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20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20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20장 삽화

25일 아침 피에르는 모자이스크를 떠났다. 대성당에서 예배가 진행되고 종이 울리는 오른쪽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이 시내 밖으로 이어지는 높고 가파른 언덕의 내리막에 이르자 피에르는 마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뒤에서는 군가대가 앞장선 기병 연대가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고 맞은편에서는 전날 전투에서 다친 부상병들을 실은 수레 행렬이 올라왔다. 농민 마부들은 소리 지르고 말에 채찍질하며 이쪽저쪽으로 길을 가로질렀다. 수레마다 부상병 서너 명이 눕거나 앉아 있었다. 급경사를 길답게 만들려고 깔아 놓은 돌 위로 수레가 덜컹거렸다. 누더기로 붕대를 감은 부상병들은 창백한 뺨에 입술을 꼭 다물고 눈살을 찌푸린 채 서로 부딪치며 수레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거의 모두가 피에르의 흰 모자와 녹색 연미복을 순진하고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피에르의 마부는 부상병 수레 행렬에 길 한쪽으로 비키라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군가대를 앞세워 언덕을 내려온 기병 연대는 피에르의 마차를 에워싸고 길을 막았다. 피에르는 길이 파인 절개지 가장자리에 밀려 멈췄다. 언덕 뒤의 햇빛은 절개지까지 닿지 않아 그곳은 춥고 축축했지만 머리 위에는 밝은 8월의 햇살이 비쳤고 종소리는 즐겁게 울렸다. 부상병을 실은 수레 하나가 피에르 곁에 멈췄다. 짚신을 신은 마부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철테가 없는 뒷바퀴 아래에 돌을 괴고 작은 말의 뒷걸이끈을 고쳐 맸다.

팔에 붕대를 감고 수레를 따라 걷던 늙은 부상병 하나가 성한 손으로 수레를 붙잡고 피에르를 돌아보았다.

“이보시오, 동향 사람! 우리를 여기에 내려놓을까요, 아니면 모스크바까지 데려갈까요?” 그가 물었다.

피에르는 생각에 깊이 잠겨 질문을 듣지 못했다. 그는 부상병 행렬과 마주친 기병 연대를 보다가 곁의 수레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부상병 둘이 앉고 하나가 누워 있었다. 앉은 병사 하나는 뺨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 온 머리를 누더기로 감았고 한쪽 뺨은 아기 머리만큼 부어 있었다. 코와 입이 한쪽으로 비뚤어졌다. 그는 대성당을 바라보며 성호를 그었다. 다른 한 명은 젊고 금발인 신병으로, 야윈 얼굴에 피가 한 방울도 없는 듯 하얬다. 그는 굳은 미소를 띠고 피에르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세 번째 병사는 엎드려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기병대 가수들이 바로 곁을 지나갔다.

아, 잃었네, 완전히 잃었네…… 내 총명한 머리를, 타향살이 속에서……

그들은 병사들의 춤곡을 불렀다.

그 소리에 다른 종류의 즐거움으로 답하듯 금속성 종소리가 높은 곳에서 울려 퍼졌고, 뜨거운 햇살은 맞은편 비탈 꼭대기를 또 다른 즐거움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피에르가 서 있는 비탈 아래, 숨을 헐떡이는 작은 말 곁의 부상병 수레 주변은 축축하고 어둡고 슬펐다.

뺨이 부은 병사는 기병대 가수들을 성난 눈으로 바라보았다.

“흥, 멋이나 부리는 놈들!” 그가 나무라듯 중얼거렸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오늘은 농민들도 보았소…… 농민들까지 가야 한답니다.” 수레 뒤의 병사가 피에르에게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즘은 구별도 없소…… 온 국민이 저들에게 달려들게 하려는 거요. 한마디로 모스크바지! 이번에 끝장을 내려는 거요.”

병사의 말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피에르는 그 뜻을 알아듣고 찬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길이 다시 열리자 피에르는 언덕을 내려가 계속 나아갔다.

