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9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9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9장 삽화

안드레이 공작이 보구차로보에 자리 잡기 전까지 영주들은 언제나 그곳을 비워 두었고, 그곳 농민들은 민둥산 농민들과 성격이 전혀 달랐다. 말씨와 옷차림, 기질이 모두 달랐다. 사람들은 그들을 초원 농민이라고 불렀다. 늙은 공작은 그들이 민둥산으로 와 수확을 돕거나 연못과 도랑을 팔 때 끈기 있게 일하는 것을 칭찬했지만, 그들의 거친 성질은 싫어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마지막으로 보구차로보에 머물면서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농민들이 내야 하는 공납금을 줄여 준 일도 그들의 기질을 부드럽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늙은 공작이 거친 성질이라고 부르던 특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온갖 불분명한 소문이 돌았다. 한때는 모두 카자크로 편입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또 한때는 모두 새로운 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차르의 어떤 포고문과 1797년 파벨 황제에게 한 맹세에 관한 소문도 있었다. 그 맹세와 관련해서는 자신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지주들이 가로막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표트르 표도로비치가 7년 뒤 황위에 돌아와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고 아무 제약도 없는 ‘단순한’ 세상이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보나파르트와의 전쟁과 그의 침공에 관한 소문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적그리스도와 세상의 종말, ‘완전한 자유’에 관한 똑같이 모호한 관념과 연결되었다.

보구차로보 근처에는 황실 소유 마을이나, 공납금을 내고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농노들이 사는 지주 소유의 큰 마을들이 있었다. 주변에 실제로 거주하는 지주는 거의 없었고 집안 농노나 글을 아는 농노도 매우 적었다. 그 지역 농민들의 삶에서는 러시아 민중의 생활 아래 흐르는 신비한 저류가 다른 곳보다 더욱 뚜렷하고 강하게 드러났다. 그 원인과 의미는 당시 사람들에게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약 20년 전에 일어난 한 사례로, 농민들이 어디인지 모를 ‘따뜻한 강들’로 이주하려 한 움직임이 있었다. 보구차로보 사람들을 포함한 농민 수백 명이 갑자기 가축을 팔고 가족 전체가 남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새들이 바다 너머 어딘가로 이동하듯 이 사람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남동쪽 지방의 ‘따뜻한 강들’을 향해 물결처럼 나아갔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길을 떠났고 한 사람씩 자유를 사거나 도망쳤으며, 마차를 몰거나 걸어서 ‘따뜻한 강들’로 향했다. 많은 사람이 벌을 받았고 일부는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도중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도 많았으며 자진해서 돌아온 이도 많았다. 이 움직임은 뚜렷한 이유 없이 일어났던 것처럼 저절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저류는 여전히 민중 속에 존재했고, 똑같이 기이하고 뜻밖이면서도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강력한 모습으로 나타날 준비를 하며 새로운 힘을 모으고 있었다. 1812년 지금, 이 사람들과 밀접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저류가 강하게 움직이며 폭발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늙은 공작이 죽기 얼마 전에 보구차로보에 도착한 알파티치는 농민들 사이의 동요를 알아차렸다. 반경 40마일 안의 농민들이 모두 떠나 카자크들이 마을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둔 민둥산 지역의 상황과 달리, 보구차로보 주변 초원 지역의 농민들은 프랑스군과 접촉하고 그들에게서 받은 전단을 서로 돌려 본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들은 이주하지도 않았다. 알파티치는 자기에게 충성하는 집안 농노들에게서 마을 공동체에 큰 영향력을 지녔고 최근 관청 수송대를 몰고 다녀온 농민 카르프가 돌아와 소식을 전했다는 말을 들었다. 카자크들은 주민이 떠난 마을들을 파괴하지만 프랑스군은 주민을 해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전날에는 다른 농민 하나가 프랑스군이 점령한 비슬로우호보 마을에서 프랑스 장군의 포고문까지 가져왔다는 사실도 알았다.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남아 있으면 가져가는 모든 것에 값을 치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증거로 농민은 비슬로우호보에서 건초 값으로 미리 받은 100루블짜리 지폐를 가져왔다. 그는 그 돈이 위조지폐라는 사실을 몰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알파티치가 공작 영애의 짐을 보구차로보에서 옮길 마차를 모으라고 촌장에게 명령한 바로 그날 아침 마을 회의가 열렸다는 점이었다. 회의에서는 떠나지 말고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늙은 공작이 죽은 15일, 귀족 대표는 상황이 위험해지고 있으니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즉시 떠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16일이 지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질 수 없다고 말했다. 늙은 공작이 죽은 날 저녁, 귀족 대표는 다음 날 장례식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났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뜻밖에 진격했다는 소식을 받아 자기 가족과 귀중품을 영지에서 겨우 빼낼 시간밖에 없었으므로 돌아오지 못했다.

보구차로보는 약 30년 동안 촌장 드론이 관리해 왔다. 늙은 공작은 그를 애칭으로 ‘드로누시카’라고 불렀다.

드론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강건한 농민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사람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수염이 무성하게 자라고, 흰머리 하나 나거나 이 하나 빠지는 일 없이 예순이나 일흔까지 변함없이 살며, 예순에도 서른 때처럼 꼿꼿하고 강하다.

