도록 부대들이 여관 앞을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알파티치는 도시에 올 때만 입는 웃옷을 걸치고 볼일을 보러 나갔다. 맑은 아침이었고 여덟 시부터 벌써 더웠다. ‘수확하기 좋은 날이군.’ 알파티치는 생각했다.

이른 아침부터 도시 너머에서 총성이 들렸다. 여덟 시가 되자 소총 소리에 대포의 굉음까지 더해졌다. 거리에는 서둘러 다니는 사람과 병사가 많았지만 마차는 여전히 오가고, 상인들은 가게 앞에 서 있었으며, 교회에서는 평소처럼 예배가 열렸다. 알파티치는 상점과 관청, 우체국과 주지사 관저를 찾아갔다. 관청과 상점과 우체국에서는 모두 군대와 이미 도시를 공격하고 있는 적에 관해 이야기했다. 누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면서 서로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주지사 관저 앞에서 알파티치는 많은 사람과 카자크들, 주지사의 여행용 마차를 보았다. 현관에서 지주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 하나는 아는 사람이었다. 전직 경찰서장인 그 남자는 화를 내며 말하고 있었다.

“이건 농담이 아니오! 혼자라면 괜찮겠지. 속담에도 ‘몸 하나 망해 봐야 하나일 뿐’이라고 하지 않소. 하지만 식구가 열셋이고 재산까지 있는데…… 우리를 완전히 망하게 만들었어! 대체 이게 무슨 주지사란 말이오? 그런 자들은 교수형에 처해야 해. 강도들이야!…….”

“자, 이제 그만하게!”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내 알 바 아니오! 들으라지! 우리는 개가 아니야.” 전직 경찰서장은 말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알파티치를 알아보았다.

“오, 야코프 알파티치! 무슨 일로 왔소?”

“각하의 명을 받고 주지사님을 뵈러 왔습니다.” 알파티치는 고개를 들고 공작을 언급할 때마다 그랬듯 단추를 채운 외투의 가슴 안쪽에 자랑스럽게 손을 넣으며 대답했다. “각하께서 사정을 알아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그래, 가서 알아보시오!” 성난 신사가 외쳤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마차도 아무것도 없소!…… 또 들리지, 저 소리?” 그는 포성이 들려오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를 망하게 만들었어…… 강도들!” 그는 되풀이하고 현관 계단을 내려갔다.

알파티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대기실에는 상인과 여자와 관리들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주지사실 문이 열리자 모두 일어나 앞으로 움직였다. 관리 하나가 뛰어나와 상인에게 몇 마디 하고, 목에 십자가 훈장을 단 뚱뚱한 관리에게 따라오라고 한 뒤 다시 사라졌다. 자기를 향한 질문과 캐묻는 눈길을 피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알파티치는 앞으로 나아가 그 관리가 다시 나왔을 때 한 손을 단추를 채운 외투의 가슴 안쪽에 넣은 채 말을 걸어 편지 두 통을 건넸다.

“육군대장 니콜라이 볼콘스키 공작 각하께서 아시 남작 각하께 보내는 편지요.” 그는 매우 엄숙하고 의미심장하게 알렸다. 관리는 몸을 돌려 편지를 받아 들었다.

몇 분 뒤 주지사는 알파티치를 만나 서둘러 말했다.

“공작님과 공작 영애께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고 전해 주시오. 나는 최고위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소. 여기…….” 그는 알파티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래도 공작께서 편찮으시니 모스크바로 가시라는 것이 내 조언이오. 나도 지금 떠나는 길이오. 그렇게 전해 주시오…….”

그러나 주지사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에 젖은 장교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프랑스어로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주지사의 얼굴에는 공포가 떠올랐다.

