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16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16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16장 삽화

“자, 이제 다 끝났군!” 쿠투조프는 마지막 서류에 서명하고 말했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살찐 흰 목의 주름을 쓸어 펴고 한결 밝아진 얼굴로 문을 향했다.

사제의 아내는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하고도 제때 내놓지 못했던 접시를 얼른 집어 들었다. 얼굴이 장밋빛으로 붉어진 그녀는 깊이 절하며 쿠투조프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쿠투조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지으며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아, 미인이로군! 고맙소, 예쁜이!”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금화 몇 닢을 꺼내 접시 위에 놓았다. “그래, 잘 지내고 있소?” 그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의 문으로 가며 물었다. 사제의 아내는 장밋빛 뺨에 보조개를 지으며 웃고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부관이 현관으로 나와 안드레이 공작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다. 반 시간 뒤 안드레이 공작은 다시 쿠투조프에게 불려갔다. 쿠투조프는 여전히 단추를 풀어 둔 외투 차림으로 안락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손에는 프랑스어 책이 들려 있었고, 안드레이 공작이 들어오자 칼로 자리를 표시하고 책을 덮었다. 표지에 적힌 제목은 잔리스 부인의 《백조의 기사들》이었다.

“자, 앉게. 여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세.” 쿠투조프가 말했다. “슬픈 일이야, 참으로 슬픈 일이지. 하지만 기억하게. 나는 자네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 두 번째 아버지라는 것을…….”

안드레이 공작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아는 모든 것과 민둥산을 지나며 본 일을 쿠투조프에게 이야기했다.

“뭐라고…… 저들이 우리를 어떤 지경에 몰아넣었단 말인가!” 쿠투조프가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안드레이 공작의 이야기를 듣고 러시아가 처한 상황을 생생히 떠올린 듯했다. “하지만 내게 시간을 주게, 시간을 줘!” 그는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는 마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나는 자네를 곁에 두려고 불렀네.”

“감사합니다, 전하. 하지만 이제 저는 참모 근무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고 쿠투조프는 그 미소를 알아차렸다.

쿠투조프는 묻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안드레이 공작이 덧붙였다. “저는 이제 연대 생활에 익숙해졌고 장교들도 좋아합니다. 병사들도 저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연대를 떠나면 섭섭할 것입니다. 전하 곁에 있을 영예를 사양하더라도 부디 믿어 주십시오…….”

쿠투조프의 통통한 얼굴에 영리하고 다정하면서도 미묘하게 조소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볼콘스키의 말을 끊었다.

“아쉽군. 자네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자네 말이 옳아, 옳고말고! 사람이 필요한 곳은 여기가 아니야. 조언자는 언제나 많지만 사람은 없지. 조언자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자네처럼 연대에서 복무했다면 연대들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걸세. 아우스터리츠에서의 자네를 기억하네…… 그래, 기억해. 군기를 들고 있던 자네를 기억해!” 쿠투조프가 말했다. 그 기억에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에는 기쁨의 홍조가 번졌다.

쿠투조프는 그의 손을 잡아 아래로 끌어당기며 자기 뺨에 입 맞추게 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다시 노인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았다. 쿠투조프가 쉽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며, 특히 자신이 겪은 상실에 공감을 보이려 더욱 다정하고 사려 깊게 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드레이 공작은 아우스터리츠를 일깨워 준 그의 말이 기쁘고 흐뭇했다.

“가게.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를. 자네가 가는 길은 명예의 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네!” 그는 잠시 멈추었다. “부쿠레슈티에서 자네가 아쉬웠지만 보낼 사람이 필요했어.” 쿠투조프는 화제를 바꾸어 튀르키예 전쟁과 체결된 강화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전쟁과 강화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지…… 하지만 모든 일은 알맞은 때가 되어 이루어졌어. Tout vient à point à celui qui sait attendre. 그곳에도 여기만큼이나 조언자가 많았다네…….” 그는 자신을 사로잡은 듯한 ‘조언자들’ 이야기로 돌아갔다. “아, 그 조언자들이란!” 그가 말했다. “그들 말을 다 들었다면 튀르키예와 강화를 맺지도, 전쟁을 끝내지도 못했을 거야. 모두 서두르지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지. 카멘스키는 죽지 않았더라면 파멸했을 걸세. 그는 병사 3만으로 요새를 공격했지. 요새를 점령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어려워. 거기에 필요한 것은 맹공과 공격이 아니라 인내와 시간이야. 카멘스키는 루스추크로 병사들을 보냈지만 나는 이 두 가지만 썼네. 그래도 카멘스키보다 더 많은 요새를 빼앗고 튀르키예인들에게 말고기를 먹였지!”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프랑스군도 그렇게 될 걸세. 믿게.” 그는 점점 열이 올라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말고기를 먹이겠네!” 그의 눈은 다시 눈물로 흐려졌다.

*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제때 찾아온다.”

“하지만 결국 전투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모두가 원한다면 해야겠지.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믿게, 이 사람아. 인내와 시간보다 강한 것은 없어. 그 둘이 모든 일을 해낼 걸세. 하지만 조언자들은 n’entendent pas de cette oreille, voilà le mal. 누구는 원하고 누구는 원하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겠나?” 그는 대답을 기대하는 듯 물었다. “그래,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나?” 그는 되풀이했고 눈에는 깊고 영리한 빛이 떠올랐다. 안드레이 공작이 대답하지 않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내가 무엇을 하는지 말해 주겠네. Dans le doute, mon cher,” 그는 잠시 멈추었다. “abstiens-toi.” 그는 프랑스 속담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 “그들은 그런 식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 “의심스러울 때에는, 친애하는 이여, 아무것도 하지 말라.”

“자, 잘 가게. 자네의 슬픔에 온 마음으로 함께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자네에게 나는 전하도, 공작도, 총사령관도 아니라 아버지라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나를 찾아오게. 잘 가게, 이 사람아.”

그는 다시 안드레이 공작을 끌어안고 입 맞추었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이 방을 나가기도 전에 쿠투조프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읽다 만 잔리스 부인의 소설 《백조의 기사들》을 다시 펼쳤다.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는 안드레이 공작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쿠투조프와 만난 뒤 그는 전반적인 사태의 진행과 그것을 맡은 인물에 대해 안심하며 연대로 돌아갔다. 오직 지나간 정념의 습관만 남아 있는 듯한 이 노인에게 개인적 동기가 전혀 없으며, 사건들을 묶어 결론을 내리는 지성 대신 사건의 흐름을 침착하게 바라보는 능력만 있다는 것을 깨달을수록 모든 것이 마땅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커졌다. ‘그는 자기 계획을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고안하거나 함부로 착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말을 듣고 모든 것을 기억하며 제자리에 놓을 것이다. 유익한 일을 방해하지 않고 해로운 일을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의지보다 더 강하고 중요한 것, 곧 피할 수 없는 사건의 흐름이 존재함을 이해한다. 그 흐름을 보고 의미를 파악할 줄 알며, 의미를 보았기에 간섭을 삼가고 다른 것을 향한 개인적 욕망을 버릴 줄 안다. 무엇보다도,’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잔리스의 소설과 프랑스 속담에도 불구하고 그가 러시아인이기에 사람들은 그를 믿는다. “저들이 우리를 어떤 지경에 몰아넣었는가!”라고 말할 때 목소리가 떨렸고, “말고기를 먹이겠다”고 말할 때 흐느낌이 섞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소 막연하게나마 공유한 바로 이런 감정에 힘입어, 궁정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민중이 선택한 쿠투조프의 총사령관 임명은 만장일치의 전반적인 찬성으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