드론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강들’로의 이주에 참여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구차로보의 촌장 겸 관리인으로 임명되었고, 그 뒤 23년 동안 흠잡을 데 없이 직책을 수행했다. 농민들은 주인보다 그를 더 두려워했다. 늙은 공작과 젊은 공작을 비롯한 주인들과 관리인은 그를 존중하며 농담으로 ‘대신’이라고 불렀다. 그는 직무를 수행하는 내내 한 번도 술에 취하거나 병든 적이 없었다. 밤을 새운 뒤나 가장 고된 일을 한 뒤에도 조금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글은 읽지 못했지만 자기가 공작을 위해 팔았던 끝없는 마차 행렬의 돈 계산이나 밀가루 쿼터 수를 하나도 잊지 않았고, 보구차로보 밭 어느 한 에이커에서 거둔 곡식 단 한 묶음의 수도 잊은 적이 없었다.

황폐해진 민둥산 영지에서 온 알파티치는 공작의 장례식 날 드론을 불렀다. 공작 영애의 마차에 쓸 말 열두 필과 보구차로보에서 옮길 짐을 실을 마차 열여덟 대를 준비하라고 했다. 농민들이 공납금을 내기는 했지만 보구차로보에는 일할 수 있는 농가가 230호나 되고 형편도 넉넉했으므로, 알파티치는 이 명령을 따르는 데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령을 들은 드론은 눈을 내리깔고 침묵했다. 알파티치는 자기가 아는 농민들을 몇 명 지목하며 그들에게서 마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드론은 그 농민들의 말이 짐을 나르러 나가 있다고 대답했다. 알파티치는 다른 사람들을 지목했지만 드론에 따르면 그들에게도 내놓을 말이 없었다. 어떤 말은 관청 짐을 나르고 있었고, 어떤 말은 너무 약했으며, 어떤 말은 사료가 없어 죽었다. 마차는커녕 사륜마차에 쓸 말조차 구할 수 없는 듯했다.

알파티치는 드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드론이 모범적인 촌장이었듯 알파티치도 20년 동안 헛되이 공작의 영지들을 관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상대하는 사람들의 필요와 본능을 알아맞히는 능력을 최고로 갖춘 모범적인 관리인이었다. 드론을 한번 바라본 그는 그 대답이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촌장이 이미 휩쓸려 들어간 보구차로보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를 나타낸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재산을 모아 공동체의 미움을 받는 드론이 주인과 농노라는 두 진영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음도 알았다. 드론의 눈빛에서 그 망설임을 알아차린 알파티치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자, 잘 들어라, 드로누시카.” 그가 말했다. “내게 허튼소리 하지 마라. 안드레이 공작 각하께서 친히 모든 사람을 옮겨 적에게 남겨 두지 말라고 명하셨고, 차르의 명령도 그렇게 내려왔다. 남는 자는 누구든 차르를 배신하는 자다. 들었느냐?”

“들었습니다.” 드론은 눈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알파티치는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봐, 드론. 일이 나쁘게 돌아갈 게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권한은 나리 손에 있습니다.” 드론이 슬프게 대답했다.

“이봐, 드론, 그만두어라!” 알파티치는 되풀이하며 가슴 안쪽에 넣었던 손을 꺼내 엄숙하게 드론의 발밑 땅을 가리켰다. “나는 네 속뿐 아니라 네 밑의 땅 석 자 아래까지 꿰뚫어 본다.” 그는 드론 앞의 땅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드론은 당황해 몰래 알파티치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이 허튼짓을 그만두고 사람들에게 집을 떠나 모스크바로 갈 준비를 하고, 내일 아침까지 공작 영애님의 짐을 실을 마차를 마련하라고 해라. 너도 어떤 회의에도 가지 마라. 들었느냐?”

드론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야코프 알파티치, 저를 해임해 주십시오! 열쇠를 거두시고 그리스도를 생각해서라도 저를 해임해 주십시오!”

“그만두어라!” 알파티치가 엄하게 외쳤다. “나는 네 속뿐 아니라 네 밑의 땅 석 자 아래까지 꿰뚫어 본다.” 그는 되풀이했다. 양봉 솜씨와 귀리를 뿌릴 적기를 아는 지식, 20년 동안 늙은 공작의 총애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 덕분에 자기가 마법사라는 평판을 오래전부터 얻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의 발밑 땅 석 자 아래를 보는 능력은 마법사의 속성으로 여겨졌다.

드론은 일어나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알파티치가 가로막았다.

“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는 것이냐, 응?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사람들을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드론이 말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닙니다. 벌써 말해 보았습니다…….”

“‘말해 보았다’고 하겠지!” 알파티치가 말했다. “술을 마시고 있느냐?” 그가 갑자기 물었다.

“완전히 제정신이 아닙니다, 야코프 알파티치. 또 술통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잘 들어라! 나는 경찰서장에게 갈 테니, 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이 짓을 그만둔 뒤 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알파티치는 더 다그치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관리해 왔고, 복종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들이 불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드론에게서 순종적인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짜낸 알파티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군대의 도움 없이는 마차가 나오지 않으리라고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확신했다.

실제로 저녁이 되어도 마차는 한 대도 마련되지 않았다. 마을 술집 밖에서 또 회의가 열렸고, 말들을 숲으로 몰아내고 마차는 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알파티치는 공작 영애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민둥산에서 온 마차들에서 자기 짐을 내려놓고 그 말들을 공작 영애의 사륜마차에 매도록 준비시켰다. 그러는 동안 자신은 경찰 당국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