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35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35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35장 삽화

쿠투조프는 아침에 피에르가 보았던 깔개 덮인 긴 의자에 잿빛 머리를 떨구고 무거운 몸을 늘어뜨린 채 앉아 있었다. 그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남의 제안에 동의하거나 반대할 뿐이었다.

“그래, 그래, 그렇게 하게.” 그는 여러 제안에 대답했다. “그래, 그래. 가서 살펴보게, 이 사람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했고 “아니, 하지 말게. 기다리는 편이 낫겠어.”라고도 했다. 가져오는 보고를 듣고 부하가 지시를 요구하면 지시했다. 그러나 보고를 들을 때에는 말의 내용보다 다른 것, 보고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에 관심을 두는 듯했다. 오랜 군사 경험과 나이에서 온 지혜로 죽음과 싸우는 수십만 명을 한 사람이 지휘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았다. 전투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총사령관의 명령이나 부대의 위치, 대포 수나 사망자 수가 아니라 군대의 정신이라 불리는 손에 잡히지 않는 힘임을 알았다. 그는 그 힘을 지켜보고 자기 능력이 미치는 만큼 이끌었다.

쿠투조프는 전반적으로 조용히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고, 늙고 쇠약한 몸의 피로를 이겨 내기 힘든 듯 얼굴에는 긴장이 나타났다.

열한 시에 프랑스군에게 빼앗긴 보루를 탈환했으나 바그라티온 공작이 다쳤다는 소식이 왔다. 쿠투조프는 신음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 공작에게 가서 정확히 알아보게.” 그는 부관 하나에게 말하고 뒤에 선 뷔르템베르크 공작에게 돌아섰다.

“전하께서 제1군 지휘를 맡아 주시겠습니까?”

공작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묘놉스크에 도착할 수도 없는 시간에 그의 부관이 돌아와 병력을 더 달라고 요청한다고 전했다.

쿠투조프는 얼굴을 찡그리고 도흐투로프에게 제1군 지휘권을 넘겨받으라는 명령을 보냈다. 그리고 이 중요한 순간에 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며 공작에게 돌아오라고 했다. 뮈라가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에 참모 장교들이 축하하자 쿠투조프는 미소 지었다.

“조금 기다리게, 신사들.” 그가 말했다. “전투는 이겼고 뮈라가 붙잡힌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야. 그래도 기뻐하기 전에 기다리는 것이 좋겠지.”

그러면서도 그는 부관을 보내 그 소식을 전군에 돌렸다.

셰르비닌이 좌익에서 달려와 프랑스군이 보루와 세묘놉스크 마을을 점령했다고 보고했다. 전투 소리와 셰르비닌의 표정으로 나쁜 소식임을 짐작한 쿠투조프는 다리를 펴려는 듯 일어나 그의 팔을 잡고 옆으로 데려갔다.

“가서 무언가 할 수 없는지 살펴보게.” 그는 예르몰로프에게 말했다.

쿠투조프는 러시아군 진지 중앙 가까운 고르키에 있었다. 나폴레옹이 좌익에 가한 공격은 여러 차례 격퇴되었다. 중앙에서는 프랑스군이 보로디노를 넘지 못했고 좌익에서는 우바로프의 기병대가 프랑스군을 달아나게 했다.

세 시 무렵 프랑스군의 공격이 멈췄다. 전장에서 오는 사람들과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쿠투조프는 극도의 긴장을 보았다. 그날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라 만족했지만 노인의 기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몇 번이나 쓰러지듯 내려가 졸았고 저녁 식사가 나왔다.

안드레이 공작 곁을 지나며 “전쟁은 넓은 공간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바그라티온이 몹시 싫어한 볼초겐 부관이 쿠투조프가 식사하는 동안 말을 타고 왔다. 바클라이 드 톨리에게서 좌익의 전황을 보고하러 온 것이었다. 영리한 바클라이는 달려오는 부상자 무리와 혼란한 후방을 보고 모든 상황을 따져 전투가 패배했다고 결론 내리고 총사령관에게 그 소식을 전하려 심복을 보냈다.

쿠투조프는 구운 닭고기 한 조각을 힘겹게 씹으며 주름진 눈꺼풀 아래로 밝아진 눈으로 볼초겐을 바라보았다.

볼초겐은 태연히 다리를 뻗으며 입가에 반쯤 경멸하는 미소를 띠고 다가와 모자 차양에 손을 살짝 댔다.