“가시오.” 그는 알파티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 장교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알파티치가 주지사실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간절하고 겁먹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는 저절로 포성에 귀를 기울였다. 포성은 더 가까워지고 더욱 거세졌다. 알파티치는 여관으로 서둘렀다. 주지사가 건넨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스몰렌스크시는 아직 조금도 위험하지 않으며, 위협을 받을 가능성도 없음을 확언합니다. 한쪽에서는 내가, 다른 쪽에서는 바그라티온 공작이 스몰렌스크 앞에서 양군을 합치기 위해 진군하고 있으며, 그 합류는 이달 22일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양군은 하나로 합친 병력으로 귀하에게 맡겨진 주의 동포들을 지킬 것이며, 우리의 노력이 조국의 적들을 물리치거나 용맹한 우리 대열의 마지막 병사가 쓰러질 때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용맹한 군대의 보호를 받는 자들은 승리를 확신해도 되니, 귀하에게는 스몰렌스크 주민을 안심시킬 완전한 권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1812년, 바클라이 드 톨리가 스몰렌스크 민정 주지사 아시 남작에게 내린 지시.)

사람들은 불안한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살림 도구와 의자와 장롱을 높이 쌓은 짐마차들이 집집마다 대문에서 계속 나와 거리를 지나갔다. 페라폰토프의 집 옆에는 짐을 실은 마차들이 서 있었고, 여자들은 작별 인사를 나누며 울고 탄식했다. 작은 집 지키는 개 한 마리가 마구를 채운 말들 앞을 빙빙 돌며 짖었다.

알파티치는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여관 마당에 들어가 곧장 자기 말과 마차가 있는 헛간으로 갔다. 마부는 자고 있었다. 그는 마부를 깨워 말을 매라고 하고 안쪽 복도로 들어갔다. 여관 주인의 방에서는 아이가 우는 소리와 여자의 절망적인 흐느낌, 페라폰토프의 쉰 고함이 들렸다. 알파티치가 들어오자 요리사는 겁먹은 암탉처럼 복도에서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마님을 때려죽였어요. 죽였다고요!…… 때리고…… 질질 끌고 다녔어요!…….”

“무엇 때문에?” 알파티치가 물었다.

“마님이 자꾸 떠나자고 애원했어요. 여자잖아요! ‘나를 데리고 떠나요.’ 그렇게 말했어요. ‘어린 자식들과 함께 죽게 내버려 두지 말아요! 사람들이 모두 떠났는데 우리는 왜 가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말했어요. 그러자 주인님이 마님을 때리고 질질 끌기 시작했어요!”

알파티치는 이 말을 듣고 찬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아 여관 주인의 방 맞은편, 자기가 산 물건들을 놓아둔 방의 문으로 갔다.

“이 짐승, 살인자!” 그때 아기를 안은 여위고 창백한 여자가 머릿수건도 벗겨진 채 문을 박차고 나와 소리쳤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페라폰토프가 그녀를 따라 나왔다. 그러나 알파티치를 보자 조끼를 여미고 머리를 매만지며 하품한 뒤 맞은편 방으로 그를 따라 들어갔다.

“벌써 떠나는 거요?” 그가 말했다.

알파티치는 대답도 하지 않고 주인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꾸러미들을 정리하고 얼마를 치러야 하는지 물었다.

“계산해 봅시다! 그래, 주지사는 만나 보았소?” 페라폰토프가 물었다. “무슨 결정이 났소?”

알파티치는 주지사가 아무것도 분명히 말해 주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우리처럼 장사하는 사람이 어떻게 떠나겠소?” 페라폰토프가 말했다. “도로고부시까지 짐마차 한 대에 7루블을 내야 한다오. 나는 그런 돈을 요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했소! 그런데 셀리바노프는 지난 목요일에 큰돈을 벌었소. 군대에 밀가루를 자루당 9루블에 팔았다지. 차 한잔하겠소?” 그가 덧붙였다.

말을 마차에 매는 동안 알파티치와 페라폰토프는 차를 마시며 곡식 가격과 작황, 수확하기 좋은 날씨에 관해 이야기했다.