그는 아는 얼굴을 찾으려고 줄곧 길 양쪽을 살폈으나 온갖 병과의 낯선 군인들만 보였다. 그들은 모두 피에르의 흰 모자와 녹색 연미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의 3마일을 간 끝에 아는 사람을 만나자 피에르는 반갑게 말을 걸었다. 군의관 최고 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젊은 외과의와 함께 덮개 달린 이륜마차를 타고 맞은편에서 오던 그는 피에르를 알아보고 마부석의 카자크 병사에게 멈추라고 했다.

“백작님! 각하께서 어쩐 일로 여기 계십니까?” 군의관이 물었다.

“그게, 아시다시피 저는 보고 싶어서…….”

“예, 예, 볼거리가 생길 겁니다…….”

피에르는 마차에서 내려 군의관과 이야기하며 전투에 참가하려는 뜻을 설명했다.

군의관은 쿠투조프에게 직접 가 보라고 권했다.

“전투 중 아무도 보이지 않는 엉뚱한 곳에 계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젊은 동료와 눈길을 주고받으며 말했다. “아무튼 전하께서는 백작님을 아시니 반갑게 맞아 주실 겁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군의관은 피곤해 보였고 서두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 그리고 우리 진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진지 말입니까?” 군의관이 되물었다. “그건 제 분야가 아닙니다. 타타리노보를 지나가십시오. 땅을 파는 사람들이 많이 보일 겁니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 보입니다.”

“거기서 볼 수 있습니까? 혹시 함께…….”

그러나 군의관은 그의 말을 끊고 자기 마차로 갔다.

“함께 가고 싶지만, 맹세코 일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는 목을 가리켰다. “군단장에게 달려가는 중입니다. 상황이 어떠냐고요? 아시다시피 내일 전투가 벌어집니다. 10만의 군대에서 적어도 2만 명이 다칠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6천 명을 감당할 들것도 침상도 위생병도 의사도 없습니다. 수레는 1만 대지만 다른 것도 필요합니다. 있는 대로 해내야지요!”

자기 모자를 즐겁게 놀라워하며 바라본 수천 명의 젊고 늙은 병사 가운데 어쩌면 방금 눈여겨본 바로 그 사람들 가운데 2만 명이 피할 수 없이 부상과 죽음을 맞는다는 이상한 생각에 피에르는 놀랐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죽음 이외의 것을 생각하는가?’ 알 수 없는 생각의 연결을 따라 모자이스크 언덕의 내리막과 부상병 수레, 종소리, 비스듬한 햇살, 기병대의 노랫소리가 생생히 떠올랐다.

‘기병들은 전투로 가면서 부상병과 마주쳐도 무엇이 기다리는지 잠시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며 부상병들에게 눈짓한다. 그런데 저들 가운데 2만 명이 죽게 되어 있는데도 내 모자를 보고 놀란다! 이상한 일이야!’ 피에르는 타타리노보를 향해 가며 생각했다.

길 왼쪽 지주의 저택 앞에는 마차와 수레, 전령과 보초 무리가 있었다. 총사령관이 그곳에 묵고 있었지만 피에르가 도착했을 때에는 교회 예배에 가고 없어 참모들도 거의 없었다. 피에르는 고르키 쪽으로 계속 갔다.

언덕을 올라 작은 마을 거리에 이르자, 피에르는 처음으로 흰 셔츠를 입고 모자에 십자가를 단 농민 민병대원들을 보았다. 그들은 큰 소리로 말하고 웃으며 활기차게 땀을 흘린 채 길 오른쪽의 풀로 덮인 커다란 둔덕에서 일했다.

몇몇은 땅을 팠고 다른 이들은 널빤지 위로 흙을 실은 손수레를 밀었으며 또 몇몇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두 장교가 둔덕 위에서 사람들을 지휘했다. 아직 군인이 된 낯선 처지를 재미있어하는 것이 분명한 농민들을 보자 피에르는 모자이스크의 부상병들을 다시 떠올렸고 “온 국민이 저들에게 달려들게 하려는 것”이라던 병사의 말을 이해했다. 기묘하고 둔중한 장화를 신고 땀에 젖은 목을 드러낸 채, 왼쪽에서 여미는 셔츠의 가슴 단추를 풀어 햇볕에 탄 쇄골을 내놓고 전장에서 일하는 수염 난 농민들의 모습은 그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어떤 것보다 이 순간의 장엄함과 중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