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28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28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28장 삽화

많은 역사가는 나폴레옹이 감기에 걸려 프랑스군이 보로디노 전투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말한다. 감기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전투 전과 전투 중의 명령은 더 천재적이었을 것이고 러시아는 멸망하며 세계의 모습도 달라졌으리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한 사람 표트르 대제의 의지로 만들어졌고 프랑스가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바뀌고 프랑스군이 러시아로 간 것도 한 사람 나폴레옹의 의지 때문이라고 믿는 역사가들에게, 8월 24일 나폴레옹이 심한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남았다는 주장은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보일 수 있다.

보로디노에서 싸울지 말지가 나폴레옹의 의지에 달렸고 이런저런 배치도 그의 의지에 달렸다면, 의지의 발현에 영향을 주는 감기가 러시아를 구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24일 나폴레옹에게 방수 장화를 가져오지 않은 시종이 러시아의 구원자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결론이다. 볼테르가 자기가 무엇을 조롱하는지 모른 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샤를 9세의 위장 장애 때문이라고 농담 삼아 내린 결론만큼이나 확실하다. 그러나 러시아가 표트르 1세 한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졌거나 프랑스 제국과 대러시아 전쟁이 나폴레옹 한 사람의 의지로 이루어졌다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주장은 거짓되고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인간 현실 전체에 어긋난다. 역사적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다른 답이 떠오른다. 인간사의 흐름은 위에서 미리 정해져 있고 사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의지가 우연히 합쳐지는 데 달렸으며, 그 흐름에 미치는 나폴레옹의 영향은 외면적이고 허구적이라는 답이다.

명령을 내렸고 그 결과 학살이 벌어졌다고 생각한 샤를 9세의 의지 때문에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인다. 전투를 시작하고 지휘하라 명령했고 자기 명령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나폴레옹의 의지 때문에 보로디노에서 8만 명이 살육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위대한 나폴레옹보다 더한 인간은 아니어도 덜한 인간도 아니라고 말하는 인간의 존엄은 이 해답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며 역사 연구도 그것을 충분히 확증한다.

보로디노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아무에게도 총을 쏘지 않았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모두 병사들이 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인 것은 그가 아니었다.

프랑스 병사들이 보로디노에서 죽이고 죽으러 간 것은 나폴레옹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의지 때문이었다.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과 독일인과 폴란드인과 네덜란드인으로 이루어진 전군은 굶주리고 누더기를 걸쳤으며 원정에 지쳤다. 모스크바로 가는 길을 군대가 막자 이미 뽑은 포도주는 마셔야 한다고 느꼈다. 그때 나폴레옹이 러시아군과 싸우지 말라고 했다면 그를 죽이고 피할 수 없는 러시아군과의 싸움을 계속했을 것이다.

부상과 죽음의 보상으로 모스크바 앞 전투에 참가했다는 후세의 말을 주겠다는 나폴레옹의 포고를 듣고 병사들은 “황제 폐하 만세!”라고 외쳤다. 장난감 막대기로 지구를 찌르는 소년의 초상화를 보고도 그렇게 외쳤고 어떤 헛소리를 들어도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황제 폐하 만세!”라고 외치고 모스크바에서 승리자로 음식과 휴식을 얻으려고 싸우러 가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동료 인간을 죽인 것은 나폴레옹의 명령 때문이 아니었다.

전투 진행을 이끈 것도 나폴레옹이 아니었다. 그의 명령은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고 전투 중에는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죽인 방식은 나폴레옹의 의지로 결정되지 않고 공동 행동에 참여한 수십만 명의 의지에 따라 그와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모든 일이 자기 의지로 일어나는 것처럼 나폴레옹에게 보였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감기에 걸렸는가 하는 문제는 가장 하찮은 수송병의 감기보다 역사적으로 더 중요하지 않다.

더욱이 몇몇 저술가가 말하듯 감기 때문에 이전보다 배치안의 계획이 나빴고 전투 중 명령도 좋지 못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이는 8월 26일 나폴레옹의 감기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보여 준다.

앞에 인용한 배치안은 과거 승리할 때의 배치안보다 나쁘지 않고 오히려 더 낫다. 전투 중의 가짜 명령도 과거보다 나쁘지 않고 평소와 비슷했다. 다만 보로디노 전투가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투여서 더 나쁘게 보일 뿐이다. 패배한 전투에 관한 가장 심오하고 훌륭한 배치안과 명령도 몹시 나빠 보여 학식 있는 군사가는 엄숙한 표정으로 비판한다. 승리한 전투에 관한 최악의 배치안과 명령은 아주 훌륭해 보여 진지한 사람들이 책 여러 권을 채워 장점을 증명한다.

바이로터가 작성한 아우스터리츠 전투 배치안은 그런 글의 완벽한 모범이었지만, 완벽하다는 이유와 지나치게 세세하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보로디노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다른 전투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잘 권력의 대표자 역할을 수행했다. 전투 진행에 해로운 일은 하지 않았고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따랐다. 혼란을 일으키거나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았고 겁먹거나 전장에서 달아나지도 않았다. 뛰어난 처세술과 군사 경험을 바탕으로 침착하고 위엄 있게 지휘하는 듯 보이는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