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36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36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36장 삽화

안드레이 공작의 연대는 예비대로서 오후 한 시가 지나도록 세묘놉스크 뒤에서 맹렬한 포격을 받으며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두 시 무렵 이미 2백 명 넘게 잃은 연대는 짓밟힌 귀리밭, 세묘놉스크와 둔덕 포대 사이의 빈 곳으로 전진했다. 그날 수천 명이 죽은 곳이며 한 시에서 두 시 사이 적군 대포 수백 문의 집중 포화가 쏟아진 곳이었다.

한 발도 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은 채 그곳에서 연대는 다시 병력 3분의 1을 잃었다. 앞쪽과 특히 오른쪽의 걷히지 않는 연기 속에서 대포가 울렸고, 앞 전역을 덮은 신비로운 연기 속에서 빠르게 쉭쉭거리는 포탄과 천천히 휘파람 부는 작렬탄이 끊임없이 날아왔다. 쉬게 해 주려는 듯 15분 동안 모든 포탄이 머리 위를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1분 사이 여러 명이 찢겨 나갈 때도 있었다. 전사자는 계속 끌려 나가고 부상자는 실려 갔다.

새로운 타격이 올 때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은 줄었다. 연대는 3백 걸음 간격의 대대 종대로 서 있었지만 모두 같은 기분이었다. 하나같이 말없고 침울했다. 대열에서 드물게 들리던 말소리도 명중 소리와 “들것!”이라는 외침이 들릴 때마다 완전히 끊겼다. 장교의 명령에 따라 대부분 땅에 앉았다. 병사 하나는 모자를 벗어 안감의 주름을 조심스레 풀었다가 다시 조였다. 다른 병사는 손바닥 사이에 마른 진흙을 문질러 총검을 닦았고, 또 다른 병사는 탄띠를 만지고 버클을 당겼다. 어떤 병사들은 각반을 펴서 다시 감고 장화를 신었다. 갈아엎은 땅의 흙덩이로 작은 집을 짓거나 곡식밭의 짚으로 바구니를 엮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그 일에 완전히 몰두한 듯했다. 사람이 죽고 다치거나 들것 줄이 지나가고 부대가 후퇴하며 적군의 큰 덩어리가 연기 사이로 보일 때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아군 포병대나 기병대가 전진하고 보병이 앞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사방에서 칭찬이 들렸다.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전투와 무관한 일이었다. 포대가 연대 앞을 지나갈 때 탄약차의 말이 다리를 끌끈 위로 넘겼다. “이봐, 끌끈을 봐! 다리를 빼 줘! 넘어지겠어…… 못 보나!” 똑같은 외침이 전 연대의 대열에서 일어났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작은 갈색 개가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걱정스러운 듯 대열 앞을 종종걸음으로 지나다가 포탄이 가까이 떨어지자 낑낑거리며 꼬리를 말고 옆으로 달아난 일도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전 연대에서 고함과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이런 기분 전환은 한순간뿐이었다. 병사들은 여덟 시간 동안 먹지도 못하고 죽음의 끊임없는 공포 속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창백하고 침울한 얼굴은 갈수록 더 창백하고 침울해졌다.

안드레이 공작은 연대의 모두처럼 창백하고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등 뒤에 댄 채 귀리밭 곁 초원의 한 구획 끝에서 다른 끝까지 오갔다. 그가 하거나 명령할 일은 없었다.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전사자는 앞에서 끌려 나오고 부상자는 실려 갔으며 대열은 빈자리를 메웠다. 병사가 뒤로 달아나도 곧바로 급히 돌아왔다. 처음에는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우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대열 사이를 걸었으나 곧 그럴 필요도, 가르칠 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와 모든 병사의 영혼은 무의식적으로 처지의 공포를 생각하지 않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발을 끌고 풀을 스치며 초원을 걸으면서 장화의 먼지를 보았다. 풀 베는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려고 큰 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1마일을 걸으려면 구획 사이를 몇 번 오가야 하는지 계산하며 걸음을 세기도 했다. 경계의 고랑에 난 쑥꽃을 뜯어 손바닥에 비비고 알싸하고 달콤쌉싸래한 냄새를 맡기도 했다. 전날의 생각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소리를 지친 귀로 들으며 날아오는 포탄의 휘파람과 폭발음을 구별하고 제1대대 병사들의 지겹도록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온다…… 이번 것도 이쪽으로 오는군!’ 그는 숨은 연기 속에서 다가오는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하나, 또 하나! 다시! 맞았군…….’ 그는 멈춰 대열을 보았다. ‘아니, 넘어갔어. 하지만 이번 것은 맞았군!’ 그는 다시 경계선까지 열여섯 걸음에 가려고 했다. 휙, 쿵! 다섯 걸음 앞에서 포탄이 마른 땅을 파헤치고 사라졌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시 대열을 보았다. 많은 사람이 맞은 듯 제2대대 가까이에 큰 무리가 모였다.

“부관!” 그가 외쳤다. “한곳에 모이지 말라고 명령하게.”

부관은 지시를 따르고 안드레이 공작에게 다가왔다. 반대편에서는 대대장이 말을 타고 왔다.