그는 고도로 훈련된 군인인 자기는 러시아인들이 쓸모없는 노인을 우상으로 떠받들게 두지만 누구를 상대하는지는 안다는 것을 보이려는 듯 꾸민 태연함으로 전하를 대했다. ‘노인장이 아주 편안히 계시는군.’ 독일인들끼리 쿠투조프를 부르는 식으로 볼초겐은 생각했다. 그는 쿠투조프 앞의 음식들을 엄한 눈으로 보며 바클라이의 명령과 자기가 보고 이해한 대로 좌익의 상황을 ‘노인장’에게 보고했다.

“우리 진지의 모든 요점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고 병력이 부족해 몰아낼 수 없습니다. 병사들은 달아나고 있으며 막을 수 없습니다.”

쿠투조프는 씹기를 멈추고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놀란 눈으로 볼초겐을 뚫어지게 보았다. ‘노인장’의 동요를 알아차린 볼초겐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본 사실을 전하께 숨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군대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네가 보았다고? 보았다고?” 쿠투조프가 외쳤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재빨리 일어나 볼초겐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어떻게 감히!” 그는 숨이 막힌 듯 떨리는 팔로 위협하며 외쳤다. “어떻게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하나? 자네는 아무것도 몰라. 바클라이 장군에게 그의 정보가 틀렸고 전투의 실제 상황은 그보다 총사령관인 내가 더 잘 안다고 전하게.”

볼초겐이 반박하려 했으나 쿠투조프가 말을 끊었다.

“적은 좌익에서 격퇴되었고 우익에서 패했다. 잘못 보았다면 모르는 것을 말하지 말게! 바클라이 장군에게 가서 내일 적을 공격하겠다는 나의 확고한 뜻을 전하게.” 쿠투조프가 엄하게 말했다.

모두 침묵했고 숨을 헐떡이는 늙은 장군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적은 모든 곳에서 격퇴되었다. 나는 하느님과 용감한 우리 군대에 감사드린다! 적은 패했고 내일 우리는 러시아의 신성한 땅에서 그들을 몰아낼 것이다.” 쿠투조프는 성호를 그었다.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 흐느꼈다.

볼초겐은 어깨를 으쓱하고 입술을 비틀며 ‘노인장’의 자만하는 어리석음에 놀라 말없이 옆으로 물러났다.

“아, 여기 나의 영웅이 오는군!” 쿠투조프는 막 둔덕에 오르는 건장하고 잘생긴 검은 머리 장군에게 말했다.

그는 하루 종일 보로디노 전장의 가장 중요한 곳에 있었던 라예프스키였다.

라예프스키는 병사들이 진지를 굳게 지키고 있으며 프랑스군은 더는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쿠투조프는 보고를 듣고 프랑스어로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다른 몇몇 사람처럼 후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군?”

“반대로 전하, 승부가 나지 않은 싸움에서는 가장 완강한 쪽이 늘 이깁니다. 제 생각에는…….”

“카이사로프!” 쿠투조프가 부관을 불렀다. “앉아서 내일의 훈령을 쓰게. 그리고 자네는,”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전선을 따라가 내일 우리가 공격한다고 알리게.”

쿠투조프가 라예프스키와 이야기하며 훈령을 구술하는 동안 볼초겐은 바클라이에게서 돌아와 야전 원수가 내린 명령을 서면으로 확인해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쿠투조프는 볼초겐을 보지 않고, 전 총사령관이 개인적 책임을 피하려고 아주 현명하게 요구한 명령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군대 전체에 똑같은 기분을 유지하며 ‘군대의 정신’이라 불리고 전쟁의 힘줄을 이루는 신비롭고 정의할 수 없는 유대를 통해 쿠투조프의 말과 다음 날 전투를 하라는 명령은 즉시 전군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알려졌다.

그 사슬의 가장 먼 곳에 도달한 것은 같은 말도 같은 명령도 아니었다. 군대 곳곳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는 쿠투조프의 말과 닮지도 않았다. 그러나 말의 뜻은 어디에나 퍼졌다. 그의 말이 교묘한 계산이 아니라 총사령관과 모든 러시아인의 영혼에 똑같이 자리한 감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날 적을 공격한다는 것을 알고 최고 지휘부가 믿고 싶던 일을 확인해 주는 말을 듣자 지치고 흔들리던 병사들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