“자, 이제 좀 조용해지는 것 같군.” 페라폰토프는 차를 세 잔째 다 마시고 일어서며 말했다. “아군이 이긴 모양이오. 놈들을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으니 우리 쪽 병력이 강한가 보군…… 며칠 전 마트베이 이바니치 플라토프가 놈들을 마리나강으로 몰아 하루 만에 1만 8천 명쯤 빠뜨려 죽였다고들 하오.”

알파티치는 꾸러미를 모아 들어온 마부에게 건네고 여관 주인과 계산을 마쳤다. 작은 마차 한 대가 문밖으로 나가면서 바퀴와 말발굽과 방울 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늦은 오후였다. 거리의 절반에는 그늘이 졌고 나머지 절반은 햇빛을 받아 환했다. 알파티치는 창밖을 내다보고 문으로 갔다. 갑자기 멀리서 기이한 휘파람 소리와 둔탁한 충돌음이 들렸고, 뒤이어 대포 소리가 둔중한 굉음과 뒤섞여 창문을 뒤흔들었다.

그가 거리로 나가자 남자 두 명이 다리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방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고, 도시에 떨어지는 포탄의 둔탁한 충돌음과 작렬하는 유탄 소리가 났다. 그러나 도시 밖의 포성에 비하면 이 소리들은 거의 들리지 않아 주민들의 주의를 별로 끌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오후 네 시가 지나 배치하라고 명한 130문의 대포가 도시를 포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포격의 의미를 곧바로 깨닫지 못했다.

처음에는 떨어지는 폭탄과 유탄 소리가 호기심만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 헛간 밑에서 계속 울부짖던 페라폰토프의 아내도 조용해졌다. 아기를 안고 대문으로 가서 말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요리사와 가게 점원 하나도 대문으로 나왔다. 모두 생기 넘치는 호기심을 띠고 머리 위를 날아가는 발사체를 보려고 애썼다. 몇 사람이 길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흥분해서 이야기했다.

“힘이 대단하더군!” 한 사람이 말했다. “지붕과 천장을 모조리 산산조각 냈어!”

“돼지처럼 땅을 온통 파헤쳤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

“굉장해, 정신이 번쩍 나는군!” 첫 번째 사람이 웃었다. “자네가 운 좋게 옆으로 뛰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야!”

다른 사람들도 그들에게 합류해 멈춰 서서 자기들 가까운 집에 포탄이 어떻게 떨어졌는지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 더 많은 발사체가 끊임없이 사람들 머리 위를 날아갔다. 어떤 것은 둥근 포탄 특유의 빠르고 불길한 휘파람 소리를 냈고, 어떤 것은 유탄 특유의 듣기 좋은 끊어지는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러나 하나도 가까이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머리 위를 지나갔다. 알파티치는 마차에 오르고 있었다. 여관 주인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뭘 멍하니 보고 있어?” 그는 빨간 치마를 입고 소매를 걷어붙여 맨 팔꿈치를 흔들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길모퉁이로 나간 요리사에게 소리쳤다.

“참으로 놀라워라!” 요리사는 감탄했다. 그러나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는 걷어 올린 치마를 내리며 돌아섰다.

다시 무언가 휘파람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아주 가까이서 작은 새처럼 아래로 내리꽂혔다. 거리 한가운데서 불꽃이 번쩍이고 무언가 폭발하더니 거리가 연기에 휩싸였다.

“이 못된 것, 무슨 짓이야?” 여관 주인이 요리사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그 순간 사방에서 여자들의 애처로운 울부짖음이 들렸다. 놀란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고, 사람들은 창백한 얼굴로 말없이 요리사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 무리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요리사의 울부짖음이었다.

“아아아! 고마운 분들, 인정 많은 분들!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좋은 분들!…….”

5분 뒤 거리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요리사는 유탄 파편에 넓적다리가 부러져 부엌으로 옮겨졌다. 알파티치와 마부, 페라폰토프의 아내와 아이들, 문지기는 모두 지하실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대포의 굉음과 발사체의 휘파람 소리, 다른 모든 소리를 누르는 요리사의 애처로운 신음은 한순간도 그치지 않았다. 여주인은 아기를 흔들어 달랬다. 누가 지하실로 들어올 때마다 거리 밖에 남은 남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애처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가게 점원 하나가 들어와, 주인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몰렌스크의 기적을 행하는 성상을 모셔 오려고 대성당에 갔다고 알려 주었다.