“조심하십시오!” 병사 하나가 겁먹고 외쳤다. 빠르게 날던 새가 땅에 내려앉듯 포탄 하나가 작은 소리를 내며 안드레이 공작에게서 두 걸음, 대대장의 말 가까이에 떨어졌다. 말은 두려움을 보이는 것이 옳은지 따지지 않고 콧김을 뿜으며 앞발을 들어 소령을 거의 떨어뜨린 채 옆으로 달아났다. 말의 공포가 병사들에게 번졌다.

“엎드리십시오!” 부관은 땅에 납작 엎드리며 외쳤다.

안드레이 공작은 망설였다. 연기 나는 포탄이 들판과 초원 사이 쑥 곁, 자신과 엎드린 부관 사이에서 팽이처럼 돌았다.

‘이것이 죽음일까?’ 안드레이 공작은 풀과 쑥, 돌아가는 검은 공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전에 없던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죽을 수 없어.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삶을 사랑해. 이 풀과 땅과 공기를 사랑해…….’ 그는 생각했고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음을 동시에 떠올렸다.

“부끄럽지 않나!” 그는 부관에게 말했다. “무슨…….”

말을 끝내지 못했다. 폭발음과 부서지는 창틀 같은 파편의 휘파람, 숨 막히는 화약 냄새가 동시에 닥쳤다. 안드레이 공작은 한쪽으로 몸을 떨며 팔을 들었다가 가슴을 아래로 하고 쓰러졌다. 장교 몇이 달려왔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솟은 피가 풀 위에 큰 얼룩을 만들었다.

불려 온 민병대 들것꾼들이 장교들 뒤에 섰다. 안드레이 공작은 얼굴을 풀에 대고 엎드린 채 거칠고 시끄럽게 숨 쉬었다.

“무엇을 기다리나? 어서!”

농민들은 다가가 어깨와 다리를 들었다. 그가 애처롭게 신음하자 서로 눈길을 주고받고 다시 내려놓았다.

“들어 올려! 어차피 마찬가지야!” 누군가 소리쳤다.

그들은 다시 어깨를 잡고 들것 위에 눕혔다.

“아, 하느님! 하느님 맙소사! 어디지? 배인가? 그렇다면 죽겠군! 하느님!” 장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귀를 머리카락 하나 차이로 지나갔어.” 부관이 말했다.

농민들은 들것을 어깨에 맞추고 자기들이 밟아 만든 길을 따라 급히 야전병원으로 갔다.

“걸음을 맞춰! 아, 이 농민들!” 장교 하나가 고르지 않게 걸어 들것을 흔드는 농민들의 어깨를 잡고 세우며 소리쳤다.

“걸음을 맞춰, 표도르…… 이봐, 표도르!” 앞쪽 농민이 말했다.

“이제 됐군!” 뒤의 농민은 걸음이 맞자 기쁘게 말했다.

“각하! 아, 공작님!” 달려온 티모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들것을 내려다보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깊이 파묻힌 머리를 들것에서 조금 들고 말한 사람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민병대원들은 안드레이 공작을 수레들이 서 있는 숲가 야전병원으로 옮겼다. 자작나무 숲 가장자리에는 덮개를 젖힌 천막 세 개가 세워져 있었다. 숲속에는 수레와 말이 있었다. 말들은 이동식 구유에서 귀리를 먹었고 참새들이 내려와 떨어진 낟알을 쪼았다. 피 냄새를 맡은 까마귀 몇 마리가 조급하게 울며 자작나무 사이를 날았다. 천막 주위 5에이커가 넘는 곳에 피 묻은 여러 옷차림의 사람들이 서거나 앉거나 누워 있었다. 슬프고 주의 깊은 얼굴의 들것꾼들이 부상자 주위에 무리 지어 섰고 질서를 맡은 장교들은 그들을 몰아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병사들은 명령을 무시하고 들것에 기대어 앞의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천막에서는 크고 성난 외침이 나다가 애처로운 신음이 들렸다. 위생병들은 물을 가지러 뛰어나오거나 다음에 들일 사람을 가리켰다. 차례를 기다리는 부상자들은 신음하고 한숨 쉬고 울고 비명을 지르고 욕하고 보드카를 달라고 했다. 헛소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연대장인 안드레이 공작은 들것꾼들이 아직 붕대도 감지 못한 부상자들을 넘어 천막 가까이 데려갔고 지시를 기다렸다. 안드레이 공작은 눈을 떴으나 주위 일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초원과 쑥과 들판, 회전하는 검은 공과 갑작스럽게 타오른 삶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떠올랐다. 두 걸음 밖에서 머리 붕대를 감은 키 크고 잘생긴 검은 머리 하사관이 나뭇가지에 기대어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총탄에 머리와 다리를 다쳤다. 부상자와 들것꾼 무리가 주위에 모여 열심히 들었다.

“우리가 그자를 거기서 몰아내자 모든 것을 버리고 달아났고 왕까지 붙잡았소!” 그는 열에 들뜬 눈으로 주위를 보며 외쳤다. “그때 예비대만 왔더라면, 이 사람들아, 그자는 흔적도 남지 않았을 거요! 틀림없이 말하오…….”

주위 사람들처럼 안드레이 공작도 빛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위안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마찬가지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저곳에는 무엇이 있고 이곳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나는 왜 그토록 삶과 헤어지기 싫어했는가? 이 삶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다.’