해 질 무렵 포격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알파티치는 지하실에서 나와 문간에 멈춰 섰다. 그토록 맑았던 저녁 하늘은 연기에 흐려져 있었고, 그 사이로 높은 곳에서 초승달이 기묘하게 빛났다. 무시무시한 대포 소리가 그치자 도시에는 고요가 내려앉은 듯했다. 발걸음 소리와 신음, 멀리서 들리는 외침, 사방에 번진 듯한 불길의 타닥거리는 소리만이 고요를 깨뜨렸다. 요리사의 신음은 이제 잦아들었다. 양쪽에서는 화재로 생긴 검고 구불거리는 연기 기둥이 피어올라 퍼졌다. 거리에는 여러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무너진 개미집의 개미처럼 혼란스럽게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걷거나 달렸다. 알파티치가 보는 앞에서 몇 사람이 페라폰토프의 마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알파티치는 대문으로 나갔다. 후퇴하는 연대 하나가 무리를 이루어 서두르며 거리를 가로막았다.

그를 알아본 장교 하나가 말했다. “도시를 버리고 있소. 떠나시오, 어서 떠나시오!” 그러고는 병사들 쪽으로 돌아서며 소리쳤다.

“남의 집 마당으로 뛰어들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겠다!”

알파티치는 집으로 돌아가 마부를 불러 출발하라고 했다. 페라폰토프의 식솔들도 알파티치와 마부를 따라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때까지 잠잠하던 여자들은 저무는 황혼 속에서도 연기와 불꽃이 보이는 화재 현장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에 화답하듯 거리의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탄식이 들렸다. 헛간 안에서 알파티치와 마부는 떨리는 손으로 엉킨 고삐와 끌끈을 정돈했다.

알파티치가 대문을 빠져나가려 할 때 페라폰토프의 열린 가게 안에 병사 열 명쯤이 들어가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자루와 배낭에 밀가루와 해바라기씨를 채우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때 페라폰토프가 돌아와 가게로 들어갔다. 그는 병사들을 보고 소리치려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러고는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흐느끼며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가져가라, 얘들아! 저 악마들에게 넘기지는 마라!” 그는 외치며 직접 밀가루 자루 몇 개를 집어 거리로 던졌다.

병사들 가운데 몇은 겁을 먹고 달아났지만, 나머지는 계속 자루를 채웠다. 페라폰토프는 알파티치를 보고 그에게 몸을 돌렸다.

“러시아는 끝장이오!” 그가 외쳤다. “알파티치, 내가 직접 이곳에 불을 지르겠소. 우리는 끝장이오!…….” 페라폰토프는 마당으로 달려갔다.

병사들이 끊임없는 물결처럼 거리를 지나며 길을 완전히 막았으므로 알파티치는 나갈 수 없어 기다려야 했다. 페라폰토프의 아내와 아이들도 마차에 앉아 빠져나갈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찾아왔다. 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고, 초승달은 자기를 가리는 연기 사이로 빛났다. 드네프르강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에서 병사들의 대열과 다른 마차들 사이를 천천히 움직이던 알파티치의 마차와 여관 주인 아내의 마차는 멈춰야 했다. 마차들이 멈춘 교차로 근처의 샛길에서는 집 한 채와 상점 몇 곳이 불타고 있었다. 불길은 이미 잦아들고 있었다. 불꽃은 한동안 약해져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다시 밝게 타오르며 교차로에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을 기묘할 만큼 선명하게 비췄다. 검은 형체들이 불 앞을 오갔고, 불길이 끊임없이 타닥거리는 사이로 이야기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가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 알파티치는 내려서 불을 구경하려고 샛길로 들어갔다. 병사들은 불 가까이에서 계속 앞뒤로 뛰어다녔다. 병사 둘과 거친 모직 외투를 입은 남자가 불타는 들보를 길 건너편 다른 마당으로 끌고 가고, 또 다른 사람들은 건초 다발을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알파티치는 활활 타는 높은 헛간 앞에 서 있는 큰 무리로 다가갔다. 벽은 온통 불길에 휩싸였고 뒷벽은 무너져 있었다. 나무 지붕이 내려앉고 서까래도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붕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했고 알파티치도 함께 기다렸다.

“알파티치!”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가 노인을 불렀다.

“하느님 맙소사! 각하!” 알파티치는 자기 젊은 주인의 목소리를 곧바로 알아듣고 대답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승마용 외투를 입고 검은 말에 탄 채 군중 뒤쪽에서 알파티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여기 있나?” 그가 물었다.

“각…… 각하.” 알파티치는 말을 더듬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우리는 망한 것입니까? 주인님!…….”

“왜 여기 있느냐고?” 안드레이 공작이 거듭 물었다.

그 순간 불길이 치솟아 젊은 주인의 창백하고 지친 얼굴을 비추었다. 알파티치는 자기가 이곳에 파견된 경위와 떠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이야기했다.

“정말 우리는 완전히 망한 것입니까, 각하?” 그가 다시 물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대답하지 않고 수첩을 꺼냈다. 무릎을 들어 올리고 그 위에 종이 한 장을 놓은 채 연필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누이에게 썼다.

“스몰렌스크를 버리고 있다. 민둥산은 일주일 안에 적에게 점령될 것이다. 즉시 모스크바로 떠나라. 언제 출발할지 바로 내게 알려 다오. 우스뱌시로 특별 전령을 보내라.”

안드레이 공작은 글을 써서 알파티치에게 주고, 공작과 공작 영애, 자기 아들과 아이의 가정교사가 어떻게 떠나도록 준비할지, 언제 어디로 즉시 소식을 보내야 할지 일러 주었다. 그가 지시를 다 끝내기도 전에 참모장 하나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말을 달려 다가왔다.

“당신은 대령이오?” 참모장은 독일어 억양이 밴, 안드레이 공작에게 낯익은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 앞에서 집들이 불타는데 그냥 서서 보고 있소! 이게 무슨 짓이오? 당신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외친 사람은 베르크였다. 그는 이제 제1군 보병 좌익 사령관 참모장의 보좌관이 되어 있었다. 베르크의 말로는 ‘매우 쾌적하고 앙 베데트(en évidence, 눈에 잘 띄는)’ 자리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를 바라보았지만 대답하지 않고 알파티치에게 계속 말했다.

“그러니 내가 열흘까지 답을 기다리겠다고 전해라. 열흘까지 모두 떠났다는 소식을 받지 못하면 나는 모든 일을 내던지고 직접 민둥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공작님.” 베르크는 안드레이 공작을 알아보고 말했다. “저는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에 그렇게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나 명령에 정확히 복종하니까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사과하듯 말을 이었다.

불길 속에서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불은 잠시 잦아들고 지붕 밑에서 검은 연기 고리가 굴러 나왔다. 다시 무시무시한 굉음이 나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우루루루!” 군중이 외쳤다. 곡식이 타면서 구운 빵 같은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는 헛간 지붕의 붕괴음에 화답하는 소리였다. 불길이 다시 치솟아 구경꾼들의 생기 있고 기뻐하면서도 지친 얼굴을 비췄다.

거친 모직 외투를 입은 남자가 두 팔을 들고 외쳤다.

“멋지다, 얘들아! 이제 활활 타는구나…… 멋져!”

“저 사람이 바로 주인이야.” 여러 목소리가 외쳤다.

“그럼.” 안드레이 공작은 알파티치에게 말을 이었다. “내가 일러 준 대로 전해라.” 그는 이제 곁에서 입을 다문 베르크에게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말 옆구리를 차 샛길을 따라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